비싼 카메라 이야기... 닮산님의 글

안녕 하세요, 사진동(PCMAN) 회원 여러분. 황톳길의 방장 '닮산 김종욱'입니다.

 

1) 사진동(PCMAN)에 제가 올린 글들의 일부는 공개된 글입니다. 여러분이 자유롭게 다른 동호회에 옮겨 싣거나 일부를 인용, 발췌하여 자신의 글이나 레포트에 실으셔도 좋습니다. 단 이 것은 글을 옮겨 싣는 사람이 '글쓴이(닮산 김종욱)'와 '출처(천리안 사진동(GO PCMAN))'를 명확하게 밝힌 경우에 한 합니다.

2) 일부 글들은 사진동 이외의 장소로 공개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 중에는 지극히 사사로운 개인 감정을 쓴 것도 있고, 또 명확하지 않은 논리로 억지스럽게 주장을 펴는 것들도 있고, 어떤 것들은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올린 글도 있기 때문입니다.

3) 이 원고들은 정리가 끝나는 대로 책으로 만들 예정입니다. 따라서 이 내용들은 저 자신과 사진동(PCMAN)의 '지적 재산'이며 다시 한번 말씀드리거니와 글 머리에 '공개'가 명시되어 있지 않은 글은 '비공개'로 간주되며 본인의 허락 없이 옮겨 실으면 안됩니다.

 

사진동(pcman)에 자주 들러 많이 읽어 주시고 의견이나 조언, 또는 질문이 있으신 분은 '황톳길'에 메일을 올리시거나 개인 메일을 보내 주십시오. 감사 합니다.

 

산닮사


차 례

 

1. 서문

2. 차례

3. 비싼 카메라는 왜 비싼가?

3.1 라이카(Leica)

3.2 핫셀브라드와 롤라이프렉스

3.3 린호프

4. 사진을 보는 눈

4.1 본대로 찍으면 느낀대로 나오는가?

4.2 주관적인 미학

4.3 미학적인 선구상

4.4 구도에 관하여

5. 미학의 역사

5.1 미학의 역사

5.2 사진 미학의 역사

5.3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

5.4 기술적인 선구상

6. 필림 다루기

6.1 빛!

6.2 '색온도'란?

6.3 조명의 방법과 방향

6.4 노출계의 딜레마

6.5 색

6.6 필림(구조, 감도, 입자, 종류, 분류)

7. 노출의 결정

7.1 노출의 측정과 노출 지수

7.2 부분 측광의 활용

7.3 노출 과다와 노출 부족

7.4 비선형 효과

8. 존 시스템

8.1 존 시스템의 두 가지 명제

8.2 톤의 단계와 존의 구분

8.3 존의 조절과 부분 계조(Local Contrast)

8.4 35미리 카메라의 존 시스템

8.5 선행 노출

9. 필터

9.1 흑백 사진의 필터

9.2 칼라 사진의 필터

9.3 그 외의 필터

10. 필림 현상약의 화학

10.1 현상약의 종류

10.2 성분 분석과 특성

11. 현상 방법과 조절

11.1 노말(Normal) 현상

11.2 증가와 감소( N+, N-) 현상

11.3 현상 후에 하는 농도 조절

12. 특수한 현상약 PMK

12.1 피로(pyro)의 특징

12.2 피로의 역사(탈보트의 칼로타입과 에드워드 웨스턴)

12.3 피로 네가티브의 광학적 특성

12.4 PMK처방과 사용 방법

12.5 피로 네가티브의 인화와 켈리어(Callier)효과

13. 다계조 인화지

13.1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 인화란?

13.2 다계조 인화지를 쓰는 이유

13.3 다계조 인화지의 원리

13.4 확대기 광원의 종류와 영향

13.5 일반적인 인화 방법

13.6 2차 노광 인화 방법

14. 사진의 가치

15. 맺음 말

부록 : 참고 자료

출전과 지은이

 

1. 비싼 카메라는 왜 비싼가?

 

이 책의 주제는 좋은 사진을 만들기 위하여 필림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고 노출과 현상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인화 작업에 필요한 제반 기술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를 검토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진기에 대한 이야기는 가급적 피하려고 하였다. 사진기와 렌즈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놓으면 쉽게 책 한 권이 넘는 분량이 되기 때문에 여기서 그런 이야기들을 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가지 원고만큼은 이 책에 넣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비싼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인데 따지고 보면 사진을 배우게 되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부닥치는 문제이며, 넘기가 쉽지 않은 고비가 바로 "비싸고 좋은 고급 기종의 카메라를 사야 좋은 사진을 만들 수 있다" 는 고급 병에 걸리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진 애호가들이 들뜬 호기심과 보물을 발견한 어린아이 같은 순박한 열정으로 사진에 뛰어 들었다가 그 정력을 카메라 섭렵에 탕진하고 지쳐 떨어져 나가게 되는 무서운 병이기도 하다. 요즈음 허영깨나 부린다는 강남의 돈 많은 아줌마들이 밍크 모피로 된 수영복을 입고 해수욕장에 나가는 것처럼 말리기도 지극히 힘들다. 이와 같은 기계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나 경외감이 사라진 연후에야 진정으로 자신의 예술에 대한 고뇌가 가능한 것이니 사진의 세계는 그 다음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제일 앞장에 비싼 카메라가 왜 비싼지에 관하여 이야기하게 된 것이다.

 

1. 띠융~~ '라이카'가 그렇게 좋은 것이어유?

 

때로는 카메라가 사진을 찍는 도구라는 본래의 목적보다 그것을 소유함으로써 위세를 떨쳐 보이기 위하여 선택 되기도 한다. 그렇게 하는 제일 간단한 방법은 물론 '비싼 카메라'를 사는 것이다. 여기서 비싸다는 기준은 그 가격이 단순히 얼마다 하는 것이 아니고 아무나 쉽게 살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비싸야 비싼 것이다.

이렇게 비싼 카메라도 상업적으로는 나름대로의 쓰임새가 있다. 고객을 확보하고 주문을 따내야 하는 상업 사진가 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가 장비를 고객들에게 슬쩍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스튜디오가 그런 비싼 물건을 두고 운영할 만큼 붐비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또 자신이 그만큼 역량 있는 작가라는 선입견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은 크던 작던 자신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알고 있어야 하는 기초적인 상술인데 아마도 이런 영향 때문인지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아마추어들도 모자라는 자신의 역량을 돈으로 감춰 보려는 경향이 있다.

 

비싼 카메라가 되기 위해서는 약간의 전설도 필요하다. 특히 렌즈에 대한 전설 없이는 비싼 카메라가 될 수 없다. 누구나 다 동의 하리라 믿지만, 렌즈의 성능은 시원찮은데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다고 소문이 난다면 시장의 극히 일부분이라도 탐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카메라를 만드는 업자들은 이 전설 부분에 대하여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전설은 업자가 아니라 그 카메라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기꺼이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카메라 중에 '렌즈가 좋아서 엄청나게 비싸 마땅한' 카메라들을 소개해 보면 대형 기종(4X5)중에 린호프 테크니카(Linhof Technika), 중형에 '롤라이후렉스(Rolleiflex)'와'핫셀브라드(Hasselbrad)' 35미리에 '라이카(Leica)'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가격은 린호프가 400만원 정도, 롤라이가 350만원, 핫셀브라드가 250만원, 라이카가 250만원 정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교환 렌즈를 몇 개 사서 구색을 맞추려면 대략 500만원에서 700만원 정도가 들어간다. 사실 요즘 한국 사람은 이 정도 물건을 살 재력쯤이야 있다. 그러나 이것이 승용차나 뭐 그런 것이 아니고 사진기인데 이 정도를 가볍게 지불할 사람이 많이 있을까? 아무튼 이 유명한 사진기들에 대한 품평을 좀 해보기로 하자. 그러나 먼저 비싼 카메라가 왜 비싼지 얘기를 끝내야겠다.

 

(그림1. 라이카, 롤라이, 핫셀브라드, 린호프 사진)

 

비싼 카메라를 구입한 사람들이 자기 카메라에 이상한 전설 같은 것을 만들려고 하는 진짜 이유는 집안에 버티고 있는 '마나님'때문이다. 아무리 사진을 좋아한다고 해도 승용차 한대를 살 수 있는 돈을 카메라 가방에 넣어 버린다면 인상 쓰지 않을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자신이 산 그 특별한 사진기에는 다른 어떤 기종도 흉내낼 수 없는 미지의 기능이, 신비한 효능이 있다고, 그래서 그만한 돈을 쓸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강변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동료들에게 "이게 보통 카메라와 다른 것이 하나도 없지만 돈이 남아서 그냥 한번 사봤어!" 라고 예기할 수 있는 배짱 두둑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바보 취급을 당하지 않으려면 자신의 구매 결정이 합리적인 근거하에 이루어 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독일의 롤라이 카메라를 인수한 삼성 카메라도 겁나게 비싼 카메라를 하나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다. 창원이나 구미쯤에 조그마한 조립 라인을 하나 만들고 포항제철에서 나오는 제일 좋은 특수강을 사용하여 수 작업에 가깝게 조립을 하는 것이다. 렌즈는 슈나이더(Schneider KREUZNACH)의 제노타(Xenotar) 시리즈를 붙이면 된다. 그리고 한 300만원쯤 되는 가격표를 붙여서 시장에 내 놓으면 잘 팔릴지도 모르겠다. 비싼 카메라도 허영심을 채워 주는 다른 물건들과 마찬가지로 비쌀수록 더 잘 팔린다는 근거가 약간 불확실한(?) 학설도 있다.

 

현재 롤라이의 주력 기종은 중형 6008이니까 라이카M6와 콘탁스G2의 중간쯤 되는 형태로 6X7사이즈의 기종을 만드는 거다. 물론 실패할 수도 있는데 이렇게 비싼 '삼성표' 카메라를 일단 내놓고 나면 주변에 있는 장비들, 즉 기존에 팔리고 있는 35미리 카메라류에 대한 인식도 덩달아 많이 올라가게 될 것이며 '삼성표'에 대하여 고급 브랜드라는 인상을 심어주게 되어 훗날 고급 기종의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마케팅 측면에서 본다면 롤라이6008과 핫셀브라드가 이미 차지하고 있는 6X6 사이즈의 시장에서 경쟁을 하는 것은 거의 승산이 없기 때문에 6X7사이즈의 시장으로 들어가야 한다.

6X7사진기 시장은 팬탁스67, 마미야 RZ, 마미야7, 브로니카GX등이 어느 것도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지 못한 채 혼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먼저 라이카에 대한 예기부터 해보자.

제일 먼저 라이카가 나오는 이유는 비싸기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그만큼 얼토당토 않은 전설이 제일 많은 기종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보기에 이 라이카는 너무 비싸다. 중형이나 대형 중에 있는 비싼 기종들은 그래도 카메라가 그만큼 크고 나름대로 주장할만한 꺼리가 있지만 겨우 35미리에 불과한 이 라이카가 이렇게 비싸서야 말이나 되겠는가? 라이카에 대한 전설은 대충 다음과 같은 것들인데 '렌즈의 성능이 환상적이다.', '중형 카메라를 쓰느니 라이카를 쓰면 중형과 같은 성능, 해상도를 얻을 수 있다.', '전지로 확대해도 입자가 보이지 않는다.', '기계가 정교하고 고장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총알도 뚫지 못할 만큼 단단하다.' 등등 이다.

 

내가 제일 처음 써본 라이카는 R3이다. 렌즈는 주미크론(Summicron) f2.0이었다. 사실 라이카에 대한 황당한 예기들을 그대로 믿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뭔가 차이가 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X8의 루페로 아무리 들여다봐도 다른 카메라로 찍은 사진과 차이를 모르겠다. 뭐 좀더 샤프한 맛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입자가 작은 것도 더더욱 아니었다. 11X14로 확대한 사진에서도 차이를 느낄 수가 없다. 도대체 펜탁스(Pentax)나 니콘(Nikon)으로 찍은 사진과 어디가 틀리단 예긴가? 안광이 지배를 철하도록 필림을 들여다본 끝에 결론을 내렸

다. "음... 아마도 내가 사력이 짧아 라이카의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없는 모양이구먼...좀 더 써 보면 알겠지...."

그래서 처음엔 라이카가 얼마나 좋으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역시 라이카는 뭔가 틀려..' 라고 대답을 했다. 그 사람들도 그런 대답을 기대하고 물어본 것이니까. 그런데 사진을 아무리 더 찍어봐도 도저히 모르겠다. '뭔가 이건 아닌데.....'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보기엔 솔직히 콘탁스(Contax) 카메라의 플라나(Planar) 렌즈가 헐 씬 더 좋아 보였다.

지금은 R3에서 M4를 거쳐 라이카 IIIf를 쓰고 있다. 카메라 연대기로 보면 시대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이 라이카 IIIf는 내가 정말 아끼면서도 35미리 사진 작업에 즐겨 사용하는 주력 사진기이지만 이제 와서 특별한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평범한 사진기일 뿐이고 성능도 그저 그렇지만 작고 단단한 몸체에 휴대성이 좋고 이미 손에 익어 다루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라이카 R7 과 M3)

(라이카 IIIf 와 렌즈군. 내가 지금도 애용하고 있는 기종이다.)

(라이카로 찍은 사진)

 

아무튼 그래서 라이카를 삼신 할머니처럼 믿고 있는 고수들에게 도대체 어디가 차이가 나는 것인지 물어 보기 시작했다. 제일 흔한 대답은 11X14정도론 차이가 나지 않고 전지로 크게 확대를 해야 그 차이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이미 11X14에서도 입자가 보이기 시작하는 필림이 더 크게 확대하면 선명해 질 거라고?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대답이어서 실재로 더 확대를 해볼 필요를 느끼지도 못했다.

더 웃기는 경우는 중형 카메라로 찍은 사진보다도 좋다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자기가 촬영한 필림을 자세히 보기나 하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 내가 실제로 사용해본 제일 값싼 중형 사진기인 야시카(Yashica) TLR로 촬영한 사진 보다 라이카의 사진은 훨씬 못하다. 네가티브 면적이 4배정도 차이가 나는데 사진의 선명도를 서로 비교한다면 이건 고등학생과 초등학생이 싸우는 권투시합 같은 거다. 처음부터 체급이 맞지 않는 것이다. 35미리는 35미리 끼리, 중형은 중형끼리 비교를 해야 공정한 것이고 또 35미리와 중형 카메라는 각자 고유한 쓰임새가 있는 것이므로 서로를 비교해서 이것이 저것보다 낫다 아니다를 논할 일이 아닌 것이다. 중형 필림의 면적이 35미리 보다 4배 넓다는 의미는 같은 성능의 렌즈를 사용하였을 때 사진이 4배 더 선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라이카로 찍은 사진이 중형 카메라로 찍은 사진보다 더 좋다면 라이카(Leica) 렌즈는 중형 카메라의 렌즈보다 4배 이상 더 선명하단 말인가? 일반적인 렌즈의 해상력이 60lpm (lines-per -millimeter) 정도인데 라이카의 렌즈는 최소한 240lpm을 넘는다는 말인가? 오늘날의 렌즈는 물리적인 한계에 가까운 해상력을 가지고 있는데 라이카(Leica) 렌즈는 어떻게 물리적인 법칙을 무시하고 240lpm을 낸단말인가? 중형 야시카는 그렇다 치고 중형 핫셀브라드나 롤라이프렉스도 최고급 렌즈를 가지고 있는데 라이카(Leica) 렌즈는 최고급 렌즈보다도 더 최최고급이란 말인가?

 

라이카의 사진은 다른 35미리 사진기와 비교해 보면 사실 특별히 흠 잡을 데는 없다. 적어도 니콘이나 캐논 렌즈로 찍은 사진과 비교해 더 떨어질 것도, 더 나을 것도 없다. 그러나 중형 카메라보다 더 낫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말로 어이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 정도면 이 계통에서는 광신도에 가깝다. '믿으면 곧 보이리라'는 식으로 그렇게 믿는 사람의 눈에는 거친 입자도 선예한 윤곽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35미리 와 중형 필림의 크기 비교)

 

이왕 시작한 김에 라이카 광신도들을 좀더 몰아 붙이기로 작정하였다. 니콘과 라이카로 찍어놓은 사진을 몇 장 골라서 테스트를 하기로 한 것이다. 라이카 렌즈가 그렇게 환상적이고 다른 렌즈는 도저히 따라올 수 없다니까, 그 사진들 중에서 라이카 렌즈로 찍은 것과 니콘 렌즈로 찍은 것을 가려내 보라고 내밀었다. 이 짖궂은 테스트는 사실 아무도 호응을 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말았는데 내가 사진을 내놓으면 일부는 질겁을 하고 급히 전화할 곳이 있다는 둥... 자리를 피하고 일부는 마치 계룡산 도사 같은 표정으로 그런 차이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거라 대답했다. 글쎄... 눈에 보이지도 않는 차이면 도대체 무슨 차이인가? 사진은 시각 예술이 아니던가?

사실 차이가 있을 리 없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데 다른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 있을 리 없고 설령 있다고 해도 그 사람 눈에만 보일 터이니 '이야기 속으로'같은데 나오는 '귀신 붙은 사진기'이거나 아니면 '자신이 자기 스스로를 접대하는 자기 만족'일 뿐이다. 좀 짧은 말로 줄이면 '셀프 접대'라고 말할 수 있겠다.

"???....."

무었을 스스로 접대하는고 하니 자신의 눈은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미묘한 차이 라도 구분해 낼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가졌다고 추켜 세운다는 얘기다.

 

(라이카와 니콘)

(롤라이와 야시카 필림, 부분 확대)

(촬영에 사용된 주미타 렌즈, 니콜 렌즈, 텟사 렌즈, 플라나 렌즈, 야시논 렌즈)

 

라이카의 신화는 사실 라이카 사용자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이렇게 자신 있게 얘기 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 광학 엔지니어로서 반도체 분야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본사가 통칭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라고 불리우는 산호세(San Jose, California)에 있는 KLA-Tencor사인데 반도체 장비는 특성상 최첨단의 광학 시스템을 갖추어야만 하게 되어있다. 반도체 제조 공정도 사진을 만드는 과정과 기본적으로 동일한 것인데 그대신 반도체 공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선(회로 패턴)을 광학적으로 구현해 내야 하기 때문에 극단적인 해상력과 광학적 평면성(Optical flatness : 화면의 주변부에 촛점

이동이나 왜곡이 생기지 않는 것)를 요구하는 분야이다. 이 정도의 극한에 가까운 성능을 요구하는 분야는 인공 위성의 감시 카메라 말고는 없을 것이다.

 

반도체라고 하면 우리나라가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고 세계 시장의 흐름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유일한 분야이다. 그러는 의미에서 사진하고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지 개요를 잠깐 살펴 보자. 먼저 웨이퍼(Wafer)라고 불리우는 실리콘 단결정 원반 위에 감광 물질을 칠하여 '인화지'에 해당 하는 것을 만든다. 그 다음으로 회로의 패턴이 그려져 있는 마스크(Mask; 네가티브에 해당)를 스테퍼(Stepper; 확대기에 해당)에 넣어 노광을 주고 트랙(Track; 45분 현상소의 자동 현상기 같은 기계)으로 현상과 정착을 하여 사진 공정(Photo process)을 마치게 된다. 사용되는 장비와 재료는 다르지만 그 원리는 일반적인 사진과 완전히 동일한 과정이다.

 

사진

인화지

네가티브

확대기 노광

현상, 정착

반도체 웨이퍼

PR 코팅

(인화지)

마스크

(네가티브)

스테퍼 노광

트랙 현상, 정착

 

물론 메모리 칩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진 공정 이외에도 식각(Etching), 확산(Diffusion), 박막(Thin film) ...등등의 추가적인 공정을 더 거치기는 하지만 사진 공정에서 얼마나 미세한 패턴을 그려 줄 수 있느냐에 따라 회로의 집적도가 달라져서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오는 "한국의 모 기업, 세계 최초로 256M 메모리 칩의 시제품 개발....."등등의 기사가 실릴 수 있는 것이니 실로 사진 공정이야 말로 반도체 기술 경쟁의 핵심을 이루는 분야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시판되는 16메가 메모리 칩을 생산하는데 요구되는 최소 선폭은 0.3um(um은 10의 마이너스 6제곱)이고 64메가 메모리 칩 이라면 0.2um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반도체 산업에 사용되는 광학 렌즈들은 렌즈 제조업체들의 최신 기술이 총 망라 되어 있고 또 반도체의 사진 공정에 쓰이는 장비들은 정밀 기계 공학의 상징인 카메라 제조업체에서 생산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예를 들어서 스테퍼(Stepper: 자동 패턴 기록 장치이며 한 대당 가격이 200만불 정도 한다)같은 것은 하나의 생산 라인에 40대 에서 50대 가량 들어가는 고가의 장비인데 일본의 니콘(Nikon)사와 캐논(Cannon)사가 전세계 시장을 양분하여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는데 왕년에 독일이 카메라 시장에서 활약하고 있을 당시, 치열하게 각축을 벌이던 라이카와 콘탁스의 싸움은 그 후 카메라 시장의 주도권이 일본으로 넘어가면서 라이카의 복제품을 만들던 캐논과 콘탁스를 그대로 모방한 니콘과의 각축전으로 변했는데 짜이스(Zeiss Ikon; 콘탁스 카메라의 메이커)의 렌즈 기술을 추종한 니콘이 단연코 우위로 나서 일본의 고급 카메라 기종이라고 하면 니콘 F(Nikon F) 시리즈 카메라를 가리키는 말처럼 되어버렸다.

이런 경향은 스테퍼 시장에도 그대로 이어져 렌즈의 성능이 시원찮은 캐논은 지리멸멸하며 시장에서 떨어져 나갈 위기에 몰렸는데 여기에 한국이 새로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면서 변수가 생겼던 것이다.

당시의 스테퍼도 니콘이 독점하다시피 하여 그 횡포와 거만이 대단했었다. 한국 사람들의 성격이란, 이런 것은 두고 보지 못하는 법이라 캐논에 '안되면 되게 하라!'는 식으로 대량 발주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반도체 회사들은 같은 가격에 성능이 더 우수한 니콘만 사용하고 있는 터였는데 '한다면 하는' 한국 사람들이 발주를 내자 캐논은 구세주라도 만난 듯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한국 시장에 달라붙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자 니콘도 비슷하게 파격적인 조건을 걸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고 만년 2위에서 벗어나려는 캐논은 눈물겨운 연구 정진으로 성능을 개선해 나갔고 그 사이에 한국이 반도체 생산에서 세계 제일의 위치가 되자 이제 당당히 니콘과 어깨를 겨루는 처지가 된 것이다. 스테퍼 한대의 가격이 500불짜리 카메라 4~5천대의 가격과 같은 정도니까 이런 장비를 한번에 40~50대씩 판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엄청난 시장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럭저럭 캐논은 기사회생하였고 그 여세를 몰아 EOS기종을 들고 나와서 니콘의 시장 점유율을 잠식하고 있으니 그 이면에는 한국인의 다소 우악스러운 고집이 작용하였던 것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스테퍼 같은 기계를 만들 수 있는 광학적, 기계적 기술이 우리에게는 아직 없다는 것이다. 니콘과 캐논의 이름만 들어도 짐작이 가겠지만 카메라와 스테퍼는 사촌격으로 다같이 정밀 기계 공학과 광학 기술의 정수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국의 광학 산업과 정밀 기계 분야는 일본에 비하면 아직 수준이 많이 뒤떨어지는 데다 일본인들이 한국의 카메라 회사에 부품과 주변 기술은 줄지언정 핵심 기술을 내놓을 리는 만무하다. 그러니 결국 우리 힘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는 없는 일인데 아까 삼성 카메라가 롤라이의 기술을 열심히 배워서 비싼 카메라를 하나 만들면 어떨까 한 것도 그냥 해 본 소리가 아니라 다 배워두면 두고 두고 쓸모가 있기 때문에 한 말이었다.

 

KLA-Tencor에서 사용하는 광학 시스템은 라이츠(Leitz; 라이카 카메라의 메이커)사의 렌즈들과 미국 멜리스 그리오트(Melles-Griot)사의 렌즈군으로 이루어져있다. 광학 엔지니어로 일하려면 당연히 라이츠 렌즈군의 광학적 특성이나 스펙(spec: 사양)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 같은 찍새가 라이츠의 사진기용 렌즈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라이츠사의 기술 자료를 아무리 훌터 보아도 라이카 렌즈의 해상력이 다른 메이커의 렌즈보다 우수하다는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나도 깜짝 놀란 사실이지만) 라이카 렌즈들은 구면 수차를 완전히 수정하지 않고 약간 남겨 두어 해상력을 의도적으로 떨어트리고 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3차원의 피사체를 2차원의 인화지에 재현하는 사진기 렌즈에서 해상력을 다소 희생시키더라도 보다 입체감 있는 묘사를 해주기 위해서이다. 또한 라이츠사는 사진을 선명하게 하기 위하여 렌즈의 해상력을 올리는 대신 콘트라스트를 올리

는 방법을 더 선호한다. 렌즈의 콘트라스트가 높아지면 피사체의 윤곽이 더 뚜렷하게 구분되어 보이게(즉 밝고 어두운 차이가 크다) 되는데 이것은 렌즈가 더 세밀하게 묘사(해상력이 높다)할 수 있다는 것과는 틀린 예기이다.

 

결론적으로 라이츠 렌즈군은 구면 수차가 남아 있어 해상력은 생각처럼 높지는 않고 오히려 약간의 흐려짐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을 높은 콘트라스트의 윤곽선으로 보상하여 선명한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졌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진이 선명한 듯 하면서도 부드럽게 묘사되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는 것인데 그러고 보면 라이카 렌즈의 맛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라는 계룡산 도사급의 촌평이 뭔가 예언에 가까운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쩝... 내가 짧은 안목으로 도사 앞에서 발칙하게 까불었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라이카 렌즈로 찍은 사진과 다른 렌즈로 찍은 사진을 구별해 낼 수 있는 혜안을 가지지 못하였다. 도사는??) 어쨌든 이런 독특한 묘사 능력은 렌즈의 사양을 토대로 한 추정일 뿐이고 실제로 느끼기는 다소 힘들다. 그 이유는 선명한 듯 하면서도 부드러운 독특한 묘사력이 인화지 위에 재현될 정도로 구면 수차를 많이 남길 수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오늘날은 과학적 데이타와 기술 자료를 무작정 신봉하는 시대라 구면 수차를 많이 넣어 해상력이 다른 회사의 제품보다 떨어지는 렌즈를 만든다면 대번에 물건이 팔리지 않게 된다. 외국의 여러 사진 잡지나 인터넷의 사진 관련 사이트를 보면 온갖 렌즈에 대한 꼼꼼한 테스트들이 올라와 있는 것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자료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뭐가 좋은 건지 알기 힘들게 되어 있고 이거나 저거나 다 똑같은 것이다는 것을 이렇게 어렵게 얘기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런 테스트들은 신빙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개인의 취향이나 의견 같은 주관적인 것은 무시하고 '해상력 테스트'나 'MTF 테스트'등의 객관적 데이타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니 라이츠사가 해상력을 낮게 잡아 렌즈를 디자인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오래된 기종에 붙어 있는 구형 렌즈들은 라이카 고유의 특징이 강하다. 라이츠의 스크류 마운트(Screw Mount) 카메라는 IIIG기종을 끝으로 1956년에 생산이 중단 되었는데 당시에 35미리 카메라 시장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던 '짜이스 이콘(Zeiss Ikon)'사의 콘탁스(Contax) III와는 뚜렷한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이 당시에 라이카 IIIf나 IIIG에 사용되었던 주마(Summar), 주미타(Summitar), 엘마(Elmar) 렌즈들은 구면 수차로 인하여 해상력은 떨어지지만 독특한 흐려짐이 있어 다른 렌즈(특히 면도날로 자른 듯이 선명한 묘사를 하는 짜이스의 렌즈)와 차이가 났던 것이다. 이런 흐려짐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쨌든 오늘날 생산되는 라이츠 렌즈들은 이런 것을 잘 느낄 수 없다. 당시의 짜이스 렌즈의 선명한 묘사는 'Bite look'(깨물어 뜯은 자국처럼 선명하다는 의미)이라는 말을 유행시킬 정도 였는데 짜이스의 텟사(Tessar)를 복사한 라이츠의 엘마(Elmar) 렌즈나 플라나(Planar)를 복제한 주마(Summar) 렌즈는 원조 렌즈와 같은 성능을 도저히 낼 수가 없었고 라이츠는 렌즈의 해상력이 아닌 분위기로 승부를 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콘탁스는 성능이 뛰어난 만큼 그 가격도 만만치 않아 라이카(Leica) 기종의 1.5배 정도 나가는 그야말로 최고급 기종이었는데 불행히도 (라이츠로서는 다행히도) 콘탁스III의 바디는 라이카 IIIf나 그 후의 M3만큼 튼튼하지는 못하였다. 그 주요 원인은 샷타였는데, 라이카의 샷타가 헝겊으로 된 막을 수평으로 움직이는 방식인데 비하여 콘탁스의 샷타는 얇은 금속 막을 수직으로 움직이는 방식이었다. 비록 콘탁스의 샷타 방식이 더 우수한 점이 많아서 오늘날 사용되는 포칼플레인 샷타(Focal plane shutter)의 원조가 되기는 했지만 그 당시의 기술로 이런 금속막 샷타를 정교하게 동작시키는데는 무리가 따랐던 것이다. 그래서 카메라 수리로 생업을 꾸려가던 기술자들 사이에서는 콘탁스가 단연코 좋은 제품으로 인정 받은 것이다. (콘탁스의 샷타 문제는 2차 대전 후에 개량형 IIIA가 나오면서 해결 되었다)

한편 콘탁스는 필림을 교환하기 쉽도록 밑판과 뒤판이 같이 떨어지게 되어 있으나 라이카III기종은 바닥판만 떨어져 나오기 때문에 이 좁은 틈으로 필림을 장전하려면 엄청난 불편을 감수해야만 한다. 요즘에 나오는 카메라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겐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번거로운 것이 바로 '구형 라이카에 필림 넣기'인데 이런 사용자들의 희생 덕분에 라이카는 몸통 전체를 다이케스트(Die Cast)로 주조 할 수 있게 되어서 라이카 바디는 총알도 뚫기 힘들 정도로 튼튼하다는 말이 엄연한 사실로 되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 까지나 III기종에 대한 얘기이고 밑판과는 별도로 뒷판도 열수 있게 만든 M기종은 역시 단단한 편에 속하지만 일본 미놀타사(Minolta)에서 미놀타XE-7이나 XD-11을 껍데기만 바꿔 라이카 R3, R4, R5.. 등등으로 이름을 붙여 생산한 기종에 이르면 튼튼하다는 말도 남의 일이 되고 만다.

 

(라이카 렌즈군, 주마, 주미타, 엘마 렌즈 디자인)

(콘탁스 렌즈군, 텟사, 조나 렌즈 디자인)

(콘탁스의 필림 장전과 라이카의 필림 장전, 샷타막의 구조)

(III 기종의 차이 , 필림넣는 방법)

 

그러면 마지막으로 라이카에 대한 황당 중의 황당,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뻥구라의 지존을 소개하자면.... '라이카의 렌즈는 시각 장애인이 만든다'는 이야기이다. 소문인즉슨 라이츠사는 기계적인 가공도 믿지 못하여 손끝의 감각이 크리넥스 홑 겹을 두 쪽으로 가를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한 시각 장애인을 고용하여 렌즈를 쓱 더듬어보고 잘 깎였는지 아닌지를 판정한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자신이 직접 본 것처럼(한 손으로는 아끼는 라이카를 쓰다듬어 가면서) 천연덕스럽게 예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거의 샤머니즘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이다. 이런 무속의 경지에 이르는 발상도 따지고 보면 다분히 동양적인 것인데 서구인들이란(특히 독일인들은 더욱 더) 확고한 물리적인 법칙과 과학적인 측정 기술을 저희 조상들의 음덕보다 헐 씬 더 신뢰하는 인종들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렌즈를 만져보고서 판정한다는 것은 아마도 '렌즈 만드는 것'과 '고려 청자 만드는 것'을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이 동양인이 지어낸 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어쨌든 라이카는 하나쯤 가져 볼만한 사진기이긴 하다. 잘 만들어진 기계이며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디자인을 가지고 있고( R기종은 이 말에서 빼고 싶다) 또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수도 있다. 라이카라는 이름은 사진의 역사에서, 그리고 카메라의 역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그런 카메라를 소유한 덕분에 덩달아 부러움의 눈초리를 받게 된들 그리 나쁠 것도 없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환상적인 작품이 우수한 렌즈에 힘입어 쉽게 만들어 질' 거라는 기대 때문에 라이카 같은 비싼 카메라를 사고 싶어한다면 그건 정말 말리고 싶다. 사실은 생각과는 반대로 사진을 배우는데 커다란 장애물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고가의 장비를 아끼지 않고 함부로 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보통은 사진기의 광택을 보존하느라 가죽 케이스에 꼭꼭 싸서 여인네가 은장도 품고 다니듯 가지고 다니는데 심지어 샷타에 무리가 갈까 봐 사진을 잘 찍지 않는 사람도 있다. 렌즈도 너무나 비싸기 때문에(어차피 사치품은 다 그런 거지만) 이것 저것 필요한 대로 사서 쓸 수가 없다. 서너 달 동안 이 카메라를 아끼느라 노심초사하다가 아예 사진에 대한 흥미가 피곤으로 변해 버리는 사람도 보았다. 이렇게 되고 나서도 사진을 제대로 배우거나 잘 찍게 되는 사람을 나는 본적이 없다. 진짜루~.

 

사진기가 본래의 목적에 종사하지 못하고 위세를 떨치는 용도로 전용되면 그 사람의 사진 세계도 거의 끝난 것이다.

 

 

2. 롤라이와 핫셀; 영원한 맛수

카메라 이야기를 할 때 '롤라이프렉스(Rolleiflex)'와 '핫셀브라드(Hasselbrad)'는 같이 묶어서 예기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중에서 로미오만 예기하고 줄리엣은 빼놓는 것과 같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두 기종은 중형 카메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서로가 상대방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두 기종의 역사가 곧 중형 카메라의 역사나 마찬가지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롤라이와 핫셀브라드의 공통점인 '칼 짜이스(Carl Zeiss)'렌즈에 대해서 언급하고 나면 카메라의 역사에 대하여 어지간한 부분은 다 다루게 되는 것이다. 롤라이가 그 명성을 얻은 것이 상당 부분은 짜이스 렌즈에서 기인한 것인데 그 롤라이를 시장에서 몰아낸 핫셀브라드도 같은 짜이스 렌즈를 사용하여 명성을 얻었다는 것은 좀 아이러니컬한 역사이다.

 

이 두 기종도 어지간히 비싼 카메라이다. 그러나 사람을 은근히 실망시키는 라이카와는 달리 돈을 들인 만큼의 값어치를 다소 하는 편이다. 그 이유는 두 기종이 다 120필림을 사용하는 중형 카메라이고 35미리 카메라에 비해 필름 면적이 4배 정도 넓기 때문에 한눈에 보기에도 차이가 나는 사진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11X14정도로 확대한 사진에서 중형 카메라로 찍은 사진과 35미리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그 선명도나 깨끗한 묘사력에서 차이가 많이 나고 그것은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의 눈에도 확연히 드러난다. 물론 중형끼리 비교한다면, 예를 들어 롤라이로 찍은 사진과 핫셀브라드로 찍은 사진을 비교한다면 서로 구분 할 수가 없겠지만.....

요즘은 대부분의 사진가들이 35미리 카메라로 사진을 시작하고 또 거기에 눈이 익어 있기 때문에 중형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처음 보면 그 깨끗한 묘사력에 감동을 받게 된다. 그러나 찬찬히 뜯어보면 아직 모자라는 부분도 많이 있다. 중형 사진은 인물이나 상품 같이 비교적 단순한 형태의 피사체를 찍은 사진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풍경 사진과 같이 복잡 다단한 디테일을 가지고 있는 피사체에는 아직 해상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35미리로 찍은 풍경 사진 보다야 잘 나오기는 하지만 16X20이상으로 확대된 사진에서는 거친 입자가 눈에 띄게 된다. 풍경 사진에서의 진정한 선명도는 4X5와 같은 대형 카메라를 써야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35미리에서 중형으로 바뀔 때 필림이 4배 정도 넓어진다고 하였는데, 중형에서 다시 대형(4X5)으로 넘어갈 때 필림이 5배 정도 더 넓어진다. 그래서 중형 사진과 대형 사진을 비교해 보면 역시 뚜렷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상업 사진가들이 중형 카메라를 애용하는 데에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상업적 용도에 쓰이는 사진은 사실은 크게 확대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잡지의 상품 광고나 카타로그 같은데 쓰이는 사진은 커봐야 8X10 정도이고 간혹 지하철 같은데 걸려 있는 큰 사진을 제작하는 경우도 있긴 있지만 그래도 상업 사진은 11X14이상 커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이 정도 크기의 확대라면 중형 사진기로도 필요한 선명함을 충분히 얻을 수 있다. 진정으로 높은 해상력과 깨끗한 이미지를 추구하고자 하는 요구는 사실은 아마츄어 사진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아마츄어는 사진의 용도가 작품 전시회를 하는 정도로 한정되어 있는데 액자에 넣어서 걸어놓은 사진이 관람자에게 '예술 작품'으로 비쳐지려면 거의 한계점에 다다를 정도의 품질 높은 인화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다. 물론 자신의 분야에 따라 이런 기준은 달라질 수 있는데 기록 사진(다큐멘타리 사진) 같은 경우라면 쓰기 좋은 35미리 AF카메라가 최고겠지만 풍경이나 건축 사진을 찍을 때에는 중형으로도 필요한 만큼의 선명함이 얻어지지 않을 때가 많은 것이다. 사진의 내용, 그 자체가 중요한 기록 사진 분야와는 달리 순수 예술 분야인 풍경 사진에서는 극단적으로 추구된 디테일이나 톤의 변화 같은 것도 감상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또 건축 사진에서는 다른 종류의 카메라에는 없는 무브먼트(Movement)가 필요하기 때문에, 4X5정도의 대형 카메라가 이 분야의 표준 장비나 마찬가지로 되게 된다. 그래서 중형 카메라는 사진의 품질과 작업 속도 사이에서 타협해야 하는 상업 사진가에게 알맞은 장비이고 극단적인 사진의 질을 추구하는 아마츄어에겐 대형 카메라가 맞는 장비이다.

롤라이나 핫셀의 가격은 대부분의 아마츄어에게는 다소 벅찬 수준인데 큰맘 먹고 사고 나서도 '35미리 보다는 나은 편이지만 원하는 만큼은 안되는' 어중간한 선택이 될 가능성이 있다. 쓸만한 대형 카메라('다찌하라'나 '위스타' 기종)와 렌즈를 몇 개 구하는 가격이 중형 카메라 바디 값보다도 저렴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중형 카메라를 그리 쉽게 생각할 것도 아닌 것이다. 그래서 중형 카메라를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은 자신이 무었 때문에 그 기종을 사려고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왠지 멋있어 보이니까....' 라면 뭐 할말이 없지만 '선명한 사진을 찍기 위해서...'라면 도대체 얼마만큼의 선명도를 자신이 원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다. 중형 카메라는 이름 그대로 중간 정도의 선명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최고의 품질을 원하는 사람에겐 맞지 않는다. 그리고 사진의 선명도보다 그 내용을 더 중요시하는 사람은 빠르게 조작 할 수 있는 35미리 카메라가 유리하다.

앞서 라이카 편에서도 예기하였지만 이런 고가 장비를 구입하는 것에는 위험이 따른다. 과도하게 비싼 카메라를 가지면 많은 경우에 사진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리고 사진기 관리에 혼신의 힘을 쏟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부 분야에서는 이 고가의 중형 카메라가 제구실을 다해 준다고는 하지만 또 어떤 분야에선 극력 피해야 할 선택이기도 한 것이다. 여기서는 롤라이후렉스SL66E와 핫셀브라드 500CM에 대한 품평을 할 예정인데 먼저 역사를 조금 살펴보도록 하자.

 

(롤라이 MX Automat, 발매년도, Xenar렌즈, Automat의 자동 필림감기; Automat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하여 자동 노출이나 자동 촛점 같은 기능을 이 카메라에 기대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는 노출계조차 들어있지 않은 순수한 기계식 카메라인 것이다. 이 이름은 중형 필림의 첫 부분을 자동으로 감지하여 내부의 톱니바퀴를 셋팅해주는 기능에서 따온 것이다.다른 중형 카메라에서는 필림의 화살표를 카메라 내부에 있는 표시와 맞추어야 하지만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 당시 기술로는 아주 훌륭한 디자인이다.)

 

(슈나이더 제나(Xenar) 렌즈)

(SL66E의 필림 필러, 66SE부터는 사라짐)

(롤라이 이안의 텟사 렌즈, 필터 세트)

 

롤라이가 1928년에 최초의 중형 TLR(Twin Lens Reflex: 이안 반사식)카메라를 발매하자 즉각적인 호응을 얻게 되었다. 아담한 덩치에 비하여 당시로서는 깜짝 놀랄만한 성능을 지녔고 기계의 신뢰성도 높아서 전문가가 요구하는 '험악한 환경에서의 학대'를 무리 없이 잘 견뎌 내었기 때문이었다. 롤라이는 '칼 짜이스'광학의 명품 렌즈 '텟사(Tessar)'를 장착 하였는데 그 당시로서는 최고의 품질을 가진 렌즈였다. 아니다! 짜이스의 텟사는 지금까지도 생산되면서 여러 종류의 고급 카메라에 사용되고 있으니 그 당시의 텟사 렌즈가 이미 현대적인 기준에 맞는 성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롤라이는 곧 '독일제 카메라 = 최고급 카메라'라는 등식을 수립하였는데 그 명성의 반은 텟사 덕분이다. 오늘날에는 렌즈 만드는 기술이 평준화 되어서 (60년대 이후 컴퓨터를 이용하여 디자인하고 수치제어 공작기계(NC Machine)으로 가공을 할 수 있게 되자) 짜이스가 렌즈 분야에서 가지고 있었던 독점적인 지위와 명성도 많이 퇴색하였다.

그러나 박사 학위를 가진 연구원들과 수학자들이 모여 200개의 연립 미분 방정식을 3년여에 걸쳐 풀면서 렌즈를 디자인 하던 그 당시에는 짜이스 렌즈의 명성을 따라갈 자가 없었다. 짜이스는 사실상 렌즈를 만드는 유명 업체 중의 하나가 아니라 렌즈의 역사 그 자체이다. 짜이스의 아베(Abbe)박사는 1886년 렌즈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종류의 유리 특성을 규명하여 아베 상수라는 것을 만들었다. 이것이 물리책의 광학편에 나오는 바로 그 '아베 상수'다. 또 서로 다른 매질을 투과하는 빛이 어떤 경로를 취하게 되는 가를 규명하여 '아베의 공식'을 만들었다.

 

(아베의 공식, 아베의 년대기)

 

이 간단해 보이지만 천재적인 영감이 번득이는 방정식이 나옴으로써 렌즈를 만드는 일이 예술의 세계에서 공학의 세계로 나왔다. 그 이전까지는 광학적 성질이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부 장인들의 손재주와 경험,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영감에 의하여 제작되었던 것이다.(이 때는 렌즈 만드는 일과 고려 청자 만드는 일이 비슷하였다고 볼 수도 있겠다) 짜이스는 아베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유리에 바륨(Ba)이 함유된 고굴절유리를 만들었고 독일 예나(Jena)에 있는 짜이스 공장에서 나온 이 유리를 렌즈 디자이너들은 예나 글라스(Jena glass)라 불렀다. 이 예나 글라스는 짜이스 광학에서 독점적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고 다른 렌즈 업체에도 공급되었기 때문에 렌즈 디자이너들은 비로서 유리창이나 만들어야 할 유리가 아니라 균일한 품질과 높은 굴절율을 가진 '광학 유리(Optical glass)'로 렌즈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현대적인 렌즈 디자인은 사실 단 3명의 천재적인 디자이너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크게 업적을 세운 사람이 짜이스의 루돌프(Rudolph) 박사이다. 루돌프는 먼저 1896년에 플라나(planar) 렌즈를 설계하였는데 이론적으로는 완벽한 이 렌즈가 실제로는 쓸모 없는 것이라고 판명되었다. 렌즈 코팅 기술이 없었던 당시에는 플라나 디자인(4군 6매)이 가지고 있었던 표면 반사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플라나 렌즈는 1950년대 렌즈 코팅 기술이 확립된 후 시장에 나오게 된다. 1903년에 루돌프는 다시 텟사(Tessar) 렌즈를 디자인 하였다. 이 렌즈는 3군 4매로 구성되어 플라나 보다 간결한 디자인으로 되어 있고 코팅 없이도 훌륭한 성능을 내주는 완벽한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20세기의 전반부 즉 1950년 까지는 텟사가, 그 이후는 플라나가 최고급 렌즈의 대명사로 자리 잡게 되었다. 텟사와 플라나의 실용상의 차이는 플라나가 최대 조리개가 2단계 정도 더 밝다는 점이고 그 외의 성능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짜이스사 루돌프 박사의 디자인, 플라나 와 텟사)

(롤라이의 플라나와 핫셀브라드의 플라나 ; 핫셀브라드에 사용되는 플라나는 몸체 안에 있는 거울이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공간을 주기 위하여 렌즈 요소를 추가 하여 필림 과의 거리를 띄워 놓았다. 이 때문에 같은 플라나라도 특성이 약간 변하여 롤라이의 플라나가 역광에서 플레어(Flare) 현상이 더 적게 일어나고 렌즈의 콘트라스트도 더 높게 나오게 되었다. 공학에서 모든 디자인은 간결할수록 더 우수한 것이다.)

 

1950년까지는 독일 카메라의 독무대 였다. 35미리 카메라는 라이카와 콘탁스(요즘 일본의 '교세라'에서 나오는 콘탁스가 아니라 스투트가르트의 '짜이스 이콘'에서 나오던 IIIA 기종을 말한다)가 명성을 떨치고 있었고 중형 카메라에서는 롤라이가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롤라이가 나온 이후로 수 많은 업체들이 롤라이의 디자인을 모방하여 시장에 진출하였지만 그 어느 것도 롤라이의 명성을 위협하기는 커녕 그 근처에 근접하지도 못하였다. 우수한 렌즈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계적 신뢰성은 브라운슈바이크에 있는 롤라이 공장에서 일하는 긍지에 찬 마이스터(Meister: 장인)들과 당시의 산업계에서 입수할 수 있었던 최고 품질의 재질과 간결하고 기능적으로 설계된 내부 구조 때문이었다.

 

50년대가 되자 35미리 카메라 시장은 파도처럼 밀려드는 값싸고 조악한 품질의 일본 제품과 최고급만 추구하는 독일 제품이 한데 엉켜 일대 난타전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이제 대서양 시대를 마감하고 태평양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말하는 듯, 일본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당시의 일본의 기술로는 중형 카메라 시장을 넘보기에는 아직 역부족이어서 중형의 왕자 롤라이로서는 느긋한 입장이었는데 뜻밖에도 북쪽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웅크리고 있던 바이킹의 후예, '빅터 핫셀브라드'씨가 중형 카메라 시장에 뛰어 들었다.

 

(핫셀브라드 500CM)

 

'빅터 핫셀브라드'씨는 스웨덴에서 가내 수공업에 가까운 카메라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스웨덴 공군의 요청으로 항공 정찰용 카메라를 제작 납품하게 된다. 스웨덴은 중립국으로 이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빅터씨도 별 재미를 보지는 못하였는데 전쟁이 끝나자 이 카메라를 민수용으로 제작하여 판매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최초의 민수용 모델은 '핫셀브라드 1600F'였는데 시장에 나오자 마자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카메라의 디자인은 SLR(Single Lens Reflex: 일안 반사식)타입이고 렌즈 교환이 되고 필림 백도 교환이 되는 모델이어서, 이미 30년이나 묵은 롤라이의 디자인과는 비교도 안되게 참신한 것이었다. 그리고 렌즈는 미국의 코닥사에서 제작한 엑타(Ektar)를 붙였다. 이 엑타 렌즈는 독일을 제외한 나라에서 만든 것 중에 짜이스 렌즈와 겨룰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사실은 한 수 위라고 까지 말할 수도 있다. 광학 산업에서 독일에게 기선을 빼앗긴 미국은 사진계의 거인인 코닥을 중심으로 로체스터(Rochester)시에 모여서 미국 광학 산업을 일구고 있었다.(미국 광학의 주류를 이루었던 코닥(Kodak), 아이렉스(Ilex), 그라프렉스(Graflex), 엘지트(Elgeet), 칼타(Caltar), 바슈 엔 롬(Bausch and Lomb)이 모두 이 도시에 모여 있었다) 코닥의 렌즈 디자인은 짜이스의 텟사를 그대로 베낀 것인데 여기에 바륨(Ba) 대신 란타니움(Lanthanium)이라는 희토류 광물을 섞어 굴절율을 한층 더 높인 재료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코닥은 자기네가 만든 이 고성능 렌즈에 자랑스럽게 엑타라는 이름을 붙였고 핫셀브라드는 이 렌즈를 장착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도 샷타가 말썽이었다. 콘탁스가 샷타 문제로 라이카에 고전하였듯이 1600F에 있는 포칼 프레인 샷타는 문제가 너무 많은 제품이었다. 콘탁스의 샷타는 수직으로 24mm를 움직이는데 반해 핫셀브라드의 샷타는 60mm를 움직여야 했다. 이렇게 길어진 거리에다 최고 샷타 속도를 1/1600초가지 나오도록 해 놓으니 샷타 막이 운동량을 이기지 못하여 한쪽으로 처박히는 엉킴(jamming)현상이 빈발하였던 것이다. 빅터씨도 자기 욕심이 좀 과하였다는 것을 인정하고는 최고 속도를 1/1000초 까지 낮춘 '핫셀

브라드 1000F'모델을 후속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장은 계속 되었고 유럽과 미국의 카메라 수리점은 핫셀브라드 기종으로 때아닌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1957년에 핫셀브라드는 기존의 디자인에 일대 변혁을 가하게 된다. 500C라는 이름으로 발매된 새로운 디자인은 카메라의 신뢰성을 올리는 쪽으로 촛점이 맞추어 졌는데 렌즈를 코닥 제품에서 짜이스 제품으로 바꾸면서 말썽 많은 자사의 포칼 프레인 샷타도 과감히 포기하고 독일의 콤퍼(Compur)사에서 제작한 렌즈 샷타로 바꾸게 되었다. 또 렌즈 마운트도 새로운 형태로 설계되어 1600F이나 1000F의 렌즈는 그 후에 나온 핫셀브라드에는 맞지 않게 되었다. 핫셀브라드의 구형 렌즈 마운트는 후에 소련이 불법 복제하여 만든 '키에프 88'이라는 카메라에 채용되었다.

 

전쟁이 끝났을 당시 칼 짜이스의 모든 시설과 인원은 소련이 점령한 예나(Jena)에 있었는데 그 곳에서 탈출하여 서독으로 망명한 기술자들이 스투트가르트(Stuttgart)에 모여서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짜이스 회사를 재건 하기 시작하였다. 전쟁에 패한 독일인들은 생계를 위하여 낮은 임금도 마다 않고 눈물 겹도록 일해서 얼마 안 있어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려는 참이었다. 당시 독일인이 얼마나 근검 절약하였는지는 담배 불을 붙이는데 최소한 다섯 명이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성냥 하나로 돌려가며 불을 붙였다는 일화에서도 알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 당당하게 실렸던 신빙성 있는 예기인데 내가 중학생이었을 당시의 우리나라가 새마을 운동을 한참 전개하던 때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상했던 점은 왜 독일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형씨, 불 좀 부칩시다..."하며 담배와 담배를 마주 대고 불 부칠 줄을 몰랐느냐는 점이었다. 아무튼 전후 독일 경제 부흥의 신호탄이 된 '폭스바겐'자동차를 선두로 값싸고 품질 좋은 독일제 상품들이 유럽 시장에 물밀듯이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반면에 승전국인 미국의 달러화는 전후에도 엄청난 강세를 유지하였다. 이것은 곧 엑타 렌즈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뛴다는 것을 의미했다. 핫셀브라드는 결국 렌즈 마운트를 개조해야 하는 등의 여러 가지 불리한 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값싼 짜이스 렌즈로 바꾸고 말았다.

한편 이와 똑같은 상황이 그 후 70년대 말에 다시 한번 벌어지었는데 핫셀브라드사는 가격이 만만치 않게 올라버린 짜이스 렌즈를 포기하고 일본 니콘사의 니콜(Nikkor)렌즈를 채용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었던 것이다. 중형 카메라용 니콜 렌즈는 이미 젠자 브로니카(Zenza Bronica)의 S2나 EC-TL같은 기종에 채택되어 나름대로 성능을 인정받고 있던 때였다. 그러나 두 번째 결단은 검토로서 끝나고 실제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하마터면 오늘의 핫셀브라드 애호가들이 일제 렌즈를 쓰게 될뻔한 사건이었다.

 

이 500C기종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면서 롤라이 제품을 단숨에 시장에서 몰아내었다. 짜이스의 입장에서 보면 두 회사가 다 자사의 렌즈를 사용하므로 누가 이기던 상관 없는 싸움이었겠지만 롤라이로서는 두 다리가 휘청거릴 정도로 통렬한 일격이었다. 롤라이는 수십 년간 부동의 위치에서 쌓아온 명성을 너무 믿은 것이 아니었나 싶다. 시장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전통만 고집하고 있는 사이에 시장이 등을 돌려 버린 것이다. 사실 롤라이는 핫셀브라드의 1600F가 샷타 문제로 고전을 하고 있을 때 이 기종을 제압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 그 중요한 시기에 롤라이는 뭘 믿고 그렇게 당당했는지, 손에 들어온 기회를 전통과 고집 때문에 놓친 것이었다. 1966년이 되자 롤라이가 뒤늦은 반격에 나섰다. 1948년에 핫셀브라드1600F가 나온 지 무려 18년 만이었다. 롤라이는 핫셀브라드에 대항하기 위하여 전직원을 상대로 거사적인 디자인 공모를 하여 참신한 아이디어를 많이 모아 놓고 검토를 하였는데 35카메라를 그냥 뻥튀기하여 키워 놓은 것 같은 것에서부터 당시 기술로는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첨단 미래형 카메라까지 다양하였다. 그 중에서 최후까지 남아 경합하던 두개의 디자인이 있었으니 그 중 하나가 SL66이고 다른 하나가 SLX이다.

 

(롤라이후렉스 SL66E)

(촛점 조절, 이중 바요넷, 틸트, 내장된 노출계)

 

시장에 먼저 나온 것은 SL66인데 핫셀브라드에 비하여 여러 가지 장점을 갖춘 우수한 기계였다. 먼저 SL66은 촛점을 맞출 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헬리코이드 링(Helicoid ring) 대신에 주름 상자를 달아 엄청나게 길게 연장이 되도록 하였다. 여기에다 렌즈를 꺼꾸로 붙일 수 있는 이중 바요넷 마운트를 만들어 대 배율의 접사 기능을 추가하였다. 또 마운트를 상하로 8도씩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 대형 카메라에서나 가능한 틸트(Tilt) 기능을 구현하였다. 중형과 소형을 통틀어 이런 틸트 기능을 가진 카메라는 지금까지도 이것 뿐이다. 샷타는 포칼프레인 샷타로 1/1000초 까지 가능한데 롤라이의 포칼프레인 샷타는 독일제답게 정밀 기계 공학의 정수로써 아주 신뢰성이 높은 것이었다. 롤라이SL66이 나오자 이 오래되고 명성 높은 회사에서 신제품이 나오기를 학수 고대하던 롤라이 팬들은 뛸 듯이 기뻐하였다. 그러나 가격표를 보는 순간 기쁨도 한순간 일뿐..... 롤라이SL66은 그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서 핫셀브라드의 거의 두 배 가까이 되었다. 지금도 핫셀브라드의 가격이 싼 게 아닌데 그 당시야 오죽 했을까? 롤라이는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을 거둔 사람이 아니라면 가지기 힘든 물건이 되버린 것이다. 거기다가 1966년이라는 시기도 너무 늦은 것이었다. 어느 정도 시장 점유율을 가진 상태에서 신제품으로 반격하는 것이 아니고 완전히 물러난 시장을 다시 공략한다는 건 두 배의 노력으로도 달성하기 힘든 목표인 것이다. 핫셀브라드는 500C에 이어 500CM, 500EM, 2000FC등으로 신제품을 계속 내 놓으며 기세를 올리고 롤라이의 사정은 날로 악화되어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신세가 되었다. 1974년이 되자 SLX가 발매 되었으나 시장의 변화를 일으키지는 못하였다. 1981년 11월 6일 롤라이는 드디어 도산이라는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한 기업의 흥망을 놓고 너무 과장하여 말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역사의 방향은 기회가 주어진 순간에(그 순간은 결코 길지 않다) 결단을 내리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잔인하게 돌아서 버리는 것이다. 워털루에서 웰링턴 장군을 덥친 나폴레옹도 그의 부하 장군이 전선의 북서쪽을 삼일간이나 헤매면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사이에 프러시아 지원군을 받은 영국군에게 패배하게 된 것이 아닌가? 그루쉬(Grouchy)라는 이름의 약간 답답한 프랑스 장군은 블뤼허(Blucher) 장군이 이끄는 프러시아군을 저지하라는 임무를 띄고 병력의 삼분의 일을 데리고 나갔는데 막상 워털루에서 전투가 벌어졌는데도 돌아오지 않고 없는 프러시아군만 찾아 다녔던 것이다.

"왜?"

"전투가 벌어지면 돌아오란 예기는 안 했으니까!"

그는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에 나폴레옹이 손바닥에 써준 명령을 맹목적으로 지키느라 그가 패전하는 것을 보고만 있었던 것이다. 그가 찾던 프러시아 군은 워털루에서 포성이 들리자 나폴레옹군의 옆을 치기 위하여 워털루 쪽으로 방향을 바꿨는데도 말이다.... 그 후로 유럽 역사의 방향은 영원히 바뀌어 버렸다.

 

도산한 롤라이를 구한 것은 United Scientific Holdings,Ltd라는 영국 회사였다. 그 후 몇 차례 더 주인이 바뀌다가 드디어 한국의 삼성 그룹이 인수하여 이제는 한국(?)회사가 되었다. SL66은 SL66E를 거쳐 SL66SE가 된 다음 생산이 중단되었고 SLX는 SL6006을 거쳐 SL6008로 변하면서 다시 상업 사진가들의 애호를 받게 되었다. 롤라이로서는 무려 30여년 만의 성과다. 6008이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사진가들의 호응을 받게 된 것은 이제 세월도 많이 변하여 바야흐로 전자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SLX이후로 시도해온 중형 카메라의 전자화가 사용자들에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특히 경쟁이 말도 못하게 치열한 상업 사진쪽에서는 가격이 높더라도 헐 씬 빠르고 정확하게 작업할 수 있는 기종을 찾게 된 이유도 있다. 그리고 이제 핫셀브라드가 너무나 흔해져서 왕년에 '전문가의 상징이자 프로의 자존심'같았던 핫셀이 이젠 '아마추어가 흔히 쓰는'기종이 된 까닭도 있다. 어쨌든 상업 사진가 들은 자신의 스튜디오에 뭔가 흔히 볼 수 없는, 범상치 않은 분위기의 카메라를 하나쯤 두고 싶어하는 법이다.

 

(롤라이후렉스 6008)

 

내가 처음 롤라이SLX를 구입한 것은 뉴욕의 'Camera Brokers'라는 가게에서 였다.(나는 미국으로 출장 갈 때마다 카메라를 하나씩 사왔다. 보통은 50불에서 100불 미만의, 장식품으로나 쓸만한 고풍스러운 옛날 카메라 들이었는데 이 롤라이를 살 때 만큼은 부담이 엄청났다) 그리고는 아틀란타(Atlanta)에 있는 KEH라는 가게에서 SL66으로 바꿨다. 벌써 10년도 전의 일이다. 그리고는 그 다음해에 캘리포니아 산호세(San Jose)에 들러 핫셀브라드500CM을 구입하였다가 결국 다시 롤라이SL66E으로 바꾼 뒤 그대로 정착하였다. 이렇게 방정맞게 오락가락 하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전화위복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이렇게 오도 방정을 떤 끝에 깨닽은 것은 좋은 사진을 찍는 데에는 어느 기종으로도 한 점 모자람이 없을 뿐 아니라 진짜로 모자라는 것은 자신의 '실력'뿐이라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핫셀브라드500CM은 유럽의 젊은 귀족 부인 같이 경쾌하고 세련된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롤라이SL66E는 사냥개를 데리고 숲을 산책하는 중년의 귀족처럼 둔탁하고 못생겼다. 그러나 나는 롤라이의 디자이너를 한 수 더 쳐주고 싶다. 롤라이는 오랫동안 가지고 있어도 싫증이 나기는커녕 점점 더 믿음직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절제된 미학은 눈에 튀는 멋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이다. 아니면 이제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소박한 이조 백자가 고려 청자보다 더 아름다워 보이는 눈을 가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롤라이 SL66E는 4X5카메라를 사용하기 전까지 나의 주력 장비로 애용되었다가 이제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책장에 진열되어 폼만 잡고 있다. 한동안은 이 장비를 팔아서 다른 물건을 사는데 보탬이 되어 볼까도 생각했었다. 이렇게 좋은 장비를 사진 찍는데 쓰지 않고 그냥 얹어 놓기만 하는 것도 아까운 일이고.... 돈도 좀 챙길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하지만 이 카메라를 팔고 나면 다시 사게 될 것 같지 않아서 아직은 그냥 두고 있다.

 

롤라이 SL66계열의 기종이 핫셀브라드와 비교해서 사용상 차이가 나는 부분은 촛점을 맞추는 부분인데 롤라이는 바디의 왼쪽 후방에 있는 노브(knob)를 돌리게 되어있다. 그래서 표준 렌즈를 붙여서 쓸 때는 모르는데 망원을 붙여서 손으로 들고 찍으려면 영 불편하다. 카메라 앞부분이 너무 무거워져서 손으로든 채 촛점을 맞추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롤라이는 삼각대에 올려 놓고 찍는 장비라고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촛점 노브가 후방으로 간 덕분에 롤라이는 대배율 접사를 할 수 있고 틸트 기능도 넣을 수 있다. 반면에 핫셀브라드는 렌즈에 붙어 있는 링을 돌리니까 손으로 들고 찍기는 아주 좋다. 그리고 롤라이는 사진을 찍고 나면 보통 카메라처럼 화인더가 다시 보이지만 핫셀 500CM의 화인더는 한 장 찍으면 먹통이 되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핫셀브라드의 이런 구조는 렌즈 샷타를 사용하는 기종의 일반적인 특성이다. 포칼프레인 샷타를 가진 핫셀브라드2000F 기종은 화인더가 다시 보인다)

롤라이 SL66E과 SL66SE에는 노출계도 들어 있는데 상당히 정확하다(SL66에는 없다). 그리고 내부 구조가 기계식으로 되어 있어 노출계와 상관없이 카메라는 잘 동작한다. 이것은 야외에서 밧데리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예기다. 풍경 사진을 많이 찍는 나로서는 롤라이가 핫셀브라드보다 헐 씬 더 유용하다. 핫셀브라드는 사용상에 있어서 네가티브가 크다는 것 이외에는 35미리 카메라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롤라이는 '큰 35미리'라고 하기 보다는 '작은 4X5 카메라'에 가깝다.

 

(롤라이와 핫셀의 디테일한 부분)

(메거진, 촛점 , 틸트, 레트로 포커스, 샷타,)

 

두 기종 다 중형으로서는 최고급이라는 반열에 올라 있다. 중형 카메라가 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상의 품질을 보장해 준다. 그리고 신뢰성 있는 구조로 오랜 사용에도 무리 없이 잘 동작한다. 그러나 그런 성능을 염두에 넣고 생각하더라도 가격이 비싼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사진기로 돈벌이에 나선 사람은 하나쯤 가지는 것이 좋다. 상업적인 의미에서 고객에게 신뢰감을 주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폼나는 카메라를 가지지 못하였다고 해서 "이노무 세상 살아서 뭣하나..."하는 기분이 드는 사람에게도 하나 권하고 싶다. 그래서 이왕이면 롤라이를 사는 게 좋다. 핫셀브라드로 폼잡기는 이젠 틀렸고 또 롤라이는 한국 회사니까... 이상의 범주에 들지 않는 사람은 좀 더 참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좋은 사진은 사진기의 종류나 유명한 정도와는 무관하게 만들어 지는 것이니까.

 

 

3. 린호프? 맥주 이름인가벼!

 

맥주 회사가 아니다. 엄청나게 비싼 카메라를 만드는 독일 회사인데 의외로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다. 그 이유는 이 회사의 주력 제품이 4X5이상의 대형 카메라에 한정 되어 있기 때문인데 ('린호프617'이라는 중형 파노라마 카메라도 하나 있긴 있지만) 아무튼 사진 쟁이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기종은 아니어서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엔 이름을 처음 들어 보는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앞서 소개한 사진기와는 달리 나는 이 카메라를 소유해 본적이 없다. 대형 카메라를 쓰기 시작한 이상 '나도 질소냐..'하고 '린호프 테크니카(Linhof Technika)'를 하나 사볼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내가 좀 더 일찍 대형 카메라에 입문했더라면 곗돈을 쪼개서 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라이카와 콘탁스, 핫셀브라드와 롤라이후렉스를 거치면서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몸이라 카메라에 욕심을 부려봐야 아무 쓸모 없는 일이고 공연히 주머니만 허허하게 만든다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던 터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형 카메라를 사용하는 사진 작가가 극히 적을 뿐 아니라 그나마도 스튜디오 같은데 붙박이로 있는 모노레일 카메라가 대부분이어서 '린호프 테크니카'같은 카메라를 야외에서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다행히도 나는 테크니카를 사용하는 분을 알고 있어서 이 카메라를 황송한 마음으로 만져 볼 수가 있었다.

 

(린호프 테크니카와 렌즈군)

 

'린호프 테크니카'에 대한 예기는 앞서 예기한 카메라와는 여러 면에서 다르게 진행해야 한다. 그것은 중형이나 소형과는 전혀 틀린 관점에서 그 메카니즘을 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형 카메라는 먼저 정해진 렌즈가 없다는 것이 틀리다. 니콜 렌즈는 니콘에 맞고 캐논 렌즈는 캐논에 맞고 로콜 렌즈는 미놀타에 맞는다. 그러나 대형 카메라는 아무 렌즈나 아무 바디에 다 맞는다. 대형 카메라에 쓰이는 렌즈는 독일제 슈나이더(Schneider)나 로덴스톡(Rodenstock) 제품이 제일 흔하지만 19세기에 만들어진 렌즈라 해도 사용하겠다는 의향만 있다면 얼마든지 쓸 수 있다. 그러니까 중소형 카메라에서처럼 렌즈의 명성에 따라 사진기의 값어치가 오르고 내리는 일이 없다. 내가 쓰는 50만원짜리 '다찌하라'나 400만원짜리 '린호프 테크니카'나 같은 렌즈를 사용하므로 기본적으로는 같은 품질을 가진 네가티브를 만들어 낸다.

 

(다찌하라와 렌즈군)

 

대형 카메라의 성능을(이에 비례하여 값을) 결정하는 것은 '무브먼트'이다. 무브먼트는 수평 이동(Shift), 수직 이동(Rise and Fall), 좌우 회전(Swing), 기울임(Tilt)으로 되어있고 이것이 렌즈가 붙게 되는 앞 판(Front Standard)과 필림이 들어가는 뒷 판(Back Standard)에 각각 적용 되도록 되어있다. 이 무브먼트가 얼마나 많이 들어가느냐, 얼마나 정교하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가격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이다. 테크니카는 '필드 카메라'로서는 보기 드물게 긴 주름 상자와 폭 넓은 무브먼트, 그리고 무브먼트를 정교하게 조작할 수 있는 기어들로 구성 되어 있다. 그에 비해 '다찌하라'라는 카메라는 일본산 벗 나무로 만들어졌는데 짧은 주름 상자에 중간 정도의 무브먼트를 가지고 있고 손으로 대충 밀고 당겨서 이 무브먼트를 조정하게 되어있다. 그래도 다찌하라가 한가지 내세울 점은 있는데 금속으로 된 테크니카보다 가볍다는 것이다. 테크니카에서 특이한 점은 보통의 필드 카메라에서는 볼 수 없는 정교한 연동 거리계가 붙어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보자기를 뒤집어쓰지 않고도 촛점을 쉽게 맞출 수 있게 되어 있다. 단 대형 카메라에만 있는 장점인 무브먼트를 사용하려면 이 연동 거리계가 아니라 촛점 유리판을 들여 다 봐야 한다.

 

(테크니카 디자인, 다찌하라 디자인 접사)

(테크니카의 나사들, 주름 상자 전개, 무브먼트)

(크라운 그래픽, 손으로 들고 찍는 대형 카메라)

 

이 정도의 장점 때문에 8배나 더 비싼 장비를 구입해야 할지는 의심스럽다. 스튜디오에 두는 것이 아니라 야외로 들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을 요량이면 제일 중요한 것이 무게이기 때문이다. 소형 카메라야 덩치가 다 그만 그만 하니까 무게가 차이가 나도 잘 못 느끼지만 대형 카메라는 욕심껏 가방을 꾸리다가는 혼자서 들 수 없을 정도까지 될 수 있다. 이런 가방을 메고 촬영지를 돌아 다닌다는 것은 사진을 찍겠다는 의도는 별로 없고 체력 증진을 위한 강도 높은 훈련을 하는 중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나는 가방의 무게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 슈나이더의 90미리 슈퍼 안규론(Super Angulon)을 제외하고는 작고 가벼운 구형 렌즈을 선택하였다. 둘 다 1950년대에 생산된 미국제인데 하나는 그라프렉스(Graflex)사의 135미리 옵타(Optar)이고 다른 하나는 코닥(Kodak)의 명기 203미리 엑타(Ektar)이다. 이미 40-50년은 족히 된 물건들인데 신형 렌즈와 비교해 보면 크기와 무게에서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성능에서도 차이가 난다. 신형 렌즈는 4군 6매의 플라즈맡(Plasmat) 디자인이고 앞 유리와 뒷 유리가 커서 무게도 꽤 나가지만 더 선명하고 포괄 범위(Image Circle)도 넓다. 구형 렌즈는 옵타의 경우는 3군 4매의 텟사 디자인(Tessar Design)이고 엑타의 경우는 4군 4매의 알타 디자인(Artar Design)이다. 최신형 플라즈맡 디자인의 렌즈에 비하면 해상력도 떨어지고 포괄 범위도 적지만 대형 카메라쯤 되면 이런 성능 차이가 별 의미가 없을 정도로 네가티브가 충분히 크다. 그리고 구형 렌즈는 신형 렌즈에는 없는 독특한 매력(주로 약간 남아있는 구면 수차와 보다 간단한 디자인에서 나오는 높은 콘트라스트에 의한 부드러운 묘사력)도 있기 때문에 꼭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다.

 

(옵타, 엑타, 텟사 렌즈 와 신형 지로나 렌즈)

(알타 디자인 과 플라즈맡 디자인)

 

하지만 내가 만약 필드 카메라가 아닌 모노레일 카메라를 구입해야 한다면 가격이 비싸더라도 린호프의 '테크니칼단(Technikardan)'을 사게 될지도 모르겠다. 테크니칼단은 모노레일을 3단으로 접을 수 있기 때문에 카메라 배낭에 쉽게 들어가 야외에서 사용하기도 좋고, 무브먼트가 제한되어 있는 테크니카에 비하여(필드 형 카메라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무한정에 가까운 무브먼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저렴한 가격의 모노레일 기종은 레일이 접히지 않기 때문에 배낭 하나에 장비를 꾸려 넣기 힘들고 또 쇠파이프 같이 생긴 레일의 무게가 만만치 않아 들고 다니기는 무리이다. 그 쇠파이프를 호신용으로 써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니 내가 주로 찍는 풍경 사진에는 테크니칼단의 화려한 무브먼트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직접 써보지 않은 장비이기 때문에 린호프에 대한 예기는 부실하지만 이 정도로 해두자.

 

(대형 카메라의 렌즈)

(슈나이더 렌즈)

(짜이스와 괼츠의 렌즈)

 

내가 비싼 카메라를 별볼일 없게 생각한다고 해서 그것들이 쓸모없는 물건이라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비싼 카메라의 기능이 필요해서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기능과는 상관없이 가격에 현혹되어 '그것을 사야만 사진이 잘 된다' 고 생각하는 것을 말리려는 것이다. 그것은 오랜 경험상, 사진에서 멀어지는 지름길이라 단언할 수 있다.

 

나는 4X5용 확대기로 오래된 오메가D2를 사용해 왔다. 이 확대기는 너무 오래되어서 수평이 맞지를 않는다. 즉 필림이 들어가는 네가티브 케리어 와 렌즈가 매달려 있는 렌즈 마운트와 인화지가 놓이는 바닥판이 전혀 평행이 맞지를 않는 것이다. 이렇게 수평이 맞지 않으면 인화지의 중심 부분에 촛점을 맞출 때 양끝이 촛점이 맞지 않게 된다. 그래서 이 확대기를 쓰려면 이젤 밑에 책이나 볼펜을 이것저것 끼워 넣어서 수평을 최대한 맞춰야 한다. 그래도 네가티브 케리어와 렌즈 마운트 부분은 어쩔 수 없이 그냥 둔다. 물론 이 확대기를 분해하여 다시 조립하면서 수평을 잘 맞출 수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럭 저럭 열악한 상태로 4년 동안은 잘 써왔다. 기본적인 인화는 충분히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전시회에 사용할 16X20이상의 인화를 하려니까 도저히 쓸 수 없는 지경이다. 나로서는 정이 많이 들은 물건이지만 이 오래된 확대기를 은퇴시키고 200만원 짜리 새 확대기를 하나 구입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마누라도 사진쟁이 인데다가 오메가D2의 수평을 맞추느라 확대 작업 때마다 끙끙거리는 것을 보아온 터라 이 과감한 투자 계획을 쾌히 승낙하였다. 나의 대형 카메라가 50만원 짜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확대기에 들어가는 돈이 너무 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꼭 필요한 물건이니 어쩌겠는가? 아마도 내가 가진 장비 중 두 번째로 비싼 물건이 될 것이다. (첫번째는 책장 위에 올라가 장식품이 되고만 롤라이후렉스 SL66E다)

 

사진 장비를 사는 것은 사진쟁이들에겐 정말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어느 것을 사던지 그것이 '필요한 것'인지 '소유하고 싶은 것'인지 구별할 줄 아는 혜안은 꼭 필요하다. 좋은 사진을 만드는 것은 이러한 기계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지고 난 뒤에 자신의 사진 작업에 대한 진지한 사색을 통하여 비로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암실 동반자, 오메가 D2. 조금 손을 보면 아직도 완벽한 확대기로 동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쇳덩이를 분해 조립하여 손을 보는 것보다 마누라를 졸라 새 확대기를 사는 편한 길을 택했다.)

 

(1차....여기까지 읽으세요)

 

제 2 장 사진을 보는 눈

 

본대로 찍으면 느낀 대로 나오는가?

 

1. 머릿말

사진에 대한 대전제 중의 하나는 사진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는 믿음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뚜렷이 인식하고 있지 않은 경우라 할지라도 바탕에 깊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진가로서 순수 사진(Fine Art)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이런 믿음에 의문을 던지고 분석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사진이 사실을 전달한다는 것을 의심하는 것은 어쩌면 지동설을 부정하고 다시 천동설로 돌아가는 것 만큼이나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나는 지구가 둥글지 않고 네모라고 믿는 사람 중의 하나다. 그것은 고등 학교때 지학 선생님의 별명이 네모 였기 때문인데(물론 선생님의 얼굴도 네모였다) 예술의 세계에서 과학을 근거 삼아 '지구는 결코 네모가 아니다'라는 것을 애써 증명하려 할 필요는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2. 사진과 사실 전달

한편 생각해 보면 사진이 사실적이지 않다는 증거도 많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멋있는 곳에 가서 찍은 사진들이 대부분 멋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화인더를 보면서 멋있는 부분이나 순간을 잡았으니 자동적으로 멋진 사진이 나올 것이라 믿고 있다면 그것은 순진한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 사진을 찍는 순간과 인화지에서 다시 그 장면을 보게 되기까지에는 몇 가지 매개변수가 개입되는데 이 매개변수가 촬영 순간의 감동을 대부분 제곱근의 비율로 감소시키게 되는 것이다. 그 매개 변수들 중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두뇌에서 이루어지는 영상 처리 작용이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본다는 것은 단순한 눈의 작용이 아니고 마치 컴퓨터의 포토샵(Photoshop) 프로그램이 디지탈화된 그림 화일을 다양하게 조작하고 관리하는 것과 같이 영상 처리 과정을 거치는 종합적인 과정이다. 따라서 스캐너(Scanner)가 컴퓨터에 그림을 입력시키는 단말기이듯이 우리의 눈도 두뇌라는 컴퓨터로 피사체를 입력시키는 단말기에 불과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단순히 눈의 망막에 비친 그대로 사물을 바라보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반면에 필림이라는 것은 셀룰로이드 베이스에 감광물질을 입혀놓은 것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서는 망막에 영상이 비치는 것처럼 지극히 단순한 작용밖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본다는 것'과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른 작용이며 서로 같은 느낌으로 나올 리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야율

우리의 눈은 매우 넓은 각도로 사물을 보게 된다. 인간의 시야율은 110도에 가까워 렌즈로 치면 17미리 초 광각 렌즈의 화각에 가깝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렇게 넓은 각도를 한꺼번에 보는 것이 아니고 여러 번 나누어서 보는데 그것들이 두뇌 속에서 하나의 화상으로 합쳐져서 한번에 본 장면인 것처럼 인식되게 된다. 우리가 눈동자를 돌리지 않고 어떤 사물을 바라 본다면 눈에 선명한 상을 맺는 부분은 대략 30도 내외가 된다. 그리고 주변부는 시야의 일부로서 남아 있기는 하지만 무엇이 보이는지 구분할 수 없는 사각 지대로 남는다. 그렇지만 이 사각 지대는 눈동자를 돌리게 되는 즉시 뚜렷이 보이게 되고 이와 같은 영상이 머리 속에서 합쳐져서 하나의 장면으로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어떤 물체를 뚤어지게 쳐다보는 경우에는(이 경우는 눈동자가 돌아가지 않는다) 시야가 지극히 좁아져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일도 인식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 하는데 이것은 우리의 눈이 원래 좁은 범위만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현상이다.

실제로 바닷가 같이 탁 트인 전망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관찰하여 보면 눈동자를 돌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고개를 좌에서 우로 천천히 돌리면서 감상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마치 스캐너의 동작과도 흡사한데 스캐너도 그림을 한꺼번에 읽는 것이 아니라 센서 위로 그림을 천천히 지나가게 하면서 하나의 화일(file)로 데이타를 입력하듯이 우리도 넓은 풍경을 좌우로 스캐닝해서 한 개의 그림 화일(Sea.gif)로 두뇌에 집어넣는 것이다.

(그림1. 넓은 바다와 사진가)

우리가 넓은 바다 앞에서 받는 시원스러움은 이렇게 110도에 달하는 드넓은 시야율 때문이다. 그래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거의 자동적으로 광각 렌즈를 꺼내어 넓게 트인 풍경과 광활한 분위기를 묘사하려고 하지만 생각처럼 그렇게 잘 되지는 않는다. 우리의 시야율과 같은 110도의 화각을 가진 17미리 광각렌즈로 바다 풍경을 찍고 나서 이를 3X5사이즈로 인화하여 감상을 한다면 과연 바다가 넓게 보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사실은 넓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작게 보이게 된다. 초광각 렌즈의 넓은 화각으로 인하여 주변의 온갖 잡동사니까지 다 들어가서 찍혀 있는데 이것을 조그마한 인화지에 재현하였으니 모든 것이 오밀조밀하게 작게만 보이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이 진짜 바다가 아니고 3X5크기의 인화지에 그려진 바다 그림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진을 촬영할 당시에 바다를 바라본 시야율은 당연히 110도였겠지만 인화된 바다 사진을 볼 때는 3X5크기의 종이를 보는 시야율인 10도 안팎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렌즈의 화각과 우리 눈의 시야율은 같은 개념이 아니다. 110도의 화각을 가진 렌즈로 촬영한 사진이라도 인화된 크기와 감상자의 위치에 따라 시야율은 5도 일 수도 있고 40도 일 수도 있고 90도 일 수도 있다. 그러니 바다의 광활함을 표현하기 위하여 무조건 화각이 넓은 렌즈를 선택하였다면 감상자가 똑같이 광활한 느낌을 그대로 전해 받을 수 있겠는가? 인화지에 110도 화각의 광각 렌즈가 잡은 영상이 그려져 있다고 해서 우리 눈이 그 그림을 보고 결코 110도의 시야율로 느끼지는 않는다는 예기이다..

 

(그림2. 바다 사진을 보고 있는 사진가)

(그림3. 시야율이란? 바다를 볼때와 바다 사진을 볼때)

 

바다 사진을 바다를 직접 바라본 당시와 같이 생생하게 감상하려면 그 사진을 상상을 초월하게 크게 인화하여 전시장의 벽면뿐만 아니라 바닥과 천정까지 이어지도록 전시하면 되긴 된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사람은 사방에 압도하듯이 펼쳐져 있는 거대한 바다 사진을 보게 될 것이며 아무리 평범한 바다 사진이라도 (이때의 사진은 시야율이 110도가 된다) 감동을 느끼게 될 개연성이 아주 높은 것이다.

 

이런 것은 63빌딩에서 볼 수 있는 아이맥스 영화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될 수 있다. 아이맥스 영화의 실감 넘치는 영상은 그 화면이 우리 눈의 시야율에 거의 육박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어서 일반 영화와는 차원이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다. '그랜드 캐년'이라는 아이맥스 영화를 보면 계곡 사이를 비행기를 타고 지나가면서 촬영한 장면이 나온다. 이때 계곡 아래를 내려다보면 가슴이 콩알만해지면서 아슬아슬한 기분에 발바닥이 간지럽기까지 하다.

또 계곡 사이의 급류를 타고 내려가는 보트를 보면서 마치 자신이 보트를 타고 떠내려가는 것과 같이 현장감을 느낄 수도 있다. 화면에 물살이 확 솟구치면 본능적으로 "윽!"소리를 내며 피하기도 한다. 극장의 의자에 앉아서도 느낄 수 있는 이러한 생생함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그것은 단 한가지의 요소, 즉 우리의 시야를 가득 채우는 커다란 화면으로부터 나온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가상 현실'이라는 분야가 요즈음 컴퓨터 응용 분야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데 이 기술의 요점은 우리의 시야를 컴퓨터의 화면으로 완벽하게 대체하는 것이다. 급류에서 보트를 타고 가는 장면이 있다고 하자. 아이맥스 영화에서는 고개를 화면에서 돌리면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라든가 발 밑에 떨어진 팝콘 봉지를 볼 수 있다. 그런데 가상 현실에서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계곡의 옆부분이 보이고 고개를 아래로 내리면 자신의 발과 위험스레 물이 스며들고 있는 보트가 보인다. 이런 경우에 사람은 자신이 그림을 보고 있는지 실제 상황인지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잃어 버리고 현실과 똑같이 느끼게 된다. 앞에 '가상'이라는 접두사가 붙기는 하지만 또 하나의 '현실'이 되는 것이다.

 

시각 이외의 감각과 마음 - 엄청나게 큰 사진 한 장을 걸어놓은 전시장의 예가 좀더 그럴싸하게 작용하려면 고려해야 할 점이 또 있다. 사실 바다에서 느끼는 감동은 시야율 뿐 만 아니라 인간의 모든 감각기관에서 들어온 정보를 종합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해변을 때리는 파도 소리, 찝찔한 바다 냄새, 피부를 스치는 시원한 바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오랜 도회지 생활에 찌든 지친 마음 등등이 그것들이다.

'바다의 감동'이란 것은 도시 사람들한테나 의미가 있는 것이지 바다에서 사는 어부들에게는 학삐리 리론가들의 배부른 여민락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위에 말한 무지막지하게 큰 사진 이외에 선풍기 바람, 녹음된 파도 소리, 시장에서 사온 물이 약간 간 생선 몇 마리(후각 효과용)가 있어야 보다 사실적인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은 사진에서는 이렇게까지 하고 나서도 아직 바다의 감동을 처음 그대로 전할 수는 없다는 것을 재빠르게 간파 하였을 것이다. 그것은 넘실거리는 파도의 율동을 정지 화상인 사진으로써는 옮길 수 없다는 한계에 다시 부닥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본대로 느낀 대로의 감동이 한 장의 사진을 통하여 100% 사실적으로 전달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사진이 사실을 전달한다는 명제는 얼핏 보아 지극히 옳은 소리처럼 들린다. 하지만 도대체 어떤 사실을 전달한다는 말인가? 그 의미를 곱씹어 보고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본대로 샷타를 누르고 느낀 대로 인화가 되어서 나오는 그런 사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3. 사진의 사실성은 무었인가?

보도 사진

그러나 우리가 또한 사진을 보고 사실을 기록한 것이라 믿으며 그 사진에 감동하는 경우도

많이 있는데 여기엔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성능이 뛰어난 컴퓨터가 개입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두뇌인데 선입관이라고 불리는 신기한 기능이 있어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적으로 받아들이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인간의 두뇌가 가장 성능이 뛰어난(?) 컴퓨터라고 한 대목에는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있으나 피차의 체면을 세우기 위하여 그렇다고 하여 두자.

세부 묘사(detail)가 지극히 자세하다는 것은 사진이 다른 시각 예술 매체하고 다른 결정적인 특징이다. 대배율의 확대경으로 보면 종이 위에 조밀하게 찍힌 점에 불과 한 것이 전체적으로 보면 생생한 영상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한 장의 사진에 그려지는 세부 묘사는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그리기에는 버거울 정도로 자세한데 그래도 만약 그렇게 자세하게 그렸다면 손으로 그림과 사진과 구분할 수 없게 될 것인가?

현대 미술의 한 분야인 '극 사실주의'를 보면 사진의 이런 특징을 더욱 극명하게 느낄 수 있다. `극 사실주의`란 마치 사진과도 같은 자세한 세부 묘사를 추구 하는 그림인데 언젠가 서울 삼성동의 포항제철 빌딩에서 열린 극 사실주의 미술 전시회에 갔다가 전시장을 나가는 쪽에 "지금까지 보신 것은 사진이 아닙니다."라는 안내를 붙여 놓아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당연히 사진이려니 생각하고 아무 의심 없이 사진전(?)을 감상하고 나왔는데 그림이라니?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홀린 듯한 기분으로 그 그림들을 다시 한번 쳐다보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진이란 '극히 자세하게 묘사되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되어있는 그림'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단 그와 같은 그림을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그려낸다는 것이 상당한 무리이기 때문에 '사진기'라고 불리우는 기계와 '필림'이라고 불리우는 화학 약품이 칠해져 있는 도구를 사용하여 쉽고 편리하게 '극 사실주의 그림'을 그려내는 것이다. 어차피 사람들은 작가가 그 그림 밑에다 일부러 써 놓지 않는 이상 '사진'과 '극 사실주의 그림'을 눈으로 구분해 내지 못한다.

 

 

(극 사실주의 그림)

(여기에 실린 3편의 그림 중에는 2편의 극 사실주의 그림과 1편의 실제 사진이 들어 있다. 어떤 것이 사진이고 어떤 것이 그림인지 구분해 보기 바란다.)

(정답)

 

이와 같이 우리는 사진을 볼 때 그 세부 묘사(detail)가 지극히 자세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인화지상의 그림에 불과한 것을 보고서도 그것을 사실로서 받아들인다. 그리고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 어떤 매체가 사진이라는 것만 가지고도 그것이 사실일 것이라 받아들이는 2차적인 과정도 생기는데 말하자면 반복된 훈련으로 습득하게 되는 '조건반사'라고 할 수 있겠다. 아까는 우리의 시각을 변조시켜 실제보다 더 감동적인 장면인 것처럼 느낌을 왜곡시키는 두뇌가 이번에는 정 반대로 작용하여 종이 위의 그림을 보고 실제 장면을 보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정리해 보면 사진은 느낌을 사실적으로 옮겨 주지는 못하지만 상황은 사실적으로 전달해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사진 기자'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사진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겠는가?

우리가 보는 다큐멘타리 사진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그것이 어떤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직접 가보지 못한 곳이거나 우리가 직접 목격하지 못한 사건을 마치 그 자리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전달해 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는 컴퓨터 기술이 발달하여 디지탈 사진이 횡행하기 때문에 '사진은 곧 사실이다'라고 믿는 '파블로프의 개'같은 현상도 많이 줄어들었는데 디지탈 사진은 그 합성이 워낙 정교하여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힘들고 사람들도 이제는 아무리 사실적이고 그럴듯해 보이는 사진이라도 디지탈로 합성된 것 일수도 있다는 점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요소인 '사실의 기록과 전달'이라는 믿음을 디지탈 사진은 뿌리부터 흔들어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사진은 지금까지의 사진과는 그 개념과 용도가 근본적으로 변하게 될 가능성이 많이 있다.

 

한편 사진의 세부 묘사가 거칠어지면 사실적으로 받아들이는 강도도 점점 떨어지게 되는데 예를 들어 극단적인 조립자 사진이 되면 느낌상 사진이라기 보다는 회화에 가까워 지며 인상파 화가인 쇠라(Seurat)의 점묘화와 구분할 수 없는 경지에 까지 이르게 된다. 이런 점은 극 사실주의 그림이 사진과 구분이 되지 않는 것과 대칭되는 현상인데 사진의 결정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세부 묘사(detail)가 줄어들게 되면 회화와 구분하기 힘든 사진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하긴 쇠라의 그림은 사진의 발명에서 그 기본적인 형태를 빌려온 것이니 같은 부분이 있다 해도 이상할 이유는 없다. 사진이 발명되자 과학자들은 인간의 시지각 능력(사물을 바라 보고 색깔이나 형태를 구분해 내는 것)에 대하여 여러 가지 가설을 세우게 되었고 여러 가지 색점을 혼합하여 다른 색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도 그 당시에 알려진 내용이었다. 이와 같은 '가색 이론'은 그 후에 발명된 칼라 필림(아그파의 오토크롬)의 이론적인 배경이 되었는데 쇠라는 그 당시의 사진 기술로는 가능하지 않았던 가색 이론을 그의 그림에 적용한 것이다.(인상파 화가인 쇠라가 활동하던 시기는 사진이 발명되고 나서 50년

정도 후인데 당시는 아직 칼라 필림이 발명되기 전이다.)

 

(쇠라의 그림)

(조립자 사진)

 

사진의 내용면에서도 '사진은 곧 사실'이라는 선입관이 중요한 작용을 하는데 예를 들자면 35미리 사진기로 찍은 빌딩은 대게 위가 좁아지는 왜곡이 생기며 이를 뒤로 넘어지려는 빌딩이나 위층으로 갈수록 좁아지게 건축된 빌딩이 아니라고 받아들이는 것도 이 선입관 덕택이다.

 

(35미리 건축 사진과 대형 건축 사진)

(이 사진을 보고 위가 좁아지게 만들어진 건물이라고 받아 들이지 않는 이유는 무었인가?)

 

따라서 보도사진이나 기록(Documentary) 사진들이 사실 전달이라는 원래의 사명을 다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소박한 믿음 '사진에 찍힌 것은 바로 사실 그대로' 일 것이라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음은 자명하다. 누군가 이를 속이어 교묘한 합성법으로 대통령과 악수하는 외계인의 사진을 사실인 양 보도 한다거나 있지도 않은 고대 왕국 유적 같은 것을 개제한다면 만인의 비판을 피할 수 없을 뿐더러 '보도 사진가'나 '다큐멘타리 사진가'로서의 생명을 영구히 잃게 되는데 이때의 죄목이 '순진한 사람 우롱 죄'이거나 '무허가 합성 죄'인 것이다.

 

(조작된 사진의 예)

(네스 호의 괴물)

 

4. 사실과 시각 예술

다큐멘타리 사진 과 풍경 사진의 차이

다큐멘타리 사진에서는 이 사실적인 상황 전달이라는 것이 바로 감동의 원천이다. 세바스챤 살가도의 사진 중에서 브라질에서 찍은 '노천 금광'이라는 사진은 35미리 카메라로 찍은 것인데 거대하게 파 들어간 분지에서 누더기를 걸친 진흙 투성이의 사람들이 어깨에 진흙 부대를 메고 개미떼처럼 사다리를 오르고 있는 장면이다. 이 사진 한 장에 찍힌 사람수는 족히 500명을 넘을 것으로 보이는데 소형 카메라로 촬영한 것이어서 흑백의 톤이 다소 거칠고 확대된 사진에서의 선명도도 떨어지지만 그 장엄한 인간 군상의 모습에 전율과 같은 강한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은 사진이 아닌 다른 어떤 매체로도 전할 수 없는 감동이며 또 이 사진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고 조작된 것이라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세바스챤 살가도의 '노천 금광')

(안젤 아담스의 '모노리쓰(Monolith)')

 

한편 안젤 아담스의 풍경 사진은 이와는 다르다. 그의 사진은 극도로 선명한 초점과 매우 큰 사이즈의 확대에도 입자를 드러내지 않는 대형 카메라의 작업이기 때문에 사실적인 사진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의 사진에서의 감동은 다른 곳으로부터 나온다. 아담스의 초기 사진 중의 걸작인 모노리쓰(Monolith; 여기서 Mono는 '하나'라는 뜻의 접두사이고 lith는 '돌'을 가리키는 라틴어다)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거대한 바위, 하프 돔(half dome)을 찍은 것인데 검은 하늘과 바위 위에 하얗게 남은 눈이 강한 대비를 이루고 있고, 풍부하게 살아난 바위의 톤과 멀리 지평선까지 맞은 예리한 촛점, 30X40의 대형 인화에서도 입자를 찾기 어려운 선명함 때문에 대자연의 웅장한 모습을 감동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 사진은 하프 돔 방문 기념으로 찍어 댄 수없이 많은 다른 사진과는 엄연히 격이 다른 것이며 이 피사체가 하프 돔인지 아닌지의 여부도 결코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다시 말하여 사실적 상황으로부터 감동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그의 사진에서 느끼는 감동은 미술 작품과 같이 대비, 구성, 톤의 적절한 표현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따라서 순수 사진(Fine Art; 다큐멘타리 사진과 반대되는 의미로서의)이라는 것은 그 성격상 회화에 가깝게 된다. 아담스의 사진도 우리 눈의 시야를 가득 채우는 사진이 아니기 때문에 현장에서 직접 볼 때의 감동과는 같지 않은(더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는) 느낌을 주게 될 것이며 이와 같이 대자연의 웅장함을 감동적으로 표현하고 전달해 주는 사진을 만들 수 있기 위해서는 '현장을 보고 있는 사진가의 눈'이 아니라 '인화지 위의 그림을 보고 있는 관람자의 눈'으로 피사체를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촬영이라는 순간이 지나고 나면 사진을 찍었던 당사자나 그 사진을 감상하게 될 사람들이나 다만 한 장의 인화지로써 그 장면을 다시 대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피사체를 인화지 위의 그림으로 바꾸어 놓고 보아야 비로서 그 그림의 미학적 의미, 즉 구도, 대비, 선의 강약이나 전체적인 느낌이 올바로 파악 될 수 있으며 그것이 바로 현장에 같이 있지 않았던 관람자가 그 사진을 보면서 갖게 되는 느낌인 것이다.

 

사진은 회화와 같이 시각 예술의 한 분야이고 따라서 시각 예술의 표현 기법을 떠날 수 없다. 그리고 사실성은 그 위에 추가된 사진만의 특징이며 그것이 분야에 따라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예술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일이다. 사실 보도사진 중에도 예술적인 사진은 많이 있지만 모든 보도사진을 다 예술 사진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성' 이외에도 '미학적 요소'가 없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말해 주고 있다.

 

여기서 사실성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사진을 분류해 본다면 대략 다음과 같이 3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1) 보도 사진 ; 사건이나 상황을 보도하기 위한 사진은 사실성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2) 다큐멘타리 사진 ; 어떤 상황이나 장소를 심층적으로 취재하는 이런 사진은 사실성 이외에 미학적 구상이 따라야 한다. 미학적 구상이 결여된 다큐멘타리 사진은 위에 말한 '보도 사진'과 구분 되지 않으며 따라서 '사진 작품'으로서의 가치는 없고 다만 보도 자료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3) 순수 사진 ; 처음부터 어떤 상황을 보도할 의도 없이 만들어지는 사진이다. 작가의 미학적 구상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많은 사진가들이 '보도 사진'과 '다큐멘타리 사진'을 혼동하고 있다. 이 둘은 사실 명쾌하게 경계선을 그어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엄연히 틀린 것이다. 자신의 작업 분야가 기록 사진, 즉 다큐멘타리 분야라 하여 '사실성' 만을 사진의 전부인 양 강조하고 또한 '주제 의식'이라든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무엇인지를 시시콜콜 따지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는 오류에 빠지기 쉬운 생각이다. 만약 그 사람의 직업이 '사진 기자'이고 신문에 실을 뉴스 꺼리를 찍는 사람이라면 그것만으로 족하겠지만 자신을 어떤 형태로든 '예술 작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미학'을 떠나서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 나갈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다큐멘타리 사진'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브레송의 사진; 이 사진은 전쟁의 참화(스페인 내전)를 고발하는 사진이다. 보도의 목적 뿐이라면 사진의 테두리를 형성하고 있는 부서진 벽은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다리를 잘린 천진난만한 어린이를 좀더 크게 확대하여 촬영하였다면 전쟁 고발이라는 목적에 적합한 강렬한 메세지의 뉴스 사진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브레송은 단지 '기자'의 입장에서 이 장면을 기록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원형의 테두리로 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한 무리의 어린이들 감싸는 듯한 구도를 취함으로써 파괴된 환경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긴 생명을 이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대비 시켜 '미학적인 감수성'이 적지 않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는 결국 사진가로써 유명해지기는 하였지만 젊은 시절엔 화가가 되기 위하여 절치 부심하며 회화 공부에 열중하였었다.)

(브레송의 다른 사진이다. 상당히 기하학적인 배치를 하여 순간 포착이라는 의미를 넘어 상징성을 부여 하였다.)

 

많은 사진가들이 사진을 찍었을 때의 느낌과 그 사진을 인화하여 보았을 때의 느낌이 너무 달라 당황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사진을 찍을 때 내심 대단한 기대를 걸고 있던 장면이 '이게 과연 그 장면이던가?' 하고 의심될 정도로 형편없는 느낌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고 또 기대하지 않았던 장면이 뜻밖에 잘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이 계속되다 보면 사진을 우연에 의존하여 찍으려는 습성이 생겨서 "사진이란 원래 예측 불가능한 부분이 많아서 그저 열심히, 그리고 많이 찍어 놓으면 그 중에 몇 장은 건진다." 는 식의 생각을 가지게 된다. 한마디로 발로 부지런을 떨면 건질게 생긴다는 '발로 찍는 사진 철학'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작품을 만드는 것은 확률에 의존 할 수밖에 없어서 만약 자신이 대략 100장에 한 장 꼴로 우연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면, 열장의 작품을 얻고 싶으면 1,000장을 찍으면 되고 백장의 작품을 얻고 싶으면 10,000장을 찍으면 되긴 된다. 그러나 사진이라는 것은 그렇게 예측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우연에 의존해야만 하는 그런 것도 사실 아니다.

 

어떤 사진이던 인화지 위에 옮겨진 뒤에는 현장에서 우리의 오감으로 느꼈던 감정이 그대로 전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사진을 찍기 전에 그 피사체를 인화지에 옮겨진 그림의 상태로 볼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와 같은 훈련을 계속하여야만 자신의 사진이 어떻게 나오게 될지, 그리고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이 어떤 느낌을 받게 되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된다. 마치 그림을 배우는 사람이 대생 실기를 빠트리고 지나갈 수 없는 것처럼 사진가도 이렇게 '그림으로 보는 눈'을 숙련시키지 않으면 더 이상 진도를 나가기가 힘들어 지는 것이다.

 

5. 맺음말

때로는 우리가 좋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으며 사진이 자신의 감동을 사실적으로 기록해 줄 것이라 순진하게 믿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렇게 믿고 있다면 자기가 다녀온 곳을 기리는 '기념 사진 작가'이다. 좋다는 곳을 부지런히 다닌다고 하여 좋은 사진을 많이 찍게 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사진의 매체인 인화지에 피사체가 어떻게 표현될 것인지, 또 그것이 시각적으로 어떻게 보여질 것인지 모른 채 사진을 찍는 것은 물감의 색깔을 모르고 그려 놓은 유화 같은 것이 될 것이다. 미국의 요세미티 공원에 가서 하프 돔을 찍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멋진 사진이 나오지는 않는다. 단 해외 여행을 다녀왔다는 '사실' 만큼은 확실히 증명해 줄 것이다.

 

 

주관적인 미학(사진을 보는눈 2)

 

지난(97년)여름에 PC 통신 천리안(GO PCMAN)에 있는 흑백 사진 모임 '황톳길' 회원들과 예술의 전당에 있는 한국 정원에 다녀 왔다. PC 통신이 좋은 점은 전국 어디에 있는 사람이라도 자유롭게 만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만난다는 것도 컴퓨터의 가상 공간에서 이루어 지는 것인데 가끔은 이렇게 직접 만나서 촬영을 같이 나가기도 하는 것이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PC 통신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독특한 별명(대화명)이 있어서 '지아', '마징가', '흑진주' 등등으로 부르게 되는데 컴퓨터 너머의 가상 공간속에 있는 그런 동화 같은 이름들을 현실 세계에서 만나 보는 것도 커다란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정말 엄청나게 뜨거운 여름 날이었다. 땡칠이처럼 그늘에서 쉬고만 싶은 한여름의 토요일 오후. 그래도 '마징가'님과 '사아'님이 약속 장소로 나왔고 '지아'님, '흑진주'님을 위시하여 다른 분들은 한국 정원으로 미리 가서 우리를 맞이하여 주었다.

멀리 청주에서 올라온 '사아'님에게 대형 카메라를 펼쳐놓고 간단한 설명을 한 다음 나는 다시 종로 3가로 가야 했다. 그 전 주에 해 놓았던 약속이 징검다리 연휴 때문에 한 주 뒤로 밀려서 겹쳐 버렸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사람들을 오라고 해놓고 내가 빠지자니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지만 둘 다 빠질 수 없는 약속인데 어쩌겠는가? 대충 인사만 나누고 저녁때 다시 만나길 약속하며 자리를 뜨려고 하였다. 그런데 '지아'님이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다.

"왜 꽃 사진을 흑백으로 찍는 거여요?"

꽃은 당연히 칼라로 찍어야 하지 않느냐는 의미로 물어본 말이다. 사실은 아침에 '지아'님이 한국 정원에 간다고 카메라를 챙겨서 나오니까 사진동의 고참이 어떻게 꽃 사진을 찍으러 가면서 흑백 필림을 챙겨서 가느냐고 쪽 을 준 모양이었다. 나는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흑백으로 꽃 사진을 찍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였지 그런 것에 의문을 가질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해본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허를 찌르는 질문이라 궁색하나마 대강 생각나는 데로 설명을 하였다.

"음....칼라 꽃 사진은 달력이나 엽서에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지금도 수없이 많은 작가들이 칼라로 꽃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그런 사진을 여기서 하나 더 찍는다고 해서 뭐 나을게 있을까요? 그렇게 흔한 칼라 꽃 사진을 찍는 것 보다 차라리 흑백으로 찍는 것이 더 낳지 않을까요?...."

 

종로에서의 약속 시간이 빠듯했던 지라 허겁지겁 지하철역으로 갔다. 사람이 많지 않아서 자리를 잡고 앉아 한숨을 돌리니 아무래도 찜찜한 기분이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사실 그런 뜻이 아니었다. 기존에 찍은 칼라 꽃 사진이 아무리 많다 해도 또 그 사진들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그것이 내가 한 장 더 찍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진짜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예술로서 사진을 찍는 이상, '꽃은 칼라로 찍어야 하고 흑백으로 찍으면 안된다'는 식의 완고한 법칙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과 또 흑백 사진과 칼라 사진은 여러 가지 점에서 서로 다른 매체이기 때문에 칼라로 찍는 것 만큼이나 흑백으로 찍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튼 뜻밖의 질문이긴 하였지만 따지고 보면 그런 것에 의문을 갖는다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고 오히려 아무 의문이 없는 것 보다는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그런 의문에 대하여 보다 잘 정리하여 답변하여야 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사진에서 지켜야 할 법칙은 단 하나뿐이다

사진에 관한 책들을 보면 여러 가지 '사진 찍는 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들은 일반적으로 회화나 사진 같은 시각 예술에 적용되는 법칙들인데 예를 들자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1/3법칙 이란 것을 살펴 보기로 하자.

1/3법칙이란 주제를 화면의 1/3지점에 놓아야 한다는 법칙인데 인물 사진을 찍을 때 사람을 가운데에 놓으면 기념사진 같이 되어 버리므로 왼쪽이던 오른쪽이던 1/3위치에 놓으라는 것이다. 이때 그 사람의 시선 방향으로 공간을 많이 두어야만 화면이 답답해지지 않기 때문에 인물이 왼쪽을 보고 있다면 사진에서는 왼쪽에 넓은 공간을 두고 오른쪽의 1/3위치에 놓으라는 것이다.

 

(1/3 법칙, 인물 사진)

 

그런데... 인물 사진을 항상 이렇게 찍어야만 좋은 것인가? 만약 피사체가 생기발랄하고 청운의 꿈에 부풀어 있는 젊은이라면 몰라도 삶의 활력을 잃어버리고 의기소침해진 실업자라면 그래도 이렇게 찍는 게 좋다는 것일까? 나 같으면 인물을 가운데다 놓거나 아니면 반대쪽 위치에 놓아 시선 방향을 꽉 막히게 하고 등쪽을 넓게 띄워 놓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사진이 무지하게 답답해 보이는데 그것이 바로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실업자가 무슨 삶의 의욕이 넘치길래 시원스러운 구도로 찍는단 말인가? 오히려 답답한 느낌에 앞이 꽉 막힌 구도가 그 피사체의 느낌이나 처지를 보다 더 적나라 하게 전해주지 않겠는가?

 

(대칭 구도 사진)

 

1/3법칙은 또 수평선을 가운데에 두지 말라는 법칙으로도 된다. 보통 수평선은 위나 아래로 1/3위치에 놓아야 보기 좋은 사진이 된다. 하지만 호숫가의 나무들이 물속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장면도 수평선을 반드시 1/3로 두어야 할까? 차라리 수평선을 가운데에 두고 상하로 대칭되는 나무와 그 그림자를 배치하는 게 거울 같이 빛나는 호수를 좀더 깊이 있게 표현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 대칭 구도가 보기 좋은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아니면 수평선을 아예 화면 위로 몰아서 나무는 나오지 않게 하고 물에 비친 그림자만으로 호숫가의 나무를 유추할 수 있도록 찍는 것은 어떨까?

 

사실은 예술 분야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법칙이 딱 하나 있긴 있다. 그것은 '절대로 법칙에 얽매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예술에서는 파격과 의외성으로 그 가치가 더욱 빛나게 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물론 엄밀한 형식미를 갖추기 전부터 파격과 기행을 일삼으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예술 작품 만드는 일을 공산품 만들듯이 법칙과 자료에 의존해서 생산해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담이지만 '사이비 예술가'라는 것은 형식미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이전에 '파격'과 '기행'으로 자신의 모자라는 예술성에 돌파구를 마련해 보려는 사람을 말한다.

여러분은 그런 사이비 예술가를 어떻게 구분해 내는가?

예술가 중에는 지나치게 예술가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보통 장발에 지저분한 수염, 야릇하게 생긴 모자, 일반인들은 잘 안 입는 특이한 옷 등.. 한눈에 보기에도 예술가처럼 보인다. 그런데 나는 자신의 외모나 행동 양식을 예술가처럼 구지 꾸미는 사람일수록 진짜 예술가로써 인정 받지는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놀라운(?) 법칙을 발견하였다. 말하자면 프로이드가 설파한 보상 심리의 일종인데 인정 받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위로하기 위하여 또는 모자라는 자신의 예술성을 감추기 위하여 누가 보아도 단번에 예술가임을 알아 보도록 꾸미고 다니는 것이다. 아마츄어 사진가 일 수록 프로 사진가처럼 보이는 복장이나 악세사리에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법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예술가들이 그런 법칙을 파괴한 사람들이다. 초기의 사진가 들이 회화의 영향을 받아 '그림처럼 보이는 사진'을 찍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있을 때 '스티그리츠'는 사진 그 자체의 미학, 즉 놀랍도록 선명한 묘사 속에도 예술성이 있다고 간파하였다. '윌리암 클라인'은 촛점이 맞지 않고 흔들린 사진으로도 뉴욕의 거친 모습을 찍어내서 미국을 누구보다도 더 잘 표현 하였다. (뉴욕이란 곳이 원래 거칠고 혼미한 곳이 아니던가.... )

아름다운 것을 그리는 것이 '미'라고 생각하던 때, 거친 원색을 휘둘러 새로운 미학을 만들어낸 야수파나 도저히 그림 같지 않은 그림을 그린 '큐비즘'의 '피카소'나... 모두 원칙에 충실하여 기존의 틀과 고정 관념의 범위 내에서 작품 활동을 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예술....... 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고정 관념'이나 '법칙'과는 반대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자유로운 상상력'과 '다양한 양식', '구애 받지 않는 시도'...등이 예술이라는 말에 숨어 있는 뜻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진을 찍으면서 어떤 틀과 법칙 같은 것에 자신을 숙달시키면서 사진 실력이 점점 더 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주 대단한 착각이다. 이런 오해는 사진을 처음 찍는 초보자보다는 몇 년 경험이 쌓인 고참 사진가 사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나중에 술판이 벌어지고 나서 이런 예기를 한 것으로 생각된다. " 사진의 초보자는 이런 모임에 나와서 고참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게 되지만, 사실은 고참도 초보자에게서 사진을 배우게 된다." 그것은 법칙에 얽매이지 않은 초보자의 '순수한 시각'을 고참이 되면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고 한편으론 그것을 되찾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

영화와 사진의 차이를 생각해 보자. 영화는 소설에 해당하고 사진은 시에 해당한다. 소설은 짜여진 구성 아래 이야기를 서술적으로 풀어나가는 작업이다. 그래서 소설은 산문이다. 아무리 짧은 단편 소설이라 해도 그 소설의 감상은 줄거리를 읽어 나가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시'는 이야기가 아니다. 시는 한 장의 사진처럼 어떤 '이미지'를 감상자의 마음에 띄어 올리는 언어인 것이다.

시에서는 그것이 전부다.

전후 사정이 어떻고, 주인공의 입장이 이러 저러하며, 그 배경은 그러저러하다.....는 식의 서술은 시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방법이다. 시는 은유와 상징으로 독자와 대화를 하고 독자는 그로부터 느낌을 전달받는 것이다.

 

한 장의 사진을 만드는 것은 그래서 한편의 시를 쓰듯이 해야 한다. 사진에는 많은 내용을 풀어서 설명할 공간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진에서도 시와 같이 은유와 상징이 사용된다. 이것이 빠져있는 사진은 마치 소설의 한 페이지를 떼어놓은 것과 같이 그 자체로서는 감상의 대상이 되지를 않는다.

 

칼라 사진은 흑백 사진에 비하여 어떤 상황을 사실적으로 기록하는 능력이 월등하다. 전쟁터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병사들을 칼라 사진으로 볼 때와 흑백 사진으로 볼 때의 시각적 충격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칼라는 그만큼 현실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하기야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이 칼라이니 흑백 사진에서 생생함을 더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동전의 양면 같은 성질이 있나 보다. 이렇게 생생한 사실 전달 능력이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장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장의 인화지로 시적인 이미지를 구사해야 하는 사진가에게 너무나 사실적인 그래서 서술적, 설명적으로 흐르기 쉬운 칼라 사진은 은유와 상징을 약화 시키는 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칼라로 찍은 꽃 사진은 너무나 꽃 같아서 더 이상의 할말이 없다. 즉 "이것은 꽃이다." 라는 문장처럼 명명백백한 사실 묘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장면이라도 흑백으로 잡으면 "한송이 꽃, 그것은....."과 같은 여운이 남게 된다. 최소한 감상자는 꽃의 색깔이라도 궁금해 지는 것이다. 현란한 색채가 지워져 버린 흑백의 이미지에서 감상자가 보게 되는 것은 꽃의 속성이 아니라 선과 면의 구성, 톤의 변화와 대비이다.

물론 그것이 꽃이라는 사실을 전달한다는 점은 흑백 사진이라고 해서 다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미처 설명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여운이라는 것은 적나라한 것에서는 절대로 생기지 않는 법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흑백 사진이 칼라 사진 보다 더 우수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적어도 예술적인 의미에서는 칼라 사진이 흑백 사진에 비해서 더 나은 것이 없는 것처럼 흑백 사진도 칼라 사진에 비하여 더 우월하지는 않다. 칼라 꽃 사진도 식물 연감에 들어가는 것처럼 그렇게 천편 일률적으로 찍지않고 다양한 각도를 시도해 보거나 적절한 생략, 또는 과감한 근접 촬영을 시도한다면 상당히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영상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칼라 사진과 흑백 사진의 차이는 아마 서양의 유화와 동양의 수묵화를 비교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 둘은 서로 다른 회화의 표현 양식이고 감상하는 포인트나 느낌도 다르지만 어느 것이 더 우월하거나 열등한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그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인데, 나는 수묵화를 선택한 셈이다.

 

흑백으로 꽃을 찍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 칼라 사진에서처럼 색채로 감상자의 시선을 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칼라 사진에서는 구성이나 배치가 약간 잘 못 되어도 현란한 색채에 눈이 가려 '그럭 저럭 쓸만한 작품이구먼...' 하고 넘어 갈 수 있는데 흑백 사진에서는 사소한 구성이라도 잘못 된다면 대번에 헛점이 눈에 띄게 된다. 사진을 배우는데 이보다 더 좋은 가르침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잘 된 흑백 사진은 수묵화처럼 은은하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좋아지게 된다. 달력에 실려있는 화려한 색채의 칼라 꽃 사진을 몇 달 동안이나 감상하며 느낌을 받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보라.

나로서는, 며칠만 쳐다보고 나면 더 이상 볼 의욕이 생기지 않을 것 같다. 마치 벽지의 무늬처럼 그냥 그렇게 벽에 걸려있는 사진이 될게 뻔하다. 그리고 그렇게 명백한 묘사를 읽어 내는데 며칠 이상의 시간이 걸릴 이유도 별로 없다.

 

내가 흑백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는 상상의 여지를 남겨 논 여백과 오래도록 질리지 않는 은은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흑백 꽃사진, 해바라기)

 

 

미학적인 선구상

 

앞서 우리는 사진을 시각 예술의 입장에서 보기 위하여 '현장에서의 느낌'대로가 아니라 '인화된 상태'로서, 다시 말하여 관람자의 입장에서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을 충실히 전해 줄 수 있는지, 어느 부분에 과장이나 생략이 필요한 것인지 또는 전체적인 톤을 올리거나 내려서 느낌을 미묘하게 변화 시켜야 할 것인지....등등의 문제는 사진을 찍으면서 결정해야 할 핵심적인 것들이다.

이와 같이 촬영하기 이전에 '인화된 상태로써 피사체가 평가된 후 구도나 톤이 필요한 만큼 재구성 되는 것'을 '선구상' 또는 간단히 줄여서 '구상'이라고 한다.

 

안젤 아담스(Ansel Adams)는 이것을 'Visualization'이라 표현하였는데 'Visualize'라는 동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작용'을 가리키는 말이며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see'나 'look at'이라는 말과는 틀린 것이다. 아담스는 아직 볼 수 없는 '인화된 상태'를 보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촬영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Visualization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생각해 보면 사진을 배운다는 것은 이러 저러한 어렵고 고상한 설명을 떠나서 이와 같이 보이지 않는 그림을 볼 수 있도록 훈련 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진을 찍을 때 '구상'을 한다는 것은 막연히 이러 저러한 그림이 나오겠거니...하고 머리 속으로 상상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구상'이 아니고 '희망'일 뿐이다. 화가가 하는 '구상'과 사진가가 하는 '선구상'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틀린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그림의 '구상'은 화가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대로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사진의 '선구상'은 피사체가 현상과 인화를 거쳐 어떤 상태로 바뀔 것인지 엄밀한 테스트를 통하여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때 필요하다면 '인화지 계조표'를 만들어 눈으로 보고 확인하는 것도 필요하다.

 

'선구상'은 내용상 '미학적인 면'과 '기술적인 면'으로 다시 나눌 수 있는데 사실은 뚜렷이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두 가지면이 적절히 섞여 있는 것이지만 이야기의 편의상 이를 둘로 나누도록 하자.

'미학적인 면에서의 선구상'은 피사체를 화면에 어떻게 배치하여야 하는가? 그리고 그러한 배치가 어떤 느낌으로 보여지는가를 결정하는 것을 말하고

'기술적인 면에서의 선구상'은 자신이 원하는 톤이나 콘트라스트를 현상과 인화 과정을 거쳐 정확하게 재현해 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여기에서 기술적인 문제들은 대체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서술이 가능하며, 또 사진가가 노력하기만 하면 누구라도 터득할 수 있는 것들이다.( 기술적인 선구상은 '시간'의 문제다)

반면에 미학적인 문제들은 주관적인 면이 강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법칙을 만들어 서술하기도 어려운데다 설령 그런 법칙을 숙지하여 그대로 따라 하였다 하여도 그것이 곧 작품성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다.(미학적인 선구상은 '재능'의 문제다)

 

1. 구도를 배우는 방법

예를 들면 구도(Composition)라는 것은 피사체와 배경을 (또는 주제와 부제를) 화면상에 어떻게 배치하는가 하는 문제인데 이 구도에 따라 사진의 느낌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게 된다.

구도에서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통일성, 균형, 강조, 대비등 많은 것이 있는데 이는 사진에 대한 논의 라기 보다는 회화를 포함한 시각 예술 전반에 대한 논의이며 인간의 감정이나 느낌에 대한 예기가 된다. 따라서 여기엔 딱 떨어지는 객관적인 법칙을 만들기 어려운 점이 있고 또 이런 내용이 항상 지켜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예술가 개개인의 성격에 의해서 주관적이고 개성 있게 다루어 져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구도'는 서양화에서 나온 것이다. 동양화에 구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삼각형 구도'니 '대칭 구도'니 하는 것과 같은 용어와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진도 따지고 보면 서양 문물이라 아무래도 서양식을 따를 수 밖에 없는데 예를 들어 삼각형 구도는 안정감을 준다거나 S자 구도는 율동감을 준다거나...하는 등의 내용은 미술 시간에 기본적으로 배운 것들이다.

 

'구도'를 배우는 방법을 많은 사람들이 '구도의 기본 원칙 5가지...'같은 걸로 요약하여 달달 외우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것은 정말로 엉뚱한 생각이다. 이런 것은 시험 볼 때 필요한 것이지 실제 사진을 찍을 때 사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짜로 '삼각형 구도'가 어떤 것인지 배워서 자신의 사진에 응용하고 싶다면 '라파엘로'의 '목장의 성모'같은 그림을 보고 그 그림의 '느낌'을 머리 속에 넣어 두라고 권하고 싶다. 이런 그림을 많이 감상하고 나서 눈이 좀더 예민해지게 되면 '루벤스'의 '레우기포스 처녀들의 약탈'과 같은 그림을 보고 두개의 삼각형이 역동적으로 겹쳐있는 구도를 갖추고 있어 화면의 긴장감과 인물의 동감을 극대화 시키는 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마티스'의 '춤'같은 그림은 어떠한가? 원형으로 인물들이 배치되어 화면 전체에 커다란 움직임이 넘치지 않는가? 구도를 진짜로 배우는 방법은 많은 걸작들을 감상하고 그 느낌을 숙지하여 이를 모방해 보는 것 이외엔 없다. '구도의 원칙'같은 이론을 줄줄 외우는 사람은 아마도 '예술가'가 아니라 '평론가'의 길을 걷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림 1. 라파엘로, 목장의 성모)

(그림 2. 루벤스, 레포기우스 처녀들의 약탈)

(그림 3. 마티스, 춤)

 

이와 같이 여러 작가의 명작, 특히 고전을 많이 감상하고 그 그림의 구성을 '느끼는'것이 곧 사진을 배우는데 더없이 중요한 일인데 그림을 많이 감상하라고 말하면 사진과 회화는 엄연히 틀린 것이라는 주장을 내세우며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꼭 한두 명씩은 있게 된다.

사진을 배우기 위해서는 오로지 사진만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람에 그런 의견을 내놓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진이 회화와 다른 것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예기니까 그렇게 강조하지 않아도 좋을 부분이고 회화에서의 '미학', 다시 말해서 '예술을 감상하는 눈'을 배우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좋겠다. 예술을 감상할 줄 모르면서 사진 예술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아마 없으리라 본다.

그 중에서 특히 회화를 많이 감상하는 것이 유리한 것은 회화에서는 잘 짜여진 구도와 배치로 엄정한 형식미를 갖춘 작품이 많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교과서적인 작품들이 많다는 예기인데 회화에서는 화가의 마음대로 구도를 짜 맞출 수 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구도를 찾아내야 하는 사진에 비하여 유리한 점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또한 회화는 수 천년의 세월 동안 걸르고 걸러져 오늘날 까지 남은 작품들은 그만큼 모범이 되는 것들만 남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편 이런 책을 '종합 영어' 같은 참고서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런 황당한 글쟁이를 봤나... 내가 직접 감상할 바에야 뭐 하러 이책을 보겠냐? 그런 그림들에 대한 감상문도 요약 정리해 줘야 될 거 아냐..."하고 은근히 속았다는 기분을 가지는 사람도 있을 터인데 그런 게으른 생각은 하지 말기를 바란다. 사진으로 예술 작품을 만든다는 건 그런 원칙을 몇 줄 외워서 되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남의 감상문을 감상 하면서 할 수 있는 것도 더더욱 아니다. 이런 것도 입시위주 교육의 폐해라고 생각하는데 답안 작성용 지식을 외우는 것만 배움이라 생각하고 그 지식을 자신의 경험이나 느낌으로 터득해 나가라고 하면 어리둥절해 하는 사람을 너무 많이 볼 수 있다.

 

오늘날에는 사진이 넘쳐 흘러서 우리의 시각을 시도 때도 없이 자극하기 때문에 '영상의 공해'라고 까지 말하는 세상이 되었다. 어떤 사진들은 너무나도 치졸한 구성 위에 만들어 지고 있어 공해라는 말이 일호의 차착도 없이 맞는 말이기도 하다.

여러분도 공모전 모음집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흰 눈 위의 누드가 빨간 천을 흔들고 있는 사진"같은 것을 한번 보도록 하자. 그런 사진에는 왜 빨간 천이나 빨간 우산이 꼭 등장하는 것인가? 그리고 보기에 안쓰럽게도 차가운 눈 위에 홀딱 벗겨져 세워진 여인을 보고 무었을 느끼라는 말인가? 그런 사진의 제목이 '닭살'이나 '몰상식'쯤 되었다면 작가의 수준이 그대로 전해 졌으니 그만해도 작품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스꽝스럽게도 '환희' 라는 제목을 붙여 놓고 있으니 도대체 뭐가 그토록 기쁘다는 말인가? 사이비 예술가들의 천박한 취미, '벗은 여자 구경하기'가 이 정도이니 사진 공해라는 말을 들은들 할말이 없다.

 

누드 사진을 눈 밭에서 찍겠다는 발상 자체는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파격적인 생각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파격적인 생각' 자체는 결코 예술이 아니다.

도대체 무었을 위한 파격이란 말인가?

숲이나 바위에서 찍은 누드 사진이 여러 공모전에 범람하다 보니까 좀 더 세게 나간다는 것이 눈 밭이 된 것인가? 아니면 눈 위에 벌거벗은 여자를 세워 놓아야 하는 그런 미학적인 구상이 있었다는 말인가? 그런 사진이 얼마나 오랫동안 작품으로서 인정을 받으며 남아 있을지 생각해 보면 헛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아마 '선데이 서울'같은 잡지에 실리는 사진에 비해 수명이 그리 길다고 볼 수도 없을 것이다.

 

작품을 평가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고 또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나 평론가의 취향에 따라 지나치게 과분한 대우를 받는 경우도 있고 또 억울하게 평가 절하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예술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이런 당대의 평가를 뛰어 넘어 사람들의 가슴 속에 오랫동안 간직되고 끊임 없이 감상 되는 것이라야 한다.

예술 작품을 평가 하기에 '세월' 만큼 정확하고도 냉혹한 것은 없는 것이다. 고전이 고전인 것은 그만큼 오랜 세월을 통하여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고전을 공부하는 것은 따라서 예술가의 눈을 갖추는 첫번째 단계인 셈이다.

 

 

구도에 대하여

 

구도는 여러 세기에 걸쳐 서양의 학자들과 예술가들에 의하여 연구되고 토의되어 왔으며 멀게는 그리이스 시대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구가 이 방면에서는 가장 앞선 기록을 남겼고 르네상스 시대엔 레오나드로 다빈치도 저서를 남겼다. 그렇지만 구도에 대하여 제기된 여러 이론들을 살펴보면 통일성이 별로 없고 주장하는 사람의 취향이나 성격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고 있다. 게다가 더욱 중요한 점은 '좋은 구도'라는 것이 각자의 문화적, 시대적 환경에 따라 변하게 된다는 사실인데 이런 점은 구도의 원칙을 설명하는 대부분의 책에서 무시되거나 언급되지 않은 채 넘어가고 있다.

 

우리가 어떠한 구도를 좋은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바탕에는 책을 읽는 방법이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서양인은 글을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써 나아가며 문장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나열되게 되는 가로 쓰기 방식이다. 반면에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권의 동양인은 위에서부터 아래쪽으로 글을 쓰며 문장은 오른쪽으로부터 왼쪽으로 나열되게 되는 세로 쓰기 방식을 오랫동안 사용해 왔다.

지금의 우리는 가로 쓰기 방식에 익숙해 져서 오히려 오랜 옛날부터 사용되어진 '세로 쓰기' 방식이 생소한 지경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세로 쓰기 방식이 완전히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림 4. 가로 쓰기 예)

(세로 쓰기 예)

(시선 방향, 절의 현판)

 

서양식 가로 쓰기 방식은 시선을 왼쪽 위에서부터 오른쪽 아래로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림을 볼 때도 자연스럽게 이와 같은 시선 방향을 취하게 된다. 따라서 그림에서 보여지는 선이나 피사체들의 배치가 이와 같은 시선 방향으로 배치되어 있다면 우리는 그 그림을 매우 자연스럽게 또는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이런 시선 방향을 방해하는 어떤 요소가 화면 중에 있다면 그 부분에 시선이 머물게 되어 주목을 받게 된다. 이런 경우에 구성을 적절하게 한다면 그 자체로 내용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강조할 수 있지만 그 그림에서 '평온하다'라든가 '자연스럽다'라는 느낌은 포기해야 한다.

이와 같은 원리를 알면 화면을 구성할 때 피사체를 어떻게 배치하여야 주제가 강조 된다거나 또는 특정한 부분의 의미를 약화 시킬 수 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림 5. 자연스러운 시선 방향을 따르는 구도)

(시선 흐름을 방해하는 구도)

(서양화 예)

(동양화 예)

 

우리나라는 동양적인 '세로 쓰기' 방식을 포기한지 오래되어 그 영향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해도 매우 약해졌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은 아직 '세로 쓰기'방식을 포기하지 않았고 어떤 사물을 '위에서 아래로, 그리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나가는 습관은 아직 여전하다.

이와 같이 동양과 서양은 그림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틀리므로 동양화를 감상 하면서 서양화와 같은 미적 기준을 적용하거나 서양화에서 통하는 구도의 원칙을 적용해서는 해석이 잘 되지를 않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는 이제 '동양화적인 미적 감각'에서는 많이 멀어졌으며 서양인의 사고 방식과 함께 그들의 미적 감각까지 모방해야 하는 처지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서양인의 미적 감각은 한편으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영향도 대단히 많이 받았다. 같은 기독교라 할지라도 동로마 제국을 중심으로 발달한 '그리이스 정교'와 비교해 보면 로마 카톨릭 그림의 구도나 도상학이 매우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여기에서의 그림은 교회에서 볼 수 있는 성화를 말하는 것인데 천년 동안 계속된 중세시기 동안 사람들이 그리거나 감상할 수 있었던 그림은 바로 이 성화뿐이었다) 하물며 로마 카톨릭적인 이런 그림을 한국이나 일본, 중국, 인도 등의 그림과 비교해 보면 얼마나 다를 것일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구도의 원칙은 쉽게 무시해도 되는 것이라는 오해(!)를 주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그것이 꼭 지켜야 하는 '법칙'이 아니라고 여러 번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문화의 다양성 때문이다.

 

지극히 서양적인 원리라 해도 이제는 그들이 확립해 놓은 미학의 성과를 떠나 예술이라는 것을 할 수는 없다. 우리 삶의 거의 모든 부분이 서양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누군가 '동도서기'의 원리에 따라 서양인의 미학을 동양적, 또는 한국적인 미학에 접목시켜 주었으면 하는 바램도 생긴다. 이 방면의 학문적 소양이 일천한 나로서는 이와 같은 엄청난 작업은 꿈도 꿀 수 없고 그저 서양인의 미학을 충실히 설명할 수밖에 없으니 이는 분명 다른 이에게 맡겨진 작업일 것이다.

사진 작품을 만들면서 고려해 보아야 할 구도의 원칙에 대하여 간략한 기술을 하자면 대략 4가지를 언급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통일성(unity)', '균형(balance)', '선(line)', '조화(harmony)' 이다.

 

통일성

통일성이라는 것은 사진의 구도에서 아주 쉽게 무시되는 것 중 하나이다. 그것은 구성에 통일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즉시 지우고 다시 그릴 수 있는 화가와는 달리 사진가는 사진을 찍기 직전까지 이에 대한 판단을 마쳐야 하며 일단 샷타가 눌러지면 그 다음엔 아무것도 이를 회복하거나 수정 할 수 없기 때문이다.(디지탈 사진은 여기서는 논외이다)

 

사진에는 검거나 흰 배경에 피사체 하나만 딸랑 촬영하게 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따라서 하나의 화면에 여러 가지 피사체가 동시에 찍히게 되고 그 중 하나는 사진의 주제(이것을 이제부터 '1차 주제'라고 부르자)로써 작용하게 된다. 하지만 주제가 아닌 다른 피사체도 (예를 들어 배경으로 보이는 사소한 피사체라도)사진에서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사진에서 차지하는 내용에 따라 '2차적인 주제'로 작용하게 된다.

그런데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이 2차적인 주제가 너무 압도적이거나 눈에 띄게 되어 원래 주제의 의미를 약화시키거나 심지어 원래의 느낌이나 의미를 아예 없애버리기도 한다. 사진을 촬영하는 순간에 가장 흔히 범하는 실패는 바로 이 2차 주제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오로지 1차 주제에만 신경을 쓰는 것이다.

 

사진을 찍으면서 촛점을 선명하게 맞춰야 하는 피사체(1차 주제) 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모습까지 고려하여 그것들이 찍고자 하는 주제와 어떤 식으로 통일성을 이루고 있는지, 또 그와 같은 조화를 이루고 있지 않다고 생각되면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예를 들어 촬영하는 위치를 바꾼다거나, 조리개를 열어 outfocus시킨다거나, 렌즈를 바꾸어 주변을 생략 한다거나) 판단한다면 사진의 내용이 크게 좋아지는 것은 단지 시간 문제일 뿐이다.

아무튼 2차적인 주제라는 것은 1차 주제의 의미를 강조해 주거나 아니면 그냥 2차 주제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2차 주제가 1차 주제와 화면에서 주도권을 다투면 무었을 찍고자 한 사진인지 어떤 의도로 촬영한 사진인지 알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림 6. 구도의 통일성 예 1)

(구도의 통일성 예 2)

 

주제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사진은 특히 우리 눈에 익은 피사체를 촬영할 때 자주 만들어 진다. 반면에 우리 눈에 익지 않은 피사체는 보통 보는 사람의 시선을 강하게 끌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심심찮게 TV에 보도 되는 UFO 같은 것을 찍었다고 하자. 경부고속도로 한 가운데 불시착하여 외계인이 엔진을 수리하고 있는 사진 같은 것에서는 경부 고속 도로의 나머지 부분은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게 된다. 비행접시 주변의 모습이 아무리 어지럽고 구도의 원칙에 벗어나는 난삽한 모습이라 해도 비행접시로 가는 시선을 조금도 방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눈에 익고 주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피사체는 화면에서 용의주도하게 배치되어야만 보는 사람의 시선을 끌 수 있고 따라서 1차 주제로서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다. 이것은 물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피사체는 사진의 주제로서 좋지 않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단지 다른 경우보다 좀 더 세심하게 계산된 구성이 필요 하다는 의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진을 찍기 전에 화인더를 주의 깊게 시간을 들여 보는 것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사진을 빨리 찍는 습관이 붙어버린 사람은 아무리 해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먼저 주어진 화면 내에서 주제가 되는 피사체는 무엇인가를 먼저 보아야 한다. 즉 1차 주제를 찾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쉬운 일이고 누구나 다 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1차 주제를 제외한 나머지는 화면에서 어떤 구성을 하고 있는가? 1차 주제의 의미를 보강해 주고 있는지, 아니면 반대로 주제를 약화시키고 있는지 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은 채 그냥 배경으로 남아 있는지? 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고 많은 사진가들이 이 과정을 생략하고 있다)

 

말은 이렇게 쉽게 하지만 실제로 촬영하는 순간에 이렇게 화면 전체의 통일성을 숙고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다음 진도로 나아가기 전에 먼저 왜 이것이 어려운 건지 그리고 해결 방법은 없는지를 생각해 보자.

 

 

(기술적인 진보와 제약) - (사진을 보는눈 4)

사실 요즈음에는 카메라를 만드는 기술이 엄청나게 발달하여 모든 것을 다 자동으로 해주기 때문에 화인더를 느긋하게 들여다보며 생각을 한 다음 샷타를 누르는 것이 점점 더 힘들게 되었다. 소위 첨단 기술의 AF 카메라는 것은 앞을 못보는 시각 장애인이라 하더라도 촛점과 노출에서 실패하지 않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놀라운 물건이고 따라서 아무 생각 없이 샷타 누르는 순간만 잘 잡으면 되기 때문에 이것저것 고려해 볼 여지가 거의 없다. 이런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나가면 아무래도 머리가 텅 비는 느낌이 들면서 순간 순간의 챤스만 잽싸게 찾아내는 훈련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내 장담하건대 사진기를 만드는 업자들은 꿈에라도 '사진 작가'가 되려는 사람이 사진을 잘 배울 수 있는 그런 기종을 설계해 본 적이 없다. 그들은 단지 가장 시장성과 이윤이 높은 기종, 가장 많이 팔릴 수 있는 기종을 만들뿐이다.

그러면 많이 팔기 위한 요점은 무엇이겠는가? 내가 굳지 지적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것은 바보라도 이상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자동 일변도의 기종을 만드는 것이다. (많이 파는 요점이다) 그리고 여기에 여러 가지 화려한 기능, 즉 노출 측정 방식만도 20여가지는 되고 그 중 대부분은 사진기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단 한번도 쓰지 않을 것들도, 최신형이라는 이름 아래에 우겨 넣는 것이다. (이윤을 많이 남기는 요령이다)

물론 최신형을 내놓을 때마다 그와 같은 기능들이 사진을 찍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것처럼 선전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마케팅이란 소비 심리를 일으켜 바꿀 필요가 없는 물건도 최신형으로 바꾸도록 유도하는 기술이다)

 

그래서 기술이 진보함에 따라 일반인들이 기념사진을 잘 찍는 문제에 관한한 어떠한 어려움도 없게 되었지만 사진 작가가 사진을 배우는 것은 상대적으로 점점 더 어렵게 되었다. 이제 웬만큼 잘 찍은 사진, 즉 초점이 선명하고 노출이 정확하며 절묘한 샷타 챤스를 잡은 그런 사진을 내밀어도 작가 취급을 쉽게 해주지 않는다. 그런 사진쯤은 일반인들도 일상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는 사진인 것이다.

 

아무튼 기술의 진보는 사진가가 화면 전체의 그림을 머리 속에 담아 구성과 조절을 하는 것을 (사진을 많이 찍어 보면 자연스럽게 몸에 붙게 되는 습관이 아니라) 사진가가 의도적으로 계획을 세워 연마하여야 하는 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경험적으로 보면 사진을 찍지 않으면서 화인더를 그냥 들여 다 보는 것이 생각보다 효과가 좋은 훈련이다. 이상하게도 사진을 촬영할 때는 화인더의 구석 구석 보기가 힘들다. 그래서

화면 귀퉁이에 있는 휴지 조각이나 피사체 위의 전선 등을 못 보고 찍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사람의 눈은 눈동자가 고정되어 있을 때는 극히 좁은 시각을 가진다고 앞장에서도 얘기하였지만 샷타를 누르기 위하여 손가락을 올려 놓고 찬스를 기다리고 있는 순간에는 화인더의 주변부나 화면의 배경에 신경을 쓰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일어나는 것 같다.

 

반면에 사진을 찍지 않을 때(또는 필림이 없는 카메라로) 화인더를 보면 느긋한 마음으로 화면 전체가 한눈에 들어 오면서 주변의 세세한 디테일도 잘 보이고 구성상의 문제점도 쉽게 발견 된다. 따라서 구도를 배우기 위해서는 평소보다 사진을 반 정도만 찍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좋다. 물론 사진을 확률로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면 한 장이라도 더 많이 찍어야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사진의 양을 반으로 줄이고 따라서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하여 화인더를 들여다 보는 시간을 두 배로 늘리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35미리 일안 반사식 카메라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와도 연관이 있다. 35미리 일안 반사식 카메라(SLR)는 렌즈의 조리개를 항상 개방 시켜 놓는 기구가 달려 있다. 이것은 렌즈의 조리개를 조이면 화인더가 너무 어두워져서 화면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인데

실제로 샷타가 동작하기 바로 직전에 이 조리개는 정해진 수치로 조여 지게 된다. 그런데 이 편리한 기구는 항상 조리개가 최대한 개방된 상태의 그림만을 보여 준다는 단점이 있다. 실재로는 f8이나 f11로 촬영을 하여도 화인더에는 f1.4로 촬영하는 것과 같은 그림이 보여지는 것이다. 이렇게 조리개가 개방된 상태에서는 배경이 많이 흐려지기 때문에 조리개가 조여진 상태에서의 그림과는 차이가 있게 된다. 특히 이 문제는 촛점이 맞는 피사체보다는 배경의 피사체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화인더로 보았을 때는 배경이 뭉개져 있어 주제의 의미를 약화 시키지 않았다. 하더라도 실재 사진에서는 뚜렷하게 살아나 주제와 배경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거나 때에 따라서는 주된 피사체 보다 더 시선을 끌게 되어 작가가 생각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그림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그림 7. 개방 조리개 화면

조리개를 조인 사진

그림 8. 조리개 개방 기구, 니콘 카메라

그림 9. 조리개 개방 기구 동작 순서

(카메라의 Preview 기구)

 

일부 기종의 카메라에는 Preview라는 버튼이 있어서 촬영하기 전에 조리개가 조여진 상태로 그림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요즈음에 나오는 기종들은 대부분 이 Preview기능이 생략 되어 있고 또 앞서 말한 대로 화면이 너무 어두워지기 때문에 정확한 판단을 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각자가 자신이 사용하는 렌즈의 심도를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현실적인 해결책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여 이제 화인더를 보면서 그림 전체를 한눈에 파악하였다고 하자. 그래서 그림의 어느 부분이 구도의 통일성을 갖지 못하고 시선을 흐트러지게 한다면 이를 수정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리개 값을 변화시켜 선명하게 보이는 구간을 바꿀 수도 있고 촬영하는 위치를 바꿔 볼 수도 있다. 또는 렌즈를 교환하여 화각을 바꾸어서 문제를 해결 할 수도 있다. 또는 다른 시간에 촬영하여 조명의 상태가 바뀌게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사진이 어떤 형태의 그림으로 나오게 될지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며 이 때 자신의 의도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이를 어떤 형태로 조절 할 것인지 생각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이다. 사진을 찍기 전에 이와 같은 문제를 검토하고 조절하는 것이 '선구상'이다.

사진은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작업이다. 그저 화인더를 들여 다 보다가 찬스가 오면 샷타를 누르는 식으로는 결코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

 

(그림 10. 구도의 재선정)

(조리개가 변화한 사진)

(촬영하는 위치 변화)

(렌즈의 변화)

 

균형

균형(balance)은 구도에서 가장 많이 토의되는 문제이다.

균형에는 '대칭적 균형'과 '비대칭적 균형' 두 가지가 있다. 그런데 사진이나 회화에서는 '비대칭적 균형'이 '대칭적 균형'보다 흔히 볼 수 있는 구성 방법이다. 완전한 대칭을 이루는 구도는 상대적으로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어떤 사람은 구도에서 대칭이라는 것은 피해야 할 덕목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확한 대칭과 비례로 이루어지는 구도도 좋은 효과를 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런 비대칭 구도에서 가장 금과옥조로 받들어지는 것이 1/3법칙이다. 구체적으로 이런 구도가 사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풍경 사진을 예로 들어 보기로 하자.

풍경 사진에서 수평선을 정 중앙에 배치하면 이 수평선이 화면을 상하 둘로 반듯하게 갈라지게 된다. 우리의 시선은 이 수평선을 따라 좌에서 우로 흐르게 되며 위 아래로 움직이기 힘들게 된다. 따라서 보통의 경우는 수평선이 1/3위치에 있는 것이 보다 좋은 결과를 보여 준다. 만약 하늘이 드라마틱하다면 수평선을 아래로부터 1/3위치에 둔다. 만약 전경의 피사체가 드라마틱하다면 위로부터 1/3위치에 둔다.

그런데 왜 하필 1/3이란 말인가? 1/4이나 1/5로 하면 어떻단 말인가?

 

화면을 굳지 1/3로 분할하는 것이 좋다는 이유는 우리 눈이 화면의 경계면에 너무 가까이 있는 물건은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즉 피사체가 화면의 구석에 있거나 위나 아래로 바싹 붙어있는 경우는 그것이 비록 중요한 1차 주제였다고 하더라도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2차 주제 정도로 보여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화면의 정 중앙을 피하고 또 화면의 주변부로 너무 치우치는 것을 피하다 보니 결국 1/3이 된 것이다. 이 점은 구도를 연구했던 많은 예술가와 학자들 사이에서 대체로 공감되고 있는 바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이스 시대로부터 내려오던 황금 분할과 비슷하다. 물론 황금 분할은 화면을 약 5:8로 나누므로 위치가 약간 틀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1/3법칙과 매우 유사하다. 황금 분할의 법칙은 이 장의 끝에서 다시 한번 설명하도록 하겠다.

 

(그림 11. 1/3 법칙이 적용된 사진 1)

(1/3 법칙이 적용된 사진 2)

(대칭 구도의 사진)

 

군형은 대칭적인 것이던 비대칭적인 것이던 피사체의 크기와, 위치, 톤, 명암, 그리고 색깔에 의하여 조절되고 이루어진다. 이와 같은 요소를 보는 것이 균형을 조절을 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크기와 위치의 균형)

크기와 위치는 상대적으로 단순하다. 일반적으로 화면을 차지하는 크기가 클수록 그리고 중심부에 가까울수록 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 피사체로 간주된다. 만약에 주제를 이루는 피사체가 너무 작거나 화면의 주변부에 너무 치우쳐 들어가게 되면 불안정해 보이거나 균형이 맞지 않는 사진이 된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치우쳐진 주제의 무게 중심을 맞춰줄 보조적인 피사체(2차 주제)가 있어야 한다. 이런 작용을 하는 보조적인 피사체는 다른 물건 일수도 있고 아니면 짙은 그림자나 또는 밝은 하이라이트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화인더를 보고 있는 동안에는 피사체를 피사체 자체로 보지 말고 그림으로 그려지게 될 선과 형태로 바꾸어 보아야 한다. (즉 현장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인화된 사진을 감상하게 되는 관람자의 입장에서 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만약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판단이 들면 렌즈를 바꾸거나 촬영 위치를 움직여야 한다.

또는 수평 구도를 수직 구도로 바꾸어 보라.(물론 수직 구도로 바꾸면 균형 뿐 아니라 사진 전체의 분위기도 바뀌게 된다.)

 

(그림 12. 크기의 불 균형)

(위치의 불 군형)

(수평 구도와 수직 구도)

 

(톤, 명암, 색깔의 균형)

톤, 명암, 색깔은 물론 같은 것이 아니지만 한데 묶어서 생각해 보자.

흑백 사진에서는 물론 색깔은 들어가지 않는다. 명암이라는 것은 밝고 어두운 것의 상호 작용을 말하는 것이다. 이 명암이 피사체의 윤곽을 그려주며 2차원 평면인 종이 위의 그림을 3차원적인 입체감이 나오도록 하여 준다.

사진의 톤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의 톤(low key)이 될 수도 있고 밝은 분위기의 톤(high key)이 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톤은 사진 전체의 분위기나 느낌을 좌우한다. 밝은 톤(highkey)의 사진은 명랑하며 가벼운 분위기의 사진이 되는 반면 어두운 톤(lowkey)의 사진은 무겁고 드라마틱하며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내어 주기도 한다. 여기서 밝은 톤의 사진은 어두운 톤의 사진에 비하여 검은 부분이 현저하게 적지만 그래도 전혀 없어서는 안되고 일부 있어야 한다.

 

(그림 13. 명암, 사진의 윤곽을 이루는 요소이다)

(밝은 톤의 사진)

(어두운 톤의 사진)

 

보통 미술 책에서는 톤이나 색깔에는 무게가 있는 것처럼 설명되어 진다. 밝은 톤이나 밝은 색깔은 가볍고 어두운 톤이나 어두운 색깔은 무겁다. 실재로 검은 종이나 흰 종이나 무게 차이가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왜 톤이나 색깔이 무게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지는 과학자들도 잘 모른다. 양자 역학적으로 보면 빛에도 무게가 있어 태양과 같은 어마 어마한 중력장 근처를 지나는 빛은 그 경로가 휘는 것이 실험으로 증명되어 있다. 또 색깔이란 이 빛의 파장이 길고 짧음을 예기하는 것이므로 색깔에 따라 우리 눈이 다르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이런 차이가 왜 무게의 차이로 느껴지는지는 아직 오리무중인 것이다. 아무튼 물리적인 요인이던 심리적인 요인이던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은 사실임에 틀림 없다.

 

흑백 사진에서 필터는 피사체의 명암을 선택적으로 바꿔줄 수 있기 때문에 사진의 내용이나 느낌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창작의 도구이다. 예를 들어 빨간 필터는 파란 색을 가진 물체를 검게 표현하고 빨간 색을 가진 피사체를 희게 표현한다. 반면에 파란 필터는 파란 색을 가진 물체를 희게 표현하고 붉은 색을 가진 물체를 검게 표현한다.

이것은 무었을 의미하겠는가?

즉 필터는 피사체의 명암을 바꾸기 때문에 그 피사체의 무게(우리가 그림을 보면서 느끼는 무게)도 바꾸어 주게 되며 따라서 피사체의 형태나 위치를 바꾸지 않아도 구도의 균형을 바꾸어 준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어두운 톤(무거운 물체)은 화면의 아래 쪽에 배치되고 밝은 톤(가벼운 물체)은 화면의 위쪽으로 배치 되는 것이 안정감 있게 보인다.

 

(그림 14. 무게에 의한 균형)

 

선은 가장 애매 모호한 개념이다. 균형과 선이 모두 통일성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도대체 선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실제로 사진에서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엄밀한 의미는 유클레이데스의 정의, ' 길이는 있되 폭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림을 그릴 때 연필로 긋게 되는 그런 일반적인 선조차도 사진에는 없는 것이다. 사진에서 실재로 선처럼 보이는 것은 밝고 어두운 면의 경계선일 뿐이다.

 

이점은 아주 중요한 개념인데 그림에서는 정밀한 묘사가 필요할 수록 가늘고 섬세한 선을 사용하면 되지만 선이 없는 사진에서는 정밀한 묘사를 하기 위해서는 명암의 차이(콘트라스트)가 얼마나 잘 구분 되는 지가 보다 더 중요하게 된다. 렌즈의 성능을 측정 할 때 선을 구분해 내는 능력을 보는 해상력 테스트가 그 렌즈의 실제 성능과 그다지 관계가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렌즈는 밝고 어두운 콘트라스트 차이를 구분해 내는 MTF테스트를 해야 그 렌즈의 실제 특성을 보다 가깝게 알 수 있다.

 

(그림 15. 사진에는 선이 없다. 확대 사진으로 선을 보면...)

(사진의 선은 시선이 움직이는 경로다)

(선의 도해)

 

사진에서의 선을 다른 의미로 정의하자면 우리의 시선이 그림을 보면서 움직이는 경로라고 하면 좋겠다. 처음에 말한 것과 같이 우리의 시선은 책을 읽는 방식에 따라 왼쪽 위로부터 오른쪽 아래로 자연스럽게 흐른다고 하였다. (우리의 시각이 서양인의 시각과 하등의 차이가 없다고 가정하고) 이런 자연스러운 흐름을 깨는 선은 경우에 따라 의미심장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사진 의 분위기를 크게 바꿀 수 있다.

 

예를 들어 같은 대각선이라고 하여도 화면 왼쪽 위로부터 오른 쪽 아래로 '떨어지는' 대각선은 보다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는 반면에 왼쪽 아래로부터 오는 쪽 위로 '치솟아 올라가는' 대각선은 보다 다이나믹하고 역동적인 느낌을 주게 된다. 이것은 보다시피 용어를 선택하는 데에도 영향을 주는데 앞의 대각선을 '떨어지는' 대각선으로 뒤의 대각선을 '솟아오르는' 대각선으로 느끼는 것은 우리의 시선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만약 시선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본다면 앞의 대각선이 솟아오르는 대각선이고 뒤의 대각선이 떨어지는 대각선이다 .

 

(그림 16. 떨어지는 대각선)

(올라가는 대각선)

 

수평선은 대체로 안정감을 그리고 평온함을 상징하게 된다. 반면에 수직선은 위엄, 존엄, 갈망을 상징한다. 곡선은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직선은 힘과 견고함을 느끼게 한다.

삼각형은 안정감을 역 삼각형은 불안정을 암시한다. 또는 삼각형이 힘과 견고함을 나타내기도 한다. 대각선은 앞서 말한 대로 동감을 나타낸다.

원형은 봉쇄된 느낌을 나타내기도 하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사진을 제 3자의 입장에서 관찰하는 기분을 갖게 한다. 반면에 S자 구도는 보는 사람을 그 사진 속으로 빨아들인다.

S자의 오솔길이 펼쳐져 있는 사진은 그 길을 걷고 있는 듯한 또는 걷고 싶은 듯한 충동을 주는 것이다.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서 원형이나 S자 구도도 율동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선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는 설명들을 일일이 들자면 한이 없다. 그래서 어떤 선이 어떤 느낌을 주는지 자신이 스스로 직접 규정하는 것이 가장 좋다. 물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자신이 만든 선에 대한 느낌이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른 사람은 다른 느낌으로 같은 선을 바라 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부연 설명하건대, 사진에서의 선은 실재로 그려 놓은 선이 아니다. 그것은 사진 속의 여러 요소를 오고 가는 우리의 시선이 마음속으로 만들어 낸 선이다.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해 모여서 있는 사람들이 삼각형의 선을 만들 수 있고 숲속의 나무나 슬라이딩하는 야구 선수가 대각선을 그릴 수 있다. 무용을 하는 무용수들은 원을 그리기도 하며 구불구불한 담장이 S자의 선을 그리기도 한다. 이와 같은 선은 보통 피사체의 윤곽을 따라 형성되거나 또는 피사체를 보는 순서에 의하여 정해지는 것이다.

 

(그림 17. 삼각형 구도)

(대각선 구도)

(원형 구도)

(S자 구도)

 

조화

조화(harmony)는 주제의 통일감, 균형, 선의 구성의 결과가 종합적으로 나타난 결과이다.

조화는 다양성을 부정하지 않으며 신중하고 적절하게 사용된 불균형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조화는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나타내는 종합적인 결과를 말하는 것이다. 조화에 대해서는 길게 설명할 만한 것이 없지만 사진의 멋을 최종적으로 결정지어주는 요소임에는 틀림이 없다. 통일성을 가진 구도를 만들었지만 균형이 맞지 않는다면, 또는 균형을 잘 맞추었지만 선의 구성이 혼잡하다면 조화를 느낄 수 있겠는가? 이 부분이야 말로 각자의 재능과 성격이 살아나는 부분이고 그만큼 말로 할 것은 없는 부분이기도 한 것이다.

 

 

결론

어떤 구도의 원칙을 따르기로 하던지 아니면 이제부터 무시하기로 하던지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구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이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서 일부러 정해진 구도를 파괴 할 수도 있지만 그것도 구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자신이 무었을 파괴하는지도 모르는 채 파괴를 해서야 어디 예술이 되겠는가?

 

사진을 찍기 전에 구도의 원칙을 고려하는 것은 산책을 나가기 전에 중력의 법칙을 점검하는 것과 비슷한 면이 있다. 중력의 법칙은 우리가 그 동안 산책을 하면서도 지구 밖으로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는 사실로부터 연역 된 것이다. 중력의 법칙이 만들어 졌기 때문에 우리가 지구 밖으로 떨어져 나가지 않은 것이 아닌 것이다. 중력의 법칙이란 인간의 지성을 표현해주는 수단이지 우리를 이 땅에 머물게 하는 본질은 아닌 것이다.

 

이 말은 어떻게 하면 '구도'라는 것을 배울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카메라를 잡고 밖으로 나가 사진을 찍으라. 필림을 현상하고 인화하여 어떤 것이 좋은지 나쁜지(또는 어떤 것이 더 맘에 드는지) 숙고하라. 그리고 다시 사진을 찍으러 나가 화인더를 보면서 숙고하라. 만약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시도해 보라.

구도의 원칙을 따르는 것도 좋고 따르지 않는 것도 좋다. 어느 경우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하는 시간이 작다면 예외이다. 모든 것을 자동으로 해주는 오늘날에는 이런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생각하지 않고 자동으로 할 수 있는 예술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미학의 역사

 

2. 미학의 역사(미학의 역사 1)

 

그러면 이제 미학의 역사를 개략적으로 살펴 보기로 하자. 모름지기 사람은 '자기가 아는 만큼만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유홍준 교수의 명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쓰여 있는데 이 말이야 말로 천하의 명귀이자 특히 예술 분야에서는 한 점의 가감도 없이 그대로 들어 맞는 말이라 생각 된다. (어느 개그맨이 쓴 '남의 문화 유산 답사기'라는 책도 있으므로 혼동하지 말기 바란다) 문화 유산도 그 의미를 모르는 사람에겐 먹고 노는 관광지에 불과한 것처럼 예술도 그 예술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감상이 잘 되지를 않는 것이다. 스스로 감상하지도 못하는 예술을 만들어 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서양 예술의 두 뿌리는 '그리이스'의 헬레니즘과 기독교의 헤브라이즘이다. 이것은 예술 뿐만 아니라 서양의 철학과 문화 전반에 걸쳐 있는 두개의 기둥과 같은 것이다. 사실 서양에서의 미학은 그리이스 시대에 이미 완성되었다고 보아도 무방 하며 그 후의 미학론은 옛 현인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저렇게 변조하여 울거 먹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이스 사람의 정신을 파악하려면 그리이스 신화를 읽어 보면 된다. 그리이스의 신들은 다른 나라의 신(공포의 대상이자 신비한 초자연적인 존재)과는 달리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서로 사랑하고 시기하고 싸우고 웃는 그런 신들이었다. 그들은 신에 대한 존경심이 현저하게 낮았고 신을 인간의 수준으로, 다시 말해서 인간을 신에 가까운 수준으로 생각하여 사람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는 '인본 주의'를 인류 사상 처음으로 확립한 것이다.

헬레니즘(Hellenism)이란 그리이스 땅에 사는 민족, 즉 헬라(Hella)족의 사상을 가리키는 말로써 인간을 모든 사고의 중심으로 놓고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을 존중하고 '나'를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존재로 인정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인들의 성격적인 특징(개성존중, 개인주의)이 이때부터 틀이 잡혔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이스 인들은 자연에 대해서도 신의 섭리라는 편리한 이론으로 두리뭉실 넘겨 버리지 않고 면밀한 관찰과 사색을 바탕으로 논리적인 설명을 하려고 노력 하였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해석은 기하학을 완성한 피타고라스와 유클리드 같은 수학자나 그 당시에 벌써 지구는 둥글고 그 크기는 반지름 r=3,944 마일 이라고 밝혀낸 히파르크스 같은 과학자를 낳게 되었다. 히파르크스는 3마일 높이의 산에 올라가 수평선과의 각도 '87도 46초'를 얻었는데 관계식 'sin87도 46초=r / r+3' 을 풀어 지구의 반지름 r을 찾아낸 것이다. 그리이스 인들은 어떻게 풀었는지는 몰라도 정밀한 삼각 함수표도 가지고 있었는데 sin87도 46초의 값을 0.99924까지 알고 있었다. 2500년 전에 이런 계산을 할 수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대의 지성은 결국 그리이스를 재 발견하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은 정도이다.

 

예술계에서도 '아름다운 것은 왜 아름다운가?'라든가 '예술의 본질은 무엇이란 말인가?'같은 철학적인 질문에까지 사색의 손길을 미쳐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poetica)'이라는 유명한 글로 이를 집대성하여 남기게 된다. 예술이 오늘날과 같이 여러 가지 분야로 분화되어 있지 않았던 당시에 '시학'은 넓은 의미의 '미학'에 해당하는 것이었는데 1부와 2부로 구성된 '시학'중에서 제1부 '비극론'은 오늘날까지 남아서 전해지고 있지만 제2부 '희극론'은 어디론 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초기의 그리이스 예술은 딱딱한 기하학적 양식에서 출발하였고 이 시기를 '아르케익'양식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비례와 균형에 입각하여 조각상을 제작하게 된다. 이때의 작품 중 쿠로스의 청년상 같은 것을 보면 정면을 보고 서 있는 청년의 우람한 가슴과 어깨가 정확한 대칭을 이루고 있고 군대식의 차렷 자세이기 때문에 마치 마징가 제트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이집트의 조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인데 이렇게 법칙에 의존한 작품은 필경 딱딱한 모습을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아직 예술적인 감흥을 자아내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점이 있다.

 

(그림 1. 아르케익 의 예)

 

'아르케익'시대는 얼마 안 있어 보다 세련된 '고전(Classic)'시기로 이어지는데 아테네가 페르시아를 마라톤 전투에서 물리치고 정치적 문화적으로 완숙 되는 시기와 일치한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프락시텔레스(Praxiteles)의 아프로디테상은 엄밀한 기하학적인 양식 위에다 비대칭과 불균형을 넣은 것으로 긴장과 이완이 역학적 균형을 이루도록 되어 있다. 즉 왼쪽으로 기울인 자세에 오른 발을 약간 굽히고 있고 오른쪽 어깨와 왼쪽 어깨가 그 긴장감이나 위치가 같지 않아서 세부적으로는 불균형하나 전체적으로는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사물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엄격한 비례와 함께 이런 우연적 요소도 받아들여야 하는데 여기에서 그리이스 예술의 세련됨과 아름다움이 그 정점에 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림 2. 아프로디테 상)

(고전 시대의 예)

 

또한 회화, 조각, 건축, 사진 등 시각 예술 분야를 통틀어 가장 기본이 되는 '황금 분할'의 법칙을 발견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균형과 조화를 만들어 내었고 인체의 비례에서도 표준형(Kannon)이란 것을 만들어 남자의 경우는 머리가 몸길이의 1/7이 되는 것이 ,여자의 경우는 1/8이 되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규정하여 지금까지도 각종 미인대회의 기준이 8등신으로 굳어지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황금 분할의 법칙은 어떤 선분 AB에서 임의의 점 P를 잡고 AP:AB=PB:AP가 되는 비율을 찾는 것으로 대략 5:8의 비율을 가진다. 조각가

폴리클레이토스(Polykleitos)가 만든 표준형(Kannon)이라는 것은 인체의 여러 부분에 황금 비례를 적용한 것으로 문자 그대로 수학적으로 '이상적 인체 비례'이다. 그 덕분에 폴리클레이토스는 '비례의 입법자'라는 별칭을 가지게 되었다.)

 

(그림 3. 황금 분할의 법칙 도해)

 

요즈음에는 우리나라 미인의 기준도 한국적인 미학에 의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서양인의 미학으로 판정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우리의 체형에는 맞지도 않는 8등신을 만드느라 여기 저기 뜯어 고친다거나 하면서 난리를 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다리를 길어 '보이게' 한다는 눈속임용 바지가 TV에서 버젓이 광고를 하면서 유행을 만들어 내기도 하는데 다리가 길어 지는 것도 아니고 길어 '보이는' 것은 또 무슨 코메디란 말인가? 다리가 길어야 멋있다는 주장은 나처럼 다리가 짧은 사람에게는 말도 되지 않는 소리로 들리는데다가 그런 옷은 필경 다리가 짧은 사람들이나 입고 다닐 것이니 내가 보이엔 '나는 다리가 짧은 것이 콤플렉스요'라고 선전하고 다니는 옷 같아 보인다.

 

조금이라도 서구적인 얼굴이나 체형을 흉내내려고 이렇게 까지 노력하는 것을 보면 한편으로는 한심스럽기도 하고 또 서양인들을 만나 한국 문화를 소개하기가 민망스럽기도 하다. 경복궁 같은 옛 것을 구경할 때는 한국적인 미를 흠씬 느끼는 서양인들도 막상 한국인의 모습이나 생활을 보면 한국적인 문화를 전혀 찾아 볼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농담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이제 와서 서양인들은 동양인의 철학이나 미학을 배우겠다고 바삐 나서고 있는데 우리들은 서양을 흉내내지 못해 안달을 하면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지킬 줄 모르니 이러다가는 서양인 보다도 더 서양적인 한국인이 한국 사람보다도 더 한국을 잘 아는 서양인에게 한국 미학 강의를 들어야 하는 날이 오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튼 2,500년 전의 그리이스인의 미학이 이렇게 우리 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면 문화적 능력의 힘이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알 수 있다.

 

한편 완벽한 이상(idea;이데아)이 지배하는 세계를 추구했던 플라톤은 프락시텔레스류의 미학에 대하여 '우미-미련한 놈들의 천박한 미'라고 극언을 서슴지 않았는데 그가 퍼부은 악담에 상관없이 프락시텔레스의 우미가 오늘날 미학의 근간을 이루게 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플라톤의 미는 레테의 강(죽은 자가 건너는 망각의 강) 저편에 있는 이데아를 현실의 세계에서 구현하는 것이며 고도로 추상화 된 그의 미학은 오늘날의 순수 추상과 같은 기하학적인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플라톤이 한 수 위였던 것 같기는 하다.

프락시텔레스류의 고전 미학을 울거 먹을대로 울거먹은 현대인은 이제서야 어렵고 난해할수록 더 고상한 것으로 쳐주는 순수 추상을 만들어 내었으니 말이다.

 

(그림 4. 플라톤의 순수 추상)

 

이 고전 시기를 말해 주는 전설로 '피그말리온'의 이야기를 들면 좋을 것 같다. 피그말리온은 솜씨가 뛰어난 조각가 였는데 어느날 정말로 진짜로 아름다운 조각을 만들어 냈다.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자신의 조각상과 사랑에 빠지게 되어 다른 여인을 사랑할 수가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급기야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그 조각과 똑같은 여인을 내려달라고 일구월심 빌게 되었는데(이름 그대로 '피를 말리도록' 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의 백일 기도가 효험이 있었는지 아니면 그의 뜨거운 사랑에 감동한 것인지 아프로디테 여신이 드디어 차가운 조각상을 따듯한 육체로 변신시켜 주었다는 예기다. 신을 모시고 살았던 옛 사람들에겐 이런 유리한 점도 있었나 보다. 그 정도로 솜씨가 대단했다는 예기이기도 하다.

 

그리이스 후기로 접어들면 '라오콘'과 같이 격정적인 동감이 넘치는 조각들이 제작되었다. 라오콘은 원래 트로이의 신관이었는데 트로이의 목마 안에 로마 군인이 있다는 사실을 누설 하려하자 이에 분기탱천한 아테네 여신이 큰 뱀을 보내 천기누설 죄로 그를 죽이는 장면이다. 강한 동감과 고통의 표정이 생생하여 조각임이 의심스러운 작품이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고전 시대의 절제된 아름다움을 뛰어넘지 못하고 극적인 효과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연극적인 면이 강해진 작품들도 나와 약간 신파조로 변한 느낌이다. 사진으로 치면 연출이 지나쳐 자연스러움을 잃은 경우라 볼 수 있겠다.

 

(그림 5. 라오콘, 후기)

 

하지만 미학을 완성한 그리이스인 조차도 미학의 법칙들을 그대로 다 지킨 것은 아니다. 육법전서나 성서, 코란, 팔만대장경 등과는 달리 이 미학의 법칙들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이 아니다. 다만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권장 사항' 정도라고 봐야 한다.

"그렇게 하면 무엇에 좋다는 권장이란 말인가?"

그것은 바로 '형식미'에 좋은 것이다.

앞서 '주관적인 미학' 부분에서 형식과 절차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스러운 사고 방식이 예술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렇게 설명하다 보면 꼭 극단적으로 해석을 몰고 가서 '형식을 타도하고 주체를 세우자!'라는 식으로 받아 들이는 사람도 나온다.

그러나 형식을 무시한 '파격적'인 멋스러움 뿐 아니라 형식을 잘 지키는 '단아한' 아름다움도 중요한 것이며 실재로는 엄밀한 형식미를 구축하기 이전에 파격으로 내달리는 것은 예술의 어느 분야에서나 경계해야 할 위험한 태도인 것이다.

 

서양 문화의 본질적인 부분을 만들어 냈던 그리이스는 그 문화적 능력은 엄청나게 뛰어 났지만 단결이라던 지 협동이라는 것과는 아주 거리가 먼 민족이었다. 바다만 보이면 돗을 올려 나아가고 북아프리카와 지중해 연안 곳곳에 식민 도시를 세웠던 진취적인 성향을 가졌지만 어쩐 일인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그리이스 민족끼리는 단합을 이루지 못하고 도시 국가를 중심으로 서로 싸우다가 이탈리아 반도에서 새로 일어난 세력 '로마'에 굴복하게 된다.

 

무력을 앞세운 로마의 중무장 보병 군단은 시칠리아 섬을 정복하고 한니발의 카르타고를 멸망 시킨 다음, 그리이스를 자신의 영토에 편입 시킨다. 하지만 로마는 그리이스의 뛰어난 문화를 파괴 하기는커녕 고스란히 받아들여 자신의 문화로 갈무리 한다. '로마'의 성격도 '그리이스' 못지 않은 독특한 점이 있었던 것이다. 로마는 민족과 혈통을 뛰어넘는 인류 사회, 즉 '세계인' 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확립하고 실천 하였는데 피 정복된 민족을 로마인으로 인정하여 시민권을 부여하고 능력 있는 사람은 원로원에 편입시켜 로마의 정치를 맡기면서 영토를 넓혀 나갔다. 이와 같은 로마의 팽창은 서기 9년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바루스' 장군의 대군이 라인 강 너머 '토이부르거' 숲에서 게르만의 용장 '헤르만'에게 섬멸 당할 때 까지 계속 된다. 그리하여 라인 강 이북 지역은 제외되었지만 유럽의 대부분과 소아시아, 북 아프리카까지 로마의 상징인 독수리의 날개 아래 하나의 국가, 하나의 언어, 하나의 문화로 통합되어 유럽의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대 제국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로마의 이런 뛰어난 포용력과 문화적 관용성은 후세에 전해지지 못하였다. 로마 이후의 유럽 사회는 종교, 민족, 국가간의 이해 관계가 뒤얽혀 서로 죽이고 파괴하는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내용은 없으면서도 허세를 부리고, 좋다고 하는 것은 다 자기 앞으로 갖다 붙이는 습성은 유럽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는 모양이다. 로마가 멸망한 이후 힘깨나 쓰는 유럽의 군주들은 앞 다투어 독수리를 문장으로 채택하여 서로 자신이 로마의 전통을 계승한 원조라고 다투다가 962년에 프랑크 왕국의 오토 대제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를 겸하게 되면서 정식으로 독수리를 나라의 상징으로 삼아 오늘날까지 독일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다. 한편 '신성 로마 제국'의 타이틀이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그' 왕가로 넘어가자 오스트리아도 독수리를 자기네 상징으로 내세우게 되었고 그 제국의 일부였던 폴란드가 독립하면서 폴란드 또한 독수리를 상징으로 삼고 러시아는 한술 더 떠 머리가 두개인 독수리를 제국의 문장으로 채택하였고(이걸 기형 독수리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러시아 황제는 로마 황제 보다 두 배는 더 똑똑하고 위대하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신성 로마 제국'을 격파한 나폴레옹도 스스로 황제에 오른 뒤 자신의 문장으로 독수리를 사용하더니 로마 시절 '갈리아'라고 통칭되던 '에스파냐'가 독수리를 상징으로 삼은 것은 그렇다고 치고 로마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미국까지도 한목 끼어 들어 독수리를 자기네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어 그야말로 서양은 너나 할 것 없이 독수리를 놓고 쟁탈전을 벌이는 형국이 되었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멸망한지 1500년도 더 된 로마의 힘이 오늘날까지 미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아무튼 '그리이스 정신'을 그대로 이어 받은 로마는 온 유럽과 북 아프리카를 차지하고 태평성대(PAX ROMANA)를 구가 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로마의 평화는 점차 사치와 방종으로 변해 나갔고 일부 귀족들의 호사와 방탕을 위하여 수많은 백성들과 노예들이 피땀을 흘려야 하는 사회로 변모해 나갔다. 로마가 세계적인 규모의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건강한 정신과 포용력은 이제 찾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로마 사회는 이제 대대적인 사회 개혁이 없이는 더 이상 제국을 지탱해 나가기 힘들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은 그 당시의 로마인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기득권을 가진 상류 계층은 이런 요구를 묵살하고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에만 급급했다는 것은 로마도 예외가 되지 못하였다.

 

이때 모래 먼지가 흩날리는 광야에서 바람처럼 나타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타락한 로마를 질타하고 억눌리고 굶주린 사람들을 위하여 외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놀란 로마의 지배층과 로마인과 결탁해 일정한 지위와 이권을 보장받고 있던 유대인(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죽이고 기독교를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미 로마의 정신은 사라졌고 끝없는 착취만 계속되는 사회에서 국민들의 정신적 동요를 탄압만으로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기독교는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을 중심으로 불길처럼 번져나갔고 그러자 기독교인들을 탄압하는 것도 더욱 광적으로 되어갔다.

이에 반하여 로마의 사회 기강은 5현제의 마지막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죽은 이후 급격히 땅에 떨어져 불과 50년 사이에 26명의 군인이 황제에 오르고 살해 당하기를 계속하더니 급기야 서로 싸우지 말라고 황제 자리를 넷으로 늘려 하나의 국가에 황제가 네 명이나 있는 이상한 제도를 만들었다. 그렇지만 이것으로 어찌 문제가 해결 될 수 있겠는가? 네 명의 황제는 서로 자기가 정통 황제, 오리지날 황제, 원조 주물럭 이라고 우기며 싸움박질을 시작하더니 아무나 하는 거면 나도 한번 해 보자는 식으로 스스로 황제임을 자칭하는 사람까지 생겨 여섯 명의 황제가 나라를 다스리는 난리통이 되어버린 것이다.

거기에다 로마의 국경인 라인강 북쪽에 살고 있던 게르만족까지 남하하기 시작하자 로마는 바야흐로(이번에는 상류층 까지도) 체제의 위기를 절실하게 느끼게 될 지경이 되어 버렸다.

 

여섯 명의 황제 중 하나였던 '콘스탄티누스'가 경쟁자인 '갈레리우스', '막시미안', '막센티우스' 등을 무찌르고 명실 공히 로마 제국의 정통 황제로 등장한 것이 311년이다. 그렇지만 이미 로마는 황제의 힘으로도 더 이상 사회 개혁을 막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심정으로 고민을 거듭하던 '콘스탄티누스'황제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 이외의 방법은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313년에 '밀라노 칙령'을 통하여 기독교를 공인하여 유럽에 '헤브라이즘'이 뿌리내리게 된다. 이로써 로마의 윤리, 로마의 제도는 모든 것을 '사람'중심으로 생각하고 '이성'으로 풀어나가는 구조에서 모든 것을 '하나님'중심으로 생각하고 '말씀'으로 풀어나가는 구조로 바뀐 것이다.

313년은 그래서 서양의 역사에서 굵은 획을 긋는 중요한 해이다. 이제 예술도 그 용도가 바뀌어 신의 위대함을 찬미하거나 성경을 풀이하여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도구가 되어 천년 동안이나 그런 상태가 계속되게 되었다.

 

헤겔은 서양의 역사를 정(기존 질서) 과 반(개혁 세력)이 충돌하여 합(새로운 질서)을 만들어 나가는 변증법적으로 해석하였는바 여기에서 서양 정신의 두개의 기둥이 세워진 것이다. 인류의 문화사를 통틀어 이토록 극적인 사고의 대전환을 한 것은 그 유래가 없었고 그리고 바로 여기서부터 서양의 역사를 관통하는 변증법이 시작된 것이다.

 

장미의 이름

007의 원조인 '숀 코넬리'가 윌리엄 수사로 분하여 '머레이 에이브럼스'가 분한 시종 아드소를 데리고 어느 수도원에 도착한다. 때는 암흑에 묻혀있던 중세 유럽, 윌리엄 수사는 유럽의 패권을 놓고 싸우던 교황과 황제의 막후 회담을 주선하기 위하여 이 수도원에 온 것이다. 그러나 수도원에서는 수도사들이 한명씩 죽어간다. 묵시론의 예언에 따라서 아델모 수사의 시체는 우박 속에서 발견되고 (첫번째 나팔 소리에 우박이 내리고) ,베난시우스는 돼지 피를 담은 통에 꺼꾸로 처 박혀 죽고 (두 번째 나팔 소리에 바다가 피로 변하고), 예상대로 베렌가리오는 욕조에서 퉁퉁 부은 시체로 떠오르고('세 번째 나팔에 빛나는 별이 강에 떨어지고'), 시베리누스는 천구의에 머리를 맞아 죽는다.( 네 번째 나팔에 해와 달이 없어지고) 범인으로 추정되던 말라키아 마저도 기도 시간에 앞으로 고꾸라지며 뜻 모를 말을 남긴다. "그건 천마리 전갈의 힘을.....' (다섯번째 나팔 소리에 메뚜기가 전갈의 침으로 사람들을 괴롭힌다)

 

미궁과 같은 장서관과 복잡하게 관계가 얽힌 수도사들 사이에서 범인을 추리해 나가는 윌리엄 수사. 하지만 오리무중의 상태에서 수도사들은 계속 죽어 나가고 아드소는 범인을 추적하는 도중에 식량을 얻으러 온 어떤 소녀를 만나 인연을 맺게 된다. 한줌의 식량을 위해서 몸을 팔아야 하는 가난한 백성들은 짐승과 같은 처지에 떨어져 교황과 황제로부터 착취를 당하고 그들에게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를 던져 주며 살아가는 종교인들은 헛된 토론과 이단 재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비뇽으로 거처를 옮긴 교황 요한22세는 세속의 권력으로 도전해 오는 황제 루드비히와 유럽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기 위하여 '죄사함을 받기 위한 거룩한 세금' 속칭 면죄세라는 것을 만들어 성직자의 불륜은 67리라, 간통한 수녀가 수녀 원장이 되기 위해서는 131리라... 이런 식으로 죄에 값을 메겨 돈을 받고 죄를 씻어주던 때였다.

 

이 사건의 수사를 맡은 윌리엄 수사는 시체의 손과 혀에 나타난 반점을 단서로 이들의 죽음이 고대의 어떤 책, 필사본과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 책엔 독이 발라져 있어서 침 묻힌 손으로 책장을 넘길 때마다 독이 입으로 들어가게 되어있다. 수사들의 잇단 죽음을 부른 이 금지된 책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의 제2부 '희극론' 이었다. 범인은 광신적인 맹인 수사 호르헤.

호르헤가 보기에 인간의 웃음은 바로 악마이다. 그리스도는 결코 웃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웃음도 진실을 전달 할 수 있다고 하였지만 그러나 웃음은 권위를 비판하고 경건함을 조롱하고 절대성을 파괴할 수 있다. 웃음은 공포심을 거두어 간다. 하지만 공포심이 없어지면 종교가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시학은 인간의 즐거움을 논하고 있지만 인간은 결코 웃어서도 즐거워서도 안되며 오로지 찬미, 찬미만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이 고대 철학자의 사상을 영원히 매장함으로써 이 세상에서 웃음을 걷어내고 신에 대한 공포와 경배만이 흐르는 세상을 만들려 한 것이다. 그는 시학의 페이지를 뜯어 하나씩 씹어 삼키기 시작한다. 말리려는 윌리엄 수사, 그러나 호르헤는 등불을 던져 방에 불을 지르고 바람을 타고 수도원 전체로 번진 불은 삼일 밤낮을 타오른다. (여섯번째 나팔은 사자 머리를 한 말들의 출현을 알리고 말의 입에서는 연기와 불과 유황이 쏟아지며....) 이단으로 화형주에 매달린 살바토레와 레미지오도 한줌의 재로 변한다. 그러나 마녀로 몰려 화형주에 매달린 소녀는 극적으로 살아 남는다. 마지막 이별의 순간, 아드소는 발길을 돌려 구도자의 길을 떠난다. 이름도 모르는 그 소녀에게 '장미'라는 이름을 남긴 채.....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은 이렇게 영원한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이 이야기는 사실 '움베르토 에코'의 추리 소설을 토대로 영화화한 허구이다. 그러나 어쨋던 시학이 제1부 비극론만 남고 제2부 희극론은 없어졌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고의적으로 없애버린 흔적이 짙은 이 책은 에코의 주장대로 중세에 희생되었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실제로 중세에는 고대 로마나 그리이스의 수많은 고서들이 이교도의 글이라는 이유로 공개적으로 불태워지곤 하였었다. (오늘날 남겨져 있는 프톨레마이오스, 피타고라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저서도 따지고 보면 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들 저서의 대부분은 자비를 얻지 못하고 한줌 재로 변한 다음 책 제목만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절대적 진리를 참칭하던 중세를 서양인 스스로도 암흑 시대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이 시대의 무지와 편견이 얼마나 깊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데 예술이나 미학도 결코 그런 편견에서 벗어 나지 못했을 것이다.

 

'장미의 이름'이라는 영화는 원작 소설과는 달리 약간 더 낭만적으로 스토리가 각색된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원작의 분위기를 나름대로 살린 편이다. 언어학자이자 기호학자인 에코의 원작 소설을 읽어보면 방대한 내용에 치밀한 추리 소설의 구조, 그리고 다양한 중세의 문헌과 지식들이 나오기 때문에 영화로서는 도저히 살릴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다. 따라서 영화에서는 원작의 내용이 적당히 추려진 후 드라마식으로 다시 짜 맞추어지긴 하였지만 원작 소설의 분위기를 놓친 것은 아니다. 이 한편의 이야기에는 더 없이 무거운 중세의 정신과 이제 막 움트려는 르네상스, 즉 인간과 인간성의 재발견에 대한 에코의 해석이 가감 없이 실려있는 것이다.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Stat rosa pristina nomine, nomina nuda tenemus' 이라는 라틴어 독백으로 끝나는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 '장미의 이름'이 무슨 의미인가에 대한 학자들간의 구구한 논란과 해석도 들어 둘만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영화에서 각색된 마지막 독백이 특히 인상적인 해석이란 생각이 드는데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장 함축적으로 나타낸 말이기도 하면서 세상은 이제 '인간의 재발견'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그림 6. 중세의 미술)

(그림 7. 르네상스의 미술)

 

 

르네상스(미학의 역사 2)

레오나드로 다빈치의 '모나리자'만큼 유명한 그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유명한 모나리자를 실제로 보면 너무 작고 볼품없는 그림이라 감동을 하기 위하여 잔뜩 준비하고 있던 사람들이 땅이 꺼지도록 실망한다는 것에서 '모나리자 컴플렉스'라는 말이 나오기도 하였다. 모나리자가 이토록 과분할 정도로 높이 평가 받게 된 이유는 천재 화가 다빈치의 그림 솜씨라든지, 보일 듯 말듯한 미소라든지... 그런 것도 물론 있겠지만 사실은 신에 억눌려 숨을 쉬지 못하고 살아온 중세를 마감하고 새로운 세상, 문예부흥(르네상스)을 여는 깃발과 같은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예술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착한 종이 될 수 있는가'을 떠나 '인간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천년의 녹슨 붓질을 통하여 다시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온 유럽으로 문예 부흥의 불길이 번져 나가자 그동안 금기시 되어왔던 사람의 감정을 회화에 표현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되살아 났는데 억눌렸던 봇물이 한번 터지자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서 지나칠 정도로 과장된 표현을 하는 등 도무지 '인간' 등쌀에 거룩하신 하나님은 아예 뒷전으로 밀려나는 정도가 되었다. 그러던 차에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봉건 시대를 청산하고 왕이 권력을 독점하는 절대 왕조가 되었다. 절대 왕조하면 단연 프랑스가 제일이고 그 중에서도 태양왕, 루이 14세가 대표적인 왕이다.

루이 14세 ; "짐이 보건데 요즘 사람들이 해도 너무 하는 것 같도다. 그림을 그려라 하면 우거지 상을 한 사람만 그려오지, 조각을 해라 하면 다 죽어가는 모습을 깎아오질 않나, 노래를 들어봐도 느려 터지고 울고 짜는 뽕짝밖에 없도다. 요즘처럼 온 국민이 총화 단결하여 왕을 떠 받들어야 할 때 이런 한심한 짓들을 하고 있다니....지금부터 모든 예술은 다시 하나님을 찬양하고, 아울러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짐도 찬양할지어다, 알것냐?"

신하들 ;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이렇게 해서 고전, 그리이스 정신으로 회귀하는 듯했던 유럽의 사상과 예술이 다시 왕의 권위와 위엄을 높이는데 총동원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크 시대이다. 화가들도 존귀한 왕의 초상화를 그리는 궁정화가가 되는 것이 최고의 꿈으로 되었다.

 

누구라도 혼자 놀면 재미가 없는 법이다. 왕은 체질적으로 아부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는 경향이 있어서 이에 따라 출세하는 귀족도 점점 늘어나 사회 환경과 분위기가 변하게 되었다. 예술도 그 시대 상황이나 정신의 토대 위에 꽃피우는 것이니 만큼 당연히 모습이 변하게 된다. 귀족들이란 왕만큼 장엄, 웅장한 것을 가질 수야 없지만 대신에 화려하고 구석구석에 까지 자신의 취미가 깃들인 섬세한 면이 있다. 이런 화려 섬세한 귀족 중심으로 꽃피운 문화, 예술을 로코코라고 한다. 왕 하나의 사치를 감당하기도 어려운 터에 이젠 수많은 귀족들까지 이런 사치와 허영에 빠져서 살게 되니 국민들의 생활은 극에 달할 정도로 비참하여졌고 프랑스 왕후이자 사치의 대명사 '마리 앙뜨와네트'는 국민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신하의 간언을 듣고 "웬일이니? 파티장에 가서 먹으면 될거아냐?"라는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해서 프랑스 국민의 원성을 한 몸에 사게 되었다. 프랑스 백성들이 이 오스트리아 여자를 얼마나 증오하였는지 나중에 단두대로 대답을 하게 된다. 1789년 프랑스에 대혁명이 일어나자 왕족과 귀족들을 하루 아침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져 버리게 되었으니 로코코의 끝은 프랑스 대혁명이었던 것이다. 이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신에 맞는 새 예술이 나타날 때가 된 것이다.

 

'다비드'는 바로크, 로코코적인 방종과 사치가 흐르는 화풍을 배격하고 그리이스 시대의 단정하면서도 깨끗한 화풍으로 돌아간 그림을 선보이게 되었다. 이래서 또 다시 그리이스 시대의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신 고전주의'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이런 신 고전주의 작품들은 거의 가 대작으로 그 소재가 그리이스 로마 시대의 이야기나 나폴레옹 같은 영웅들의 전기를 즐겨 그렸고 이처럼 서양 사람들은 이것 저것 해보다가 결국 되돌아 가는 곳이 그리이스 로마의 문화로, 서양 문화의 시작이자 훗날 나타나는 모든 예술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그리이스 로마의 옛 문화를 클래식(Classic; 고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림 7. 다비드의 그림)

(그림 8. 고야의 그림 1800년의 학살)

(고야의 그림2)

 

 

한편 지금까지의 예술의 흐름에 쐐기를 박고 노골적으로 반기를 든 사람도 있었으니 그가 에스파냐의 청년 화가 '프란치스코 고야'였다. "글러 먹었어, 한심해. 도대체 화가란 작자들이 하늘 짓이 장사치나 시정 잡배와 다를 바가 뭐냐? 영웅이 어떻고 저떻고... 그저 돈 가지고 권력 가진 사람들 비위나 맞추고 있다니.....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나의 꿈이나 나의 의지가 화폭에 담겨서는 안된다는 말인가?

예술이란 돈 놓고 돈 먹기의, 아니 그림 그려주고 돈 먹기의 생계 수단 밖에 안된다는 말인가?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 이렇게 그림의 대상을 외부가 아닌 자기 자신의 감정 세계로 바꾼 것이 '낭만주의'이다. 낭만주의가 예술사에서 중요한 것은 미술이 인류의 생활에 나타난 이래 조금도 변하지 않았던 경향, 즉 작가 자신의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 사물을 묘사한다는 것에서 벗어나 이제는 작가의 느낌이나 감정이 작품의 주제로 등장하게 된 점이다. 좀 유식한 말로 하면 예술이 객관의 세계에서 주관의 세계로 들어 왔다는 의미이다. 고야의 그림은 특히 헐벗고 굶주리는 민초들의 처참한 생활과 이들을 짐승과 같이 부려먹고 학대하는 귀족들에게 대한 미움이 화폭에 절절히 묻어나 억눌린 자에게는 용기를, 학대하는 자에게는 경고를 주어 민중의 각성에도 큰 역할을 한 혁명적인 것이었다. 이런 정신은 80년대의 우리 나라 민중 미술에서도 볼 수 있는데 비록 그 시대와 내용은 다르지만 폭압을 거부하고 풀처럼 짓밟히는 민초들의 모습을 화폭에 남겨 부정한 권력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정신만은 동일한 것이다. 낭만주의는 곧 유럽을 휩쓸게 되었는데 예술가들도 자신의 처지와 시대 상황에 따라 둘로 나누어지었다. 대혁명과 유럽의 전쟁을 주도한 프랑스에서는 격렬하고 장엄한 장면을 그리는 데에 화가들의 정열이 모아져 프랑스의 낭만주의를 '혁명적 낭만주의'라고 부르게 되고 도이칠란트 같은 나라에서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 ,멀리 떠나고 싶은 마음 등 말랑말랑하고 애틋한 감정을 그림에 담았으므로 '전원적 낭만주의'라고 부르게 된다.

 

서양의 역사를 정, 반, 합의 끝없는 상승작용으로 해석한 헤겔의 변증법은 예술의 역사에서도 한치의 가감 없이 그대로 들어 맞는다. 이렇게 낭만주의가 융성하게 되자 이에 반기를 든 '코로', '쿠르베' 같은 화가들이 또 나타난 것이다.

"야 낭만이 밥 먹여 주냐? 우리 주변의 생활 속에도 그릴 것이 얼마든지 있는데 맨 날 달빛 처량한 언덕이나 수평선에 돛단배 같은 허황된 꿈만 그릴 거야, 이거? 이국 정취도 분수가 있는 거지, 자 동료들이여, 밖으로 나가자. 나가서 있는 그대로를 그려 보자! 먼 곳이 아니라 우리 주변, 우리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그려 보자! " 이들은 화구를 들고 밖으로 나가 일하는 농부나 자연의 풍경, 마을과 오솔길들을 마치 사진을 찍듯이 사실적으로 그렸고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적당히 왜곡을 가미하는 것을 철저히 배격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사실주의'이다. 이때쯤 되어 회화의 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바로 사진의 발명이다. 사진이 일반에게 완전히 보급되는 것은 좀 더 후의 일이지만 빛을 정지시켜 종이 위에 그대로 그림을 그려주는 사진이라는 것은 그 당시에는 마술보다도 더 극적이고 놀라운 사건이었고 사람들의 '사물을 바라 보는 시각' 자체를 바꿔버린 커다란 변고이었다.

 

사진의 발명과 인상주의(근대적인 미학의 탄생)

다시 사실주의가 유럽 예술계의 패권을 잡고 이것만이 진짜 그림이라는 듯 세력을 떨칠 때 '마네'라는 사람이 프랑스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풀밭 위의 점심 식사'라는 작품을 발표하자 미술의 도시 파리가 발칵 뒤집혀 버리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마네의 그림은 지금까지 배경과 주제를 가능한 한 사실적으로 그리던 방식을 떠나 배경을 대충 대충 그려 놓은 다음 눈부시도록 강한 햇빛을 받은 한 여자만 눈에 확 띄게 그린 것이다. 즉 마네의 화풍은 '빛'을 그린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 이전까지의 그림은 화가의 작업실 안에서 이루어진 채광이어서 자연의 빛이 아니었고 야외에서 그림을 그린다고 해도 보통 며칠에서 몇 주까지 걸리는 작업이어서 순간 순간의 빛의 모습을 화폭에 담는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던 때였다. 그러나 사진이 나오면서 사람의 보는 눈 즉 '그림을 보는 시각'을 크게 바꾸어 이렇게 회화에서도 빛과 그림자의 순간적인 조화, 다시 말하여 자연의 빛을 화폭에 담게 된 것이다.

얼른 생각하기에는 있는 것을 사실 그대로 묘사하는 '사실주의'가 사진으로부터 영향을 더 받았을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가 않게 일이 전개 되었다. 사진은 사실주의가 한참인 때 발명되어 사실주의를 그림에서 몰아내 버렸기 때문이다. 그림으로 아무리 사실적인 묘사를 한들, 아무리 심혈을 기울여 세부묘사(detail)를그려낸들 한 장의 사진보다 더 사실적일 수 있겠는가? 마네는 사진의 속성인 '빛의 기록'은 받아 들이되 사진기와 화가가 사실 묘사를 '누가 누가 더 잘하나' 식으로 경쟁하는 것을 포기 한 것이다. (마네가 인상주의 그림을 발표하던 때는 사진이 발명된 지도 25년이 지났고 실용적인 콜로디온 방식의 네가티브가 개발되어 바야흐로 사진의 대중화가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림 9. 마네)

 

이러한 마네의 그림은 당시 사실주의에 길들여져 있던 사람들의 눈에는 크게 거슬리는 것이었고 그림의 내용에서도 벌거벗은 여자가 당돌하게 정면을 쳐다보는 시선 때문에 이 그림을 전시할 때는 3미터 이상의 높이에다 걸어 놓아야 했다. 왜냐하면 성난 구경꾼들이 우산으로 찍어 그림을 자꾸 찢으려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이렇게 거센 항의를 받았던 인상주의도 '모네' '르노와르' '드가' '쇠라' 같은 위대한 화가들이 쏟아져 나오자 유럽에서 사실주의를 완전히 몰아내게 되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마네의 그림을 찢으려 덤비던 성난 군중들도 인상주의가 자리를 잡자 언제 그랬냐는 듯 그들의 작품을 칭송하고 수집하는 경박스러운 모습을 아낌없이 보여주기도 하였다.

인상주의가 초기에 이렇게 큰 거부감을 받은 이유는 인상파의 그림이 전혀 그림답지 않다는데 있었다. 그때까지의 그림은 반드시 세가지 중요한 요소를 가지고 있어야 했는데, 잘 짜여진 구도, 무거운 주제, 완벽한 끝마무리(Fine composition, Serious contents and a perfect finish) 였다. 그에 비하면 인상파의 그림이란 그리다 만 것처럼 마무리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졸작들이어서 그들의 그림이 유명하다는 공모전에서 번번히 떨어지는 수모를 당하는 이유가 된 것이다. 돌이켜 보면 그 당시 공모전에서 당당히 수상하였던 작품들은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데 낙선작들이 이렇게 문화 유산으로 남게 되다니 평론가의 안목이라는 것도 그리 믿을 것은 못되는 모양이다.

 

"화가가 사진가냐? 순간을 화폭에 담을 거면 차라리 사진가가 되지 그래. 좀더 기다리면 칼라 필림도 발명될 텐데 말야.... 그림이면 그림다워야지 알맹이가 없어 알맹이가."

그래서 화가들 사이에서는 그동안 금기시 되어왔던 빨강, 파랑, 노랑등의 강한 원색으로 그림을 칠하는 사람들이 나왔는데 프랑스에서는 그 인상이 거칠고 억세다 하여 '야수파'란 이름으로 부르고 도이칠란트에서는 이를 '표현주의'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자 에스파냐의 '파블로 피카소'는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의 입체를 그려넣겠다고 나서서 입체파(Cubism)를 만들게 되고 러시아에서 파리로 유학 온 간딘스키는 색의 구성, 선의 변화, 빈공간 등만으로 그림을 그려 '추상파'의 아버지가 되었다. 살바르도 달리는 이세상의 것이 아닌 상상의 장면을 자유롭게 그려내 '초현실주의'를 열었다. 이들로부터 다시 갈라지고 또 갈라져서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보는 다양한 예술 형식과 장르들, 이해하기 어려운 것에서부터 어린애 장난 같은 것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우리가 보는 현대 미술은 이와 같이 인상파로부터 개화한 것이고 그 인상파의 태동에는 회화의 속성에서 '사실 묘사'를 포기 하게 만든 사진의 발명이라는 전대 미문의 사건이 있었던 것이다.

인상주의 라는 말에서 인상(impression)은 '첫 인상'과 같이 한눈에 본 느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눈에 본 느낌이라는 것은 순간을 기록하는 사진의 속성이기도 하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한 이래로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사실적으로 그려 후세에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화가들의 고유한 영역이자 사명이었고 또한 그런 능력을 갖춘 사람도 훈련 받은 화가들 뿐이었다. 그런데 사진이 발명되면서 엄청나게 생생하고 사실적인 영상들을 순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자 회화에서의 '사실 묘사'가 아무런 의미 없는 행위로 전락되어 버린 것이다. 동네 사람들의 초상화나 그려주면서 생활하던 군소 화가들은(오늘날 사진관 주인의 전신이며 이것이 변형 된 것이 웨딩 사진가에 해당한다) 졸지에 직업을 잃어 버리고 백수 건달이 되거나 아니면 서둘러 사진관으로 전업을 해야 했고 좀 더 역량 있는 작가들은 자신의 영역을 더욱 더 전문화된 자기만의 분야에서 찾게 되어 다양한 모습과 자유 분방한 표현을 추구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래서 현대 회화가 걸어온 길을 보면 점점 더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난해한 그림으로 변하다가 나중에는 선이나 원을 몇 개 그린다거나 물감을 여기 저기 뿌려서 그림을 만들기도 하는 '사실과는 전혀 관계없는'표현으로 치 달리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정확히 말하여 사진이 추구하였던 길과 정 반대되는 노선을 (어쩔 수 없이)취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림 10. 현대 미술 ; 사실과는 관계 없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번 호] 11 / 21 [등록일] 1998년 05월 16일 13:52 Page : 1 / 24

[제 목] [닮산] 사진 미학의 역사

 

4 사진의 역사(사진 미학의 역사)

 

카메라 옵스큐라

사진이 발명되기 이전에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어두운 방이라는 뜻이다)가 있었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아리스토텔레스 시절부터 알려져서 사라센의 '알 하젠'의 연구를 거쳐 다듬어진 다음(알 하젠은 본명이 '이븐 알 하이담' 이며 '시각론(De Aspectibus)'이라는 저서를 통하여 광학 이론을 정립하였고 그리이스 철학자들의 원고를 연구하여 눈에서 빛이 나와 대상물에 닿는 빛을 통하여 사물을 식별한다는 '유클레이데스'나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을 통박하고 빛은 발광체에서 나와 대상물에서 반사된 다음 눈으로 들어가 사물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의 저서는 중세에 마술을 다루는 악마의 글이라 하여 사갈시 되어 대부분 불태워졌지만 시각론의 원고는 일부 살아 남았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500년 전인 1519년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가 그린 스케치에도 등장하는 것으로써 어두운 방의 한쪽 벽에 작은 구멍을 뚫어 놓으면 반대쪽 벽면에 바깥 풍경이 영화의 스크린에 비추어 지듯(물론 이 경우엔 상하 좌우가 꺼꾸로 나온다) 보이는 것을 말한다. 고대의 과학자들이 빛의 성질을 연구하는데 사용하였던 카메라 옵스큐라는 18세기가 되자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작은 상자로 개량되어 화가들의 손에 들어오게 된다. 이것은 오늘날의 대형 카메라와 같은 원리로써 크기도 그만한 것인데 한쪽에는 바늘 구멍이나 원시적인 형태의 렌즈가 달리고 반대쪽에는 뿌옇게 처리된 유리가 달려있어 여기에 화면이 비춰지는 도구이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는 그림을 그릴 수가 없으므로 상자의 안쪽에 45도로 거울을 달아 위로 비추어지게 개선 되었다.(일안 반사식 카메라의 먼 조상이다) 화가들은 이 유리 위에다 반 투명의 종이를 깔고 밑에 비춰진 그림대로 스케치를 하여 사실적인 묘사를 쉽게 할 수 있었다. 유럽에서 사실주의가 유행하는 것이 이 휴대용 옵스큐라의 등장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데 오늘날의 카메라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 상자에 스케치에 사용하는 반투명 종이 대신 필림을 끼운 것이다.

 

카메라 옵스큐라

 

최초의 사진은 1826년 니엡스(Niepce)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1839년에는 다귀에르(Louis Daguerre)가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으로 그리고 1840년에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귀재 탈보트(Fox Talbot)가 칼로타입(Calotype : 그리이스어의 'Kalo'는 아름답다는 뜻이다)으로 각각 특허를 취득하게 된다. 이 두 가지 기술은 각기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는데 다게레오타입은 필림에 맺히는 영상이 흑백이 반대로 바뀌지 않고 그대로 나와 바로 사진이 되는 방식으로 선명한 화상을 얻을 수 있는 반면 폴라로이드 사진과 마찬가지로 단 한 장의 사진만 나오고 따라서 확대 작업을 통하여 사진을 크게 만들 수 없었던 반면, 칼로타입은 오늘날의 사진과 같이 필림에 맺히는 영상이 흑백이 바뀌게 되어 있어(즉 네가티브가 만들어 진다) 이를 다시 인화지에 인화하여 똑같은 사진을 여러 장 만들 수 있었으나 기술적인 한계로 투명한 재질 대신 얇은 종이를 필림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화질이 선명치 못하였다.

 

(다게레오 타입의 도해)

(칼로 타입의 도해)

 

1848년 사진의 원조 니엡스의 조카인 '아벨 니엡스(Abel Niepce)'가 종이 대신 유리를 사용하는 알부민 방식을 선 보여 사진이 선명치 못하다는 칼로타입의 약점을 만회하였고 이후 사진의 기본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

 

1851년 '프레데릭 아쳐(Frederick S Archer)'가 '콜로디온 방식(Collodion process)'을 발표하면서 그 동안 아마츄어 연구가들의 호기심 어린 연구 대상이었던 사진이 본격적인 실용화의 전기를 맞게 된다. 콜로디온 방식은 촬영할 때 노출을 2~3초 정도 주면 되는데 그 이전 까지는 몇 시간에서 최소한 몇 십분까지는 노출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인물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결정적인 약점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콜로디온 방식은 다른 말로는 '습식 방식(Wet Process)'이라고도 하는데 촬영 하기 직전에 암실에서 유리 원판을 감광 유제로 적셔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1871년 매독스(Richard Maddox)는 유리 대신 젤라틴을 사용하는 건식 방식(Dry Process)을 확립하여 촬영 직전에 유제를 바르는 과정을 생략함으로써 필림을 자유롭게 가지고 다닐 수 있게 만들었다. 1884년 코닥(Kodak)을 세운 조지 이스트만(George Eastman)은 두루마리 필림(Roll film)을 만들어 사진을 찍을 때마다 필림을 일일이 끼울 필요 없이 둥글게 말려 있는 롤에서 조금씩 풀어서 쓸 수 있는 방식을 수립하였다. 이로써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사진 기술이 모두 완성되게 된 것이다.

 

사진이 특이한 점은 사진을 발명하고 이를 개선하여 실용화시켰던 사람들이 아마츄어 발명가들이었다는 점이다. 아마도 19세기 초반에는 '빛을 붙잡아 종이 위에 그림으로 고정시킨다'는 발상이 너무나 허황된 생각이라 제도권의 학자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사진의 역사에 명멸한 사진 작가도 아마츄어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 또한 특이한 일이다. 19세기의 사진 활동은 두 가지 중요한 주제로 압축되는데 하나는 초상화를 대신하는 '인물 사진(Potrait)'이고 다른 하나는 알려지지 않은 오지를 탐험하는 '기행 사진(Travel Photo)' 이다. 초기의 사진이 회화의 흉내내기에 그쳐 보잘 것이 없다는 평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지나친 억지인 것 같다. 19세기의 사진이 오늘날과 같은 다양함을 갖추지 못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것은 새로운 기술이 탄생한 초기에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지 비판의 대상이 될 일은 아닌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진 작가들이 회화를 흉내내려고 노심초사 하였고 또 그런 류의 사진이 '살롱 사진'이라는 이름으로 유행하기도 했지만, 오늘날의 현대적인 감각을 갖춘 작가의 사진과 차이가 없는 것들도 있었다.

그리고 현대의 작가들이 아무 거리낌없이 회화적인 기법이나 방식을 사진에 도입하고 있는 이때에 당시의 사진이 단지 회화를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깎아 내리는 것도 부당한 일이다. 아무튼 사진이 아직 예술의 한 분야가 된 것도 아니었고 상업적으로 크게 번창하는 것도 아니어서 열악하기 짝이 없는 환경이었지만 많은 아마츄어들이 정열적으로 활동하였던 시대 였다.

 

여류 사진가 카메론(Julia Margaret Cameron) ;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나다르 ; 사라 베른하트의 사진을 보고 회화를 흉내낸 옛날 사진이라고 비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늘날의 인물 사진도 이 정도의 우아함을 갖추기는 쉽지 않다.

이런 옛날 사진에서는 부드러움과 선명함을 동시에 가지는, 묘한 매력을 가진 작품들이 많은데 모든 것을 선명하게만 만들려는 현대의 기술과 재료로는 이런 매력이 잘 나오지를 않는다.

 

유럽과 미국 사진의 차이

유럽의 사진은 강한 회화적인 전통을 가지고 있다.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의 경우와 같이 사진가로 활동하였던 많은 사람들이 화가로써의 수업을 받은 경우가 흔하고 포토그램(Photogram)을 유행시킨 '만 레이'(Man Ray)같은 사람은 사진가가 아니라 화가로써 더 잘 알려져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반면에 미국의 작가들은 이런 회화적 전통이 약하다. 따라서 미국에서부터 사진의 사실주의가 시작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미국 사진의 특징은 렌즈의 묘사력을 최대한 활용하고 가능한 한 대형 카메라를 사용하여 세부 묘사(detail)를 극한에 다다를 때까지 추구한다는 점이다. 이에 비하면 유럽의 사진은 '순간 포착'의 스냅사진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미국의 영향 보다는 유럽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지 대형 카메라의 작업은 거의 찾아 볼 수 없고 이 골목 저 골목 뒤지고 다니는 사진이 크게 유행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해방 이후 미국을 통하여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우리나라가 유럽 사진의 영향을 더 받았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일이 이렇게 이상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에 사진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 보릿고개를 넘긴 60년대 이후이기 때문에 그 당시에 미국에서 유행하던 '주지 주의'사진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즉 우리는 사진의 앞 부분은 빠트린 채 뒷부분부터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에 주지 주의를 받아들인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지금까지도 그런 사진의 흐름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옛날 우리 조상들이 중국 유학의 한 학풍인 '성리학'을 받아들인 이후 조선은 온통 성리학으로 도배되어 '성리학'이 아닌 모든 이론이 다 이단시 되었던 적이 있다. 성리학이 중국에서는 여러 학풍 중의 하나였을 뿐이고 또 나중에 실사구사를 주창하는 '양명학'이 크게 부흥했음에도 우리는 성리학에 목숨을 바치다시피 하였으니 뭐든지 한국 땅에 들어가면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변한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나 보다.

 

사진은 19세기 사실주의 회화의 영향 아래서 태어났다. 회화는 곧 반작용을 일으켜 인상주의로 변모되었는데 사진은 아직 회화의 영향권 안에 있었고 '사진이란 무엇인가?'라는 정체성이 미처 확립되지 않은 채로 20세기를 맞게 된다. 1902년 미국의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는 사진을 회화의 영향권으로부터 분리 시키려는 운동을 벌이게 된다. 그는 사진 미학의 핵심이 바로 '사실주의'임을 간파하고 그 당시 유행하던 '살롱 사진'을 배격하고 렌즈의 성능을 최대한 활용하는 순수 사진 운동을 벌인 것이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하여 '291'이라는 화랑을 개설하고 'Camera Work'이라는 잡지를 발행하기도 하였다. 그의 주장은 미국의 작가들에게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져 이후 1950년대 까지 지속된 'F64 사진'의 이론적 기틀이 잡히게 되었다.

 

스티글리츠가 사진 분리(Photo session) 운동을 주도하게 된 데에는 얼핏 보기에 사소한 듯 보이는 작은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티글리츠도 사진을 시작한 초기에는 당시의 전통을 충실히 따라 회화적인 분위기의 사진을 만들어 내었다. 그런데 그의 사진을 본 어느 화가가 감탄을 하며 그에 비하면 자신의 그림은 하잘 것 없는 졸작이라며 부러움과 한탄을 금치 못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스티글리츠가 그것이 그림이 아니라 사진이라고 말하자 그 화가의 태도가 순식간에 변했다. 아직 사진은 예술로서 인정 받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스티글리츠가 의아 했던 점은 왜 사람들이 자신의 사진을 보며 감탄하며 감동하면서도 그것이 기계로 만들어 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감동을 부정하는가? 이다. 당시 사람들은 사진에 대하여 매우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어 '이것'을 느끼면서도 '저것'을 이야기하고, '이렇게' 느끼면서도 '저렇게' 행동한다는 것을 그는 인식 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왜 감동을 자기 마음 속으로부터 나오는 목소리가 아니라 그 그림이(또는 사진이)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 졌냐는 사실에 의존하여 받으려 하는가?"

(어떤 물건이 얼마나 맘에 드느냐 보다는 얼마나 비싼 것이냐에 감동 받으려 하는 현대인들도 이런 점은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그는 자신의 사진을 예술로 인정받고 싶었고 그것을 인정해 주지 않는 회화가 싫었고 그래서 용수철 같은 반작용으로 회화의 영역으로부터 떨어져 나오기로 결심했다. 사진에 대한 자신의 애정과 그의 사진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숙고한 끝에 그는 사진을 새로운 예술 장르로 확립 시킬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길밖에 없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세상 일들은 알고 보면 대략 이런 식이다. 역사의 흐름을 바꿔 놓는 거대한 흐름도 그 시작부터 거대하고 숭고하였던 것은 거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역사는 지극히 사소한 또는 평범한 일에서부터 시작되어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흐름으로 변해버리는 경우가 보다 더 흔히 있다.

 

(스티글리츠 초기 사진)

(스티글리츠 후기 사진)

 

'F64 그룹'은 미국 사진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한 무리의 사진가 들을 말하는데 F64라는 이름이 이들의 성격을 아주 극명하게 나타내 주고 있다. 이 이름은 렌즈의 조리개에서 따온 것인데 요즈음에는 렌즈의 조리개라고 해봐야 F16이나 F22까지 밖에 모르는 사람도 많이 있지만 대형 카메라 렌즈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F64조리개인 것이다.

즉 이들은 모두 대형 카메라를 사용하는 사람들이고 렌즈도 최소 조리개까지 조여서 모든 것을 다 선명하게 묘사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안젤 아담스(Ansel Adams)'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이 그룹의 사진은 스티글리츠의 사실주의 전통을 이어 받아 이를 더욱 극한으로 몰고 나간 것이다.

광학적으로 추구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세부 묘사와 선명함을 요구하여 눈으로 보는 것 보다도 더 선명한, 또는 눈으로 보았을 때 느끼지 못했던 것마저도 느껴지도록 하는 것이다. '에드워드 웨스턴(Edward Weston)'은 미국에서 역량 있는 화가들에게만 주어지던 '구겐하임 미술 재단'의 기금을 최초(1937년)로 받은 사진가 이기도 한데 이것은 이들의 사진이 이제 예술 작품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웨스턴의 사진)

(조개 사진)(조개는 예술이 아니지만 조개 사진은 예술이 되었다)

 

대형 카메라를 주로 쓰는 미국의 사실주의에 비하면 유럽의 사진은 35미리 카메라에 의한 스냅 사진류가 많다고 앞서도 예기하였는데 이렇게 사용하는 장비가 달라진 것은 자연 환경과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 미국은 광활하고 웅장한 땅을 가지고 있고 그 풍광도 다양하기 그지 없어서 강건 웅혼한 북서부의 옐로우스톤(Yellowstone) 이나 그랜드 테이튼(Grand Taten), 메마른 사막과 바위의 산타 페(Santa Fe), 그리고 요세미티(Yosemite), 록키(Rockey) 산맥, 대평원 플레리(Plarie) 등등등.... 을 가지고 있고 이런 것을 찍는 데에 대형 카메라 이외의 선택을 하기가 힘들 텐데, 복잡한 도시와 그 곳에서 부대끼는 사람들의 일상을 찍을 수 밖에 없었던 유럽의 사진가들은 35미리 카메라보다 더 나은 것을 찾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또 한가지 사회적으로 중요한 요소는 유럽이 두 차례 세계 대전의 무대가 되어 엄청난 살육과 비극이 벌어지는 현장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황폐해진 인간의 모습과 그들의 절망, 용기, 처절한 몸부림을 보면서도 한가로이 풍광 수려한 곳을 찾아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하고 기록한다는 것은 당시 유럽인의 정서로는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유럽인의 시각은 처음부터 자연보다는 인간 쪽에 가까웠다.

 

'에리히 잘로먼(Erich Salomon)', '브랏사이(Brassai)', '로베르 드와노(Roberts Doisneau)', 그리고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 등이 모두 이와 같은 범주에 드는 작가들이다. 이들은 카메라를 자기 시각의 연장으로 삼아 자신의 사적인 감상이나 행적을 기록하였는데 '기념 사진'과 틀린 점은 상당히 단련된 미학적 구조와 의도적으로 조절된 시각으로 기록되었다는 점이다. 이들의 사진은 보도 사진이라고 하기에는 그 시각이 너무 사적이고 그렇다고 순수한 사적인 기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의도적인 구석이 많다는 것이다. 이렇게 소형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도시의 이 구석 저 구석을 돌아다니다가 '결정적 순간'을 만나면 놓치지 않고 샷타를 눌러야 하는 사진도 그 내용은 '사실주의'와 일맥 상통하는 것이지만 대형 카메라로 웅장 무비한 피사체를 몇 시간씩 걸려 찍는 미국의 '사실주의'와는 그 형식이 너무나도 틀려 '사실주의적 기록사진'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할 것 같다.

 

(사실주의적 기록사진 예)

( 인간의 모습)

 

60년대가 되면 사진에 작가의 주관적인 의도를 듬뿍 집어넣는 '주지주의'가 시작된다. 미국의 사실주의도 더 이상 맥을 못 추고 그때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거친 입자와 선명치 못한 촛점의 사진 형식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도 역시 사진의 주제와 깊은 관계가 있는데 웅장한 서부의 자연을 있는 대로 다 찍어버려 더 이상 울거먹을게 없어진 미국의 사진가들이 이제 비로서 도시의 뒷골목이나 소외된 인간 계층에 촛점을 맞추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다 현대문명이 몰고 온 인간의 소외와 인간성의 상실이라는 불안한 심리가 겹치고 동서의 냉전과 크고 작은 전쟁들, 머리 위를 짓누르는 핵의 공포들이 정신적 방황과 광기로 변해 튀어 나온 것이다.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 '다이안 아버스(Diane Arbus)', '듀애인 마이클(Duane Michals)'등의 사진이 이런 경향을 대표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이들이 표현하는 내면 세계는 여태까지의 사진들, 예쁘거나 멋있다거나 재미있는 사진이 아니라 어둡고 절망적이고 기괴한 분위기의 영상들로써 현대인의 불안정한 심리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모더니즘(Modernism)의 어둡고 추한 면이 이들의 사진에서 영상화 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60년대 사진)

 

 

현대가 지나고 나면

모더니즘의 사상적 바탕은 바로 '계몽주의'이다. 여기에는 인간의 이성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있고 또한 모든 것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인간 만능 사상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인간이 그렇게 이성적 이지도 않고 합리적 이지도 않다는 것이 두 차례의 야만적인 세계 대전으로 드러나게 된다.

오늘날에는 인간의 지성으로 이루어 놓은 문명이라는 것이 끝없는 환경 파괴와 자연에 대한 약탈, 인종간의 불신과 학살, 스스로를 멸망시키고도 남을 핵무기 등...결코 자랑할 만한 것이 없다는 자각이 확산되고 있다. 우리의 후손은 쓰레기더미와 위험물 천지인 지구를 물려받아 하루하루의 생존을 기약할 수 없는 지경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일고 있는 것이다. 남의 일이 아니라 당장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단군 이래 최대의 재앙이 될 '시화호'같은 것을 만들어 낸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 자신인 것이다. 이런 오만한 모더니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탈 모더니즘)이다. 그러나 모더니즘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아직 무었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른다. 그러므로 포스트 모더니즘도 어디까지나 모더니즘의 일종이다. 아직 새로운 사상은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았다. 사진도 더 이상 사진의 특성이라는 굴레에 머무르지 않고 회화적인 기법을 도입한다거나 설치 작업을 한다거나 하는 다양성을 띄게 되었다. 아직 포스트모더니즘 이후가 결정된 것이 아니므로 그 어떤 것이라도 시도를 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현대 사진)

 

예술에서의 모더니즘 시절은 거의 사기극에 가까운 대단한 시기였다. 시장에서 파는 변기를 사다가 작품이라고 앙데팡당전에 출품한 '마르쉘 뒤상'이나 그의 작품을 '샘'라는 이름으로 당당하게 작품 취급을 해주었던 사람들이나 지금 보면 열병을 앓던 사람들 같다. 또한 그 변기의 미학적 의미를 규명하기 위하여 갖은 미사여구를 다 동원하여 설명하는 평론가들은 어지간한 개그맨들을 압도하고도 남을 사람들이다.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이상한 것들을 '난해하지만 뭔가 고상한 것'이라는 설명으로 희대에 둘도 없는 작품 취급을 해 주었던 것이다. 현대 미술이 진짜로 어려운 점은 이렇게 한눈에도 뚜렷이 보이는 것을 말을 빙빙 돌려 전혀 다른 것처럼 해설을 하거나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대단한 것으로 포장할 줄 아는 수사에 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뒤상의 변기가 돈, 상업주의, 천박한 유행이 판치는, 그러면서도 고상한 척 해대는 현대 사회에 대하여 경멸과 조소를 보낸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튼 뒤상은 이일로 엄청나게 유명해져서 그 뒤론 자기 손으로 직접 작품을 만드는 일이 없이 시장통에서 사온 물건들에 적당히 제목을 붙여 놓으면 미술관에서는 그 작품(?)을 어마 어마한 가격으로 구입하게 되니 말년에 체스나 두면서 팔자 좋은 세월을 살았다고 한다. 잭슨 폴록(Jackson Polock)이 그린 추상화, 켄버스위에 물감을 마구 흩뿌린 후 적당히 '가을' 등과 같이 제목을 붙인 그림 같은 것은 알고 보면 약과다. '죠셉 코쥬드(Joseph Cojude)'는 영어 사전의 한 페이지를 복사기로 크게 확대하여 자신의 작품이라고 천연덕스럽게 걸고 '제니 홀쩌(Jennie Holtzer)'는 아예 그림도 없이 "Protect me from what I want" 라는 문구를 그림이라고 주장하여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상을 받는 기염을 토하기도 하였다. 그림은 없고 개념만 있는 이런 것도 '개념 미술'이라고 잘난 모더니즘은 인정하고 있다.

 

모더니즘 작품 중에 백미를 하나 소개하겠다. '홍해를 건너가는 이스라엘인'이라는 이 작품은 하얀 켄버스에 붉은 색 줄이 하나 그어져 있는 그림이다. "이스라엘인이 어디에 있냐고?" 그들은 이미 홍해를 건넜다. "그러면 파라오의 추격 병들은 어디에?" "흐음... 그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군...."

빨간 줄 하나만 그려져 있는 이 그림 앞에서, 평론가들과 그림 수집상과 졸부들이 모여 정말 심각한 표정으로 이 작품의 심오함을 논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이 철학적인 그림에 500만 달러의 가격을 메기고 뉴욕의 휘트니 미술관에 영구 소장하기로 결정한다.

"이 위대한 작품이 과연 누구의 것입니까?"

"이런 답답한..... 눈이 있어도 보지를 못하는 사람이여, 이것이 바로 현대 미술의 거장 '닮산 김종욱님'의 향기 높은 작품이 아니라면 그 누구의 것이겠소?" 내가 모더니즘 시절에 활동하였더라면 충분히 이 정도의 명성은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모더니즘은 이미 오래 전에 사멸하였다.

 

패러다임 (Paradigm)

'토마스 쿤(Thomas Kuhn)은 1962년에 재미있는 학설을 발표 하였다. 그것은 역사가 지금까지 알려져 왔던 것과 같은 '융합'이 아니라 '정복'에 의하여 변화한다는 것이다. 즉 변증법적으로 두 가지 사상이 절충되어 새로운 사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주류를 이루는 한 가지 사상(기존의 패러다임)에 여러 가지 다른 사상(새로운 패러다임)이 도전하여 그 중 하나가 승리를 쟁취하게 되면 그것이 새로운 주류로서 자리 잡는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기존 사상과 도전 사상 사이에 절충의 여지는 없고 오로지 누가 승리하느냐 만 있다는 예기이다.

사람들의 사고 방식을 지배하면서 철학과 과학과 예술과.... 모든 것에 영향을 주던 '모더니즘'은 이제 '가치관'으로써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모더니즘을 격렬하게 시험하였던 서양인들도 모더니즘의 결과 물(핵, 에이즈, 인간 소외, 환경 파괴)에 넌더리를 내고 새로운 가치관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포스트모더니즘(탈 모더니즘)인데 아직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립하지 못한 채 21세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적 배경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 탄생하였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서구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자본주의'와 '합리주의'의 해악과 모순을 비판하고 인간적인 사회를 구현하고자 한 일련의 젊고 진보적인 학자들이었는데 우리에게는 '신좌익 사상'으로 알려지면서 그들의 연구 성과가 국내에서 배척 당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지금이야 그런 일이 없겠지만 '좌'자가 들어가기만 하면 무조건 불순 분자, 용공 세력, 북한의 앞잡이로 매도되어 철저한 탄압을 받던 것이 그리 오래 전 일도 아닌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신좌익'으로 분류되는 것은 이들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통박하면서 자연히 마르크스주의가 상당 부분 인용된 데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동조한 것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고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자는 휴머니즘이었지 계급 혁명을 이루자는 노동자 독재가 아니다. 그리고 이 학파를 구성하는 면면을 보면 22살에 동 대학의 박사 학위를 딴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이나 27살에 동 대학의 교수가 된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Adorno)같은 혈기 방자한 석학들이 즐비하여 사회를 개량하려는 열정에 휩싸지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들의 견해에 따르면 인간의 이성을 중심으로 한 서구의 합리주의는 미신, 주술, 신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고 과학 기술의 토대를 마련하였지만 조직화, 과학화, 기계화된 현대 사회 자체가 과거의 신이나 마술적 존재와 같은 위치가 되어 새로이 인간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과거의 절대자가 '신'에서 '과학'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인간을 억압하고 있는 것은 여전하다.

현대 사회를 괴롭히는 수많은 질병들, 그 중에서도 특히 악성인 '빈부 격차', '황금 만능', '극도의 개인주의' , '이기심', '퇴폐 타락'은 인간의 존재 의미마저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괴질인 것이다. 우리가 한치의 의심도 없이 신봉하고 믿어 마지않는 과학과 합리주의도 결국은 주술적 신앙의 시대 보다 더 큰 해악을 인류에게 끼치고 있는 것이다.

이 학파의 주장과 면면을 다 소개하기는 어려운 일이나 요약하자면 인간의 존재 의미를 사색하고 자본 주의의 허구성을 지적한 '에리히 프롬'의 저서 '소유냐 삶이냐'와 절대 신앙으로 자리 잡은 '과학'과 '합리 주의'의 모순을 폭로한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저서 '부정의 변증법'으로 압축 될 수 있다.

 

서양인들은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동양 사상에 은근히 눈독을 들이고 있다. 옛날에는 심하면 야만인, 조금 상태가 좋아도 2류 문화 정도로 보았던 동양에 대하여 부쩍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언제쯤 정립되어 인류의 가치관이 바뀌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여러 가지 사상이 숨가쁘게 충돌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한국의 미학

옛날의 한국 사람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지금의 한국 사람들과는 전혀 틀린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지금 이미 퇴조해 버린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고 자연을 파괴하면서 흉물스러운 콘크리트 덩어리로 국토를 덮어나가고 있다. 이와 같은 개발이 이 땅의 후손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물려주게 될지는 누구도 정확하게는 모른다. 그러나 세계 최대의 하수도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시화호'를 보면 우리가 대재앙을 물려주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돈과 노력을 들이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우리의 조상이 만들어 우리에게 물려 준 것 중에 우악스럽고 무지막지하게 만들어져 자연의 조화를 거슬리게 된 것이 어디에 있는가? 광주에 있는 조선시대의 원림, 소쇄원에는 담장 밑에 구멍이 뚫린 부분이 있다. 개울 위로 지나가는 담장이 자연의 물길을 거슬리지 않도록 뚫어 놓은 것이다. 한국의 원림은 이렇게 자연스러운 흐름을 유지하고 있어서 인공미가 물씬 풍기는 일본식의 정원과는 그 개념이나 느낌이 근본적으로 틀리다. 옛날의 집과 담장, 마을과 길들은 땅을 파고 변형시킨 것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형태를 따라 얕트막하게 선을 그어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낸 것들이다. 하지만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욕심을 절제하는 이런 철학은 아무 산이나 거리낌없이 깎아내고 아무 계곡이나 함부로 메꾸어 생태계를 망치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전혀 계승되지 못했다. 한마디로 우리는 유전적으로는 한국 사람이지만 정신적으로는 혈통이 좀 의심스럽단 예기다.

 

(석굴암 이야기)

(소쇄원 담장)

 

그렇다면 우리의 문화 유산으로 남아 있는 이런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것은 바로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에 인류가 선택해야 할 가치관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2,500년 전의 그리이스인의 미학이 오늘날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듯이 한국의 전통적인 사상도 인류의 장래에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고귀함이 있는 것이다. 다만 오늘 우리의 문화적인 역량이 과연 이런 것을 할 수 있을지는 심히 의문이다. 우리는 서양인이 버린 모더니즘이라는 썩은 고기에 취해 인류의 양식이 될 수도 있는 우리의 문화와 정신을 아낌없이 버리고 있는 중이니 말이다.

 

한국이 나서지 않더라도, 세계는 결국 자연과 공존하며 절제하는 길을 취할 수 밖에는 없다. 그것 이외에는 인류가 이 지구 위에서 계속 살아나갈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서양인들은 지구적인 규모의 약탈을 끝내고 이제 달이나 화성에 우주 기지를 만든다고 설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로 달 과 화성에 기지를 만들어 그 곳의 자원을 퍼다 쓸 수 있기까지는 아직 요원한 세월이 남아 있다. 그리고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약탈적, 파괴적 문화를 계속 이어 나가겠다는 말인가?

'인디팬던스 데이'라는 미국 영화를 보면 이런 약탈적 우주인들이 지구의 자원을 노리고 공격해 온다는 설정으로 되어 있다. 미국인은 거기에 맞서 용감하게 싸워 독수리 오형제와 같이 지구를 구하게 되지만 내가 보기엔 서양인이 바로 그 우주인과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양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하면서 약탈하고 말살해버린 수 많은 문명(잉카, 마야, 아즈텍, 인디언)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모습이 바로 괴물스러운 우주인들과 같이 비쳤을 것이 분명하다. 동양이 서양으로부터 멸문지화를 면하고 이만큼이라도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그나마 서양으로부터 너무 거리가 멀고 깡그리 없애버리기에는 인구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자연과 공존하려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일본이나 중국으로부터 나올 수도 있고 깨우친 서양인으로부터 나올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다시 한번 세계사의 변두리에서 의미 없는 추종자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금속 활자'는 세계 최초의 것이다. 그러나 세계 문화사에 일대 변혁을 일으킨 금속 활자의 발명은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한 것이다. 우리도 우리 것이 아닌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를 받아들여야만 했고 그것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에 우리는 세계사의 저편으로 멀찌감치 밀려나 버렸던 것이다.

 

맺음말

'사진을 보는 눈'이라는 제목을 달고 많은 것을 이야기하였다. 회화와 사진의 역사를 기술하는 부분에서는 너무 간단하게 축약을 시켜서 전체의 모습을 다 그리지 못한 점도 있다. 미국의 농업 안정국이 주도한 캠페인으로부터 나온 '사회파 사진'이나 스타이켄이 주도하여 전세계의 사진계에 충격을 던진 '인간 가족전'이나 탁월한 심리 묘사를 했던 '마이너 화이트'나 '랄프 깁슨'등등 빠트릴 수 없는 중요한 것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목표는 '사진의 역사'를 자세히 기술하는 것이 아니고 '예술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그 바탕에는 시대적 상황이나 가치관이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사진은 이렇게 보는 것이다'라든가 '사진은 이렇게 찍어야 한다' 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사진을 돌아 보거나 앞으로의 방향을 설정하고자 할 때 다소의 참고가 될 수 있는 내용이었다면 이 장의 목적은 다 한 것이다.

 

돌아보건대 사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사상은 두 가지이다. 시각적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서의 사진(순수한 의미에서의 예술품)과 인간의 삶의 모습, 그 진실을 닮는 도구로서의 사진(사실 기록으로서의 사진)이다. 사진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이 두 가지 요소의 다양한 변주인 셈이다.

사진은 고상한 예술인가?

아니, 그렇게 고상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때로는 추하고 더러운 모습도 가감 없이 기록되어야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진은 예술 이상의 것이라는 점이다. 사진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정열과 몰두를 끌어내는 것도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사진에는 삶이 있다. 거기에 사진을 찍는 사람의 인생이 녹아있는 것이다. 자신의 정서와 감정, 철학과 인생관이 다른 사람의 삶의 모습으로, 빛과 그림자로 천변 만화하는 사물의 모습으로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한 시대의 사상과 정서, 패러다임을 담은 채 우리 곁에 남아 있다.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영원한 순간의 형태로 붙잡은 채....

 

 

[번 호] 12 / 21 [등록일] 1998년 05월 24일 22:05 Page : 1 / 24

[제 목] [닮산] 필림 다루기 1

 

기술적인 선구상

 

사진의 미학에는 작가의 '주제의식' 또는 말하고자 하는 내용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완성도도 아주 중요하다. 어느 예술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작가의 의욕은 앞서지만 그 의욕을 뒷받침 해줄 기술이 모자라는 경우 진정한 '작품'으로써 완성되었다고 보기는 아직 이른 것이다. 따라서 미학적 내용(Art)과 기술적 능력(Technique)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같이 다니는 것이며 어느 한가지가 일방적으로 강조되거나 앞서 나가서는 예술이 되지를 않는다.

 

어떤 사진이던 보기만 하면 '작가의 주제 의식이 무엇이냐?',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뭐라드냐?' 하면서 어려운 것만 따지는 사람들도 있긴 있다. 그러나 기술적인 완성도는 떨어지면서 주제의식이나 메세지가 지나치게 강조되어 있는 사진은 필경 훈계조의 '사설'과 비슷해 지기 쉽다. '예술 작품'이 '신문 사설'과 틀린 점은 예술에서는 어디까지나 상징과 은유로서 의사 표현이 이루어져 관람자에게는 느낌으로 전달되어야 하는 것이고(그러므로 각자 다르게 느끼더라도 지장이 없다), 사설은 노골적인 주장으로 자신의 의견을 대중에게 주입시키고자 한다는 사실이다.

사진 예술에서의 메세지 전달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여도 거기에 억지스럽게 매달려서는 안되는 일이며 사진 그 자체를 아무 조건 없이 느끼고 즐기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앙드레 케르테츠의 몬드리안의 방

정물 사진에서는 단순히 빛과 그림자를 묘사한 것으로도 아름다움을 보여 줄 수 있는데 풍부한 톤과 디자인적 요소가 그 감상의 대상이 됨은 말할 것도 없다. '앙드레 케르테츠'의 '몬드리안의 방'이라는 사진에서 어떤 메세지를 찾아낼 수 있는가?

물론 여러 가지 심오한 의미를 서술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것은 순 억지에 불과한 미사여구의 나열일 뿐이다. 차분하고도 단아한 구도와 풍부한 흑백의 톤, 미묘하게 살아난 세부 묘사가 이 사진의 아름다움을 결정하였다. 이런 시각적인 멋스러움은 다른 억지스러운 설명을 붙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감상하는 것이 제일 어울린다.

 

'기술적인 선구상'을 단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사진의 톤을 어떻게 조절하느냐는 것이다. 사진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풍부하고 미려한 흑백의 톤(Tone)이나 색조, 그리고 생생함을 더해주는 선명함이 다른 어떤 시각 예술 분야보다도 깊이 있고 자세하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사진의 특징인 사실성과도 관계가 있는데 사진이 이렇게 자세한 묘사를 할 수 없었던들 '사진=사실'이라는 등식이 처음부터 성립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흑백사진에서 톤의 변화를 이해하고 그 조절 방법을 알기 위해서는 필림의 특성, 노출에 대한 이해, 현상의 조절, 필터의 특성 등을 상세하게 논의해야 하는데 이런 과정들은 애매 모호하고 주관적인 이야기로 일관되는 '미학적인 선구상'과는 달리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우선 자세한 내용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전체적인 모습을 가볍게 훌터 보도록 하자.

 

1) 필림과 빛 --- 필림은 인간의 눈과는 사뭇 다르게 사물을 보게 된다. 그 차이점을 알게 되면 인화지 위의 그림이 현실과 왜,어떻게 달라지는지 이해할 수 있다.

 

2) 노출 --- 필림의 특성에 맞추어 일정한 양의 빛을 주는 것이 노출인데 노출의 측정법, 중간 회색의 의미, 노출의 과부족, 현상 방법 및 그 영향 등이 다루어 져야 한다. 노출의 특성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점 하나는 사진에서 어두운 곳(Shadow)의 세부 묘사(detail)를 결정한다는 점이다. 한번 부족하게 들어간 노출은 현상시간을 연장하여도 회복되지 않으며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이를 살릴 수 없다. 따라서 노출을 결정할 때는 어두운 곳의 세부 묘사를 살릴 수 있는 최소값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3) 존 시스템(Zone system) --- 한 장면의 노출을 세분하여 측정함으로써 각 부분이 어느 정도의 농도로 필림(또는 인화지)에 기록될 것인지 예측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예측된 결과가 본인이 원하는 것 보다 높거나 낮으면 현상시간을 적절하게 조절하여 이를 원하는 만큼 바꿀 수 있는데 이는 사진의 밝은 곳(high light)의 농도가 현상시간에 따라 조절되기 때문이다. 즉 노출을 어두운 곳을 기준으로 하여 결정했다면 밝은 곳의 농도는 너무 진하게 될 수도 있고 또는 너무 엷게 될 수도 이때 현상 시간을 줄이거나 늘려서 세부 묘사(detail)가 풍부하게 살아있는 범위로 농도를 맞추는 것이다.

4) 필터 --- 노출과 현상을 조절하는 것이 필림 전체의 농도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인데 반하여 필터는 일부분의 농도만 변화 시킨다. 이는 칼라로 되어있는 피사체에서 필터를 통하여 어떤 색은 강조 시키고 어떤 색은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현실세계의 색깔 차이를 사진에서의 명암 차이로 바꾸어 준다.

 

이러한 것들을 토의하는 최종적인 목표는 기술적으로 완벽하며 예술적으로도 풍부한 감성을 가진 사진을 만들어 내는 것이며, 어떤 상황에서 무엇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에 대한 가능한 조절과 한계점은 무엇인지를 검증하여 원하는 효과를 구현하도록 하는 것이다.

기술적인 내용을 토론할 때 쉽게 빠지는 오류는 목표를 망각하고 문제 자체에만 매달려서 난삽한 기술 자료를 가지고 끝없는 갑론을박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이와 같은 목표를 염두에 두고 다음 장부터 기술적인 문제들을 토의하도록 하자

 

 

필림 다루기

 

필림을 이야기하면서 '빛'에 대한 논의를 빠트릴 수는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어떤 사진가가 필림의 특성을 안다는 것은 '그 필림의 화학적 성질은 이렇고 특성 곡선은 저러하며 입자는 어느 정도이다'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진가가 필림의 특성을 알아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것이 사진을 찍는데 빛과 어떻게 상호 작용을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눈으로 보는 사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하여 불필요한 시행 착오를 줄이거나 의도에 맞는 선택을 적절히 하여 자신의 사진 작업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 이다. 그리고 우리의 눈과 필림은 빛에 대하여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이 둘 사이의 차이점을 감각적으로 알기는 어렵다. 수없이 많은 필림을 소모한 후에 이 차이를 터득하게 될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선 필림만 헛되이 낭비하고 끝까지 모르게 되는 수도 있는 것이다.

 

1. 빛!

 

태초에는 이 우주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빅뱅(Bigbang)이라는 정말이지 우주적인 사건이 생겨 빛이 탄생하였는데 인간이 태어나는 것은 그 보다 까마득하게 더 먼 이후의 일이라 빛이란 원래 그렇게 그 자리에 있었나 보다....하면서 인간은 삶을 일구어 나왔다. 이렇게 영겁의 세월 동안 지구를 비추어왔던 빛은 위대한 발견의 세기인 19세기에 와서 비로서 그 신비한 성질을 인류 앞에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빛의 성질을 연구했던 과학자의 이름은 뉴턴(Newton), 호프만(Hoffman), 헬름홀쯔(Helmhortz), 맥스웰(Maxwell ; 커피 업자가 아니다. 전자파의 성질을 밝혀 맥스웰 방정식을 만든 분이시다), 로렌츠(Lorentz), 드 브로이(De Broy), 아인슈타인(Einstein)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오늘날 빛에 대한 사진가들의 관심사는 '밝으냐 어두우냐?', '조리개 얼마에 샷타 속도 얼마냐?' 라는 것 뿐이겠지만 옛날에는 빛의 본질을 놓고 격렬한 토론이 끊임없이 전개 되었으니 그것은 바로 빛의 파동설과 입자설로 나누어져 서로 대립한 과학자들 사이에 벌어진 입씨름이었다. 일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빛이 파동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한편 입자의 성질도 고스란히 다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은, 즉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이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고 물리적으로도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이런 싸움이 벌어졌던 것이다.

(참고로 사진에서 빛의 파동성이 중요한 것은 '회절(diffraction) 현상' 때문인데 이것은 렌즈의 해상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이다.)

 

이 싸움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이 아인슈타인이다. 그는 놀랍게도 "빛은 입자의 성질과 파동의 성질을 다 같이 가지고 있지롱~"하면서 빛의 이중 성격을 명쾌하게 증명해 버린 것이다. 여기에서 출발하여 아인슈타인은 기존에 사용하던 물리학(뉴톤 물리학)을 버리고 새로운 물리학을 하나 만들어 냈는데 그래서 나온 것이 상대성이론이다. (아인슈타인이 빛의 성질을 규명한 '광전 이론'은 얼핏 보기에 '상대성 이론'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빛의 성격에 아주 모순적이고 비 논리적인 요소가 많다는 것을 간파한 그는 상대성 이론에서 가장 크게 논란이 된 가정(가장 엉뚱하기도 한 가정이다), 즉 '빛의 속도는 관측자의 속도에 관계없이 언제나 일정하다'는 전제를 세웠는데 이것은 기존의 물리학자들로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여기서 더 이상 깊이 들어가 현대 물리학을 논할 필요는 없지만 아인슈타인이 천재라는 것은 단지 E=MCy 라는 방정식을 만들어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발상, 즉 절대 불변이라고 믿고 있던 물리학의 법칙으로 빛의 성질이 규명되지 않았을 때 그 물리학 자체가 과연 절대 불변인지를 의심하고 검증했다는 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사실은 이와 같이 단순한 발상이 쉬운 것은 아니다. 내노라 하는 당대의 석학들도 아인슈타인이 나올 때까지 쓸데없는 입씨름만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보통은 어린아이의 생각에서 놀랄만큼 단순하면서도 자유로운 발상을 접할 수 있는데 어른이 되어가면서 각종 선입관과 쓸데없는 지식 그리고 복잡다단한 이론들로 머리가 굳어지면서 도저히 이렇게 참신한 생각을 해낼 수가 없는 모양이다.

 

이 세상에는 전자기파라고 하는 파동이 존재하는데 그 파장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이름으로 불리운다. 즉 X-선, 감마선, 전파, 적외선 등등으로 불리우는 것이 그것들인데 그 중에 특정한 파장의 전자기파는 사람의 눈에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이 전자기파가 바로 '빛'이다. 특정한 파장이라는 말의 '특정'은 구체적으로 400nm 에서 700 nm의 파장을 가리키는데 (nm; nanometer는 1미터의 10의 9제곱분 의 일의 길이이다) 이 파장 안에서 다시 색깔로 나누어져서 예를 들자면 460nm은 청색, 540nm은 녹색, 660nm은 적색으로 불리우게 된다. 적색보다 더 긴 파장의 빛은 적외선(=적색의 바깥에 있는 선)이라 하는데 그 중에서도 파장이 긴 대역에 분포하는 '원 적외선'은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하여 발 빠른 장사꾼들이 밥그릇, 정수기, 심지어 침대에 까지 이름을 갖다 붙이고 있고 , 자색(=청색 다음의 보라색)보다 짧은 파장의 빛은 자외선이라 하여 하얀 피부를 원하는 여자들의 원수로 규정하고 온갖 종류의 화장품에 '자외선 차단 효과' 라는 말을 써 붙여 사갈시 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열선'이라고도 부르는 원 적외선에는 물체를 투과하는 성질이 있는데 사진가 들이 사용하는 적외선 필림은 원 적외선이 아니라 근 적외선에 반응한다. 따라서 적외선 사진이라 해도 어떤 물체의 온도에 직접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그림 전자기파의 대역)

(가시 광선 대역)(전자기파 대역)

 

2. '색온도' 란?

 

색온도는 어떤 광원이 어떤 색을 가지고 있는지를 표시하기 위해서 물리학자들이 만든 개념이다. 뭐든지 절대적인 기준으로 말하기 좋아하는 고리타분한 물리학자들이 화가들이나 쓰는 색깔의 개념, '빨갛다' '붉그죽죽하다' '누리끼리 하다' '희쭈그레 하다' 등의 애매한 표현에 만족할 리가 만무하다. 그래서 흑체라는 가상의 물체를 만들어 그것을 높은 온도로 가열하였을 때 거기에서 방사되는 여러 가지 색깔의 빛을 '색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고 그 단위는 흑체의 온도와 연관 지어 표시한 것이다. (흑체는 black hole과 같이 빛이 전혀 나오지 않는 완전한 검은 색을 가진 이론적인 물체이다)

 

예를 들어 검은 쇳덩어리(흑체에 해당한다고 가정)를 차가운 상태에서 본다면 단지 검을 뿐이며 색이 없다. 그러나 이것을 뜨겁게 가열하여 2,500도까지 올리면 검은 쇳덩어리가 검붉은 색을 띄게 된다. 더욱 가열하여 3,200도가 되면 이른바 쇳물처럼 밝은 주황색을 띄게 되고 5500도까지 가열하면 백색이 되고 10,000도가 넘으면 푸른 색을 띄게 된다. 여기에서 새로운 개념을 하나 정의 하자면 10,000도로 가열된 쇳덩이가 내는 푸른 색을 '10,000도k 의 색온도'라 부르고 3,200도의 쇳덩이가 내는 주황색은 '3,200도k 의 색온도'라고 부르자는 식으로 약속하는 것이다. 이것이 로렌츠의 흑체 복사 이론에 의한 색온도의 정의이다. 그렇다면 이 훌륭한 물리학자의 빛나는(말 그대로 빛나는 것에 대한) 이론에 따라 만약 백열등에서 나오는 빛과 나트륨 등에서 나오는 빛이 똑같은 주황색이었다고 가정했을 때 이 두 광원은 모두 3,200도k 의 색온도를 가졌다고 말해도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색온도가 3200도k 라고 해서 백열등과 나트륨 등이 실재로 3,200도로 가열되었다는 의미는 아니고 또 백열등과 나트륨등의 온도가 같다는 것도 물론 아니다. 이것은 단지 3200도로 가열된 흑 체와 같은 색깔의 빛을 낸다는 의미일 뿐이다.

그러므로 '색온도'라는 단위는 '색깔'에 대한 단위이지 '온도'에 대한 단위가 아니다. 색온도라는 용어 자체는 아무래도 온도에 관한 어떤 단위일 것이라고 오해하기 쉽도록 되어있지만 '색깔'에 대한 단위라는 것을 확실하게 숙지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계속 혼란에 빠지게 된다.

사진 촬영에 자주 등장하는 색온도의 예

색온도는 숫자가 높을수록 청색에 가까워지고 숫자가 낮을수록 적색에 가까워진다. 파란색을 그냥 '파란색'이라고 말해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다른 말로 '10,000도k 색온도'라고 고쳐 부른 것이다. 이렇게 엄격한 색깔 기준은 회화 같은 것에서는 필요 없지만 사진에서는 없어서는 안되는 요소이다.

 

몇 가지 사진에 쓰이는 광원의 색온도는 다음과 같다.

 

광원의 종류 색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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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용 100와트전구 2900도

500와트 사진전구 2800 ~ 3400도

1000와트 할로겐스튜디오용전구 3200도

전구 후렛시 3800 ~ 4200도

전기 후렛시(스트로보) 5000 ~ 6800도

흰색 형광등 4500도

낮의 태양광 5400도

푸른 하늘 10000도 이상

 

3. 조명의 방법과 방향

빛 자체의 성질이나 그에 관한 용어는 그렇다고 치고 빛이 어떻게(입사광 인지 반사광인지?) 어떤 방향에서(순광, 사광 또는 역광) 비춰지느냐 도 사진가에게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입사광과 반사광

입사광이라는 것은 직사광과는 약간 틀린 개념인데 직사광이란 광원으로부터 직접 들어오는 빛을 말하는 것이며 예를 들자면 야외에서의 태양이나 또는 스튜디오의 조명등으로부터 직접 받게 되는 광선을 말하는 것이고 여기에 주변의 물체에서 반사되어 들어오는 광선까지 합하여 지면 입사광이 된다. 다른 말로 입사광을 정의하면 어떤 주어진 각도에서 들어오는 광선의 총량이 입사광이다.

 

입사식 노출계는 피사체에서 카메라쪽(주의: 광원 쪽이 아니다)으로 노출계를 향하고 그 방향에서 들어오는 빛의 양을 재는 것이다. 따라서 입사식 노출계가 흔히 알고 있듯이 광원의 빛을 재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이름이 입사식이 아닌 직사식 노출계가 되었을 것이다. 입사식 노출계는 노출계 뒤의 피사체가 무엇이던 간에(검은 고양이를 찍던 흰 고양이를 찍던) 동일한 노출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노출계에 피사체가 어떤 물건인지 판단하는 기능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자명한 일이다. 이렇게 입사식 노출계는 피사체의 반사율을 깡그리 무시하고 입사 되는 빛의 양만 측정하므로 피사체의 실제 명암에 관계없이 항상 중간 값을 가리키게 된다.

 

예1) 입사식 노출계는 광원의 방향에 상관 없이 카메라 렌즈 쪽으로 노출을 잰다.

여기서 측정된 노출 값이 f16, 1/60초라고 가정하자.

예2) 이 경우에도 예1)과 동일한 노출 값이 나온다. 즉 f16, 1/60초를 지시하게된다.

 

위에든 '흑묘백묘' 예에서 노출 값이 f16에 1/60초가 나왔다고 하자. 이 때 흰 고양이를 찍으면 피사체에서 빛을 많이 반사하기 때문에 필림에도 많은 빛이 감광되게 되고 따라서 고양이도 하얗게 나오게 된다. 또 검은 고양이를 같은 노출로 찍으면 피사체의 반사율이 낮기 때문에 필림에 빛이 거의 감광되지 않게 되고 따라서 고양이도 검게 나온다. 그렇지만 이와 같이 중간 값을 취하면 그럭저럭 맞는다고는 하지만 사진가가 나름대로의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 노출을 조절하기는 지극히 어렵다. 왜냐하면 피사체의 어느 부분이 어느 정도의 톤으로 표현되는지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즉 위의 예에서 흰 고양이는 희게, 검은 고양이는 검게 표현된다고 말하였지만 얼마나 희게, 또는 얼마나 검게 나올지는 전혀 모른다는 예기이다.

 

반사광이라는 것은 피사체에 반사되어서 나온 빛을 말하는데 사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이렇게 피사체에 반사된 빛을 기록하는 행위이다. 여기에 대한 예외는 일출이나 일몰 등 광원자체를 찍는 경우가 될 것이다. 어떤 피사체에서 반사되는 빛은 피사체의 반사율에 따라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한데 이를 우리는 밝거나 어둡다고 표현하고 사진에서는 흑백의 톤으로 묘사 되게된다. 반사식 노출계는 피사체로부터 반사되는 빛의 양을 재는 기계이므로 반사가 잘되는 흰색 계통의 피사체를 잴 때와 반사가 잘 되지 않는 검은 색 계열의 피사체를 잴 때의 노출 값이 틀려지게 된다.

다시 말해서 피사체가 빛을 많이 반사하는 흰색 계열이라면 당연히 많은 양의 빛을 반사하게되는데 노출계는 (빛이 많이 들어 오므로) 노출 값을 줄이라고 지시를 하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피사체가 어두운 색깔을 가지고 있다면 노출계는 '빛이 모자라니 노출을 더 주어야 한다...'는 식으로 지시를 하게 된다.

 

예1) 반사식 노출계는 피사체에서 반사되는 빛의 양을 측정하므로 카메라 쪽에서 피사체를 향하여 노출을 잰다. 이 때 피사체의 반사율이 높으면 빛이 많이 반사되므로 노출계는 f16, 1/250초를 지시하게 된다.

 

예2) 이 경우에 반사식 노출계는 피사체에서 반사되는 빛의 양이 매우 적으므로 노출 값을 f16, 1/15초 와 같이 지시한다.

 

그런데 얼핏 생각하기에는 이런 식으로 노출 값이 변하는 것이 맞는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으나 사실은 큰 문제를 야기 시킨다. 즉 '흰색'의 피사체를 찍을 때 노출을 줄여 '회색'이 되게 만들고 반대로 '검은 색'의 피사체를 찍을 땐 노출을 늘려 이번에도 '회색'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주어진 값을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는 입사식 노출계에 비하여 불편한 점이 있긴 하다. (노출계에는 피사체가 어떤 물건인지 판단하는 기능 같은 것은 없다고 앞에서도 말하였거니와 노출계가 지시하는 값은 무조건 중간 회색을 만드는 값이다.)

 

하지만 반사식 노출계는 현명하게 사용한다면 사진가에게 매우 의미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 피사체의 반사율에 직접적으로 반응하는 이 노출계는 사진에서 피사체가 어떤 톤으로 나올지를 사진가에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흰 고양이의 노출을 반사식 노출계로 측정하여 f16에 1/250초가 나왔다고 하자. 이 노출 값은 흰 고양이를 '중간 회색'으로 표현하는 노출 값이다. 여기서 사진가는 자신의 의도에 따라 노출을 한 스텝만 올려서(f16, 1/125초) '보다 밝은 회색'으로 표현 할 수도 있고, 노출을 두 스텝 올려서(f16, 1/60초) 세부 묘사가 충실히 살아 있는 '흰색'을 만들 수도 있으며 또는 노출을 세 스텝 올려서(f16, 1/30초) 세부 묘사가 거의 살아나지 않는 '아주 밝은 흰색'을 만들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사진가는 이제 피사체가 어떤 톤으로 인화지에 표현되는지도 알 수 있고 또 자신이 원하는 표현을 얻기 위해서는 노출을 얼마나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반사식 노출계로 피사체의 노출을 직접 재지 않고 그레이 카드(평균 반사율인 18% 반사율을 가지고 있는 회색 종이)의 노출을 재면 입사식 노출계와 같이 평균 노출이 되게 된다. 이 방법은 피사체 앞에 그레이 카드를 놓고 카드의 노출을 재는 것인데 따라서 피사체의 실제 반사율에 상관없이(이점이 입사식 노출계와 같다) 그레이 카드의 반사율에 의한 노출 값을 가리키게 되어 평균 노출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그레이 카드는 사진 재료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단, 이것을 사용할 때는 샷타를 누르기 전에 피사체 앞에 있는 그레이 카드를 치우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하자.

 

요약하자면 직사광은 광원 자체에서 들어오는 빛을 말하는 것이며, 입사광은 주어진 각도에서(사진가의 입장에서 보면 카메라가 있는 쪽이 주어진 각도이다) 들어오는 빛을 말하며, 반사광은 피사체에 반사되어 나오는 빛을 말하는 것이다.

 

빛의 방향

한편 빛은 피사체에 비추어지는 각도에 따라서 순광, 사광, 측광, 역광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실재로 사진의 분위기나 느낌에 크게 영향을 주는 것도 바로 조명의 방향이다.

 

(그림 조명의 방향)

 

순광은 카메라의 뒷쪽에서 피사체에 조명이 주어지는 경우이다. 피사체의 디테일이 가장 선명하고 풍부하게 나온다. 짙은 그림자가 없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평범하고 온화한 분위기가 된다.

사광은 피사체에 비스듬하게 조명이 주어지는 경우이다. 이 조명 방향은 인물 사진에 많이 쓰이는데 어느 정도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 때문에 인물에 분위기와 깊이를 더해 준다. 풍경 사진에서도 피사체와 그림자를 적절하게 구성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보여 준다.

측광은 피사체의 옆에서 조명이 주어지는 경우이다. 인물 사진에 이런 조명을 한다면 상당히 특이한 분위기의 사진이 될 것이다.

역광은 피사체의 뒷쪽에서 조명이 주어지는 경우인데 가장 다루기가 까다롭지만 또한 가장 드라마틱한 결과를 내 주기도 한다. 풍경 사진인 경우에는 조명(태양) 자체가 플레어 현상을 내지 않도록 해주는 요령이 필요하다.

 

(순광, 사광, 측광, 역광의 사진 예(야외))

(순광, 사광, 측광, 역광의 사진 예(스튜디오, 조명 설치 방법))

 

4. 평균 반사율

어느 할일 없는 과학자가 있어 이 세상 삼라만상의 반사율을 모두 조사하여 평균을 낸 결과 18%라는 값을 얻었다. 이것이 과연 올바른 근거 아래서 이루어진 실험인지는 그 후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 왔고 평균 반사율을 12%로 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력하게 대두되기도 하였지만 그럭 저럭 사진 업계에서는 18%라는 값을 표준으로 하여 중간 회색을 정하게 되었다. 이 평균 반사율이 중요한 것은 이후 생산되는 모든 노출계가 이것을 기준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입사식이건 반사식이건 모든 노출계는 빛의 양을 측정하여 그 빛이 필림에 감광 되었을 때 중간 회색(18% 반사율)을 나타낼 수 있도록 알려준다. 즉 측정된 빛을 기준으로 '조리개 얼마에 샷타 속도 얼마로 찍으면 중간 회색이 된다'는 식으로 알려 주는 것이다.

 

(노출계의 바늘. 현재 측정된 빛의 양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니고 그 빛을 이용하여 중간 회색을 낼 수 있는 '조리개'와 '샷타 속도'를 지시해 준다.)

 

5. 노출계의 딜레마

따라서 노출계가 노출을 지시할 때 직면하는 딜레마는

1) 피사체가 실재로 중간 회색인가? (노출계는 모든 피사체가 다 중간 회색이라는 가정 하에 만들어 졌으므로)

2) 사진가가 과연 중간 회색의 톤을 원하고 있는가? 를 판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첨단 기술로 만들어진 노출계도 위의 두 가지를 스스로 알아서 판정해 주는 기계는 없다. 결국 노출계의 지시를 그대로 따라서는 안되고 사진가가 1)항과 2)항을 판정하여 이를 능동적으로 조절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또한 2)항의 조건에 의하여 어떤 피사체에 맞는 '적정 노출'이 단 하나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작가의 의도에 따라 노출계의 지시 보다 높거나 낮게 놓아도 의도에 맞는 적절한 노출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예) 이 사진을 찍을 때 노출계는 f45에 1/30초를 지시하였다. 그러나 나는 중간 회색의 톤보다는 더 밝게 묘사하고 싶었기 때문에 노출을 두 스텝 증가 시켜서 촬영하였다. 이 사진의 적정 노출은 나에게는 f45에 1/8초 인 것이다.

 

6. 피사체의 반사율과 인화지의 톤

어느 물체가 하얗다는 것은 반사율이 높아 입사 된 빛의 대부분을 반사한다는 뜻이고 검다는 것은 반사율이 낮아 입사 된 빛을 거의 반사하지 않는다는 예기이다. 등소평이 좋아했던 '흑묘백묘'를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흰 고양이와 검은 고양이를 동일한 광원에 두고 그 반사율을 측정한다. 검은 고양이는 주어진 빛의 99%를 흡수하고 1%만을 반사하는 반면 흰 고양이는 1%의 빛을 흡수하고 99%의 빛을 반사하였다. 이런 경우의 반사율의 비율은 1:100 이다.

이 정도면 그런대로 무리가 없는데 만약 검은 고양이가 동일한 광원이 아니고 빛의 양이 약 1/4정도인 그늘에 있었다면 두 고양이가 반사하는 빛의 양이 1:400의 비율로 될 것이다. 흑백 인화지에서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톤의 차이가 약 1:100 이니 이 경우는 흑백 인화지의 능력보다 4배정도 넓은 반사율 분포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우리 눈으로 1:400정도 밝기가 차이 나는 피사체를 보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필림은 이 두 피사체의 밝기를 동시에 기록할 수 없으며 설령 있다고 해도 이와 같은 밝기 차이가 인화지에서 재현되지도 않는다. 인화지에 나타나는 흰 고양이와 검은 고양이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1:100의 밝기 차이 이내로 나타나게 된다.

 

맑은 날의 야외에서 보는 피사체는 이 반사율의 차이가 보통 1:1,000 배 정도까지 되기 때문에 인화지로서는(흑백이던 칼라던) 이를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이를 표현하기 위해서는있는 그대로 가 아닌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즉 1:1,000에 달하는 명암 차이를 1:100 이내로 '압축'하여 표현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인물화를 그리는 화가가 머리카락 전부를 일일이 그리지 않고 단지 몇 개의 선으로서 이를 묘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상황을 묘사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간략화 하여 표현하는 경우이다.

인화지에는 기본적으로 흰 색 바탕의 종이 위에 검은 색으로 그림이 그려진다. 그러므로 아무리 밝게 빛나는 물체도 종이보다 더 희게 나올 수 없고 아무리 검은 물체도 감광유제가 내는 검은 색보다 더 검게 표현될 수는 없다. 이와 같이 인화지가 실재로 표현 할 수 있는 흰색과 검은 색의 차이는 그다지 폭 넓은 것이 아니다.

 

(그림, 노출차, 조리개 단수, 밝기 차이)

(인화지 톤의 단계, 실제 프린트)

 

인화지가 낼 수 있는 1:100의 밝기 차이는 이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렌즈 조리개로는 7단의 차이를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최대한의 농도차를 말하는 것이고 인화지에서 세부 묘사가 충분히 살아나는 밝기 차이는 1:30정도( 조리개 5단차 )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피사체의 어두운 곳과 밝은 곳이 조리개 5단 차이 이상인 경우는 인화 과정에서 세부 묘사가 나오지를 않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존 시스템에서 설명한다.

 

7. 색

흰색은 400에서 700나노미터(nm)까지의 빛이 고르게 모여있는 경우이다. 자연광은 통상 흰색으로 알고있지만 실제로는 매우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있다. 푸른 하늘에서 오는 빛은 태양 자체의 빛보다 푸른색이 헐 씬 많고 아침, 저녁에는 붉은색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인공광인 백열등은 자연광보다 노란 색이 많이 분포하고 형광등에는 녹색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나 사람의 두뇌는 이런 색 차이를 조정하여 모두 하얀 색으로 느끼게 하는 기능이 있다. 이것은 비디오 카메라에서 백색 조정(white balance)을 하는 것과 같은 기능인데 사람의 두뇌와 같이 자동적으로 '백색 조정'을 할 수 없는 비디오 카메라는 조명의 종류, 즉 광원의 색깔에 따라 RGB(빨강, 초록, 파랑)중 한쪽 신호의 증폭률(gain)을 올려서 인위적으로 백색을 맞추는 것이다. 필림에는 물론 이러한 기능이 없기 때문에 푸른 하늘의 빛을 받은 부분은 푸르스름하게, 백열등의 빛을 받은 부분은 붉그스레하게 기록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물체의 색깔을 예기하는 것은 그 물체에서 반사되는 빛의 파장을 예기하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빨간 장미는 빨간 색 파장의 빛을 대부분 반사하고 다른 빛은 극히 소량만 반사한다. 이때 반사되는 빨간 색 파장의 양이 다른 색 파장에 비하여 월등히 많으면 선명한 빨간 장미가 되고(채도가 높다) 그다지 많지 않다면 엷은 적색(채도가 낮다) 또는 분홍색 장미가 된다.

(빛을 반사하는 피사체의 색깔)

 

빛을 투과 시키는 물체도 마찬가지인데 빨간색 필터는 빨간색 파장의 빛을 투과시키고 다른 파장의 빛은 흡수한다. 이때 다른 파장의 빛이 완전히 흡수되면 선홍색이 되는 것이고 다른 파장도 어느 정도는 투과 시키면 주황색이 되는 것이다.

 

(빛을 투과하는 피사체의 색깔)

 

실제로 흑백 사진에서 자주 쓰이는 황색 필터는 노란색을 주로 투과시키면서 청색광은 차단 하기 때문에 푸른 하늘을 짙게 만들어 주는 작용을 하게 된다. 즉, 푸른 하늘에서 나오는 청색광이 필터에 의하여 차단 되면서 필림에 감광을 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그 부분이 투명하게 현상되고 인화를 하면 검게 나오는 것이다.

필터의 기능을 오해하고 있는 사람은 노란색 필터나 붉은 색 필터가 하늘을 검게 만든다는 것만 기억하여 아무 때나 하늘이 검게 묘사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푸른 색 하늘이 아니고 흐린 날의 회색 하늘이라면 아무리 필터를 끼워도 효과가 없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번 호] 13 / 21 [등록일] 1998년 05월 24일 22:06 Page : 1 / 24

[제 목] [닮산] 필림 다루기 2

8. 필림

 

(그림 필림의 구조)

 

필림은 아세테이트나 셀룰로이드로 된 지지체(film base) 위에 감광 유제로서 염화은을 얇게 입힌 것이다. 제일 윗면은 긁힘 등으로부터 표면을 보호하기 위하여 얇은 막을 입히게 되고 필림의 밑면에는 내부 반사(halation)을 방지하는 코팅을 하여 제품이 완성된다. 사진을 촬영하면 렌즈를 통과한 빛이 필림에 입혀진 감광 유제에 닿게 되는데 이때 염화은의 분자 구조가 빛에 의하여 활성화되게 된다. 이때까지는 아직 필림에 어떤 이미지가 그려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상태를 숨어있는 영상이라는 의미로 '잠상'이라고 부른다.

이 잠상을 가진 필림이 현상액에 들어가면 활성화된 염화은과 현상액이 반응하여 금속 은입자를 이루게 된다. 이것을 다시 정착액에 넣으면 은 입자를 제외한 비활성 염화은을 제거하게 되어 네가티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노출 현상 정착 과정의 도해)

 

9. 필림의 감도

필림의 감도란 필림이 얼마만큼의 빛을 받아야 염화은을 활성화시킬 수 있느냐는 지표이다. 여기에 사용되는 표준 사양(spec)이 미국 방식인 ASA(American Standard Association)와 독일 방식인 DIN(Deutch Industry Normal)인데 지금은 두 방식이 통합된 국제 표준으로 ISO(International Standard Organization)를 사용하고 있다. ISO는 기존의 방식과 다른 특별한 것이 아니고 미국 방식과 독일 방식을 한꺼번에 표시하는 방식으로 되어있다. 이런 식으로 할 바에야 구지 표준을 새로 정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이 문제를 놓고 미국과 독일이 서로의 자존심을 걸고 한치의 양보도 없이 대결하는 바람에 결국 하나마나 한 국제 표준으로 되어 버렸다.

 

감도는 조리개의 1/3단계를 기준으로 표시되는데 미국은 실용주의자답게 상용로그를 취하고 독일은 논리적인 국민성을 앞세워 자연로그를 사용해 그 값을 아래와 같은식으로 정하였다.

 

(감도 표시 방식과 국제 표준)

 

미국 방식인 ASA는 그 값이 두 배로 되면 감도도 두 배로 높아지는 방식이다. 즉, ASA64 보다 감도가 두 배 더 높은 필림은 ASA125이고 그 사이가 3등분으로 되어있는 식이다. 독일 방식인 DIN은 숫자가 3이 증가하면 감도가 두 배로 높은 것이며 따라서 DIN24가 DIN21보다 두 배 더 빠른 감도의 필림이다. 국제 표준 ISO는 표에서 보다시피 '짬뽕식'이다. 짬뽕식이라 하여 이것이 중국 방식을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필림 메이커에서 제공하는 감도는 실제 상황보다 더 빠르게 되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는 메이커가 말하는 감도가 사진가의 요구나 의도와는 관계없이 실험실에서 염화은의 활성도를 측정하여 나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코닥의 트라이 엑스(Tri-X) 필림은 35미리나 중형 필림은 ISO 400/27으로, 그리고 대형 카메라용 쉬트 필림은 ISO 320/26으로 생산되어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온 필림이다. 이 필림은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반적인 경우에 감도를 반으로 놓고 촬영하여 현상시간을 10-15%정도 줄였을 때 제일 좋은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즉 이 필림은 실제로는 ISO 200/24 또는 ISO 160/23 짜리 필림이란 예기이다. 일포드의 필림군은 코닥 보다는 실제 감도에 가깝지만 그래도 약간은 과장이 되어있다. HP5+ 필림은 ISO400/27으로 표시가 되어 있지만 ISO 320/26에서 사용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준다. 나는 실제로 사용이 편리하도록 HP5+도 Tri-X와 마찬가지로 ISO200/24으로 통일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필요에 따라 과학적인 데이타보다는 자신이 직접 인화를 해본 결과를 더 믿어야 한다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물론 필림 메이커가 의도적으로 감도를 과장하였다고 악의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다. 사실은 필림 메이커도 사진가의 입맛에 딱 맞는 감도를 산출해 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진가가 어떤 특정한 필림을 선택하였을 때 그 필림의 실재 감도를 결정하는 데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얼핏 생각해 보아도 7가지는 된다. 여기에는 사용하는 노출계(또는 카메라)의 기종, 노출 측정 방식, 현상약의 종류, 현상 온도와 교반방법, 확대기 광원의 종류, 인화지의 종류 그리고 가장 헷갈리는 요소인 사진가의 취향 등이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아무리 필림 메이커라 해도 누구에게나 다 맞는 데이타를 만들어 낼 수는 없을 터이다. 어쨋던 사진가는 필림의 포장에 찍혀 있는 숫자(즉 감도)를 기계적으로 그냥 따라서는 안되고 자신에게 맞도록 조정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필림의 감도를 표시된 값의 반 정도로 낮추고 현상 시간을 10~15% 정도 줄이는 경우에 얻어지는 효과를 살펴보면 네가티브의 어두운 부분(shadow)에서 세부 묘사가 잘 살아나게 되고 입자의 크기도 약간 줄어들면서 흑백의 톤이 부드럽게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은 노출이 전체적으로 한단계 증가되면서 어두운 부분을 살리게 되고 현상시간이 줄어들면서 밝은 부분(highlight) 지나치게 진하게 나오는 것을 막는 한편 입자도 작게 만드는 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단 이것은 사진 전체의 콘트라스트를 줄이는 효과도 있기 때문에 콘트라스트가 약한 피사체를 촬영할 때에는 이것을 보상 할 수 있는 방법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현상된 필림의 콘트라스트가 낮은 경우에 가장 쉽게 대처 할 수 있는 방법은 인화 작업을 하면서 인화지의 호수를 올리는 것인데 그 밖에도 셀레니움 토너(Selenium Toner)를 사용하여 네가티브나 인화지의 콘트라스트를 올리는 방법도 있다. 이 두 가지 방법은 장단점이 각기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두 가지를 병행하여 사용하여야 한다.

 

(도해. ISO400 노출, 현상 시간 12분 농도 분포)

(도해. ISO200노출, 현상 시간 12분 농도 분포, 현상 시간 10분 농도 분포)

 

10. 필림의 입자

필림을 고 배율의 돋보기로 보면 수많은 입자로 영상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입자의 크기는 필림의 감도에 비례하여 커지게 되는데 입자가 작은 필림은 따라서 감도가 낮고 상대적으로 콘트라스트도 높아지며 입자가 큰 필림은 감도가 높으며 콘트라스트도 약해진다. 입자의 크기에 따라 콘트라스트가 달라지는 이유는 작은 입자인 경우에는 미묘한 중간 톤의 변화를 잘 기록하지 못하고 어둡거나 밝은 쪽으로 치우쳐 나타나게 되는 반면 큰 입자는 중간 톤의 변화를 풍부하고 다양하게 기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설명 하자면 흑백의 톤을 0(검은 색) 와 1(흰색) 이라는 숫자로 표현 한다면 ISO25인 필림은 톤을 0, 0.5, 1 과 같이 세 단계로 나누는 반면 ISO400인 필림은 0, 0.25, 0.5, 0.75, 1 과 같이 다섯 단계로 나누어 표현 해 줄 수 있다는 의미이고 ISO400필림은 그만큼 중간 톤(회색)을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림, 저감도 필림의 입자 크기와 콘트라스트)

(중감도 필림의 입자 크기와 콘트라스트)

 

한편 요즈음은 정밀 화학 공업의 발전에 힘입어 기존의 필림 입자를 납작하게 눌러 놓은 T-grain 공법이 필림 제작에 광범위하게 쓰이게 되었다. 이렇게 납작하게 눌린 입자는 종전의 입자 보다 빛을 받는 면적이 증가하기 때문에 같은 크기의 입자를 사용하여도 감도를 향상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 말은 곧 같은 감도의 필림을 만드는데 보다 작은 입자를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T-grain 공법으로 제작된 필림들은 구형 필림에 비하여 입자가 작다. 코닥의 T-max 필림과 일포드의 델타(Delta) 필림이 이와 같은 범주에 드는 필림들이다.

T-grain 공법으로 제작된 필림의 기술적인 특성을 규정하는 변수 중에 종횡 비(Aspect Ratio)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입자가 납작하게 눌린 정도를 규정하는 변수이다. 종횡비가 높을 수록 필림 현상 후에 나타나는 입자의 크기가 작아지는데 반면에 현상약의 농도나 온도 변화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작용이 생긴다. 실재로 T-max의 종횡비는 1:10 이고 Delta의 종횡비는 1:6 으로 되어 있어 이론적으로는 T-max가 Delta보다 약간 더 작은 입자를 나타내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T-max 필림은 현상 과정의 미세한 오차에도 현상 결과가 크게 변하는 난점이 있고 입자가 작은 필림이 갖는 일반적인 문제인 중간 톤의 묘사력 저하도 눈에 띈다. 반면에 Delta 필림은 입자가 T-max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약간 크다고 하여도 다른 일반 필림에 비하면 헐 씬 작은 입자를 가지고 있는데다 풍부하고 아름다운 중간 톤의 묘사를 하며 현상 결과도 일반적인 작업 환경에서 충분히 안정적으로 나온다.

T-max 필림은 아마도 (그 필림을 사용하게 될) 사진가의 입장보다는 (기술적인 업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엔지니어의 입장에서 첨단 기술의 상징으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닌가 싶다. 코닥이 T-max를 발매한지 오래 되었건만 구 시대 필림의 상징인 Tri-X를 계속 생산하는 것도 Tri-X의 풍부한 톤과 뛰어난 묘사력을 포기하지 않은 사진가들이 아직 많이 있고 그만큼 수요도 계속 된다는 의미이다.

 

(일반 입자와 T-grain 입자 도해)

 

이와 같이 필림에는 염화은 상태로 입자가 존재하며 이 두 가지 입자에 빛이 주어지면 빛에 반응하는 속도는 r 에 비례하므로 같은 감도를 가지게 된다. 이 염화은 입자는 현상 과정에서 화학적 변화를 일으켜 염기를 떼어내고 은 입자가 되는데 이 때 생기는 은 입자가 우리가 네가티브에서 보는 '입자'이다. 이 때 형성되는 은 입자의 크기는 r X h 에 비례하므로 입자가 납작하게 눌려 있는 T-max 쪽이 더 작은 입자가 되게 된다.

 

입자의 크기는 필림 현상약에 의하여도 영향을 받는다. 코닥의 마이크로돌(microdol) 같은 것은 미립자 현상약이고 HC-110, D-76은 조립자 현상약이다. 아그파(Agfa)의 로디날(Rodinal)은 더욱 강력한 조립자 현상액이다. 또 현상액 속에 들어 있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입자가 커지는데(입자는 현상액 속에서 자란다. 이것은 염기를 떼어내고 금속 은으로 환원 되는 과정에서 주위의 입자들과 뭉치게 되기 때문이다) 노출을 정상보다 적게 주고 현상시간을 늘리는 증가 현상에서 입자가 거칠어 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입자의 크기와 혼동하기 쉬운 것이 '선예도'인데 믿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미립자 현상액을 사용하여 입자가 작아지게 현상을 했다고 해서 사진이 선명해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대표적인 미립자 현상액인 마이크로돌(microdol)은 또한 대표적인 '연조(soft)현상액'인 것이다. 즉 사진이 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고 곱게 나온다는 예기이다. 연조 사진이라고 하면 요즈음 결혼식에 옵션으로(사실은 반 강제적으로) 딸려있는 야외 촬영 사진을 연상하면 되는데 물론 이 경우에는 연조 필터(Soft filter)를 써서 뿌옇게 흐려지게 만든 것이기는 하지만 신부의 모습을 부드럽고 아름답게 표현하는데는 제격이지만 날카로운 선명함 같은 것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사진을 선명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입자의 크기(grain size) 가 아니라 '입자의 선예도(accutance)' 와 '윤곽선 효과(edge sharpness)'에 의하여 결정되게 된다.입자의 선예도란 입자 하나 하나의 모양이 얼마나 날카롭고 뚜렸하게 형성되었느냐를 말한다. 개개의 입자가 뭉개져서 흐릿하게 보이는 경우 사진 전체의 선명도도 올라갈 리 만무하다.

 

윤곽선 효과란 어떤 그림의 윤곽이 주위와 뚜렷이 구분되는 정도인데 미립자 현상액에는 입자의 크기를 강제로 줄이기 위하여 은 용해제가 많이 첨가되어 있고 이것이 은 입자를 녹여 크기는 작아 보이게 만들지만 대신 윤곽선의 경계도 뚜렷하지 않게 되어서 사진 전체로 봐서는 어딘지 선명치 않은듯한 또는 촛점이 약간 맞지 않은 듯한 사진이 되는 것이다.

 

현상약중에는 이 윤곽선을 강조하여 사진의 선예도를 올리는 종류도 있는데 일반 현상약중에는 가장 강력한 조립자 현상약인 아그파의 로디날(Rodinal)이 선예도를 높이는 점에서도 제일 강한 효과가 있다. 코닥의 HC-110 은 로디날 만큼 강한 효과는 없지만 적당한 선예도와 고른 톤을 내주는 우수한 현상약이다. 따라서 선명한 사진을 얻기 위해서 '저감도 필림'을 '조립자 현상액'으로 처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며 부드러운 분위기의 사진을 얻기 위해서는 '중감도 필림'을 미립자 현상약으로 처리하면 독특한 묘사를 얻을 수 있다.

한편 거친 입자가 두드러지는 조립자 사진을 원하는 사람은 '중감도 필림'이나 '고감도 필림'을 '조립자 현상약'으로 처리하는 것이 가장 뚜렷한 효과를 볼 수 있다.

 

(세가지 사진의 실제 예)

 

특수한 현상약중의 하나인 '피로갈롤(Pyrogallol;또는 줄여서 피로(pyro)라고 부르기도 한다)'은 윤곽선 효과도 크고 독특한 착색막 효과도 가지고 있어서 어떤 형태의 하이라이트(high light)도 쉽게 다룰 수 있는 우수한 약품이지만 독성이 심하고 온도에 민감하며 그나마도 국내에서는 구할 수가 없어 개인적으로 조제하여 사용해야 한다. 또 이 피로(pyro)현상약은 배합 방법에 따라 특성이 다양하게 변하기 때문에 서양의 많은 작가들이 나름대로 조제하여 자기만의 비방으로 애용하였는데 그 중 에드워드 웨스턴(Edward Weston)의 ABC Pyro가 제일 유명하다.

현재 내가 사용하고 있는 현상약은 미국의 사진 작가 골든 허칭스(Gorden Huchings)가 새로 처방한 피로(Pyro) 계열의 현상약인 PMK와 아그파의 로디날(Rodinal) 이며 PMK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별도의 장에서 언급하겠다.

 

보기에도 시원할 정도의 선명한 사진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절한 크기의 입자와 강한 윤곽선 효과 그리고 풍부한 톤이 종합적으로 표현 되어야 한다. 이런 것을 무시하고 기계적으로 작은 입자만을 추구한다면 원하는 효과가 결코 얻어지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선명한 사진' 과 '입자가 고운 사진'은 서로 같지 않은 것이다.

 

최종적으로 인화되는 크기도 생각해봐야 하는데 8X10으로 완성한 사진과 16X20으로 완성한 사진은 입자에 대하여 고려해야 될 점이 달라질 수밖에 없게 된다. 8X10 사이즈의 인화에서 사진이 선명하게 보였다고 해서 16X20으로 확대한 뒤에도 선명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다소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45분 현상소에 뽑아주는 3X5 사이즈의 사진을 보면 왠만한 카메라의 흔들림, 초점 이동, 입자의 거칠음 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사진들도 8X10

정도로 확대하면 위와 같은 문제가 한눈에 보이게 되는 것이다.

 

(네가티브 크기 비교 사진)

(선명도 비교 사진 , 부분 확대, 35미리, 중형, 대형)

11. 필림의 종류

빛의 삼원색인 빨파초(RGB; Red, Green, Blue)에 모두 반응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흑백 필림이며 전색성 (Panchromatic film) 필림이라고 부른다. 전색성(panchromatic ; pan=모든, chromatic= 색깔) 필림은 그 특성에 따라 다시 A,B,C세 종류가 있는데 오늘날에는 B형(type B) 만 생산 되고있다. B형은 아래에 나오는 특성 곡선에서와 같이 녹색에 대한 감광도가 적색이나 청색에 비해 약간 적은데 이 때문에 풍경 사진을 찍을 때 녹색의 숲이나 나뭇잎이 생각보다 어두운 톤으로 나오게 된다. 이런 경우에 눈으로 본 톤과 근사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중간 정도의 노란색 필터(#8 번)를 사용하여 촬영하면 된다. 한편 실내광은 자연광보다 노란색 파장의 빛이 더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필터의 효과가 약해져서 #11번 정도의 진한 노란색을 사용하여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용도의 사진 작업에서는 이 두 가지 광원에 대한 필터를 구지 구분하여 사용할 필요는 없고 #8번이나 #11번 중 한가지로 통일하여도 큰 지장이 없는 것 같다.

칼라로 되어 있는 피사체를 흑백으로 표현할 때 재현 되어야 하는 톤의 정도를 정확하게 추정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기 때문에 어느 필터의 효과가 맞는 것인지 엄밀하게 말하기는 힘든 점이 있는 것이다 .

 

정색성 필림(Orthochromatic film; Ortho = 정상, Chromatic = 색깔)은 한 세대 전에 사용하던 것으로 청색과 녹색의 빛에는 반응하지만 적색의 빛에는 반응하지 않는 필림이다. 이 필림은 나름대로의 용도가 있는데 주로 광고 사진에서 남성의 인물 사진용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그 이유는 정색성 필림이 붉은 색의 파장에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의 피부를 검고 거칠게 만들게 되고 이것이 남성의 인물 사진에는 의외로 적합한 표현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재 생산되고 있는 정색성 필림은 이름 뒤에 Ortho라는 접미사가 붙어서 일반 필림과 구분된다. (예; Tri-X Ortho)

참고로 '정색성' 이라는 명칭은 Ortho= 정상, Chromatic=색깔 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번역한 것인데 지금의 기준에서 보면 다소 엉뚱해 보이는 뜻으로 들린다. 정색성 필림이라는 말은 사진 발명 초기의 필림들이 청색광에만 반응하였던 것에 비교하여 이 필림은 청색과 녹색에 반응하기 때문에 보다 올바른, 또는 정상적인 (Ortho) 색깔의 필림이라 불렀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그러나 이제 삼원색에 모두 반응하는 전색성(Panchromatic)필림이 나온 지도 반세기가 넘었으니 정색성 필림은 그 명칭이나 특성이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것이다. 구지 이해하기 쉽게 의역하자면 이색성 필림(청색, 녹색만 반응)이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전색성, 이색성, 적외선 필림의 특성 곡선)

(전색성 필림 B형의 녹색 스팩트럼 반응 부분)

 

적외선 필림(Infrared film)은 우리 눈에는 반응되지 않는 광선에 반응하는 필림이며 그래서 이 필림을 쓸 때는 그 효과를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러나 이런 특성이 바로 이 필림의 강점이자 매력이기도 한데 예측할 수 없는 아주 특이한 분위기의 사진을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적외선 필림을 계속 사용하여 경험이 쌓이다 보면 그 효과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를 수도 있는데 알맞은 소재에 적절히 사용되었을 경우에 반추상에 가까운 독특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적외선 필림은 현재 코닥에서 HIE라는 이름으로, 코니카에서는 '코니카750' 이라는 이름으로 생산되는데 같은 적외선 필림이라고 하여도 두 필림의 특성은 상당히 많이 틀리기 때문에 도저히 같은 계열의 필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다.

코닥의 적외선 필림은 항상 암실에서 다루어져야 하므로 야외에서 필림을 넣고 뺄 때는 암백을 준비해야 한다. 촬영할 때는 빨간색 필터(#25 번)를 사용하여야 하며 카메라에 내장된 노출계의 감도를 ISO200으로 놓고 사용한다. 그런데 카메라의 노출계는 가시광선에 반응하는 것이지 적외선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서 노출계를 액면 그대로 믿으면 안된다. 보통은 노출계의 지시대로 찍고 중요한 장면인 경우엔 한 단계 노출 증가와 한 단계 감소로 브라케팅(bracketing)하여 찍어야 한다.

코닥에서 발행되는 자료를 보면 이 적외선 필림의 감도를 ISO50에서 시작하여 테스트를 하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틀린 자료이다. 카메라에 노출계가 내장되기 이전에 만들어진 자료를 지금까지 고치지 않고 쓰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 아닌가 싶은데 손에 드는 노출계를 사용할 경우에는 ISO50으로 놓고 노출을 잰 다음 카메라의 필터(#25, 노출을 두 단계 더 줘야 한다)를 고려하지 않고 그대로 찍으면 적정 노출이 되게 된다. 그러나 카메라에 내장된 노출계는 필터의 영향을 고려하여 처음부터 노출을 두 단계 이상 올려서 지시하게 되므로 ISO50으로 찍으면 총알도 뚫기 힘들 정도로 진하고 두꺼운 네가티브가 되어 버린다. 요즈음 세상에 노출계가 내장되어 있지 않은 카메라가 얼마나 있을 것이며 또 손에 드는 노출계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필터의 노출 배수를 계산해 주는 것이 습관화 되어있는 사람들이 일부러 그것을 무시하고 노출을 잡아야 한다니 이런 억지가 어디 있는가? 적외선 필림에서 정확한 감도를 정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테스트의 출발점을 ISO50이 아닌 ISO200으로 바꾸는 것은 이 필림을 처음 사용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꼭 필요한 일이다.

 

한가지 더 주의해야 할 점은 요즈음 나오는 카메라에 장치되어 있는 자동 감도 감지 장치(DX Code Reader)는 이 필림에서는 동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림에서와 같이 적외선 필림통에는 감도를 표시해 주는 표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캐논의 EOS계열등 일부 기종은 필림의 진행 상황을 적외선으로 감지하는 장치가 내부에 장착되어 있어 심각한 양의 적외선을 방출하면서 필림을 망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카메라가 적외선 필림을 사용할 수 있는 기종인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카메라 뒷 뚜껑에 나있는 작은 창은 경험상으로 볼 때 안전하다.

적외선 필림을 사용하기에 제일 편리한 기종은 구형 기계식 카메라들이다. 이런 기종들에는 실수를 유발시키기 쉬운 자동 감도 감지 장치(DX Code Reader)도 없고 적외선 감지기도 없으며 기분이 찝찝한 뒷쪽 창문도 달려 있지 않고 무엇보다도 렌즈에 적외선 촛점 표시가 되어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신형 AF 렌즈에는 이런 표시가 되어 있는 것이 극히 드믈다. 그리고 브라케팅을 자주 해야 되는 사람에겐 수동으로 노출을 맞추는 기계식 카메라가 전자식 자동 노출 보다 헐씬 더 편리하다. 기계식 카메라는 조리개나 샷타를 돌리면 바로 브라케팅이 되지만 자동 노출 카메라는 +,- 표시로 되어 있는 다이알을 돌려야 하며 한번 촬영한 뒤에 이 다이알을 0 상태로 다시 돌려놓지 않으면 다음 장면에서 노출이 엉뚱하게 들어가기 때문이다.

 

(DX Code Reader와 적외선 필림통)

(신형과 구형 렌즈의 적외선 표지)

 

코니카의 적외선 필림은 ISO25로 사용하고 일반 필림과 같이 카메라에 넣거나 뺄 수 있다. 암백이 필요 없다는 것은 편리한 점이긴 하지만 감도가 너무 낮고 거기다가 #25번 필터의 노출 배수를 두 배 정도 적용하면 한낮에도 삼각대를 써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코닥의 적외선 필림에 비하면 입자가 곱게 나오기는 하지만 콘트라스트가 지나치게 강하게 나온다.

그런데 코니카750 필림은 현상 시간이나 현상약의 희석 비율을 바꾸어도 콘트라스트 조절이 잘 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입자는 작지만 전체적인 묘사는 단조롭고 강하게 나오기 때문에 코닥의 HIE 필림에 비하여 쓰임새가 적은 편이다.

 

반면에 코닥의 적외선 필림 HIE는 사용하는 필터에 따라서 또 노출량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의 사진이 나오며 독특한 분위기와 고유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어 개인적으로는 암백을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HIE를 애용한다.

(코닥 HIE 특성 곡선)

(코니카 750 특성 곡선)

(#25 필터 특성 곡선)

(적외선 사진 예, 코닥과 코니카)

 

감도에 따른 분류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필림은 모두 전색성(Panchromatic) 필림이며 이를 다시 종류별로 분류할 때는 감도의 높고 낮음에 따라 '저감도 필림', '중감도 필림', '고감도 필림'등과 같이 대략 3가지로 분류하는 것이 간단하고 좋다. 이 중에서 '저감도 필림'은 구지 세분하자면 다시 ISO25 정도의 아주 입자가 작은 계열(1 그룹)과 ISO100 정도의 일반적인 용도에 사용하는 계열(2 그룹)로 나눌 수도 있다.

 

이런 것은 단지 용어의 차이일 뿐인데 ISO25 계열을 '초 저감도', ISO100계열을 '그냥 저감도'와 같이 따로 구분 할 수도 있겠지만 공연히 어려워 보이게 복잡한 분류를 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ISO25필림과 ISO100필림의 사진은 느낌 상 그리 큰 차이가 없다. 아마도 사진가가 자신이 사용한 필림의 감도를 인화지 밑에 적어 놓지 않는다면 보는 사람이 알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사진가의 입장에서는 이 두 계열의 필림을 구지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한 일이다. 반면에 ISO100필림과 ISO400필림은 어느 정도(약 11X14 정도) 확대된다면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느낌상의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ISO100계열과 ISO400 계열은 한데 묶어서 생각할 수 없는 종류이다..

 

(입자 비교, 부분 확대 APX25, DELTA100, TRI-X400, T-MAX32OO 사용한 현상약, 확대된 부분)

 

저감도 필림( 1 그룹) ; 아그파 APX25, 코닥 Technical Pan 필림 감도가 ISO25정도인 필림을 말한다. 매우 고운 입자를 가지고 있고 해상력도 뛰어나나 콘트라스트가 강하게 나온다. 즉 중간 톤이 풍부하지 못하고 희거나 검게 치우쳐서 나타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필림을 사용할 때는 콘트라스트를 높지 않게 유지하면서 어두운 곳의 세부 묘사를 충분히 살릴 수 있도록 해주는 기술이 필요하다.

아그파의 APX25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필림 중 가장 감도가 낮은 필림일 것이다. 감도가 ISO25에 불과하고 입자도 대단히 작다. 감도가 너무 낮아 사용에 불편이 따르지만 입자의 크기를 줄이는 것이 중요한 사람에게는 이 필림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이렇게 낮은 감도의 필림은 다른 어떤 요인보다 카메라의 떨림이 나쁜 영향을 주게 된다. 입자가 아무리 작더라도 흔들린 사진이 되어 버린다면 이런 저 감도의 필림을 쓸 이유가 전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삼각대를 사용하여야 이 필림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성능을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필림을 미립자 현상액으로 처리해서는 곤란하다. 실질적인 감도를 ISO16이하로 떨어트릴 뿐 아니라 선명도도 크게 홰손되기 때문이다. 이 필림의 입자는 충분히 작게 되어 있으므로 강력한 선예도와 윤곽선 효과를 가지고 있는 조립자 현상약으로 처리하는 것이 보다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APX25가 코닥의 테크니칼 팬(Technical Pan)과 다른 결정적인 점은 APX25는 일반적인 용도(중간 톤이 있다)로 제작된 필림인데 반하여 테크니칼 팬은 특수 용도(중간 톤이 전혀 없다)로 만들어진 필림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테크니칼 팬이 가지고 있는 단점인 지나치게 높은 콘트라스트도 없고 일반 현상약으로 일반 필림처럼 처리하여 테크니칼 팬에 못지 않은 해상력과 작은 입자를 얻을 수 있다.

 

코닥의 Technical Pan은 아그파의 APX25보다 더 작고 고른 입자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필림은 특수한 용도에 맞게 제작된 것이라 일반적인 사진에는 잘 맞지 않는다. 이 필림의 원래 용도는 문서 보관실 같은 데서 사용하는 '마이크로 필림'인데 책 한 페이지를 손톱만한 크기의 필림에 담아야 하므로 엄청나게 작은 입자를 가지고 있고 흑백의 콘트라스트도 아주 높게 되어있다. 그렇지만 이런 특징은 흰 종이에 검은 글씨가 쓰여져 있는 책을 복사하는데는 좋지만 중간 톤이 풍부하게 분포되어 있는 일반 사진을 찍는데는 도통 맞지를 않는다. 이 필림을 일반 현상약으로 처리하면 하이라이트가 완전히 막혀 버리는데 그 정도는 현상 시간을 줄여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헐씬 넘어서는 것이다. (N+4 이상의 높은 콘트라스트가 나온다)

그래서 이 필림을 사진 작업에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은 콘트라스트를 줄이는 나름대로의 비방을 생각해 두어야 한다. 실재로 코닥에서 나오는 전용 현상액을 사용하면 그런대로 일반 필림과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는 있다.

또는 로디날 현상약을 1:200정도로 묽게 희석한 뒤 필림 현상시에 교반 횟수를 줄여 중간 톤을 낼 수도 있다. (이와 같이 일반 현상액의 희석 비율을 매우 높이는 극단적인 처리 방법은 아무 현상액이나 되는 것이 아니고 화학적 활성 에너지가 매우 높은 현상액이어야 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일반 사진용으로 제작된 필림이 아니어서 이 필림으로 아름다운 톤을 내는 것은 실재로 무척 어렵다.

 

저감도 필림(2 그룹) ; 코닥 Plus-X, 코닥 T-max100, 일포드 델타100,일포드 FP4, 일포드 Pan F. 왕년에는 저검도 필림중에 ISO50정도 되는 필림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T-max와 Delta 시리즈 필림이 나온 이후 이 정도 감도의 필림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그대신 감도가 ISO100인 T-max100 과 Delta100이 이 필림들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현재 생산 되는 필림은 일포드의 Pan F 정도일 것이다. ISO100 에 해당하는 필림들은 개인적으로 그다지 많이 사용해보지는 않았다. 이 필림을 사용할 때의 문제점은 원하는 샷타 속도를 얻기가 힘들어서 인데(이것은 물론 각자의 장비 구성에 따라 틀리다) 4X5 카메라로 풍경 사진을 주로 찍는 나로서는 f64 나 f45 정도의 조리개를 사용할 때 ISO100의 감도로는 샷타 속도가 너무 느리게 나와 피사체가 흔들린 사진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4X5 카메라로는 ISO400 계열의 필림을 사용하여도 매우 선명한 사진이 나오기 때문에 구지 ISO100을 사용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한편 35미리 카메라로 촬영할 경우에는 번거로운 삼각대를 사용하지 않기 위하여 ISO100보다 높은 감도의 필림을 선호 한다. 그리고 35미리 사진에서는 선명도 같은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차라리 적절한 정도로 입자를 내서 사진의 분위기나 느낌을 다르게 표현하는 것도 좋다. 한마디로 나한테는 좀 어중간한 편이어서 그동안 즐겨 쓰지 않았지만 구지 이 종류의 필림을 꼽자면 일포드 델타100이 좋은 필림으로 추천 할 만 하다.

중감도 필림 ; 일포드 HP5, 일포드 델타400, 코닥 Tri-X, 코닥 T-max400, ISO400 부근의 필림을 말한다. 입자는 굵어지지만 흑백의 톤이 부드럽고 풍성하게 묘사되기 때문에 흑백 사진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어두운 부분의 세부 묘사도 뛰어나고 현상 조절에 잘 반응하여 특히 표준 현상 시간 보다 적게 주는 N- 현상을 할 때 부분 계조(local contrast)를 잘 보존해 준다. 이 분야에서는 다큐멘타리 사진의 표준처럼 정착되었던 전설적인 코닥의 Tri-X필림이 단연 뛰어나다. 요즈음은 코닥의 신제품 T-max 400, 일포드의 델타 400이 시장을 놓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내가 제일 많이 사용하는 필림이 ISO400인 필림이다. 이 필림을 ISO200으로 사용하여 필림 현상 시간을 10~15% 줄이면 입자도 어느 정도 줄어들고 무엇보다도 아주 풍부하고 보기 좋은 톤을 내주기 때문에 사진에 깊이를 더하게 된다. 그리고 4X5 정도의 필림에서는 이 정도의 필림과 조립자 현상약(로디날)으로도 매우 선명한 영상이 얻어지기 때문에 더 이상 다른 선택을 할 여지가 없지만 35미리 사진에서는 아무래도 입자가 눈에 띄게 된다. 이럴 때 입자를 다소라도 감추려면 미립자 현상약을 사용해야 하지만 나는 아예 조립자 현상액으로 처리하여 노골적으로 거친 입자를 만들어 낸다.

 

고감도 필림 ; 코닥 T-max 3200, ISO1000이상의 필림을 말한다.

이 분야의 필림은 과거에는 생산되지 않았거나 생산이 되었어도 일반적인 용도의 사진에 사용하기에는 너무나 입자가 조악하고 거칠었기 때문에 '특수 필림'에 해당하였지만 코닥이 T-max3200을 내놓은 이후 거친 입자를 표현하는 사진가들에게 즐겨 사용되기 시작 되었다. 이 종류의 필림은 다른 종류의 필림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와 묘사력을 가지고 있어 창조적인 기법을 선호하는 사진가에게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다.

T-max 3200필림은 입자가 거친 고감도 필림이다. 하지만 T-max 답게 감도가 3200이나 되는데도 왕년에 감도 1600정도로 나왔던 필림 보다 더 작은 입자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감도 400 필림에 비하면 아주 큰 편이다. 조립자로 표현되는 사진은 선명한 사진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와 매력이 있다.

인상 주의 화가인 '쇠라'의 그림과도 같은 묘사를 하여 주는데 이런 효과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더 없이 좋은 필림이다.

 

(조립자 사진의 예)

 

[번 호] 14 / 21 [등록일] 1998년 06월 01일 10:10 Page : 1 / 28

[제 목] [닮산] 노출의 결정 1

 

 

노출의 결정

 

사진가 들이 흔히 사용하는 말 중에 '적정 노출'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이 적정 노출이라는 말 만큼이나 애매 모호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말도 드물다. 적정 노출이란 과연 어떤 노출을 말하는 것인가? 노출계가 지시하는 대로 따르는 것이 적정 노출인가? 아니면 노출계의 지시를 따르되 역광인 경우엔 두 단계 정도 노출을 더 준다... 는 정도면 적정 노출을 주는 것인가?

 

'적정 노출'이라는 말은 사실 정의하기 무척 어려운 말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상황에서 적절한 노출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적정하다'라는 말속에는 너무 많은 변수가 들어있는 것이다. 이것은 앞장에서 언급한 '노출계의 딜레마'와 같은 예기인데 노출계는 무조건 중간 회색을 나타내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노출계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면 작가가 의도했던 바와는 영 다른 사진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게 되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적정 노출'이란 작가가 원하는 내용이 원하는 만큼 표현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정의하고 나면 각자의 작업 방법이나 재료의 차이, 그리고 작업 의도에 따라 노출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게 된다. 어떤 한가지 상황에서도 그것을 어두운 톤으로 해석하는 사람과 밝은 톤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고 이런 경우엔 의도에 맞는 노출이 서로 틀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가지 타협할 수 있는 것은 네가티브의 농도를 세부 묘사가 가능한 범위 이내로 제한하여 놓으면 여기에서 어느 부분을 생략하거나 과장하는 것은 인화 과정에서 쉽게 이루어 질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작가의 의도상 강한 콘트라스트를 가지는 사진을 만들고 싶었다 하더라도 일단은 필림을 '가장 톤이 풍부'하게 만들어 놓고 인화하는 과정에서 이를 얼마든지 조절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자신이 사용하는 약품과 방법을 따라 현상하여 가장 풍부한 톤을 가진 네가티브가 나온다면 일단은 노출이 적정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네가티브에는 상당한 양의 내용(detail = 세부 묘사)이 수록되어 있으며 지나치게 높거나 낮은 농도를 가진 부분이 없을 것이다.

 

물론 톤이 풍부하다고 해서 반드시 호소력 있는 내용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네가티브 자체를 자신의 의도에 따라 과장하거나 생략하여 만들면 인화 과정에서 조절할 수 있는 여지가 없어지게 된다. 예를 들어서 처음부터 '음울하고 우수에 젖은 분위기를 내보자'는 의도에서 노출을 적게 주고 네가티브를 엷게 만들었다면 사진은 원한 대로 검게 묻힌 그늘과 짙은 회색의 톤으로 나올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마음이 변하여 어두운 부분의 세부 묘사를 좀 살려 보려고 하면 그때는 잘 되지를 않는 것이다. 이런 경우의 네가티

브는 농도가 지나치게 엷게 나오기 때문에 피사체의 어두운 부분이 찍힌 곳은 아무런 내용도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이렇게 된 필림을 가지고 나중에 세부 묘사를 살릴 길은 전혀 없다.

 

많은 사진가들이 암실에서 인화의 톤을 바꾸기 위하여, 또는 세부 묘사를 살리기 위하여 가려 굽기(Burning)를 하거나 또는 부분 가림(Dodging)을 하면서 애를 쓰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 자신의 네가티브를 먼저 확인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노출 부족으로 인하여 네가티브 자체가 적절한 농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이것을 가지고 아무리 절묘하게 가려 굽기를 한다 하더라도 인화지에서 세부 묘사(detail)를 만들어 낼 수가 없는 일이다. 또한 밝은 부분의 농도가 지나치게 높아 빛이 투과하지 못할 정도로 짙은 필림을 가지고 있다면 아무리 가려 굽기를 하여도 그 곳에서 세부 묘사가 나올 리도 만무한 것이다. '무에서 유가 창조되지 않는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자 팔만 대장경 어느 쪽엔 가도 실려있어 만대에 민멸치 아니하고 인구에 회자되는 내용이 아니던가? 그러나 반대의 경우 즉 세부 묘사가 살아있는 네가티브를 가지고 인화지에서 세부 묘사가 나오지 않게 인화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인화지의 호수를 다소 올린다거나 가려 굽기(Burning), 부분 가림(Dodging)을 약간 하면 쉽게 세부 묘사를 없앨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비록 작가의 의도가 그대로 반영된 네가티브를 만드는 것이 가장 '적정한 노출'이라고는 하지만 일단은 가장 '풍부한 농도'를 만들어 내는 것이 '적정 노출'이라고 가정하고 넘어 가도 무방하리라 생각한다. 이런 네가티브를 가지고 의도한 대로 톤을 조정하는 것은 사진가가 예술가로서 가질 수 있는 재량권인 셈이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부분 가림'이나 '가려 굽기'같은 암실 기법은 망친 네가티브를 살려내는 기술이 아니다. 이것은 잘 만들어진 네가티브를 최적의 조건으로 조정하여 고품질의 인화를 하는 기술인 것이다. 그러므로 필림을 현상하는 과정은 대충 해버리고 인화하는 과정에서 온갖 기술을 동원하여 사진을 '만들어 내는'것은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다. 먼저 완벽한 상태의 네가티브를 얻은 다음 세부적인 암실 기법으로 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노출의 측정

필림에 노출을 준다는 것은 어느 정도 양의 빛을 어느 시간 동안 주는가 하는 것이다. 노출은 어떤 기종의 카메라이던 단 두 가지 변수, '조리개'와 '샷타 속도'로 조절 되게 되어 있다. 따라서 먼저 조리개가 어떤 것인지 샷타는 무엇인지 알아 보는 것이 필요하다.

 

조리개

조리개는 렌즈 내부에 들어 있는 얇은 금속 판으로서 빛이 들어 오는 양을 조절하게 되어 있다. (극히 드물긴 하지만 조리개가 렌즈 내부가 아니라 렌즈 앞에 설치되는 경우도 있다. 예; 로덴스톡(Rodenstock)의 이마곤(Imagon))

 

아래 그림은 두 가지 형태의 렌즈 조리개를 보여 주는데 비교적 오래된 렌즈에는 그림 1과 같은 원형의 조리개가 붙어 있고 신형 렌즈에는 그림 2와 같이 오각형 형태의 조리개가 붙어 있다. 가장 희귀한 예의 조리개는 아마도 1974년에 칼 짜이스(Carl Zeiss)에서 생산된 플라나(Planar) 85mm f1.4 렌즈에 붙은 것일 것이다. 이 렌즈는 짜이스가 직접 만든 마지막 카메라인 콘타렉스(Contarex) 벌스아이(Bullseye)라는 카메라에 사용되는 것인데 전무 후무 하게도 삼각형의 조리개가 붙어 있다.(이 기종 이후 짜이스는 카메라 사업을 포기 하였고 그 후 콘탁스(Contax)라는 상표 명을 일본의 야시카에 빌려 주게 된다.)

 

조리개의 모양 자체는 렌즈의 성능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다만 조리개에서는 렌즈의 조절 링을 한 단계씩 움직였을 때 정확하게 면적이 두 배로 또는 반으로 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부 값 싼 렌즈의 조리개는 특히 조리개를 많이 조였을 때 면적이 정확하게 반으로 줄어들지 않는 경우가 있다. 사진 자체에서 볼 수 있는 조리개 모양의 영향은 배경의 밝은 점이 흐려질 때 원형으로 나오느냐 오각형(또는 삼각형!)으로 나오느냐는 것 정도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특정한 형태의 모양을 더 좋아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겠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사진의 멋스러움을 크게 좌우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림 1. 원형 조리개 렌즈, 라이카(Leica) 엘마(1954년), 캐논 (1962년))

(그림 2. 오각형 조리개 렌즈)

(그림 3. 조리개 값과 조리개 크기 비교)

 

조리개 조절 링은 한 눈금이 변할 때 마다 빛의 양이 두 배가(또는 반으로) 되도록 정해져 있다. 조리개가 5.6에서 4로 변하면 빛이 두 배로 많아지고 5.6에서 8로 변하면 반으로 줄어든다. 그리고 기종에 따라서 한 눈금이 다시 2등분 또는 3등분으로 세분되어 정밀한 조절이 필요한 경우에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림. 슈퍼 안규론의 눈금, 니콜의 눈금)

 

조리개의 단계 1 1.4 2 2.8 4 5.6 8 11 16 22

조리개 단계f 1 1/2 1/4 1/8 1/16 1/32 1/64 1/128 1/256 1/512

빛의 양

 

35미리 카메라에서 사용되는 조리개의 단계는 위의 숫자와 같이 되어 있으며 숫자가 한 칸씩 증가하면 빛의 양은 1/2로 줄어든다. 여기에서는 조리개 값을 f22까지 표시하였지만 대형 카메라의 렌즈는 보통 f45에서 f64정도까지 조여지며 렌즈에 따라 f128까지 조여 지는 것도 있다.

 

조리개 눈금 표시가 위와 같이 이상한 숫자로 되어 있는 데에는 수학적인 의미가 있다. 먼저 어떤 상태에서 조리개가 열려 있는 면적이 1이었다고 가정 하였을 때(단위는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들어오는 빛의 양을 반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조리개가 열려 있는 '면적'을 반으로 줄이면 된다. 그러면 면적을 반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지름을 얼마로 줄여야 하겠는가? 당연히 지름은 1/root2로 줄어야 한다.

 

즉 한 눈금 조임 = 빛의 양이 반으로 줄어듬 = 조리개가 열린 면적이 반으로 줄어듬 = 지름 1/root2 = 1/1.414

 

여기에서 1/1.414의 역수를 취하고 소수점 한자리만 표시하여 1.4가 된 것이 바로 표의 두 번째 칸에 나와있는 조리개 값이다. 그러므로 면적이 1인 상태를 조리개 수치 f1이라고 하면 빛의 양이 반이 되는 그 다음 조리개 수치는 f1.4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조리개 f1.4의 다음 조리개는 빛의 양이 다시 반으로 주는 것이고 이것은 조리개 f1에서 생각하면 1/4로 주는 것이므로 제곱근을 취하면 1/2이 된다. 이것을 역수로 표시하여 조리개 f2가 되는 것이다. 그 이하의 조리개 값도 모두 이와 같이 계산하여 나온 값이다.

그렇다면 "왜 역수를 취한단 말인가?"하고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을 터인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조리개 링이 비좁아 분수를 표시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수로 되어 있는 숫자보다는 분모만 외우는 것이 헐씬 더 쉬울 거라고 학자들이 친절을 발휘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 조리개 값이 f1 이라는 것도 의미가 있는 단위이다. 조리개 f1은 렌즈에서 나오는 빛의 밝기가 렌즈로 들어가는 빛의 밝기와 같다는 의미이다. 즉 렌즈로 입사하는 빛이 100Lux일 때 렌즈에서 나오는 빛도 100Lux가 되면 조리개 값이 f1인 것이다.

 

샷타(Shutter)

샷타는 카메라나 렌즈에 장착되어 빛의 경로를 막고 있다가 사진가가 샷타 릴리즈(Shutter Release)를 누르면 정해진 시간 만큼 열려지면서 필림에 빛을 감광시키는 기구이다. 카메라 몸체에 들어가 있는 것은 주로 포칼프레인 샷타(focalplane shutter)이고 렌즈에 내장된 샷타는 리프 샷타(leaf shutter) 또는 그냥 렌즈 샷타(lens shutter)라고 부른다. 예외적인 경우로 카메라 몸체에 리프 샷타가 장착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엔 비하인드 샷타(behind shutter)라고 부르고 획트렌더(Voigtlander)의 베사매틱(Bessamatic)과 코닥(Kodak)의 레티나후렉스(Retinaflex)가 이에 해당된다.

 

포칼프레인 샷타는 다시 헝겊 막이 좌 우로 움직이는 방식과 금속 막이 상하로 움직이는 방식이 있는데 오늘날에 생산되는 35미리 카메라는 모두 후자의 방식을 택하고 있다. 35미리 카메라에서 샷타를 상하로 움직이면(거리; 24mm) 좌우로 움직이는 것(거리;36mm)에 비하여 주행 거리가 짧아지기 때문에 그만큼 고속의 샷타 속도를 얻는데 유리하다.

한편 상하 주행 방식은 얇은 금속 막을 여러 장 겹쳐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헝겊 막 샷타에 비하여 내구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합금 기술이 발달하여 이런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다.

 

렌즈 샷타는 렌즈의 몸통 안에서 조리개 날개 바로 앞에 설치되며 스프링의 힘으로 샷타 날개가 열렸다 닫히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고속의 샷타 속도를 얻을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보통은 1/500초까지 속도가 나오고 몇몇 고급 기종에 한하여 1/1000초까지 나오는 것도 있다. 이 방식의 장점은 원래 모든 샷타 속도에서 후레시가 동조 된다는 것이었다. 구형 포칼프레인 샷타는 대게 1/60초까지만 후레시 동조가 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요즈음의 35미리 카메라에서는 1/250초까지 후레시 동조가 되는 포칼프레인 샷타를 흔히 볼 수 있으므로 이런 장점은 거의 사라진 셈이다. 하지만 중형이나 대형 카메라에서는 아직 렌즈 샷타를 많이 쓰고 있다. 중형이나 대형 카메라는 필림의 면적이 넓기 때문에 포칼프레인 샷타를 설치할 경우 주행 거리가 길어져 빠른 속도를 얻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림 포칼프레인 샷타)

(그림 렌즈 샷타)

 

샷타도 조리개와 마찬가지로 빛의 양을 1/2씩 줄여나가는 것을 기준으로 각각의 단계가 정해 지는데 아래의 표에 그 일부를 표시 하였다.

 

샷타 속도의 단계

1 2 4 8 15 30 60 125 250 500 1000

1 1/2 1/4 1/8 1/16 1/32 1/64 1/128 1/256 1/512 1/1024

샷타 속도의 경우도 역수를 취하여 각 단계를 표시한다. 그래서 샷타 속도가 4이라는 것은 4초가 아닌 1/4초를 의미하고 만약 샷타 다이알에 4초를 표시해야 할 때에는 색깔을 다르게 하거나 (예를 들어 일반적인 속도는 흰색으로 숫자를 쓰고 1초를 넘어가는 속도는 황색으로 표시하는 식이다) LCD 표시창을 쓰는 전자식 카메라에서는 숫자 뒤에 따옴표를 붙여서 4"와 같이 표시 한다. 그러므로 숫자가 한단계 커지면 (60에서 125로) 빛의 양이 반으로 줄어들고 한단계 작아지면 (60에서 30으로) 두 배로 늘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1/15초 이하는 숫자를 단순하게 하기 위하여 대략의 값으로 표시되어 있다.

 

오늘날에는 위와 같은 표시 방법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표준이 되었지만 1950년대까지만 해도 렌즈의 조리개 값이나 샷타 속도를 표시하는 것이 메이커 맘대로였다. 그래서 아래 그림과 같이 60 - 100 - 200 - 500등으로 샷타 속도가 표시되어 있는 기종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샷타 속도가 이렇게 되어 있다고 해서 1/200초와 1/250초의 노출 차이를 계산하느라 고민할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표시를 그렇게 한 것일 뿐이므로 1/200초도 1/250초라고 믿고 쓰면 된다.

 

(신형 다이알)

(구형 다이알)

 

조리개와 샷타 속도의 조합

이와 같이 조리개와 샷타는 정확하게 1/2씩 빛의 양을 조절해 주므로 어떤 상황에서 노출이 1/60초에 f5.6으로 주어 졌다면 이것을 1/125초에 f4로 바꾸거나 1/30초에 f8로 바꾸어도 동일한 노출이 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샷타 속도 15 30 60 125 250

조리개f 11 8 5.6 4 2.8

 

위의 네 가지 노출은 필림에 감광되는 빛의 양을 봐서는 모두 동일한 것이다. 하지만 사진가에게는 여기에 사진의 내용을 바꿀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있다. 예를 들어서 조리개를 열어서(f2.8을 선택) 피사계 심도를 얕게 만들어 배경이 흐려진 사진을 만든다거나, 느린 샷타 속도(1/15초를 선택)를 선택하여 움직이는 물체에 동감을 주는 등의 조절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조리개를 연 사진)

(느린 속도의 사진)

 

노출 지수(EV; Exposure Value)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개념을 더 알아보기로 하자. 빛의 양을 말할 때 '아주 밝다', '밝다`, '어둡다', '컴컴하다'등으로 표현할 수도 물론 있지만 물리학자들이 좋아하는 절대적인 기준(밝음의 척도)을 하나 만들어 두는 것이 여러가지 면에서 유리하다.

이 척도는 카메라에 내장되지 않은 외부 노출계에 반드시 붙어 있게 되는데 비단 노출계를 읽는데 필요한 개념일 뿐 아니라 노출에 대한 근본적인 의미를 규명하는 존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에도 필수적인 것이다.

 

노출 지수 0 1 2 3 4 5 6 7 8

B0 B1 B2 B3 B4 B5 B6 B7 B8

조리개f 1 1.4 2 2.8 4 5.6 8 11 16

샷타 속도는 모두 1초인 경우

 

사진가가 사용하기 위한 밝음의 척도로는 복잡한 물리적인 의미나 단위를 생각할 것 없이 빛의 양이 두 배로 변할 때마다 숫자를 하나씩 증가시키는 간단한 것으로도 충분하다. 이것을 이제부터 '노출 지수(Exposure Value)'라고 부르기로 하자. 단 어떤 개념을 정의하던지 그 출발점이 되는 기준은 필요한 것이므로 여기서는 ISO100 필림을 사용하였을 때 조리개 f1로 1초의 샷타 속도가 나오는 빛의 밝기를 '노출 지수 0'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이것 보다 빛이 두 배로 밝아지면 '노출 지수 1', 반으로 줄어 들면 '노출 지수 -1' 등과 같이 만들어 나간다.

 

다시 위의 표를 보면 '노출 지수 6'이란 것이 '빛의 밝기'를 말하는 것이고 그 밝음의 정도는 '조리개 f8에 샷타 속도 1초'로 촬영해야 하는 정도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노출 지수 7' 이라는 것은 '노출 지수 6'보다 두 배 밝은 빛을 말하는 것이므로 이때는 '조리개 f11에 1초'로 촬영을 하거나 또는 '조리개 f8에 1/2초'로 촬영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노출 지수'라는 개념은 아주 단순한 것이다. 그런데 이 노출 지수를 헷갈리고 어렵게 만드는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노출 지수가 0, 1, 2, 3...등의 숫자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노출 지수 7'이 '노출 지수 6'보다 두 배 더 밝다는 사실을 얼른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보통은 "빛이 7/6만큼 더 있다는 소리인가???"는 식으로 애매하게 생각하기가 쉽다.

사실은 노출 지수에서의 숫자 0, 1, 2, 3....등은 그 자체로서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 원한다면 이 숫자를 100부터 시작할 수도 있고 숫자 대신 '가나다라...'나 'ABCD...'를 써서 표기해도 상관없다. 즉 이 숫자들은 어떤 값을 나타내는 '수'가 아니고 '이름표'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위의 표에 B0, B1, B2, B3.....와 같이 따로 적어 놓았다. 이렇게 해 놓으면 '노출 지수 B7'이 '노출 지수 B6'보다 두 배 더 밝다는 개념을 혼동하지 않게 된다. 여기에서의 B는 Brightness(밝기)의 앞 글자를 딴 것인데 이것은 내가 개인적으로 정의한 것이고 국제 표준은 숫자 표기로만 되어 있다.

아무리 표준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혼란을 가져올 수 있을 때에는 자기에게 맞는 방식으로 고치는 것도 좋은 일이다. '노출 지수'에서 중요한 것은 숫자가 하나씩 늘어나면 빛의 양이 두 배씩(따라서 노출은 반으로) 변한다는 사실 뿐이다.

 

노출 지수의 예(노출계 그림)

그림은 독일 고센사에서 만든 입사식과 반사식 겸용의 노출계이다. 바늘이 가리키고 있는 숫자가 바로 노출 지수이다. 이 숫자를 근거로 다이알을 돌리면 다음과 같은 노출 값을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옆의 그림은 매우 좁은 각도의 노출을 재는 스폿 노출계이다. 측정된 노출은 뒤쪽의 화인더에 노출 지수로써 표시 되기 때문에 이때의 값을 중앙의 점에다 맞추면 노출값이 표시되는 것이다. 한편 카메라에 내장되어 있는 노출계는 노출 지수를 표시하지 않은 채 바로 조리개 값과 샷타 속도 값을 표시해 주도록 되어 있다.

 

노출계가 할 수 없는 것, 평균 노출

(사진, 지수 B10의 노출계)

 

이 사진을 촬영할 때 노출 지수는 10(=B10)이 나왔다. 이것은 ISO100에서 조리개 f5.6에 1/30초로 노출을 주어야 한다는 의미한다. 여기서는 노출계의 지시에 따라 그대로 촬영하였는데 한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피사체가 동일한 밝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어두운 부분은 빛을 적게 받고 있고 밝은 부분은 빛을 많이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 사진의 경우는 인물은 밝은 햇빛 아래 있으므로 많은 양의 빛을 반사하고 있지만 배경은 그늘 속에 들어가서 빛을 적게 반사하고 있다. 따라서 노출계가 노출 지수를 10으로 결정한 것은 이 사진 전체의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에서 렌즈로 들어오는 빛의 양을 측정하여 중간 값을 취한 결과일 뿐이다. 그러므로 인물의 실제 밝기는 B10 보다 높고 배경의 실재 밝기는 B10보다 낮다.

예를 들어 중앙에 있는 인물의 밝기는 B12라 하고 배경의 밝기는 B8이라고 하자. 이 둘 사이의 중간 값은 B10이 된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어 중앙에 있는 인물의 밝기가 B13이 되고 배경의 밝기가 B7이 되어도 노출계는 역시 중간 값인 노출 지수 B10을 가리키게 된다. 나아가 인물의 밝기가 B14, 배경의 밝기가 B6이 되어도 노출계는 중간 값인 B10을 가리킨다. 앞장에서 다루었다시피 인화지는 5단계 이상의 노출 차이에서 세부 묘사를 내줄 수 없다. 제일 먼저 제시한 예에서는 밝기 차이가(B8에서 B12까지) 5단계이므로 이런 경우에는 피사체의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이 적절하게 인화지 상에 묘사되지만 뒤의 경우는 밝기 차이가 7단계(B7에서 B13), 9단계(B6에서 B14)이므로 인화지에서 세부 묘사를 잃고 어두운 부분은 새카맣게, 밝은 부분은 하얗게 씻겨나간 사진이 되는 것이다.(노출계는 항상 중간 회색(18% 반사율)을 나타내도록 만들어 졌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B10이라는 노출 값의 의미는 인물의 흰색과 배경의 검은 색을 혼합하였을 때(마치 물감처럼 혼합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중간 회색이 나온다는 말이다)

노출계가 똘똘하여 이렇게 밝고 어두운 부분의 밝기 차이를 알아서 말해주면 좋으련만 애석하게도 중간 값만 제시할 뿐이니 이런 값을 그대로 따랐을 때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이 적절하게 인화 될 수 있을지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따라서 밝고 어두운 부분이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는 대상을 한 장의 필림에 풍부한 톤을 가지도록 기록하기 위해서는(즉 적정 노출을 주기 위해서는) 단순히 노출계 바늘의 지시를 따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오늘날의 노출계는 놀랄 만큼 정확하여서 노출에서 실패할 우려는 없다고 카메라 업자들은 선전하지만 노출계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기계적인 중간 값'을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말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물론 오늘날의 노출계가 옛날의 '멍텅구리 노출계(Cds meter)'에 비하면 놀랄 만큼 훌륭한 것도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도 작가의 판단력을 대신할 만한 기계는 나와 있지 않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노출계의 종류

노출계는 간단한 전자 회로로서 빛의 양을 재는 기구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노출계가 도대체 어떤 것들인지 아는 것도 노출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므로 이제부터 이를 검토하여 보자.

 

외장형 노출계

외장형 노출계는 손에 들고 쓰는 것이거나 카메라에 장착되어 있는 것 중에서 노출계 수광창이 따로 나있는 것을 말한다.

 

(캐논 7S)

(라이카후렉스(Leicaflex) 스텐다드)

 

이런 노출계는 촬영하는 렌즈와 상관 없이 작은 창을 통하여 일정한 범위(대게 30도 정도)에서 들어오는 빛의 양을 잰다. 그러므로 교환 렌즈를 사용할 때는 정확도가 매우 떨어지게 된다. 즉 망원 렌즈를 장착하는 경우 렌즈는 15도 각도의 범위를 촬영한다 해도 노출계는 30도 각도의 노출을 측정하여 촬영되지 않는 것까지 계산하는 것이다. 또한 광각 렌즈를 사용하는 경우는 매우 넓은 범위를 촬영하게 되는데 이때도 역시 30도 각도의 노출만 측정하므로 그 측정값을 믿기가 어려워진다. 이런 방식의 노출계는 구형 카메라나 값싼 보급형 기종에 장착되어 있다.

 

TTL 노출계

노출을 측정하는 수광창을 따로 내지 않고 카메라의 렌즈를 통하여 화인더로 들어온 빛을 측정하는 노출계이다. TTL이라는 이름은 '렌즈를 통하여(trough the lens)' 측광한다는 의미에서 앞문자만 따서 만든 약자이다. 렌즈를 교환하였을 때 발생하는 오차를 완전히 해결한 우수한 방식이고 대부분의 일안 반사식 카메라(SLR)가 이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요즈음은 화인더에서 빛을 측정하는 대신 반사 거울 밑에서 빛을 측정하는 방식도 많이 보급되고 있다. 그것은 화인더의 대안 렌즈쪽에서 꺼꾸로 들어오는 빛의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더 정확하게 측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TTL 수광 소자의 위치)

 

한편 TTL 방식의 노출계는 외장형 방식과는 달리 화면 전체의 노출을 측정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사진에서 화인더 중앙 부근에 중요한 피사체가 배치된다고 가정하고 중앙 부분을 위주로 노출을 측정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가정은 사실 기념 사진인 경우에는 100% 맞는 예기이고 기념 사진이 아닌 경우에도 상당 부분 맞아 떨어진다.

이런 것을 중앙 중점 측광 방식(Center weighted metering)이라고 부른다. 사진기를 구입할 때 따라오는 사용 설명서를 보면 아래와 같은 그림을 볼 수 있는데 이 그림은 중앙 하단부의 타원을 중심으로 주변으로 갈수록 숫자가 작아지고 있으며 노출을 결정하면서 숫자가 작은 부분은 그만큼 중요시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즉 숫자는 가중치를 의미하고 있다)

니콘 카메라의 화인더에는 촛점을 맞추는 부분 바깥쪽에 좀더 큰 원이 하나 더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원 내부에 있는 이미지에서 노출의 80%를 측정하고 원 바깥 쪽에서 남은 20%를 측정한다는 의미이다. (니콘도 기종에 따라 이 비율이 70:30과 같이 다르게 되어 있는 것도 있다)

 

(중앙 중점1,2)

 

자동 노출 기능

자동 노출(AE ; Auto Exposure) 기능은 TTL 노출계가 발전한 것으로 측정하는 방식은 위에 설명한 내용과 동일하지만 측정된 값을 단순히 표시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렌즈의 조리개나 샷타 속도를 자동으로 움직여 주어서 일일이 손으로 맞출 필요가 없도록 만든 것이다.

여기에는 사용하는 사람이 조리개를 임의로 맞추면 샷타 속도가 변하면서 노출을 맞춰주는 조리개 우선(Aperture priority) 방식과 사용자가 샷타 속도를 임의로 맞추면 조리개가 자동적으로 조절되는 샷타 우선(Shutter priority) 방식이 있다.

 

프로그램 방식

프로그램 방식은 위에서 말한 자동 노출(AE) 기능 조차도 번거롭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만든 것으로 조리개던 샷타던 손댈 필요 없이 카메라가 알아서 맞춰준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미리 입력된 프로그램이 필요한데 예를 들어서 측정된 노출 값이 B11이 나오면 조리개를 무조건 f4로 놓고 샷타 속도는 1/60초로 놓는다는 식으로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프로그램된 내용이 한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샷타를 가능한한 빠른 속도에서 선택한다든지, 조리개를 주어진 조건 안에서 최대한 조인 다던지 하는 식으로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는 기종도 있어서 사용자의 입맛대로 쓸 수 있게 하여 주고 있다. 이 프로그램 방식의 구체적인 명칭이나 동작 방식은 메이커마다 각자 다르기 때문에 여기서 일률적으로 설명하기는 곤란하고 카메라를 구입할 때 따라오는 사용자 설명서를 잘 읽어 보아야 한다.

 

매트릭스 방식

최근에 나오는 자동 촛점 카메라에는 매트릭스 측광(Matrix metering) 기능도 많이 들어 가고 있다. 매트릭스 측광은 화면을 몇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각 부분의 노출을 따로 따로 측정한 다음 그 결과를 내장 된 기억 소자(ROM)의 데이타와 비교하여 노출 값을 정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아래 그림과 같이 화면이 5개로 분할된 매트릭스 측광이 있다고 하자. 각 부분에서 측정된 밝기(노출 지수)는 아래의 그림과 같다.

 

B15 B15

 

B10

B9 B9

 

 

이 측정 결과를 보면 화면의 아래쪽이 어둡고 중앙 부분이 약간 밝으며 화면의 윗부분은 매우 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자료를 기억되어 있는 데이타와 비교해 보면 (예를 들어서) 다음과 같이 나오게 된다.

Address 224 ; rem 이 장면은 바닷가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경우인데 역광이어서 하늘이 매우 밝다. 이럴 때는 얼굴이 시커멓게 나오므로 노출을 1.5단계 더 주도록 하라.

GO METER

MULTIFLY 1.5X

GO SHUTTER

END

라는 식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방식은 사실상 노출 값이 프로그램을 입력한 사람 맘대로 나온다. 물론 터무니 없는 자료를 입력하지야 않겠지만 앞서 든 예에서 만약 얼굴이 무조건 잘 보여야 하는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 아니고 바닷가의 석양을 배경으로 실루엣을 찍는 경우라면 황당한 결과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이런 기술도 속도가 빠른 마이크로프로세서와 대용량의 메모리가 사진기에 장착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인데 그렇다고 해도 그 '데이타베이스'에 각자가 원하는 의도를 그때 그때 입력시킬 방법이 없는 이상 완벽한 노출을 잡아주지는 못한다.

 

그 외에도 많은 방식이 있겠으나 위의 것들과 대동소이한 내용이라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필요치 않을 것으로 생각 된다.

 

사용 방법

앞장에서 입사광, 반사광을 설명할 때 노출계의 사용 방법을 약간 언급하였고 그 중 입사식 노출계는 피사체의 밝기와 상관없이 노출 값을 지시한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입사식 노출계는 사진가가 어떤 조절을 시도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전혀 제공해 주지 않는다. 입사식 노출계를 사용할 때는 피사체 쪽에서 카메라의 렌즈 방향으로 노출을 재고 바늘이 지시하는 대로 샷타 속도와 조리개를 놓은 다음 샷타 릴리즈를 지긋이 누르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반사식 노출계는 피사체에서 반사되어 나오는 빛의 양을 측정하는 기계이며 모든 피사체가 중간 회색(18%의 반사율)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고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피사체가 중간 회색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노출 지시는 틀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반사식 노출계를 좀더 주의 깊게 사용한다면 피사체의 광량 분포를 참고하여 작가의 의도대로 노출을 조정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사진1

사진2

 

우선 피사체가 중간 회색이 아닌 경우에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사진은 하얀 색 벽지와 창문을 찍은 것이다. 이때의 노출을 측정하니 노출 지수 B12(f8에 1/60초)라는 지시가 나왔다. 노출계의 지시대로 촬영하면 그 결과는 사진 2와 같이 된다. 여기에서는 촬영되는 피사체인 벽과 창문이 모두 밝게 빛나고 있기 때문에 '중간 회색'이 아닌 '흰색'의 피사체라고 봐야 한다. 그렇지만 노출계는 모든 피사체가 중간 회색이라는 가정하에 만들어 졌으므로 사진2의 경우와 같이 중간 회색이 되는 노출 값을 지시하는 것이다.

 

사진3

사진4

 

사진3은 매우 어두운 톤을 가진 피사체이다. 이 피사체의 노출은 B7이라는 지시가 나왔는데 그대로 촬영하면 사진4와 같이 된다. 이 피사체는 매우 검은 표면을 가지고 있어서 반사율이 평균보다 헐씬 떨어지고 어두운 색깔을 가지고 있지만 노출계의 지시는 중간 회색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나온 것이다.

그 결과 사진4와 같은 사진이 되었다.

 

이와 같이 노출계는 정상적으로 동작하였으나 하얀 피사체도 회색이 되어버리고 검은 피사체도 마찬가지로 회색이 되어버리니 이것은 우리가 눈으로 본 내용과 전혀 다른 네가티브인 것이다. 사진가는 당연히 흰색의 피사체는 희게 검은 색의 피사체는 검게 나오는 것이 정상 노출이라고 생각한다.

피사체가 복잡한 형태를 띄고 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 노출계는 정해진 범위의 빛을 합하여 이것이 중간 회색으로 표현 되도록 지시하므로 어찌 되었건 피사체가 전체적으로 봐서 중간 회색이 아니라면(다시 말해서 각 부분의 반사율을 평균해서 18%가 아니면) 노출이 틀려지게 된다.

 

복잡한 형태의 피사체에서는 각 부분의 톤을 서로 섞을 수 있는 물감이라고 생각하고 본다. 이 그림의 톤을 모두 섞으면 중간 회색이 나올 것이다.

 

 

 

중간 회색의 측정

 

사진5

사진6, 사진7

 

이와 같은 오류를 없애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제일 간단한 방법은 피사체 중에 있는 중간 회색을 찾아서 그 곳의 노출을 따로 측정하는 것이다.

사진5는 배경은 어둡고 인물의 얼굴은 밝게 되어 있지만 피사체의 옷은 중간 정도의 농도를 가지고 있다. 이 사진의 노출을 그대로 쟀을 경우에 노출 지수 B11이 나오지만 피사체에 가까이 가서 옷의 노출만 측정하니까 B12가 나왔다. 이 사진을 그대로 B11로 찍으면 사진 6과 같이 되는데 이것은 배경이 어둡기 때문에 노출계가 노출을 증가해서 지시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야 전체적으로는 중간 회색이 된다) 한편 옷의 노출만 측정하여 촬영한 결과는 사진 7과 같이 되는데 여기서 노출계는 옷에서 반사되는 빛만 측정하였으므로 옷이 중간 회색이 되도록 노출을 지시 하였고 그 결과 사진7과 같이 나온다. 사진7에서는 옷이 중간 회색으로 나오고(당연하다!), 어두운 배경은 검게 나오고(중간 회색보다 더 진하게 나오므로) 얼굴도 사진6에 비하여 밝기가 약간 줄어들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밝게(중간 회색보다는 더 하얗게) 나온다. 이 사진이 우리가 실제로 피사체를 보면서 느낀 인상, 즉 어두운 배경에 앉아 있는 인물과 일치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요약하자면 구식이던 아니면 첨단 기술에 의한 것이건 노출계는 뭐든지 다 중간 회색으로 나타나도록 값을 지시한다. 그래서 이때 피사체에 있는 중간 회색의 노출을 따로 측정하여 그것을 촬영하는 노출 값으로 삼으면 사진에서도 중간 회색이 중간 회색으로 나오게 되고 따라서 중간 회색 보다 더 밝은 곳은 희게, 더 어두운 곳은 검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입사식 노출계의 장점은 이와 같이 피사체의 중간 회색 부분을 찾아서 그 곳의 노출을 따로 측정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중간 회색으로 나오는 노출 값을 지시한다는 점이다.)

 

자 그러면 이제 중간 회색을 측정하면 노출이 더 정확하게 나온다는 것은 알게 되었는데 만약 촬영하고자 하는 피사체에서 중간 회색에 해당하는 부분을 찾을 수가 없다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예; 아까 제시한 사진1은 중간 회색이 없고 전체적으로 하얀 색만 있다)

그래도 걱정 할 것 없다. 아예 중간 회색을 가진 종이를 하나 들고 다니다가 이 것을 피사체 앞에 놓고 노출을 재면 된다. 그렇게 되면 배경이 어둡고 밝고 간에 중간 회색이 중간 회색으로 나오는 올바른 노출 값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도대체 뭐가 중간 회색이란 말인가? 그런 종이를 직접 만들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생기면 사진 재료상에 가서 코닥에서 나온 그레이 카드(grey card)를 하나 구입할 일이다. 이 회색의 종이는 정확하게 18%의 반사율을 가지도록 만들어졌고 노출계가 제작되는 표준 사양(spec)과 같은 양의 빛을 반사 한다.

 

 

 

[번 호] 15 / 21 [등록일] 1998년 06월 01일 10:11 Page : 1 / 23

[제 목] [닮산] 노출의 결정 2

 

두 점 측정법

이제 좀 다른 방법으로 노출을 측정하여 보자. 앞서와 같이 하나의 장면에 하나의 노출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으로 나누어 두 번 측정하는 것이다.

 

예제

 

B14

 

위와 같이 비교적 간단한 피사체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피사체에 중간 회색의 톤이 없고 또 그레이 카드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인물은 밝은 조명을 받고 있고 배경은 그늘에 있다. 이 상태에서 노출계는 B14라는 노출 값을 지시하였는데 이대로 노출을 주었을 때 사진이 어떻게 나올지는 아직 모르는 상태이다.

 

B13 B16

 

그래서 왼쪽의 어두운 부분과 오른쪽 밝은 부분의 노출을 따로 재보니 B13, B16이라는 값이 나왔다. (밝은 곳의 노출 지수= B16, 어두운 곳은 노출 지수= B13)

 

여기에서 사진가는 실제 촬영에 사용하는 노출 값을 B13과 B16 사이의 임의의 값으로 정할 수 있다. 하지만 노출이 얼마다를 결정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어떤 분위기의 사진을 원하는지 생각 해보자. 참고로 아래에 3명의 작가가 등장하여 나름대로의 의견을 피력한다.

 

작가 1 "배경이 어느 정도 검게 나오면서 동시에 세부 묘사도 적당하게 가져야 한다."

노출을 B15로 놓고 촬영하면 된다. 노출을 B15로 주면 배경은 B13이므로 주어진 노출 보다 두 단계 정도 노출 부족이 되고 이것은 인화지에서 세부 묘사가 살아 나는 범위 내에 있다.

 

작가 2. "배경이 너무 지저분한 것 같으니 세부 묘사가 나오지 않게 검게 떨어지기를 원한다. " 노출 값을 B16으로 놓고 찍으면 된다. 이제 배경(B13)은 주어진 노출 보다 세 단계 더 어둡게 되고 세부 묘사가 거의 살아나지 않는다.

 

작가 3. "배경이 검게 되면 사진 전체의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 진다. 보다 밝은 색으로 나와 가벼운 느낌이 되면 좋겠다." 노출 값을 B14로 놓고 찍으면 된다. 배경(B13)이 주어진 노출 보다 한 단계만 어두운 회색으로 나온다. 풍부한 세부 묘사를 가지게 된다.

 

이것을 표로 정리 하면

 

(표)

 

자 이렇게 단지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 두 곳의 노출 지수를 따로 측정하였을 뿐인데 이미 많은 것을 조절할 수 있고 또 그 결과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나중에 다시 다루겠지만 밝은 부분의 농도는 현상 시간을 조절하여 원하는 만큼 늘리거나 줄일 수도 있다.

 

이와 같이 촬영되는 장면을 둘로 나누어 각각의 노출을 측정할 때 주의하여야 할 점은 원하는 부분만 정확하게 측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외장형 반사식 노출계는 측광하는 범위가 넓기 때문에 이와 같이 원하는 부분만 측정하기가 곤란하다. 예를 들어서 화면 왼쪽의 어두운 부분을 측정하려고 해도 실재로는 화면 오른 쪽의 밝은 부분까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측정된 값을 그대로 믿을 수가 없게 된다. 이럴 때에는 피사체에 가까이 가서 원하는 부분만 측정 각도에 들어오도록 하여 다시 측정하여야 한다.

 

(외장형 노출계 각도가 넓다)

(가까이 가면 원하는 부분의 노출 값만 측정 할 수 있다.)

 

한편 카메라에 내장된 TTL 노출계를 사용할 때는 줌이나 망원렌즈로 화각을 좁혀서 원하는 부분만 화인더에 들어오게 한 다음 측정을 하거나 교환 렌즈가 없는 경우에는 피사체에 가까이 가서 노출을 재면 된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은 이론적으론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실용적으로는 쓸모가 없다. 왜 쓸모가 없는지는 실제로 이렇게 10번만 노출을 측정하면서 촬영을 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데 제법 인내심이 강하다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런 식으로 '위치를 바꾸거나 렌즈를 바꾸어 노출을 측정하고 다시 구도를 잡은 다음 촬영하기'를 금세 포기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다는 것도 사람을 너무 귀찮게 하면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런 것을 발견하고 쓴 웃음을 짓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삼각대의 가운데 막대를 꺼꾸로 매달아 접사를 할 수 있다고 선전하는 것도 그런 것 중의 하나인데 물론 삼각대 중심 막대를 꺼꾸로 달면 땅에 낮게 깔린 피사체도 쉽게 찍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긴 한다. 그런데 카메라를 이렇게 꺼꾸로 매달면 화인더를 들여다 보기 위해 삼각대의 다리 사이로 머리를 밀어 넣어야 한다는 문제가 생긴다. 어떤 경우에는 어깨까지 반쯤 들어가야만 화인더를 볼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이래 가지고서야 어떻게 접사를 한다는 말인가? 매번 머리로 삼각대를 치기 마련이어서 이런 식으로 접사 촬영을 즐겨 하는 사람을 적어도 나는 본적이 없다.

 

스폿 노출계(Spot meter)

 

스폿 노출계 데이타.

피사체의 노출을 부분적으로 재는 가장 실용적인 방법은 아주 좁은 각도(1도)의 측정각을 가지는 스폿 노출계를 쓰는 것이다. 스폿 노출계는 그림과 같이 생긴 것으로 화인더에 보이는 작은 원의 내부만 측정하기 때문에 피사체에 가까이 가거나 망원 렌즈를 달지 않더라도 부분적인 노출을 쉽게 잴 수 있다. 사용할 때 주의 할 점은 측정 부위가 미세한 질감(texture)을 가지고 있으면 실제보다 약간 작은 값을 가리키게 된다는 점(이런 미세한 명암이 측정값에 영향을 주기 때문)과 일반 렌즈에 후드를 달아 직사광이 들어 오는 것을 방지 해야 하듯이 노출계의 렌즈도 직사광이 들어오지 않도록 해야 하고 또한 가능한한 카메라의 위치에서 촬영 렌즈의 광축에 가깝게 측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카메라의 위치에서 크게 벗어난 위치에서 측정을 한다면 정확한 값을 얻을 수 없다)

 

(스폿 노출계)

(스폿 노출계 화인더)

 

이와 같이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의 밝기를 따로 측정하여 노출을 결정하는 방법은 일반적인 노출 측정 방법에 비하여 월등하게 우수하다. 그것은 필림에 준 노출 값과 자신이 측정한 부분의 노출 값이 몇 단계나 차이가 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어두운 부분이나 밝은 부분이 어느 정도의 농도로 인화될 것인지를 경험적으로 또는 인화지 계조표를 참고하여 미리 알 수 있게 된다는 점 때문이다.

이 부분은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예를 하나 더 들겠다.

 

(그림)

 

이 사진에서 스폿 노출계를 사용하여 노출을 측정하였을 때 사진 하단부의 어두운 곳의 노출 지수는 B8로 밝은 곳의 노출 지수는 B10으로 나왔다. 촬영에 사용한 노출 값은 중간 값인 B9로 하여 f32에 2초가 되었다. 이 사진을 찍으면서 나는 이 필림을 그대로 현상 인화 한다면 인화된 결과는 하단부에서는 중간 회색보다 '한단계 어둡게' 상단부는 '한단계 밝게' 나올 것이라는 것을 자동적으로 알 수 있었다.

여기에서 여러분도 만약 '중간 회색보다 한단계 더 어두운 인화지의 톤'과 '한단계 더 밝은 인화지의 톤'이 어떤 것인지를 미리 알고 있다면 (또는 인화지 계조표를 참고 하였다면) 이 사진이 어떤 톤의 그림이 될지 노출을 결정하는 단계(샷타를 채 누르기도 전에!)에서 미리 알 수 있다는 예기다.

 

이와 같이 촬영하는 단계에서 인화된 결과를 미리 알게 된다면 그것은 무었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제 2장의 '사진을 보는 눈'에서 말했다시피 '현장을 보고 있는 사진가의 눈'이 아니라 '인화된 사진을 구경하게 될 관람자의 눈'으로 피사체를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고 따라서 그 사진이 과연 어떤 느낌을 주게 될지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에서는 '현장의 생생한 느낌'이 그대로 다 전해지지는 않는다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그것이 과연 어떤 느낌으로 전해질 것인가? 그리고 만약 의도한 바와 다른 느낌이라면 어떻게 조절을 해야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느낌이 충분히 전해지겠는가?를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샷타를 누르기 전에 사진가가 해야 하는 '선구상'이고 그것이 화가가 그림을 그리기 전에 하는 '구상'과는 다르다고 말한 것도 '선구상'이란 사진이 어떻게 나오겠지 하면서 막연하게 기대하는 것이 아니고 측정된 노출에 의하여 인화지에 재현되는 그림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것을 원하는 방향으로 조절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B9 B10

B12

B13 B14

 

다점 측정법

그러면 이왕 스폿 노출계를 사용하여 피사체의 노출을 부분적으로 잴 수 있게 되었는데 어두운 곳과 밝은 곳 두 군데만 잴 것은 뭐 있는가? 이왕이면 여러 군데 중요한 부분의 노출을 골고루 재도록 해보자. 이제 피사체도 복잡한 톤을 가진 그림이고 위와 같이 5군데의 부분 노출을 측정하여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 여기서 사진 왼쪽 윗부분(ㄱ)이 가장 어두운 부분이고 노출 값이 B9인데 오른 쪽 윗부분(ㄴ)은 노출 값이 B10이니까 ㄴ은 ㄱ 보다 한단계 밝게 나올 것이라는 것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게 된다.

또 오른쪽 아래 부분(ㅁ)은 노출 값이 B14이므로 가장 밝게 나올 곳이며 왼쪽 아래 부분(ㄹ) 은 B13이니 ㅁ보다는 한단계 어둡게 나올 것이다. 그리고 사진의 중앙 부분은 윗부분과 아래 부분의 대략적인 중간인 B12이므로 따라서 톤도 중간 정도로 나올 것이다.

 

이 사진의 노출을 주는 방법을 예로 들자면 다음의 표와 같을 수 있다.

 

작가 1 ; "어두운 부분의 세부 묘사가 나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작가1 은 언제나 똑같은 소리를 한다. 이 작가가 중요시하는 것은 지독한 세부 묘사인가보다) B9부분이 세부 묘사를 가질 수 있도록 두 단계 높은 B11로 촬영한다.

 

작가 2 ; "가장 어두운 부분인 B9지역은 사진의 성격상 중요하지 않다. 이곳에서 세부 묘사를 내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그 보다는 B14지역이 충실히 묘사되어야 한다." (이 양반도 찍는 스타일을 알겠다. 사진을 다소 거무튀튀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B14 부분이 세부 묘사를 가질 수 있도록 두 단계 내려서 B12로 촬영한다.

 

(표, 작가 1의 노출, 작가 2의 노출)

 

이와 같이 피사체의 중요한 부분이 사진에서 어떻게 나올지는 부분 노출을 재서 서로의 밝기를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면 여기서 잠시 암실로 들어가 한가지 작업을 하도록 해보자. 인화지에서 노광을 한단계씩 증가 시키거나 감소시켰을 때 어떻게 되는지 살펴 보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앞에서 인화지 계조표를 보고 인화의 톤을 비교한다고 설명하였으나 정작 이것을 어떻게 만드는지는 아직 설명하지 않았다.

 

인화지 계조표

먼저 자신이 사용하는 인화지를 선정하여야 한다. 이 책의 내용을 통틀어 여러 번 같은 내용이 나오겠지만 사진 작품을 만드는데 쓰이는 재료는 그것이 인화지이던, 필림이던 , 현상약이던 우선 한 가지만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 재료에 숙달되어서 그 특성이나 장 단점을 완전히 파악하였다고 확신하기 전까지는 다른 것으로 바꾸지 말아야 한다.

사진을 배우면서 흔히 하게 되는 오해 중의 하나는 다양한 인화지(필림이나 현상약의 경우도 마찬가지다)를 두루 사용해 보고 각각의 특성을 파악해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그 중 제일 좋은 것을 골라 내겠다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이런 생각이 틀린 이유는 먼저, 인화지의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 한 인화지의 톤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나 자신은 코닥의 폴리맥스(Polymax) 인화지를 즐겨 사용한다. 그렇지만 일포드 멀티그레이드(Multigrade) 인화지를 사용하여 기가 막히게 멋있는 인화를 해내는 사람도 또한 알고 있다. 물론 폴리맥스 인화지로 내기 힘든 부드러운 분위기의 사진을 만들고자 할 때는 오리엔탈 시걸(Oriental Seagull)의 웜톤(Warm tone) 인화지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같은 Warm tone 계열의 인화지를 이것 저것 섞어 쓰지는 않는다. 그것은 코닥의 폴리맥스나 시걸의 웜톤이 다른 메이커의 인화지보다 월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이 두 가지 인화지는 오랫동안 사용한 끝에 이제 자유자재로 톤을 다룰 수 있으며 그 결과도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폴리맥스 인화지 대신 일포드의 멀티그레이드 인화지를 사용하여야 한다면 적어도 폴리맥스로 만들었던 것 만큼의 인화를 해낼 자신이 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연습이 필요하고 또 시간도 상당히 걸린다. 그러니 월등하게 나은 결과가 나온다는 보장이 없는 한 한가지 재료에 충분히 숙달되는 것이 좋은 사진을 만드는 지름길인 것이다.

 

그래서 일단 자신이 사용할 인화지를 선정하였으면 호수를 2호로 놓고 테스트를 진행하자. 2호 인화지가 중간 호수이며 가장 풍부한 톤을 내주기 때문에 이것을 표준으로 정하는 것이다. 테스트에 사용하는 네가티브는 중간 톤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 것이 좋다. 다음의 사진은 35미리 카메라로 모래를 찍은 것인데 인화지 계조표를 만들기 위하여 따로 촬영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와 비슷한 톤을 가진 네가티브가 있다면 어느 것이나 사용상 차이는 없을 것이다.

 

1. 확대기를 8X10정도의 높이에 맞추고 초점을 조절한다.

2. 먼저 대략적인 시험 인화를 한다. 여기에서는 인화지에 모래의 톤이 나오는 최소한의 시간을 찾는 것이다. 내가 사용하는 확대기로는 f16에 8초에서 희미하게 톤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3. 인화지가 낼 수 있는 톤을 전부 찾아내기 위하여 노광을 한 단계씩 증가시키면서 시험 인화를 한다. 아래의 그림이 그 결과이다.

 

가 나

4. 이 그림을 보면 f16에 2초를 준 부분과 4초를 준 부분은 톤이 구분되지 않고 인화지 자체의 색깔과 같이 나온 것을 알 수 있다.(가 지역) 또한 검은 색쪽을 보면 f5.6에 128초를 넘는 부분은 더 이상 노광을 주어도 톤이 더 검게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 지역) 따라서 이 인화지가 낼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톤은 9 단계로 나온다. 하지만 가 와 나 지역은 희거나 검은 톤이 약간 구분될 뿐이지 필림에 찍혀 있는 그림이 묘사되지는 않고 있다. 실재로 모래가 보이도록 인화되어 있는 단계는 5단계이다. 이 5단계가 사진에서 사용되는 '세부 묘사가 존재하는 톤의 범위'인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흰색과 검은 색의 중간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중간 회색'이다.(다 부분)

이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인화지가 5단계의 노출 차이를 기록할 수 있으며 그 이상과 이하는 묘사해 낼 수 없다는 것을 명백하게 알 수 있게 해준다. 이것은 곧 사진가가 사용할 수 있는 톤의 단계가 이정도이며 그 이상의 톤을 원할 때에는 일반적인 인화지가 아닌 다른 재료를 찾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먼저 본 사진으로 되돌아가서 이 사진은 노출을 노출 지수 B11로 촬영하였을 때와 B12로 촬영하였을 때의 상황을 인화지 계조표와 비교해 보면 아래의 그림과 같이 된다.

 

인화지 계조표와 B11,B12의 비교 테이블

 

위의 표에서 노출을 한단계 늘렸을 때 사진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학연하게 알 수 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노출을 두 단계 늘리거나 또는 한 단계 줄이는 경우도 한눈에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피사체를 세분화하여 각 부분의 노출을 측정하는 방법을 존 시스템(Zone System)이라고 부른다. 무슨 시스템이라고 하니까 용어의 어마어마함에 주눅이 들어 어렵고 심오한 것이라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예기를 숫자를 써서 설명한 것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한번 이런 방식에 익숙해지면 자연스러운 습관처럼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아직 스폿 노출계를 사기 위하여 상점으로 달려 나가지 말기는 바란다. 존 시스템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더 있다.

 

노출 과다와 노출 부족

노출의 과다나 부족을 실수 또는 실패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앞서 본바와 같이 어떤 상황에서 '이거다!'라고 정해진 노출은 없는 것이며 작가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가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노출 부족인 경우는 좀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적정한 노출을 주는 경우라 하더라도 피사체의 어두운 부분은 네가티브에서 엷은 농도로 세부 묘사가 나오게 되는데 이것이 노출 부족이 되면 아무것도 남지않고 투명한 부분으로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은 인화 작업을 하면서 조절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검은 덩어리로 표현 될 수 밖에 없다. 얼핏 생각해서는 이렇게 노출이 부족하게 들어간 필림은 현상 시간을 길게 연장하면 농도가 살아나지 않을까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질 않는다. 지나치게 적은 빛을 받은 부분은 아무리 현상시간을 늘려도 농도가 살아나지 않게 되는데 그 이유는 할로겐화 은이 활성화 되기 위해서는 정해진 최소한의 빛의 양 이상이 있어야 하고 이 양보다 적은 빛은 전혀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노출의 임계량(Threshold), 또는 필림의 변이점(Toe point)이라고 말한다.

아래의 그림은 필림의 특성 곡선인데 A 점 이하의 빛은 필림의 할로겐화 은을 전혀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변이점)한편 피사체의 밝은 부분은 많은 양의 빛이 들어가 할로겐화 은을 활성화 시키게 되는데 현상 시간을 연장하면 농도가 점점 더 증가하다가 어느 정도 이상 되면 더 이상 변하지 않는 포화 상태에 이르게 된다. (포화점; Saturation point, 또는 Shoulder point)

그러므로 현상 시간을 연장하는 것은 피사체의 어두운 부분은 그대로 둔 채 밝은 부분의 농도만 끌어 올리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피사체의 어두운 부분은 전적으로 노출 값에 의하여 농도가(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세부 묘사의 정도가) 결정되므로 이 부분이 노출 부족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반면에 노출이 과다한 경우도 문제를 일으키는데 입자가 거칠어지고, 밝은 부분의 톤이 인화지에서 분리되지 않은 채 흰 덩어리로 나오게 되는 등의 어려움이 생긴다. 그러나 노출 부족인 경우에 어두운 부분의 세부 묘사가 몽땅 사라져 버리는 것에 비하면 노출 과다인 경우는 세부 묘사가 다소라도 남게 되고 인화 작업에서 이를 살릴 수 있게 되는 가능성도 어느 정도 있게 된다. 따라서 노출이 부족한 경우보다 과도한 경우가 세부 묘사를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한편 노출이 과도하게 들어간 필림은 현상 과정에서 시간을 줄이면 정상적인 네가티브로 만들 수 있다. 물론 얼마나 과도하게 들어 갔느냐에 따라 차이도 있고 실제로는 각 단계별 톤의 재현이 약간 틀려진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노출 부족의 경우에 비하면 정상이나 마찬가지라는 의미이다.

빛을 과도하게 받은 부분은 현상이 진행됨에 따라 점점 더 농도가 짙어지게 되는데 현상 시간을 줄이면 이 부분의 농도가 너무 짙어지기 전에 현상 작용이 끝나 버리므로 정상에 가까운 농도로 나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정상적인 현상 시간이 12분 이라고 가정할 때 노출이 과도한 필림을 그대로 현상하면 당연히 지나치게 높은 농도를 가진 부분이 생기지만 현상 시간을 10분으로 줄인다면 적정한 농도의 네가티브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노출 과다에 시간을 얼마나 줄여야 하는지는 존 시스템 항목에서 자세히 설명하겠다.)

 

그러면 이렇게 현상 시간을 줄이면 어두운 부분의 농도도 같이 줄어들지 않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 빛을 적게 받아 농도가 엷게 나오는 부분은 사실은 현상 초기에 이미 필요한 만큼의 현상 작용이 모두 끝나 버린다. 실재로 주어진 현상 시간의 약 40%정도에서 어두운 부분의 현상 작용은 모두 끝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2분 현상이 적정 시간이었다면 약 5분 정도 지나면) 그러므로 현상 시간을 12분에서 10분으로 줄여도 어두운 부분의 농도는 그대로 다 나오게 된다.

 

한가지 더 주의 하여야 할 점은 노출이 과도한 편이 부족한 편보다 안전하다고 해서 노출 과다를 상습적으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특히 35미리 사진인 경우엔 더욱 주의하여야 하는데 노출이 과도해지면 입자가 거칠어 지고(열화됨) 콘트라스트가 지나치게 높아져 사진이 좋지 않게 되는데 구지 비교를 하자면 노출 부족 보다는 다소 유리한 점이 있다는 것이지 노출 과다가 좋다는 의미는 결코 아닌 것이다.

 

통밥 노출(f16 rule)

가끔은 노출계 없이 촬영을 해야 되는 경우도 있다. 촬영을 포기하는 것보다 어쨌든 한 장 찍어두는 것이 좋은 경우에는 한 가지 지침을 따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맑은 날의 야외에는 태양이 빛나고 있는데 태양은 수십억 년 동안 광도가 변하지 않는 조명등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때의 노출을 한번 기억해두면 평생토록 이 밝기가 변하지 않을 것이고 필요할 때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이것을 'f16의 법칙(F16 rule)'이라고 하는데 해가 나와 있는 낮 동안(맑은 날, 약 10시부터 4시 사이)에는 조리개를 f16에 놓고 샷타 속도는 그 필림의 감도에 가깝게 놓으면 적정 노출이라는 것이다. ISO100인 필림을 쓰는 경우엔 1/125초, ISO400 필림인 경우엔 1/500초로 두면 된다. 이것은 사실 새로운 법칙이 아니고 필림의 종이 박스에 인쇄되어 있는 바로 그 노출 지침표와 같은 것이다.

정확한 자료에 의거하여 사진을 찍고자 하는 사람은 이런 엉성해 보이는 노출 지시가 도저히 믿음직해 보이지 않겠지만 실제로 이 노출은 상당히 과학적이고 정확한 것인데 만약에 이때 노출계로 그레이 카드와 같은 것을 측정하여 f16의 법칙과 다른 값이 나오는 경우에는 노출계가 틀린 것이니 노출계를 수리해야 한다.

 

스튜디오 촬영을 해본 사람은 일정한 거리에 조명등을 두었을 때 노출이 항상 일정하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피사체를 비추는 빛의 밝기가 일정하기 때문이니까 노출이 같게 나오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이다. 태양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광도가 변하지 않으므로 일정한 거리에 둔(즉 밝기가 일정한) 조명등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편 스튜디오 촬영에서도 조명등의 거리나 각도를 바꾸거나 조명등 앞에 확산 판을 끼우면 노출 값이 변하게 된다. 태양의 경우는 거리가 변하지 않으니까 거리 문제는 신경 쓸 것 없고 각도가 변하는지, 또는 태양 빛을 차단하는 구름이나 건물의 그늘 등에만 신경 쓰면 된다. 그래서 야외에서도 해가 기울거나 또는 구름이 끼어 태양 빛을 확산시킨다면 노출 값이 바뀌게 된다. 이런 경우에는 f16의 법칙과 같은 확고한 숫자를 제시할 수 없는데 그것은 구름이 낀 경우에 그 두께나 하늘을 가리는 정도가 다양하고 또 10시 이전이나 4시 이후의 태양은 각도가 조금만 변해도 빛의 양이 크게 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필림의 포장에 있는 대략의 노출 지표를 참고해 두면 흑백이나 칼라 네가티브 필림에서는 인화하는데 큰 지장은 없을 정도로 촬영 할 수가 있다.

 

필림 포장의 지침

 

비선형 효과 (Reciprocity failure)

'상반칙 불괘 현상'이라는 알아듣기 지극히 힘든 명칭으로도 불리우고 있는 이 현상은 모든 화학반응에서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비선형 효과'를 가리키는 말이다. ('상반칙 불괘 현상'이라니? 도대체 이렇게 어려운 명칭을 누가 붙인 것인지 모르겠다. 무슨 말갈어를 읽는 것 같이 요령 부득이다. '비선형 효과'라는 말도 물론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화학이나 물리 시간에 일반적으로 다루어지는 용어이니 이것을 사용하도록 하자.)

 

선형 곡선

비선형 곡선

 

선형 곡선은 1번과 같은 그림의 곡선이다. 이 곡선의 의미는 a에서 값이 얼마만큼(A) 변하였을 때 b에서도 같은 양(A)만큼 변한다는 의미이다.

비선형 곡선은 2번의 그림과 같은 곡선이다. 이 곡선에서는 a에서 값이 변하는 양(A)과 b에서 변하는 양(B)이 서로 다르다는 의미이다.

 

필림의 비 선형 곡선

 

필림에 노출을 주는 경우 일반적으로 조리개를 한단계 줄이고 샷타 속도를 한단계 느리게 하면 똑같은 노출이 주어지게 된다.(즉 선형 관계이다) 그렇지만 빛의 양이 지나치게 적어 샷타 속도를 1초이상으로 놓게 되면 이와 같은 비례관계가 더 이상 성립되지 않게 된다. 즉 노출 시간이 1초를 넘게 되면 이제 시간을 두 배로 늘려도 노출량은 두 배가 되지않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f8에 1/4초를 주는 노출과 f5.6에 1/8초를 주는 노출은 서로 같은 것이지만 f8에 4초를 주는 노출과 f11에 8초를 주는 노출은 서로 같지 않게 된다. 이것을 노출에서의 '비선형 효과'라고 말한다.

 

이것은 필림의 반응속도가 아주 약한 빛에서는 비정상적으로 변하기 때문인데(즉 비선형 관계이다) 앞서 필림의 할로겐화 은이 활성화 될 수 있는 최소한의 노출량이 있다고 말했거니와 아주 약한 빛으로 노출을 주는 경우에는 이와 같은 임계량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지기 때문에 전혀 네가티브의 농도가 형성되지 않는 부분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필요한 임계량을 넘기기 위해서 노출 시간을 추가로 더 늘려주어야 한다.

한편 빛의 양이 임계량에 미치지 못하여 활성화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히 피사체의 밝은 부분보다는 어두운 부분에서 더욱 심하게 일어나게 된다. 따라서 네가티브의 어두운 부분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노출을 추가시키는 것인데 그렇게 하다 보면 밝은 부분은(비선형 효과의 영향을 덜 받으므로) 농도가 너무 많이 올라가 전체적인 콘트라스트가 강해지게 된다. 따라서 노출을 늘리는 것에 비례하여 현상 시간은 줄여주어야 정상적인 콘트라스트를 가진 네가티브가 나온다.

 

(표, 비선형 효과)

 

위의 표는 ISO400필림의 데이타인데 개인적으로 이 종류의 필림을 가장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자료를 직접 만든 것이다. 다른 종류의 필림은 위의 표와는 다르게 반응한다. 물론 모든 종류의 필림을 다 테스트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수는 있지만 개인이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다른 필림에 대한 자료는 필림 메이커에서 나오는 것도 많으므로 그것을 참고하기 바란다.

위의 내용을 보면 코닥의 Tri-X 필림은 비선형 효과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일포드의 HP5는 가장 적게 받는다. 아그파의 APX400은 그 중간 정도이다. 한편 현상 시간을 조정해야 하는 것은 아그파 필림이 가장 심하고 일포드 필림이 가장 적다. 여기서 만약 콘트라스트가 높은 네가티브를 얻고 싶으면 현상 시간을 줄이지 않거나 오히려 약간 늘리도 된다.

 

35미리 카메라를 사용할 때 비선형 효과가 나타나는 경우는 대부분 해가 진 후이거나 야간 촬영이다. 이런 경우의 피사체는 대부분 콘트라스트가 낮으므로 의도적으로 콘트라스트를 올려 주제가 되는 피사체를 뚜렷하게 보이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한편 대형 카메라는 f64정도의 조리개를 사용하면 한낮에도 1초 이상의 노출이 나와 비선형 효과의 영향을 받게 된다. 이럴 때에는 현상 시간을 반드시 줄여서 네가티브의 콘트라스트가 지나치게 올라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번 호] 16 / 21 [등록일] 1998년 06월 09일 23:26 Page : 1 / 19

[제 목] [닮산] 존 시스템 1

존 시스템

 

존 시스템의 두 가지 명제

 

필림을 다루면서 기술적인 측면에서 고려 하여야 할 두 가지 문제는 '노출을 얼마로 줄 것인가?' 와 '현상 시간을 얼마로 할 것인가?' 두 가지이다. 따라서 필림을 다루는 원칙은 위의 두 가지 항목을 적절하게 조절하여 적정 농도의 네가티브를 만들어 내는 것이고 일단 적정한 농도의 네가티브가 만들어진 다음 원하는 대로 인화를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아래의 두 가지 명제이다.

 

1) 노출의 결정 --- 노출은 피사체의 어두운 부분이 세부 묘사를 낼 수 있는 최소 값으로 정한다.

2) 현상 시간의 결정 --- 현상 시간은 밝은 부분이 세부 묘사를 낼 수 있는 최대값으로 정한다.

 

이중에서 1번 명제인 노출의 결정은 앞 장에서 이미 설명이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존(Zone) 이라는 것의 의미를 정의한 후 현상 시간에 대하여 주로 논의하자. 그리고 나서 이 두 가지 변수를 한데 묶으면 그대로 존 시스템(Zone System)이 되는 것이다.

 

우선 지금까지 설명된 내용을 정리해 보자. 먼저 샷타를 누르기 전에 피사체에서 받은 인상을 정리해 본다. 그 느낌을 인화지에 다시 재현해 내는 것이 사진이다. 물론 제약이 있다. 본대로 찍는다고 느낀 대로 사진이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앞장에서 이야기한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그래서 인화지가 어느 정도의 검은 색과 하얀 색을 낼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인화지 계조표'를 만들었고 그 결과 다섯 단계의 톤에서 세부 묘사가 충실히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인화지가 낼 수 있는 톤의 범위를 측정한 이유는 이 범위를 벗어 나는 것은 작가의 의도와 노력이 어찌 되었건 간에 결코 사진으로 재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진가들이 인화지를 사용하는 이상 인화지가 사진 작품을 표현하는 가장 궁극적인 매체라고 생각해도 된다.

노출을 결정하는 것은 어떠한가? 노출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피사체의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의 노출을 따로 측정한다. 그리고 자신이 주는 노출 값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살펴 본다. 만약 어두운 부분의 노출 값과 두 단계 차이가 난다면 이 부분의 세부 묘사는 살게 된다. 그리고 이 때 밝은 부분을 측정한 값과도 두 단계 이내로 차이가 난다면 밝은 부분의 묘사도 충실히 살아나게 된다.

 

필림의 경우는 어떠한가?

얼핏 보기에 필림은 인화지보다 더 넓은 톤의 단계를 기록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인화지로는 불가능한 넓은 범위의 톤도 기록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필림 자체의 특성이 그렇기 때문이 아니라 투명한 베이스를 통하여 빛을 투과 시켜 보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필림도 빛을 투과 시켜 보지 않고 뒷면에 흰색 종이를 대고 불빛에 비추어 본다면 대략 인화지와 같은 정도의 톤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설령 필림이 인화지 보다 넓은 톤의 단계를 기록할 수 있다고 하여도 그 필림 자체를 라이트 박스에 올려 놓고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면 당연히 톤의 단계도 인화지의 톤의 단계를 따르게 된다. 그러므로 필림에 대해서도 톤의 범위를 측정하여 볼 수는 있지만 '인화지 계조표'를 이미 만든 이상 이와 같은 작업은 필요하지 않다. 필림에서 어떤 식으로 톤을 기록하던 궁극적인 표현 매체는 인화지인 것이다.

 

흑백 필림을 라이트 박스에 놓고 보면 하이라이트 부분의 묘사가 더 많이 보이고 전체적으로 콘트라스트도 매우 낮게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실재 인화하였을 때의 상황과는 크게 다르다. 투명한 베이스를 투과하는 빛은 그림1과 같이 짙은 농도의 은 입자도 섬세하게 보여주지만 인화지에 비추어진 뒤 반사되는 빛은 그림 2와 같이 짙은 농도의 은 입자를 보여 주지 못한다. 참고로 말하자면 슬라이드 필림을 라이트 박스에 비추어 볼 때와 인화하여 볼 때 세부 묘사의 차이가 크게 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슬라이드 필림을 라이트 박스로 보면 매우 맑고 투명하게 보이며 어두운 부분의 세세한 묘사도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막상 인화지에 인화를 하고 나면 어두운 부분이 검은 덩어리로 나오거나 필림보다는 헐씬 더 칙칙한 색깔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아래의 사진을 보자. 예1은 앞장에서 앞 장에서 설명 한대로 부분 노출을 측정한 결과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의 노출차가 5단계가 나는 경우이다.(어두운 곳 B11, 밝은 곳 B15) 이때 이 노출차의 중간(B13)으로 촬영을 하게 되면 어두운 곳은 노출이 2단 부족하여 1과 같이 나오고, 밝은 곳은 노출이 2단 초과하여 2와 같이 나올 것이다. 인화지 계조표와 비교해 보면 이 사진은 세부 묘사가 살아 있는 범위 내에서 인화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노출차가 7단계가 나는 피사체라면(어두운 곳 B10, 밝은 곳 B16) 역시 이때도 중간을 잡으면 노출이 B13이 되는데 어두운 곳은 노출이 3단 부족하여 3과 같이 세부 묘사가 없는 검은 색이 될 것이고 밝은 곳은 노출이 3단 초과하여 세부 묘사가 없는 4와 같은 흰색이 될 것이다.

 

예 1,

예 2 11 15 10 16

노출 값의 중간인 B13으로 노출을 정하고 촬영하면

예 1은 11 15 로 나오고 예 2는 10 16으로 나온다 으로 나온다.

 

 

존의 구분

이를 좀더 명확히 이해하기 위하여 숫자를 대입하여 생각해보면 좋겠다. 노출의 변화에 따른 톤의 변화는 '인화지 계조표'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지만 각 톤의 단계를 일일이 '두 단계 부족한 회색'이니 '한단계 노출 초과한 톤'이니...하고 설명을 하자면 번거롭기 짝이 없다. 그래서 이제부터 각 톤에다가 이름을 붙여 부르도록 하자. 그 이름은 각자 나름대로 붙여도 상관은 없지만, 이런 분야에서 흔히 있는 일이듯이, 누구라도 제일 먼저 명칭을 부여하면 나중 사람들은 그것을 따라 부르는 것이 일반적인 예이다.

이와 같은 '인화지 계조표'에 처음으로 명칭을 부여한 사람은 다름 아닌 '안젤 아담스(Ansel Adams)' 인데 그는 가장 어두운 곳부터 0,1,2,3...등으로 번호를 붙이고 각각의 단계를 존(Zone)이라고 불렀다. 아래의 표는 인화지 계조표와 존의 단계를 표시한 것이다. 그렇다면 중간 회색은 존으로 치면 5에 해당하게 되고 세부 묘사를 낼 수 있는 존의 단계는 3,4,5,6,7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각 존이 어느 정도의 톤을 가지는지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존0; 완전한 깜장색. 인화지에 아무리 노광을 더 주어도

존1; Zone 0 보다는 약간 덜 검지만 질감(texture)이나 세부 묘사(detail)는 표현되지 않는다. 인화지에서는 짙고 깊은 검은색으로 보인다.

존2; 질감(texture)이 아주 약간 표현되는 검은색. 매우 짙은 톤이다.

존3; 검은색. 세부 묘사(detail)가 제법 보이기 시작한다.(노출계 지시보다 두 단계 부족)

존4; 짙은 회색. 세부 묘사(detail)가 풍부하다. 보통 그늘이나, 짙은색의 바위등이 표현 된다.(노출계 지시 보다 한 단계 부족)

존5; 중간 회색. 세부 묘사가 가장 풍부하다. (노출계 지시)

존6; 밝은 회색. 세부 묘사가 풍부하다. 인물의 피부, 밝은 색의 바위등이 표현 된다. (노출계 지시보다 한 단계 초과)

존7; 흰색. 그러나 아직 질감과 세부 묘사를 가지고 있다.(노출계 지시 보다 두 단계 초과)

존8; 세부 묘사가 아주 약간 있는 흰색.

존9; 이제 세부 묘사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 흰색이다. 인화지 자체의 흰색과 거의 같다.

존10 ; 인화지 자체의 흰색. 이것보다 더 흰색은 표현될 수 없다.

 

새로운 사진을 통하여 우리가 방금 정립한 개념을 사용하여 보자. 아래의 사진은 부분 노출이 다음과 같이 분포하고 있다.

Ev = 9, 11, 13, 15

 

지금 노출은 결정하기 위하여 가장 어두운 부분인 B9에 주목하자. 이곳의 세부 묘사가 나오게 하려면 이곳을 존3으로 만들어 주면 된다. 노출계가 이곳의 노출 값을 B9으로 읽었으므로 B9보다 두 단계 노출 값을 줄이면 이곳이 존3이 된다.

이때 다른 부분의 톤을 살펴 보면 B11인 부분은 중간 회색인 존5로 인화가 되게 되고 B13이 나온 부분은 존7로 인화가 될 것이다. B15의 노출이 나온 부분은 존9에 해당하므로 여기에는 아무런 세부 묘사도 없는 밝은 흰색이 나타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노출을 결정하는데는 측정된 노출 분포의 중간 값을 취하는 것보다 어두운 부분을 기준으로 하여 정하는 것이 좋다. 그것은 어두운 부분의 세부 묘사가 노출에 의하여 정해지기 때문인데 존 시스템의 명제 1을 상기하여 보면, '노출은 어두운 곳의 세부 묘사를 살릴 수 있도록 주어야 한다'라고 되어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자면 아래의 그림과 같이 흰 벽을 배경으로 검은 옷을 입은 인물이 있다. 스폿 노출계로 각 부분의 노출을 측정하여 다음과 같이 나왔다.

 

 

8 11

9

6

 

 

 

여기서는 어두운 부분인 옷을 기준으로 하여 B6의 노출 값을 읽고 이것에서 두 단계 노출을 줄여 존 3이 되도록 노출을 정하면 된다. 이 때 얼굴은 B8이므로 두 단계 밝은 톤인 존5로, 벽은 B9 이므로 세단계 밝은 톤인 존6으로 인화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때 창문은 B11이어서 존8이 되므로 창문의 세부 묘사(이 경우엔 창 밖의 풍경)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기술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존0, 존1, 존2도 모두 구분 될 수 있는 것이지만 실재로 이 부분을 구분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이곳에는 명암의 차이는 약간 있지만 세부 묘사는 거의 또는 전혀 없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한편 촬영 의도상 얼굴을 중간 회색(존 5)이 아닌 밝은 회색(존 6)으로 놓으려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또는 창문 밖에 펼쳐지는 풍경이 사진의 내용상 중요하다고 생각 되어 이 부분을 존8이 아닌 존7로 놓으려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은 필림에 세부 묘사가 가장 충실하게 기록하는 것이 '적정 노출'이라고 정의 하였으니 노출은 어두운 부분을 기준으로 존3이 되도록 잡아야 한다. 그 외의 부분은 이제부터 현상 시간을 조절하여 원하는 바대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예외적인 경우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사진의 모든 부분이 다 질감(texture)이나 세부 묘사(detail)를 가져야 하는 것은 물론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노출을 정하는 기준이 되는 '어두운 부분'은 '그 사진 중에서 가장 어두운 부분'이 아니라 자신이 '세부 묘사를 얻고자 하는 부분 중에서 가장 어두운 부분'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위 사진의 왼쪽 아래 부분은 검은 색으로 표현되어 아무런 묘사도 나와 있지 않다. 이 부분은 촬영할 당시부터 세부 묘사가 나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시된 부분이다. 이와 같이 질감이나 세부 묘사가 없는 깊은 흑색도 전체적인 사진의 톤에 깊이를 더해주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이렇게 깊은 흑색은 사진에서 차지하는 면적이 적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진 전체의 톤이 눈에 거슬리게 된다. 만약 이 부분의 면적이 넓다면 일단 자신의 의도를 무시하고 풍부한 세부 묘사를 살릴 수 있는 존3으로 놓는 것이 안전하다. 그리고 인화 과정에서 이를 조절하면 되는 것이다.

 

Zone의 조절

현상 시간의 조절

 

0 1 2 3 4 5 6 7 8 9 10

 

앞서 암실에서 만든 '인화지 계조표'를 보면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인화를 하면서 8,9,10과 같이 지나치게 노광을 적게 준 부분은 그림이 나타나지 않게 되는데 이러한 부분은 현상액 속에 아무리 오래 담가 놓아도 그림이 살아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여 빛이 처음부터 지나치게 적게 들어간 부분은 현상 시간의 길고 짧음에 관계없이 변화 하지를 않는 것이다. 보통 인화지를 현상하는 시간은 2분 정도인데 위에 시험 인화를 한 것은 10분 이상을 넣어 두어도 8,9,10에는 그림이 나오지를 않게 된다는 예기이다.

이것은 필림의 경우에도 완전히 동일하게 나타난다. 필림도 노출을 지나치게 적게 받으면 아무리 현상 시간을 늘려도 세부 묘사가 살아나지 않는다. 필림과 인화지의 차이는 감광 유제를 투명한 아세테이트에 발랐느냐 불투명한 종이에 발랐느냐 의 차이일 뿐이니까 이 감광유제는 정확하게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앞서의 시험 인화를 다시 보도록 하자. 현상이 진행 되면서 노광을 적게 받은 부분은 시간이 지나도 흰색으로 남아 있는데 비하여 노광을 많이 받은 부분(0,1,2)은 현상액에 계속 담가두면 점점 더 짙은 색으로 변하게 된다. 인화 작업을 하면서 흔히 생기는 일이지만 실수로 정상적인 경우보다 노광을 많이 주는 경우도 있게 된다. 이런 경우의 인화지는 보통 때 보다 빨리 그림이 나타나므로 암등으로 확인하면서 적당한 톤이 나왔을 때 정착액으로 옮기면 노광을 많이 준 인화지라 해도 정상적인 톤을 가진 사진으로 만들 수 있다.

이때에는 물론 평상시보다 빨리 인화지 현상액에서 빼내야 하며 인화를 할 때는 이를 육안으로 확인하면서 정착액으로 옮길 수 있으나 필림을 현상할 때는 필림의 상태를 눈으로 확인 할 수 없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적절한 테스트를 하여 둔다면 정상적인 경우보다 노출이 많이 들어간 필림도 정상적인 농도로 만들 수가 있다.

 

따라서 인화지이건 필림이건 빛을 받은 정도에 따라 현상액 속에서 반응하는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인 말하자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화이버 베이스 인화지인 경우 밝은 부분(존7 정도)은 약 30초안에 현상이 모두 진행되어 더 이상 변하지 않는 것에 비하여 중간 부분(존 5정도)는 약 1분, 어두운 부분(존 3 정도)는 약 1분 30초이상이 걸려 현상이 진행되는 것이다.

필림인 경우의 예는 (Tri-X 필림과 1:50으로 희석한 로디날 현상약을 사용하였을 때) 빛을 적게 받은 부분(존3)은 약 5분 정도 현상액과 반응한 다음 더 이상 변화가 없게 되고, 중간 정도인 곳(존5)은 약 9분, 그리고 빛을 많이 받은 부분(존 8 이상)은 약 20분까지 계속 반응하면서 점점 더 농도가 짙어지게 된다. 이와 같은 내용을 가지고 현상 시간을 바꾸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을 알아 보도록 하자. 우선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하여 단순화된 이론적 내용을 먼저 설명하고 그 다음에 실재로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하겠다.

 

설명 1

 

8

 

5 3

 

이제 어떤 피사체의 노출값이 위와 같이 B3에서 B8까지 분포하고 있다고 하자. 이 필림을 표준적인 방법으로 현상하면 (현상 시간이 12분이라고 가정) 네가티브의 농도도 존3, 존5, 존8과 같이 분포하게 된다. (그림 1) 그런데 이 필림의 현상 시간을 10분으로 단축 시키면 존8로 나와야 할 부분이 현상이 미처 다 진행되기 전에 정착 되므로 존7이 된다. 하지만 존3인 부분은 5분 만에, 존 5인 부분은 9분만에 현상 작용이 끝나므로 현상 시간이 10분으로 줄었다고 해도 이 부분의 농도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네가티브 전체의 농도가 존 3, 존 5, 존 7과 같이 나온다. 한편 필요에 의하여 존 8인 부분을 존 9의 농도 까지 끌어 올리고 싶다면 현상 시간을 14분으로 연장하면 된다. 이 경우에는 12분 현상에서 존8로 나오는 부분이 시간이 연장된 만큼 현상이 더 진행되어 존9가 된다. 그렇지만 존3인 부분과 존5인 부분은 각각 5분, 9분만에 현상이 끝나므로 네가티브 전체의 농도는 존3, 존5, 존9로 나온다.

 

3,5,7 3,5,9

 

n, n+, n-

여기에서 다시 한 가지 용어를 정의하고 넘어가자. 먼저 정상적인 현상을 하는 경우를 N(Normal) 현상이라고 부르자. 그리고 위의 예에서와 같이 존8을 존7로 바꾸는 경우에는 존의 단계를 한 단계 내렸으므로 이를 N-1현상이라 부른다. 만약 존을 두 단계 내려서 존8을 존 6으로 내리게 되면 N-2 현상이 된다. 마찬가지로 존7을 존 8로 올리면 N+1 현상, 존 6을 존 8로 올리면 N+2현상이라 부른다.

요약하자면 현상 시간을 줄여서 존을 낮추는 것이 N-, 현상 시간을 늘려서 존을 올리는 것이 N+ 현상이고 이 때 낮추거나 올리는 단계를 숫자로 표시하여 뒤에 붙이면 되는 것이다.

 

설명 2

실재로 일어나는 현상도 설명 1과 비슷하다. 다만 어두운 부분이나 중간 부분의 농도가 전혀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 이유는 설명 1에서 말한 것처럼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어느 부분의 현상 작용이 딱 멈춰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어두운 부분에서 진행되는 현상 작용이 5분 후에 정확하게 멈춰지지 않고 미세하나마 좀 더 진행이 되고 중간 부분도 9분 후에 현상 작용이 정확하게 멈춰지지 않고 약간 더 진행이 되는 것이다.

 

이 때 어두운 부분(존 3)은;

아주 약간의 톤이 변하므로 존을 한 단계 변화시키는 n+1현상이나 n-1현상의 경우에는 무시하고 넘어가도 된다. N+2인 경우에는 노출을 반 스텝 덜 주고, n-2인 경우에는 노출을 반 스텝 더 주는 것이 안전하다. 하지만 이 부분의 변화는 미세하므로 무시하여도 큰 지장은 없다.

중간 부분(존5)은;

밝은 부분의 반 만큼 변하게 된다. 즉 존 7을 존 8로 올리면 존 5가 존 5.5가 되고 존 8을 존 7로 내리면 존 5가 존 4.5가 된다.

 

그림

현상 시간 12분의 톤

현상 시간 10분의 톤

현상 시간 14분의 톤

 

이상의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피사체의 어두운 부분, 즉 필림에 빛이 적게 들어가는 부분은 현상 시간을 늘리거나 줄여도 변화하지 않고 일정한 농도로 나온다. 따라서 촬영할 때 노출이 지나치게 적게 들어 갔다면 아무리 현상 시간을 연장 하여도 어두운 부분의 세부 묘사를 살릴 수가 없으며 밝은 부분만 더 진한 농도로 나올 뿐이다.

'노출을 결정할 때는 피사체의 어두운 부분을 기준으로 하라'는 말은 그렇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어두운 부분의 노출 값을 존3이 되도록 정하라는 의미이다.

 

필림의 현상 시간은 밝은 부분을 기준으로 하라는 말도 현상 시간에 따라 밝은 부분의 농도가 직접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구체적으로는 밝은 부분이 존7이 되도록 시간을 정하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밝은 부분의 톤을 1단계 변화 시키는 현상 시간의 변화는 정확하게 어느 정도 인가? 즉 존 7을 존 8로 바꾸기 위하여 늘려줘야 되는 시간이나 또는 존 8을 존7로 내리기 위하여 줄여야 하는 시간은 얼마인지 가 문제가 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각각의 필림과 현상약의 종류에 따라 모두 조금씩 달라지게 된다. 즉 같은 필림이라도 현상약에 따라 다르고 같은 현상약이라도 필림에 따라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정확한 데이타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이 주로 사용하는 필림과 현상약에 대하여 테스트를 하여야 하고 또 필림을 현상하는 방법이 일정하지 않은지도 주의 깊게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사용하는 확대기의 광원이 집광식인가 확산식인가에 따라서도 그 값이 다소 변하게 된다.

 

그렇더라도 제한된 범위 내에서의 일반적인 경향은 말할 수 있다. 아래에 열거하는 내용은 조립자 현상액을 사용하여 감도가 100에서 400정도의 필림에 해당되는 예기이다. 미립자 현상액이나 감도가 25인 저감도 필림 또는 감도 3200의 고감도 필림도 비슷할 것으로 추측하지만 구체적으로 테스트해본 자료는 없다. 이런 필림을 주로 사용하는 사람은 뒤에 나오는 존의 측정 방법을 참고하여 테스트해보기 바란다.

1. 감도 400의 필림 중 구형 필림인 Tri-X, HP5는 N-2에서 N+2까지 무리 없이 조절된다. 현상 시간은 정상적인 시간에서 20%씩 빼거나 더한다.

2. 감도 400의 필림 중 신형 필림(T-grain)인 T-max400, 텔타400, APX400은 N-1에서 N+2까지 무리 없이 조절 된다. 현상 시간은 정상적인 시간에서 10%를 빼거나 더한다.

3. 감도 100의 필림은 구형과 신형 모두 N-1에서 N+1까지 무리 없이 조절된다. N+2현상도 가능하지만 감도 400인 필림처럼 잘 반응하지는 않는다. 현상시간은 구형 필림(Plus-X, FP4 등)은 20% 씩, 신형 필림(T-max100, 델타100, APX100)은 10%씩 조절 한다.

 

각 필림의 실재 데이타(표)

스폿 노출계의 존 표

현상 시간을 변화시키는 예

 

이 사진의 노출 값은 B7에서 B13까지 분포하고 있다. 노출은 B7을 기준으로 하여 이것을 존 3으로 놓아 f11에 1초로 하였다. 이 때 밝은 부분인 B12는 존9가 된다. 사진 전체의 세부 묘사를 얻기 위해서는 N-2현상을 하여야 한다. 이 필림은 데이타를 참고하여 8분에 현상되었다. 밝은 하늘의 세부 묘사가 충실히 살아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진의 노출을 결정하는 것은 다소 복잡하였다. 촬영 할 때 이미 해는 졌기 때문에 어두운 땅거미가 깔려 있었고 피사체의 콘트라스트는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노출은 f32에 1분이 나왔는데 실재 노출은 비선형 효과를 고려하여 6분을 주었다. 이 때 현상 시간을 18%정도 줄여야 하지만 콘트라스트를 올리기 위하여 현상 시간을 줄이지 않았고 오히려 현상 시간을 20% 늘렸다. 결과적으로 이 사진은 원래의 장면 보다 두 단계 정도 높은 콘트라스트로 만들어 졌다. 비선형 효과라는 것이 언제나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존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먼저 각 부분의 노출을 따로 측정한 다음 어두운 부분을 기준으로 존3의 노출을 준다. 이 때 밝은 부분의 존이 얼마가 나올 것인지 확인하여 현상 시간을 증가시키거나 감소 시켜 결정하면 되는 것이다.

 

 

[번 호] 17 / 21 [등록일] 1998년 06월 10일 13:54 Page : 1 / 19

[제 목] [닮산 ] 존 시스템 2

 

일사천리로 존 시스템의 두 가지 명제가 설명되었다. 여기서 한가지 더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아직 '표준 현상 시간 N'을 결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표준 현상 시간이 정확하게 결정 되어야 n+1도 n-1도 정확하게 조절이 이루어 지게 되는 것이다. 표준 현상 시간을 결정하는 것은 많은 책에 '센시토메타'(Sensitometer 또는 덴시티메타 Densitimeter라고도 부른다)라는 기계를 사용하는 것으로 설명되어 있다. 이 기계는 필림이나 인화지의 농도를 측정하여 주는 기계인데 필림의 베이스와 포그의 농도를 합한 것을 0으로 놓고(base+fog ; fb=0) 이보다 0.1 농도가 높은 것을 존1, 0.2 높은 것을 존2,...등과 같이 결정 하고 있다. 이런 방식은 아주 과학적이고 엄밀한 측정 방법이긴 하지만 센시토메타를 가지고 있는 사진가가 도대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그런 것을 보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들어 본적도 없는 사람도 부지기수로 많다. 대형 현상소에는 이런 기계들이 있어서 돈을 받고 고객이 원하는 필림의 농도를 읽어주는 서비스를 하는 곳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것도 번거롭기는 마찬가지이다.

나도 센시토미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또 구입할 의사도 없었으므로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이런 여러 가지 이론을 공부하는 것도 결국은 사진 찍는데 보템이 되고자 하는 것이지 '사진 공학'을 연구하고자 함이 아닌 것이다. 물론 사진에서는 어느 정도의 공학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것도 좋다. 하지만 이론 공부가 지나쳐 '사진 작가'가 아니라 '사진 공학도'가 되는 것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그래서 이 '센시토메타'부분에서는 나도 그만 손을 들고 이제 내 맘대로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표준 현상 시간을 규정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은 수학 중에서 증명에 관한 문제를 푸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이미 몇 개의 정의와 공리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것을 이용하여 어떤 사항을 논리적으로 전개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답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래에 설명되는 내용은 내가 사용한 방법이지만 이것과 다른 방법으로, 보다 쉽게 푸는 방법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독자 여러분도 나름대로의 방법을 한번 연구해 보기 바란다.

 

조건 ; 노출계의 지시는 중간 회색이 나오도록 만들어져 있다.(이것은 노출계를 만드는 메이커가 국제 표준을 따르기 때문에 항상 참이다)인화지의 농도는 존0 부터 존9까지 10단계이며 이중 세부 묘사가 나오는 것은 존3,4,5,6,7의 다섯 단계이고 인화지가 낼 수 있는 최대 흑색은 존 0, 인화지가 낼 수 있는 최대 흰색은 존9이다. (이것은 인화지 종류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이미 인화지 계조표를 만들면서 확인한 사항이다) 중간 회색은 존 5이다. (이것은 그렇게 하기로 약속한 공리이다)

 

이와 같은 조건을 가지고 테스트를 시작하자. 여기서 모든 테스트의 기준이자 잣대가 되는 것은 '인화지 계조표'이다. 이 계조표는 인화지가 낼 수 있는 흑백의 톤을 순차적으로 모두 배열한 것이다.

 

앞서 잠깐 언급한 바도 있지만 필림 메이커가 말하는 감도가 실제로 사진가가 쓰는 것 보다 과장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 표준 현상 시간을 측정하기 전에 먼저 필림의 감도부터 수정하는 것이 좋겠다. 나는 코닥의 Tri-X를 즐겨 사용하는데 메이커가 주장하는 감도는 400이다. 그렇다면 과연 나의 장비와 작업 조건 아래서 이 필림으로 존3의 노출을 주었을 때 존3의 농도가 나올 것인가?

 

1. 필림 감도의 결정

테스트 결과를 판정하기 쉽게 하기 위하여 고른 톤을 가진 피사체를 찾는다. 그레이 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 카드를 사용해도 되고 아니면 흰 종이를 사용해도 된다. 또는 벽지와 같이 고른 톤이 분포되어 있는 것이면 상관없다.

 

목표; 이 테스트의 목표는 존3으로 노출을 주었을 때 인화지에서도 역시 존3으로 나오느냐를 판정하는 것이다. 이 테스트에는 기준점이 반드시 필요하다. 왜냐하면 어떤 네가티브를 인화하여 농도가 존3이 아니었다고 하였을 때 노광 시간을 더 늘리거나 줄이면 존 3의 농도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광 시간을 합리적으로 정한 다음 나머지 테스트는 모두 정해진 시간을 사용하여야 한다.

 

1) 먼저 한 장의 필림은 노출을 주지 않고 그대로 현상, 정착 시킨다. 이 네가티브는 투명한 필림 베이스 이외에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투명한 베이스이기는 하지만 실재로 빛은 어느 정도 차단 시킨다. 이것은 필림 베이스+포그 농도라고 부른다.(fb density)

2) 위에서 만든 투명한 네가티브를 확대기에 넣고 높이를 8X10 인화 정도로 올린다. 이 때 높이는 정확하게 8X10일 필요는 없지만 테스트를 진행하는데 중요하게 작용하는 변수이므로 표시를 하여 두어야 한다.

3) 확대기의 촛점을 맞춘다. 투명한 네가티브를 넣었으므로 필림 케리어의 주변부를 보면서 촛점을 맞춘다.

4) 확대기 타이머를 2초로 맞춘 다음 아래의 그림과 같이 순차적으로 노광을 진행시킨다.(여기서 조리개는 f8을 사용하였는데 다른 조리개를 사용하여도 상관없다. 단 테스트를 진행하는 동안 항상 같은 조리개를 사용하여야 한다.)

 

2 4 6 8 10 12 14

 

여기서는 짙은 회색의 띠가 나오게 되는데 8초의 노광에서 최대한의 검은 색이 나오고 그 이상은 노광 시간을 늘려도 더 이상 검어지지 않고 있다. 이 테스트 결과에서 베이스+포그 농도만 있는 네가티브(fb=0), 즉 존 0에 해당하는 네가티브로 최대한의 흑색을 내는 시간이 8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인화지에서 존 0은 인화지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흑색이라고 정의하였으므로 따라서 존 0의 네가티브를 존 0의 인화지로 만드는 노광 시간이 8초이다.

이 시간이 바로 기준점이 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을 사용하여 존3의 노출을 준 필림이 존3의 농도를 가진 인화지가 되는지 찾으면 되는 것이다.

5) 먼저 필림의 감도를 메이커가 지정한 대로 놓고 그레이 카드의 노출을 측정한 뒤 노출을 두 단계 줄여서 촬영한다. (감도 400)

6) 두 번째 필림은 조리개를 1/3 단계 넓혀서 촬영한다. (감도 320)

7) 세 번째 필림은 조리개를 2/3 단계 넓혀서 촬영한다. (감도 250)

8) 네 번째 필림은 조리개를 한 단계 넓혀서 촬영한다. (감도 200)

9) 메이커가 지정하는 현상 시간대로 현상, 정착한다.

10) 5)번에서 8)번까지 만든 네가티브를 확대기에 넣고 동일한 시간(8초)으로 노광을 시킨다. 이 때 확대기의 높이, 촛점, 조리개 값은 앞서의 테스트와 같게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인화지의 호수는 중간 호수인 2호를 사용한다.

11) 현상, 정착된 인화지를 건조시킨 후 '인화지 계조표'와 비교하여 존 3과 가장 가까운 농도를 가진 것을 찾아낸다. 이 인화를 만드는데 사용한 네가티브가 그 필림의 실재 감도 이다. 이것이 바로 존 3으로 노출이 이루어진 필림 중에서 인화지의 존 3과 가장 가까운 것을 찾는 과정이다. 그리고 인화지는 물에 젖어 있는 상태에서는 더 밝게 보이므로 '인화지 계조표'와 비교할 때에는 반드시 건조 된 후에 하여야 한다.(나는 Tri-X 필림과 PMK현상약으로 감도 250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로디날 1+50 현상약에서는 감도 200이 나왔으므로 사용상의 편의를 위하여 감도 200으로 사용하기로 결론 지었다)

 

2. 표준 현상 시간 N의 결정

이제 자신이 사용하게 될 필림의 실재 감도를 정하였다. 다음은 필림의 현상 시간을 결정하는 과정이다. 표준 현상 시간은 존7의 톤을 가진 피사체를 촬영하여 필림을 현상, 인화하면 그 인화지가 존7의 농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1) 노출계의 감도를 실재로 사용하게 될 것으로 놓고 그레이 카드의 노출을 측정한다.(여기서는 감도 200을 사용하였다)

2) 측정된 노출 값보다 두 단계 노출을 증가 시켜 네 장의 필림을 촬영한다. 그러므로 피사체는 존7로 노출이 이루어 졌다.

3) 현상 시간은 메이커가 지정한 시간을 기준으로 약 5~10%씩 변화시키면서 현상을 한다. 여기서는 지정된 시간이 15분이므로 12분, 13분, 14분, 15분으로 현상하였다. 시간이 짧은 쪽으로 테스트를 진행한 것은 필림의 감도를 메이커의 추천보다 낮게 잡았기 때문에 현상 시간이 다소 짧아야 될 것이라고 추정하였기 때문이다.

4) 각각의 네가티브를 인화한다. 이 때 확대기의 조건은 1번 테스트에서 정한 것과 동일 하여야 하며 노광 시간은 8초이다.

5) 인화지를 현상, 정착한 뒤 건조 시켜 '인화지 계조표'의 존 7과 가장 농도가 비슷한 것을 찾는다. 이것이 표준 현상 시간 N이다.(PMK현상약으로 20도C에서 현상하였을 때 14분 현상한 것이 가장 비슷하였다.)

 

이와 같은 주관적인 테스트를 하면서 가질 수 있는 의구심은 과연 이것이 객관적인 데이타일 것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물론 이런 테스트의 결과는 '센시토메타'를 사용하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데이타와는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사진 작업을 하는 데에는 객관적 자료 보다 더 유용한 자료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과학적으로는 15분이 표준 현상 시간이라고 가정하고 나의 주관적인 자료가 14분으로 나왔다고 했을 때 물론 1분의 오차는 있다. 그러나 내가 항상 14분을 나의 표준 현상 시간으로 사용한다면 나는 곧 내가 현상하여 인화하는 사진이 어떻게 나오는지 알게 되고 이것으로 내가 원하는 만큼의 톤을 재현해 내는데는 약간의 수정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필림을 아무리 과학적으로 테스트하여 표준 농도를 정하였다 하여도 목표가 표준 농도를 가진 인화를 만드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현상 시간의 연장과 감소

 

3. 감소 현상(N-)

1) 그레이 카드의 노출을 측정한 뒤 노출을 세단계 더 증가시켜 세 장의 필림 을 촬영한다. 이것은 노출이 존8로 주어진 것이다. 다른 세 장의 필림을 사용하여 노출을 두 단계 부족한 존 3으로 준다. 이것은 N-1 현상을 하였을 때 어두운 부분의 농도가 어느 정도 감소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2) 필림 현상 시간을 각각 10%, 15%, 20% 줄여서 현상, 정착시킨다.

3) 확대기를 정해진 높이로 놓고 촛점을 맞춘 후 노광을 준다. 노광 시간은 여기서도 8초로 주어야 한다.

4) 인화지를 현상, 정착, 건조 시킨 후 '인화지 계조표'와 비교하여 존 7의 농도와 가장 근사한 것을 찾는다. 이것이 N-1현상을 하는 시간이 된다. 즉 여기서는 존 8로 촬영된 피사체가 존 7의 농도로 나오게 되는 현상 시간을 찾은 것이다.(결과는 11분 현상한 것이 존 7의 농도와 가장 가까웠다) 이 때 존 3으로 촬영된 네가티브도 마찬가지로 처리하여 '인화지 계조표'의 존3의 농도와 같은지 본다. 농도가 거의 같다면 문제가 없지만 만약 농도가 틀리다면 N-1로 현상할 때 어두운 부분의 농도도 같이 떨어지게 된다는 의미이므로 촬영할 때 노출을 약간 더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N-1 현상에서 존3의 농도가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무시할 수 있을 만큼 미세하였으므로 추가 노출은 필요 없다고 판정하였다. 하지만 다른 필림과 다른 현상액을 사용할 때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므로 각자의 테스트가 필요하다)

5) N-2 현상 시간도 마찬 가지 방법으로 확인 한다. 이 때에는 피사체에 존9의 노출을 주어야 하므로 측정된 노출 값 보다 네 단계 더 노출을 주어야 하고 어두운 부분의 농도를 확인하는 필림은 존3으로 노출을 준다.

6) N-2 현상은 위에서 정한 N-1 현상 시간에서 다시 10%, 15%, 20%를 줄여서 한다.(여기서는 9분 현상한 것이 가장 근사하였다.)

7) N-2 현상 시간이 정해지면 이 때 존3으로 노출, 현상된 네가티브가 여전히 존3의 농도를 유지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아야 한다. 실재로 N-2 현상에서는 존3의 농도가 어느 정도 떨어지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8) 인화지 계조표의 존2와 존3의 농도와 비교하여 어느 정도나 농도가 떨어졌는지 확인한다. 만약 농도가 존2에 가깝다면 노출을 한 단계 더 주어야 한다. 만약 농도가 대략 존2와 존3 사이에 위치한다면 노출을 반 단계 더 주어야 한다. 만약 농도가 존3에 가깝다면 노출 보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실재로 인화된 결과를 보면 존2와 존3 사이에서 존2에 가까운 듯 보였다. 하지만 존2 보다는 분명히 짙은 농도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노출을 반 단계 더 주기로 결정 하였다.)

9) 보다 정확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테스트를 다시 한번 반복하여야 한다. 이번에는 노출을 줄 때 8)번에서 확인된 추가 노출량을 더하여 준다. 즉 측정된 노출 값보다 4.5 단계의 노출을 더 주어 테스트 하는 것이다.

 

4. 증가 현상(N+)

1) 감소 현상과 요령은 동일하다. N+1의 현상 시간을 확인할 때는 노출을 한 단계 올려 존6으로 촬영하고 N+2 현상 시간을 확인할 때는 노출을 측정 값대로 주어 존5로 촬영한다.

2) 마찬가지로 어두운 부분의 농도를 확인하기 위하여 존3으로 노출된 필림도 준비한다. 이것은 N+로 현상 시간을 늘렸을 때 어두운 부분의 농도가 얼마나 따라 올라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이다.

3) 만약 존3의 농도가 눈에 띄게 증가한다면 노출을 줄때 약간씩 빼 주어야 한다. (테스트 결과 N+1 현상 시간은 20분이 되었고 노출을 보정해 줄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이 테스트에서 실재로 N+2 현상은 해보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미 N+1 현상 시간이 20분이 되었기 때문에 N+2 현상은 그 이상의 긴 시간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20분 이상의 현상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지루한 일이다. 따라서 나는 PMK현상약으로 Tri-X 필림의 N+2현상을 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였고 N+2 현상을 하기 위해서는 보다 빠른 현상 시간을 가진 로디날 1+25 현상약을 사용하여야 한다고 결론 지었다.

여기에서 제시한 구체적인 테스트 결과는 나의 작업 환경에 맞게 되어 있는 데이타이므로 각자의 작업 환경이나 조건에 맞는 데이타는 다를 수 있다. PMK 현상약을 사용하여 한 몇몇 필림의 데이타는 PMK장에 자세히 기술 되어 있으니 참고 하길 바란다.

 

 

 

35미리의 존 시스템

 

35미리나 중형 카메라는 롤 필림(Roll film)을 사용한다. 보통은 롤 필림이라고 하면 중형 카메라에서 사용하는 120이나 220필림을 지칭하지만 여기서는 35미리 필림까지 합하여 롤 필림이라고 부르도록 하자. 사실 롤(roll) 필림이란 동그랗게 말려 있는 길쭉한 필림을 말하는 것이므로 35미리도 당연히 포함되는 것인데 습관적으로 중형 카메라용 필림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어서 부연 설명을 한 것이다.

 

지금까지 설명된 존 시스템은 사진을 이해하고 조절하는데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것이지만 애석하게도 누구나 다 이런 이론을 충분이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존 시스템이 기본적으로 필림의 현상 시간을 자유롭게 조절 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서 출발한 것이 때문이다. 대형 카메라에서는 쉬트 필림을 낱장 단위로 현상하니까 각각의 노출 상황에 맞는 현상을 하는 것이 가능하고 존 시스템을 사용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35미리나 중형 카메라레서 사용하는 롤 필림은 한 줄의 필림에 10장에서 36장에 달하는 다양한 장면이 수록되어 있고 이것을 하나의 현상 시간으로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전제가 맞지 않게 된다. 그래서 한 롤의 필림에 노출차가 적은 피사체와 노출차가 큰 피사체가 뒤섞여 찍혀 있다면 어쩔 수 없이 둘 중의 한쪽은 희생을 당하게 된다.

 

그렇지만 롤 필림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존 시스템이 아무 쓸모 없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사진의 근본적인 원리를 이해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즉 피사체의 노출을 정하고 그 결과를 예측하여 필요한 만큼의 조절을 하는 것 , 사진가의 '선 구상'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인 것이다. 그리고 존 시스템의 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으면 롤 필림에 적용될 수 있는 자기 나름대로의 시스템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부터 롤 필림을 위한 응용 방법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그 방법은 대체로 두 가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첫 번째는 피사체의 노출 분포에 따라 서로 다른 카메라를 사용하여 필림의 상태를 가능한 한 일정하게 유지하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다계조 인화지를 적극 활용하여 현상 과정에서 조절하지 못하는 부분을 인화 과정에서 조절하는 방법이다.

한 대의 35미리 카메라를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사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먼저 우리가 다루는 피사체는 대략의 콘트라스트를 알아보자. 맑은 날의 야외 풍경은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의 노출차가 수백대 일에서 천대 일까지 달한다. 그리고 구름이 짙게 깔린 날이라면 콘트라스트는 백대 일 정도로 떨어진다. 실내에서 촬영하는 경우는 노출차가 별로 많지 않다. 단 조명을 의도적으로 조절하는 스튜디오라면 예기는 달라진다. 대략 살펴 보건대 자신이 사용하는 필림의 감도를 반으로 낮추어서 촬영하고 필림의 현상 시간을 N-1로 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방법의 이점은 콘트라스트가 강한 피사체의 농도를 어느 정도 낮추어 주므로 인화가 쉽게 이루어 지며 또 콘트라스트가 낮게 나온 장면은 다계조 인화지의 호수를 높여서 인화하여 부족한 콘트라스트를 보상해 주는 것이다. 이때 필림을 n-1로 현상 하지 않고 n으로 현상 하면 콘트라스트가 높은 야외에서의 장면은 대부분 밝은 부분의 세부 묘사가 없는 강한 톤으로 나오게 되고 이런 것은 인화지의 호수를 낮추어도 세부 묘사가 살아나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현상 과정에서 네가티브의 농도가 진한 부분이 은 입자로 꽉 막혀 빛을 전혀 통과시키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인화지의 호수를 어떻게 놓던 간에 아무런 묘사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콘트라스트가 낮은 부분은 셀레니움 토너로 처리하여 농도를 더욱 올릴 수 있는데 인화지의 호수를 올리는 것에 비하여 더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톤을 유지하게 된다. 그러나 셀레니움 토너로 농도를 올릴 수 있는 양이 한 단계 정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토너로 처리하는 것과 인화지의 호수를 올리는 것을 병행해야 한다. 인화지의 톤은 1,2,3호 사이에서 가장 잘 나오고 그 이상이나 그 이하의 호수를 사용하는 것은 사진의 품질을 다소 떨어트리게 된다. 그러므로 만약 4호로 인화하여야 할 네가티브가 있다면 먼저 셀레니움 토너를 사용하여 네가티브의 농도를 올린 다음 3호 인화지를 사용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한 일이다. 그리고 n-1 현상의 장점 중의 하나는 입자의 크기가 작아 좀 더 선명한 사진을 만들어 준다는 점이다. 네가티브의 입자는 현상 과정 중에 서로 뭉치게되기 때문에 현상 시간을 줄이면 입자의 크기도 약간 줄어들게 된다.

 

많은 사진가들이 단 하나의 35미리 카메라만 가지고 있지는 않다. 사진을 시작한지 좀 되는 사람은 아마츄어라고 해도 최소 2대의 카메라 바디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 보통은 한대의 카메라에는 흑백 필림을 넣고 다른 한대에는 칼라 필림을 넣어 가지고 다니게 된다. 어떤 책에서는 그렇게 하라고 권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얼른 생각해 보면 칼라도 찍고, 흑백도 찍고 상당히 좋을 것 같지만 이런 방법이 잘 안 통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흑백과 칼라를 섞어서 촬영하면 상당한 혼란이 오게 된다. 흑백 사진에 맞는 피사체와 칼라 사진에 맞는 피사체는 전혀 다른 구도와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번 흑백으로 찍기 시작하면 습관적으로 흑백 사진에 맞는 피사체가 눈에 보이게 되어 칼라 사진이 어울릴 피사체를 잘 찾지 못하게 되고 마찬가지로 칼라 사진을 찍으면 마음의 눈이 색체에 고정되어 흑백 사진에 어울릴 피사체를 놓치게 된다. 그래서 두 가지 종류의 필림을 가지고 나가도 실제로는 흑백 위주로 찍다가 칼라는 어쩌다 한번 찍던지 아니면 반대로 칼라 위주의 촬영을 하면서 흑백 피사체는 무시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하다 보면 촬영을 하면서도 집중이 되지 않고 계속 칼라에서 흑백으로 또 흑백에서 칼라로 마음을 바꿔야 하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제 2장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우리가 어떤 물체를 본다는 것은 단순한 눈의 작용이 아니고 두뇌와 마음이 깊이 연관되어 있는 행위이다. 우리 마음의 눈도 흑백에 적응하여 흑백으로 찍을 피사체를 찾게 되면 아무리 좋은 칼라 피사체가 있어도 눈에 들어 오지를 않게 되고 현란한 색채에 적응이 되면 형태와 구성으로 이루어진 흑백 피사체를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자꾸 흑백과 칼라를 오락 가락 하면 마음만 더욱 산란해지고 결국 이것도 저것도 잘못 찍게 된다. (심지어는 광각 렌즈와 망원 렌즈를 잘 섞어 쓰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광각의 눈으로 사물을 보다 보면 망원의 피사체가 보이지를 않게 되고 망원의 시각으로 사물을 보다 보면 광각의 피사체가 잘 보이지 않는 것이다.

 

두개의 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양쪽 다 똑같은 필림을 넣는 것이 좋다. 그래서 그 날 하루의 촬영을 칼라면 칼라, 흑백이면 흑백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두 대의 카메라에 흑백 필림을 넣는다면 이왕이면 필림도 같은 것을 사용하여 한대는 'N-1카메라'로 다른 한대는 'N+1' 카메라로 사용하면 된다. 여기서 'N-1 카메라'는 감도를 반으로 낮추어 사용하고 콘트라스트가 높거나 보통 인 피사체를 촬영한다. 그리고 'N+1 카메라'는 감도를 메이커가 제시한 대로 놓고 콘트라스트가 낮은 피사체를 촬영한다.

 

 

[감도] [현상 시간] [대상 피사체] [인화]

[N-1 카메라]반으로 놓는다 N-1 높은 콘트라스트 중간 호수

보통 콘트라스트 중간 또는

한단계 높은 호수

 

[N+1 카메라]메이커의 지시 N+1 낮은 콘트라스트 중간 호수

대로 놓는다 매우 낮은 콘트라 중간 또는 한단계

스트 높은 호수

 

 

 

이와 같이 촬영하면 아주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피사체가 가지는 광선 조건을 무리 없이 소화해 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셀레니움 토너로 네가티브의 농도를 증가시키거나 화머 감력제로 네가티브 농도를 감소시키면 보다 극단적인 상황까지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같은 장면을 양쪽의 카메라로 촬영하여 n-1과 n+1의 네가티브를 동시에 갖게 되는 것도 유용하다. 우리가 보는 피사체는 항상 정해진 콘트라스트에서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평소에는 n-1의 사진을 좋아 하였다 해도 어떤 때 n+1에서 새로움이나 신선한 시각을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35미리 카메라를 3대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카메라를 n-1, n, n+1과 같이 세 가지로 구분하여 사용할 수 있지만 이렇게 하기를 권하고 싶지는 않다. 세대의 카메라를 주렁 주렁 매달고 촬영에 나서면 정신이 산란할 뿐만 아니라 무게도 무겁고 목도 아파서 좋은 자세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촬영을 하는데는 필요한 최소한의 장비를 들고 나가고 가능하면 가방의 무게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조수를 두고 무거운 장비를 대신 들고 다니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가벼운 무게는 그만큼 산뜻한 정신과 부지런한 활동을 보장해 준다.

감당하기 힘든 무게의 가방을 메고 정열적으로 촬영을 하면서 몇 시간씩 집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런 사람은 촬영을 나가 보면 필경 좋은 피사체 보다도 시원한 나무 그늘 밑에서 더욱 자주 눈에 띄이게 되기 마련이다. 필림 메거진을 교환 할 수 있는 중형 카메라는 메거진만 세 개 있으면 이렇게 사용 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만약 지금 두개의 매거진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 더 사기 위하여 충무로로 달려나가지 말기를 바란다. N-1로 현상한 필림으로도 n의 경우를 충분히 살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롤 필림을 사용하면 어떤 방법을 사용 하더라도 각각의 필림에 딱 맞는 농도로 현상을 해 낼 수는 없다. 그래서 롤 필림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인화지의 호수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다계조 인화지가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콘트라스트를 자유롭게 조절 할 수 있는 다계조 인화지가 있는 마당에 필림의 농도를 맞추기 위하여 그렇게 까다롭게 굴 필요가 있을까 의문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계조 인화지라 하여도 아무 호수에서나 사진이 다 잘 나오는 것은 아니다. 중간 호수인 2호를 중심으로 대략 + - 1호 이내에서 최적의 톤으로 인화가 이루어진다. 호수가 이것 보다 높거나 낮은 경우에는 어쨋던 거의 비슷한 인화가 나오긴 나오는데 사진의 느낌이 너무 거칠거나(높은 호수), 왠지 힘이 없어 보이는(낮은 호수) 것이 되어 버린다. 제대로 된 작품이 되지 못하고 어딘가 모자라는 부분이 있는 '애석한 사진'들은 커다란 잘못이 있는 인화가 절대 아니다. 그것은 아주 사소해 보이는 작은 부분에서 묘사가 부족하든지 표현이 거칠던지 해서 완벽한 작품이 되지를 못하는 것이다. 정말이지 예술의 세계에서는 99점 짜리 작품 두개로 100점 짜리 작품 한 개를 대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사진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미세한 차이점도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톤 시스템에 대한 구상

 

 

[번 호] 18 / 21 [등록일] 1998년 06월 19일 13:44 Page : 1 / 23

[제 목] [닮산] 필림 현상 1

 

필림 현상약의 화학

 

필림과 인화지는 기본적으로 같은 화학적 작용에 의하여 영상을 만들게 된다. 빛에 반응하는 화학 물질인 감광유제에 빛이 닿으면 할로겐화 은(silver halide)의 성질이 변하는 광화학 반응이 일어난다. 즉 빛이 가진 에너지가 할로겐화 은결정의 분자적 전위를 변화시키고 이 변화된 결정이 현상액에 반응하게 되어 다른 물질, 즉 금속 은(metallic silver)로 변하는 것이다. 이때 빛에 감광된 유제층은육안으로 보기엔 아무런 변화가 없고 어떤 형태의 이미지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를 '잠상 '(숨어 있는 영상)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어떤 사항이 참인지 거짓인지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냥 참이라고 믿어야 하는 것이 있다. 사진을 배우던 초기였다고 생각되는데 한번은 호기심이 발동하여 유제층의 잠상이 진짜로 눈에 안 보이는 것인지 확인해 보기 위하여 촬영한 필림을 꺼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캄캄한 암실에서 필림을 꺼냈으니 필림만 손에 만져 질뿐 아무 것도 보일 리가 없다. 그래서 "이런 나 바보 아냐? 불을 끄고서 잠상을 보려 하다니...."라고 생각하고 암등을 켜 보았는데 아뿔사 불을 켜는 순간 필림 전체에 고르게 감광이 이루어지니 원래 거기에 어떤 영상이 있었는지 아무것도 없었는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본다는 것은 아무리 약하더라도 불빛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설령 촬영된 필림에 잠상이 희미하게 나와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보기 위하여 불을 켜는 순간 그 불빛이 필림 전체에 고르게 잠상을 만들어 아무 그림도 알아 볼 수가 없게 되는 모순에 빠지는 것이다. '아뭏든 보이지 않는다고 하니 믿도록 하자'고 마음은 먹었지만 이 문제에 대한 진짜 해답은 나중에 이색성 필림(Ortho film)을 현상하면서 알게 되었다. 이색성 필림은 청색과 녹색의 광원에만 반응하기 때문에 붉은 색 암등을 켜놓고 작업할 수 있는 필림이다. 그래서 필림에 추가로 잠상이 생기는 것을 염려하지 않고 불빛을 비추어 볼 수 있었다.

그 결과는? '과연!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구나!'

 

이 잠상은 나중에 필림 현상약과 화학적인 반응(환원 반응)을 한 후에야 실제 눈에 보이는 영상이 되는데 말하자면 잠상이란 것은 유제층의 분자구조상에 그려진 에너지 분포도 같은 것이라 하겠다. 이렇게 예기하면 무척 신비스러운 듯 보이는데 사실로도 그러하다.

유제층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의 구체적인 분자 화학적구조는 우주상에서 단 두분 만이 알고 계셨다. 그 중 한 분은 코닥의 미스(C.E.K Mees)박사였고 다른 한 분은 조물주이시다. 미스(Mees)박사는 코닥 연구소의 소장을 40년간이나 역임하였고 그의 지도하에 다양한 흑백 필림류와 최초의 실용적인 칼라 필림인 '코다크롬(Kodachrome)' 이 개발되었었다. 물론 분자 화학적인 반응 구조를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필림을 만들 수는 있다. 빛에 반응하는 여러 가지 화학 물질이 기존에 알려져 있으니 '왜 그런지?'는 묻지 말고 이것 저것 섞어서 다양하게 실험을 해 보면 '어떻게 되는지?'는 알 수 있는 일이다.(일명 '묻지마 프로젝트'이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코다크롬 필림' 만큼은 개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코다크롬은 놀랄 만한 색 재현성과 해상력을 가지고 있어 그 이후 개발된 E-6계열의 필림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바 되었는데 오늘날 최신 기술에 힘입어 겨우 이에 필적할 만한(그러나 능가 하지는 못하는)제품이 나오기는 하였다. 코다크롬은 다른 어떤 필림과도 다른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고 색을 재현하는 염료(dye)를 필림의 유제층에 내포하고 있는 E-6계열의 필림과 달리 현상을 하는 과정에서 이 염료(dye)를 주입하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은 반응 기제에 대한 자세한 구조는 이후 유수한 필림 업체들이 밝혀 내고자 도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밝혀지지 않았고 비슷한 구조의 제품(dye을 외부에서 주입하는)조차도 생산되지 못하였다. 코닥의 이 기술은 엄격한 보안 속에 있기 때문에 실제로 코닥의 연구소에서 일하는 연구원이라 하여도 이를 완전하게 알아낼 수는 없는 모양이다.

아마도 코카 콜라(Coca Cola)의 처방과 함께 산업계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안이 유지되고 있는 것 중에 하나 일 것이다. 코카 콜라의 처방은 지난 100년 동안 단 7명만이 그 내용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몇 년 전인가 코카 콜라사는 추격해 오는 펩시 콜라를 따돌리기 위하여 새로운 맛의 '뉴 코크(New Coke)'를 발매하면서 다시는 쓸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이 오래된 코카콜라의 처방전을 은행 금고 깊숙이 보관하게 되었다.

그러자 원래의 코카콜라 맛에 길들어져 있던 미국의 소비자들이 분기탱천 하여 옛날의 '코크'를 재생산하라며 경향 각지에서 데모를 벌이게 되었다. 더불어 코카 콜라의 매상도 뚝 떨어지게 되었다. 결국 이 처방전은 1년 만에 금고에서 나와 '클래식 코크'라는 이름으로 다시 생산되게 되었는데 이 처방전을 꺼내오기 위하여 무장 경호원에 둘러싸인 코카 콜라사의 중역이 TV에서 중계하는 가운데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종이 한 장 꺼내기' 작전을 벌이게 된 것이다.

이 종이는 만약 탈취 당했을 경우 전세계 청량음료계의 판도를 영구히 바꿀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가치도 수조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되는 울트라슈퍼 종이 쪽지인 것이다.

 

코다크롬의 명성도 이에 못하지 않은 것이어서 흑백 필림인 Tri-X와 함께 코닥사의 이름을 사진의 역사에 깊이 새겨 놓은 물건이며 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어 사진에 자신의 정렬과 노력을 쏟아 붓도록 만든 것이다. 내가 중학생인가였을 때 제일 유명했던 외국 가수는 '사이먼 엔 카펑클'이라는 듀엣이었는데 그 인기가 가히 하늘을 찌르고도 남을 기세였다. 그 중 폴 사이먼이 부른 '코다크롬'이라는 팝송은 나도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노트에 한글로 발음만 받아 적어 따라 부르기도 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필림 이름인 줄은 사진을 시작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가사는 코타크롬의 색에 매혹된 한 학생이 공부는 하지 않고 사진에 빠지자 성깔 사나운 어머니가 그 소중한 필림들을 내버리려 한다는 내용이다. 오늘날의 한국 청소년들이 입시 공부에 시달리는 것이야 지구적으로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 당시의 미국도 "공부해랏! 공부!"를 강요하는 시절이었나 보다. 어느 나라나 청소년의 생각은 고리타분한 기성 세대와는 맞지 않는 법이고 법대나 의대를 좋아하는 부모들이 사진이나 찍겠다는 자식들의 포부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차이가 없는 모양이다.

 

예기가 빗나가긴 하였지만 아뭏든 사진의 역사를 흑백에서 칼라로 반전시킨 미스(Mees)박사는 1960년에 이미 타계하였고 이때 그 비밀의 반응 기제에 대한 지식을 그대로 가지고 가서 조물주께 돌려 드렸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남은 사람들이야 아둔한 머리로 그런 신비를 어떻게 알아낼 수 있겠는가? 물론 제일 좋은 방법은 조물주께 물어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를 해야 하는데 도대체 무엇부터 질문을 해야 한단 말인가? 답답하기는 내노라 하는 학자들도 마찬가지여서 절치부심 노력 끝에 몇 가지 가설이 나오기는 하였다. 요점은 할로겐화 은이 빛에 의하여 어떻게 변화하고 또 그것이 현상약과 어떻게 작용하여 금속 은으로 변하는가 이다. 그 중 가장 그럴듯한 가설은 거니-모트(Gurney-Mott)의 이론이다.

 

빛이 할로겐화 은 결정을 때리면 그 결정구조의 일부가 무너지는데 이를 덫(trap)이라고 한다. 이 덫(trap)이 현상약의 염기를 잡아들여 반응을 일으키는 방아쇠 역할을 하고(즉 활성화 된다) 결국 할로겐화 은을 금속 은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빛에 의하여 결정 구조가 무너지는 할로겐화 은은 그 양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적다. 가시 광선은 어떤 화학 물질의 분자 구조를 바꾸기에는 에너지가 너무나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니-모트의 가설에서는 빛에 의하여 결정 구조가 무너진 할로겐화 은이 그 주위의 멀쩡한 할로겐화 은도 연쇄 반응처럼 물고 들어가 같이 변하게 된다고 두리뭉실 넘어가고 있다. 결국 이 연쇄 반응이 어떤 기제로 일어나는 지가 오리무중인 셈인데 실제로 빛에 의하여 활성화되는 할로겐화 은만 현상이 된다면 아직 사진이라는 것이 발명되지 못했을 정도로 미미한 것이다.

 

노출이 이루어진 네가티브를 현상약에 넣어 현상을 진행시키면 빛을 많이 받은 부분은 덫(trap)을 가진 할로겐화 은의 양도 상대적으로 많고 따라서 금속 은으로 변하는 양도 많아서 짙은 농도를 나타내게 되고 빛을 적게 받은 부분은 덫(trap)의 양도 적어서 금속 은의 농도도 엷어진다. 이와 같이 금속 은의 양은 빛을 받은 양에 비례하지만 그 외에도 현상약의 종류, 현상 시간, 온도, 교반 횟수 등에도 영향을 받는다.

 

**금속 은의 양을 변화 시키는 변수

변수

상태

비고

빛의 양(노출)

빛의 양이 많을수록 많이 변한다

빛의 양은 주로 어두운 부분의 금속 은 농도를 결정한다.

현상 시간

현상 시간이 길수록 많이 변한다

현상 시간은 밝은 부분의 금속 은 농도를 결정한다.

현상약의 종류

조립자 현상약일수록 많이 변한다

미립자 현상약은 어두운 부분의 농도를 잘 만들지 못하므로 필림의 감도를 낮추어 사용해야한다.

온도

온도가 높을수록 많이 변한다

온도는 다른 목적이 있지 않은 이상 20도C를 지켜야 한다.

교반 횟수

교반이 많을수록 많이 변한다

교반은 일정한 방법과 횟수로 해야 한다.

 

현상이 완료된 네가티브에는 금속 은과 할로겐화 은이 같이 있게 되는데 이중 변화되지 않은 할로겐화 은은 네가티브에서 하등 쓸모가 없는 물건이다. 따라서 이를 정착액에 넣어 제거하고 나면 금속 은으로만 이루어진 네가티브가 얻어지는 것이다. 보통 사용하는 정착제는 흔히 '하이포(Hypo)'라고도 부르는 티오 황산나트륨(sodium thiosulfate)이거나(이것이 하이포라고 불리는 이유는 과거에 이 화합물이 Sodium hyposulfate라 불렸기 때문이다) '급속 정착제(rapid fixer)'라고 부르는 티오 황산 암모니움(ammonium thiosulfate)이다. 정착제는 필림면에 남아 있을 경우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변색을 일으켜 네가티브를 망치므로 흐르는 물에 수세하여 제거하고 나면 현상이 끝나게 되는 것이다.

 

현상과 현상약

현상약은 종류가 다양하여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이나 보통은 각자가 좋아하고 즐겨 사용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필림 현상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현상약을 사용하느냐 보다는 그 현상약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는지 또 그것을 충분히 활용하는지의 문제다. 그러므로 어떤 한 현상약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변수를 정밀하게 조절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매번 다른 결과가 나와 혼란에 빠지게 된다. 또한 필림 현상은 사진이 만들어지는 과정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이며 인화지 현상과 달리 실수를 하였을 때 이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므로 주의 깊게 다루어져야 하는 부분이다.

 

가루로 된 현상약을 녹이거나 희석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물은 불순물이 되도록 없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쓰는 수돗물에는 철분, 염소, 칼슘, 인 등 각종 광물질이 함유되어 있다. 또 수돗물은 지역에 따라 성분도 다르고 한 지역에서도 시간이나 날짜에 따라 함유된 성분이 변하게 되므로 증류수를 사용하는 것이 제일 좋은 결과를 내준다. 하지만 모든 필림을 다 증류수로 현상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진가에겐 어려운 일이고 석회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물은 대체로 안정된 결과를 내주는 편이므로 수돗물을 사용하여도 실용상 큰 지장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피로갈롤(pyrogallol) 계열의 현상약은 사용하는 물의 산도(pH)에 매우 민감하게 변하므로 가능한 한 증류수를 사용해야 한다. 현상은 보통 20도C 에서 하게 되어 있고 온도가 높아짐에 따라 네가티브 전체 농도가 급속하게 짙어지므로 정확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현상약은 어떤 것이 무조건 좋다 나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인데 그것은 사용하는 필림의 종류나 원하는 의도에 따라서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두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네가티브의 질, 즉 입자의 크기, 형태, 톤이 분리되는 정도, 세부 묘사(detail)의 뭉개짐, 부드러운 중간 톤의 유무, 선예도등 모든 것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화학적 의미에서 네가티브상의 한 개의 입자(단위 입자)는 그 크기가 매우 작아서 고 배율의 현미경이 아니면 볼 수 없지만 우리가 육안으로 필림에서 보게 되는 입자는 여러 개의 단위 입자가 뭉쳐서 한 덩어리로 된 것이다. 예를 들자면 입자가 매우 작은 저 감도의 필림은 10개의 단위 입자가 뭉쳐서 하나의 입자를 이룬다면 고감도 필림의 경우는 50개의 단위 입자가 뭉쳐서 하나의 입자를 이룬다고 보면 되겠다.

 

입자의 뭉침(저 감도 필림)

입자의 뭉침(고 감도 필림)

 

단위 입자의 형태나 뭉친 모양은 사진의 선명도에 영향을 미친다. 같은 갯수의 단위 입자가 뭉치더라도 조밀하게 될 수도 있고 보다 성글게 될 수도 있는데 이것은 현상약에 포함된 은 용해제(silver solvent)의 양에 좌우된다.

 

입자가 뭉친 모양(은 용해제의 유무)

 

여기서 한가지 혼동하기 쉬운 문제를 짚고 넘어가자. 사진의 선명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입자의 크기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조밀하게 붙어있는 선을 분리해 내는 능력을 해상력(resolution)이라 하는데 입자가 고울수록 해상력이 높아지고 입자가 크면 해상력이 떨어진다.

한편 선예도(acutance)라는 것은 어떤 선의 경계가 뚜렷한지 아닌지를 말하는 것인데 예를 들어 왼쪽은 검고 오른쪽은 흰 피사체를 찍었을 경우 이 흰색과 검은 색의 경계가 칼로 자른 듯이 예리하면 선예도가 높은 것이고 경계선이 날카롭지 못하면 선예도가 떨어지는 것이다. 사진을 보면서 선명하게 느끼는 것은 피사체의 선이 날카롭고 뚜렷한 경우, 즉 선예도가 높은 경우이다. 반면에 입자는 매우 고우나 피사체의 선이 뚜렷하지 않은 경우엔 연조(Soft) 사진이 된다.

 

한편 같은 크기의 입자에서도 단위 입자의 뭉친 모양이 성글게 되어 있는 경우에는 선예도가 높아질 수 없다. 단위 입자가 성글게 뭉쳐있으면 입자 자체의 크기는 작아 보이지만 확대된 사진에서는 선이 뚜렷하게 분리되지 않아 전혀 선명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주로 미립자 현상액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따라서 미립자 현상액이 입자를 작게 하는 것은 사실이나 사진을 선명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실제로는 영상을 흐릿하고 부드럽게 해주는 것이 미립자 현상액이다.

 

현상약을 만드는 제조업자들은 보통 특정한 필림에 적합한 현상약을 나름대로 추천하고 있다. 이것은 몇 가지 요소를 참작하여 나온 추천인데 예를 들어 감광유제의 특성, 효과적인 현상 시간, 적당한 입자의 크기등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이다.

현상약을 선택하는 데에 제일 좋은 방법은 널리 쓰이는 종류를 하나 선택하여 쓰는 것이다. 한번 익숙해진 현상약을 쉽게 바꾸는 것은 무의미하고 위험한 일이므로 획기적인 개선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없는 한 이를 바꾸지 않는 것이 좋다. 한두 달에 한번씩 현상약을 바꾸어가며 온 세상의 현상 약품을 다 테스트 해보고 제일 좋은 것을 고르겠다는 일념을 가지고 있다면 사진 클럽보다는 화학 실험 클럽에 가입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조립자 현상약 ; 가장 널리 쓰이고 좋은 결과를 내는 현상약이다. 톤의 분리가 우수하고 중간 정도의 입자 크기를 내며 높은 선예도를 가지고 있다. 코닥의 HC-110, D-76, 그리고 아그파의 로디날(Rodinal)이 이런 종류이다. 한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조립자 현상약이라고 해서 입자가 거칠고 크게나오는 조립자 사진을 연상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입자의 크기는 일차적으로 필림의 감도에 의하여 결정된다. 단 같은 필림을 사용하였을 때 미립자 현상약에 비하여 보다 크고 선명한 입자를 만들어 주기 때문에 '조립자'라는 말이 붙은 것이다.

미립자 현상약; 미립자 현상액은 실제로 입자의 크기를 줄여주지만 높은 선예도를 유지한 채 입자의 크기만 줄어드는 신비의 명약은 아직껏 나온 적이 없고 은 용해제(silver solvent)를 많이 함유 시켜 입자를 성글게 뭉치게 하면서 입자의 크기를 줄인다. 이 종류의 현상액은 필림의 실제적인 감도도 떨어트리는데 같은 노출을 준 필림이라도 지나치게 엷은 농도의 네가티브를 만들게 되므로 추가로 1/2stop에서 1stop정도의 노출을 더해야 한다. 코닥의 마이크로돌(Microdol)이 대표적인 미립자 현상약이다.

 

현상약을 선택할 때 자신의 촬영 주제, 확대할 크기, 확대된 사진의 용도 등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풍경이나 건축과 같은 주제는 보통 최대한의 선명도를 사진적인 요소로서 요구하게 된다. 이럴 때는 입자가 약간 커지더라도 최고의 선예도를 내는 것이 유리하다. 화면 전체의 선명도가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입자가 곱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또 사진을 인쇄하는 경우에도 선예도를 우선해야 한다. 인쇄라는 것은 주어진 원고(사진)의 질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고 어느 정도의 묘사력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잡지나 신문에 실리는 사진은 보통 '1도 인쇄'의 낮은 품질로 만들어지는데 이런 인쇄에서는 사진의 대략적인 형태를 전달하는 수준에 그친다. 극단적인 예로는 신문에 인쇄된 사진을 들 수 있는데 거칠고 큰 인쇄 망점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높은 해상력이나 풍부한 톤의 사진은 재현될 수 없다.

사진 작품집을 만드는 경우에는 보다 품질이 우수한 '2도 인쇄(듀오 톤(duo tone)이라고도 부른다)'를 하거나 아주 고급인 경우 '4도 인쇄'를 하게 된다. '2도 인쇄'는 두 가지 종류의 잉크를 사용하여 한 장의 사진을 두 번 인쇄하는 기술인데 이 때 잉크의 농도와 색깔을 다르게 조절하여 원고의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묘사를 효과적으로 재현해 내는 것이다. '4도 인쇄'는 네 가지 잉크(CMYK)를 사용하여 칼라 사진을 인쇄하는 기술인데 요즈음엔 흑백 사진인 경우에도 종종 사용되며 가장 좋은 품질의 인쇄를 해 줄 수 있다. 그렇지만 인쇄의 품질은 인쇄소에 따라서 차이가 많고 얼마나 숙련된 인쇄공이 롤러에 주입되는 잉크의 양을 조절해 주느냐에 의해서도 크게 좌우된다. 어쨋던 인쇄는 인화된 사진의 품질을 100% 다 전달 해 주지는 못하는 것이다. 한편 여성의 인물 사진을 찍은 경우라면 부드럽고 고운 톤이 사진의 느낌을 크게 좌우할 뿐더러 지나치게 선명한 것이 오히려 좋지 않은 경우도 많으므로 미립자 현상액이 적합할 것이다. 다큐멘타리 사진은 내용에 따라 거친 입자가 사진의 분위기를 더욱 강조해 주는 수도 있다.

 

사진을 크게 확대해야 하는 경우에는 입자의 크기를 무시하고 무작정 선예도만 추구할 수도 없는데 35미리 필림은 기념사진이 아닌 이상 최소한 20배 이상의 크기로 확대되므로 입자의 크기를 고려해야 하며 반면에 4X5필림인 경우에는 2~3배의 확대만으로도 같은 크기를 가지므로 입자의 크기를 고려하지 않아도 지장이 없다.

사진 미학의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인 깨끗하고 부드러운 톤의 분리나 이미지의 생생함은 35미리 필림과 대형 필림을 비교하였을 때 근본적인 차이가 생기며이것은 주로 확대율의 차이에서 나오는 것이다.

 

현상약의 성분

현상약은 여러 가지 성분의 조합으로 되어 있는데 이에 대한 특성을 알아두면 필요에 따라 성분을 조절하여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쉽게 만들 수 있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메이커에서 나온 제품을 사다 쓰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약품을 조제할 일이 없지만 피로 갈롤이나 글리신 같은 특수한 현상약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성분과 특성을 알고 있어야 한다.

 

현상 환원제 ; 이 유기화합물은 빛을 받은 할로겐화 은을 금속 은으로 환원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메톨(Metol), 하이드로퀴논(Phenidone-Hydroquinon), 아미돌(Amidol), 피로갈롤(Pyrogallol), 글리신(Glycin)등이 일반적으로 쓰이는 화합물이다. 대부분의 현상약은 메톨과 하이드로 퀴논을 적절한 비율로 배합하여 만들어 지는데 메톨은 필림 전체의 세부 묘사를 고르게 확보하여 주고 하이드로 퀴논은 콘트라스트를 올려주는 역할을 하여 밝은 부분(high light)의 농도를 강화하는 작용을 한다.

 

시중에 나와 있는 약품은 거의 전부가 메톨과 하이드로퀴논의 조합으로 되어있다. 따라서 각 필림 현상약은 이 메톨과 하이드로 퀴논의 성분비에 따라 고유한 특성을 가지게 되고 최종적으로 현상된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즉 현상약에 따라 네가티브의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의 톤이 미묘하고도 다양하게 변할 수 있는 것이다. 메톨만 단독으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중간 톤이 풍부하게 확보되지만 밝은 톤이 약하게 되고 하이드로퀴논만 사용하게 되면 중간 톤이 없어지고 극단적으로 강한 콘트라스트의 사진이 나온다.

 

네가티브의 농도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보다 짙거나 엷은 것을 선호할 수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메이커에서 추천하는 처방이 너무 강한 콘트라스트로 나온다는 생각이 든다. 나 자신은 어두운 부분(shadow)의 세부 묘사(detail)이 충분이 나오고 밝은 부분(high light)은 다소 엷게 나오는 것을 좋아 한다. 즉 인화를 하였을 때 어두운 부분의 세부 묘사도 남아있으며 또한 밝은 부분도 단순히 하얗게 되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묘사를 가지기를 원하는 것이다.

 

아그파의 로디날(Rodinal) 현상약은 하이드로 퀴논이 들어있지 않고 메톨만 들어있는 약인데 상대적으로 밝은 부분(high light)의 농도가 적게 나온다. 이때 노출을 1/2단계 정도 더 주어 촬영을 하면 풍부한 암부의 묘사와 함께 밝은 부분의 농도도 적절하게 증가되어 훌륭한 네가티브가 얻어진다. 또 사용 목적에 따라 밝은 부분을 더욱 진하게 하여 강한 콘트라스트를 얻고자 하는 경우에는 현상시간을 비례적으로 늘려 주면 되는데 이것은 밝은 부분의 농도가 현상시간에 선형적으로 비례하여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현상 시간을 임의로 정해야 하는 존 시스템을 사용할 때 매우 편리한 특성이다. 즉 콘트라스트를 한 단계 올리기 위하여 현상 시간을 15% 늘렸다면 두 단계 올리기 위해서는 30% 올리면 된다. 반면에 하이드로퀴논이 들어가면 이런 선형적 비례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즉 콘트라스트를 한 단계 올리기 위해서 15% 현상 시간을 증가 시켰다 해도 두 단계 올리기 위해서 30%를 주면 안되는 것이다. 그 값은 하이드로퀴논의 양에 따라서 20%가 될 수도 있고 25%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각각의 경우에 대하여 모두 테스트를 해 보아야 하는 불편한 점이 있다. 그래서 하이드로 퀴논이 함유되어 있는 현상제는 메톨만 단독으로 쓰인 경우보다 밝은 부분(high light)의 농도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진다. 그리고 대부분의 메톨-하이드로퀴논 현상제는 어두운 부분(shadow)의 세부 묘사가 충분히 나오기 전에 밝은 부분(high light)의 농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이 경우에 밝은 부분의 농도를 낮추기 위하여 현상시간을 줄이면 어두운 부분의 세부 묘사가 지나치게 엷어진다.(물론 이것은 현상약의 종류에 따라 약간씩 틀리다. 그러므로 자신이 사용하는 현상약의 특성을 알고 자기에게 맞는 데이타를 만들기 전에 이것 저것 사용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보존제(Preservative); 필림 현상에 쓰이는 화합물들은 물에 용해되었을 때 산소와 쉽게 반응하여 특성이 변해 버리게 된다. 쓰고 남은 현상액을 오래 보관하였을 때 약품이 암갈색으로 변한 것을 자주 보았을 것이다. 이것은 물속의 산소와 반응하는 산화 작용인데 이때 아황산 나트륨(sodium sulfide)를 첨가하여 산화의 속도를 늦추게 되면 현상액의 수명을 늘려주게 된다. 그러나 최적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한번 사용한 현상약은 버리는 것이 좋다. 흑백 사진의 약품은 칼라 사진의 약품과 달리 심각한 환경 오염을 일으키지 않는다.

 

가속제(Accelator); 이것은 대부분의 현상약에서 필요한 알칼리성을 확보하는데 쓰이며 탄산 나트륨(Sodium carbonate)이나 수산화 나트륨(Sodium hydroxide)이 주로 쓰인다. 이중 탄산 나트륨은 약한 버퍼(buffered) 알칼리이다. (버퍼라는 것은 염기가 이온을 방출할 때 한꺼번에 나오는 것이 아니고 일정시간 동안 일정한 양이 지속적으로 방출 되는 것이다.) 사용하는 물에 따라서 현상약의 반응이 틀려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알칼리성 염기가 물 속에 얼마나 포함되어 있느냐에 좌우된다. 알칼리성이 강한 물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현상약의 반응이 빠르게 나타나고 반면에 산성이 강한 물을 사용하면 현상약의 반응 속도가 떨어진다. 따라서 메이커에서 지정해 주는 현상 시간은 하나의 지침이며 자신의 작업 환경에 따라 현상 시간을 어느 정도 늘리거나 줄여야 할 필요가 있다.

 

포그 억제제(Fog Restrainer); 실제로 현상약은 빛에 감광되지 않은 할로겐화 은도 어느 정도 환원을 시키게 된다. 그래서 현상된 필림은 빛을 받지 않은부분이라도 아주 투명한 것이 아니다. 이것을 포그(fog)라고 하고 이 포그를 줄이기 위하여 브롬화 칼륨(Potassium bromide)을 첨가하게 된다. 이것은 현상약의 환원 작용을 약간 늦추어 주는 것인데 필림의 농도가 엷은 곳에서 이 fog 억제제의 작용에 의하여 보다 투명한 베이스면을 가지게 되고 농도가 짙은 곳에서는 그 영향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된다. 포그의 농도는 현상약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현상 온도는 얼마인지 등에도 영향을 받게 된다.

 

현상약을 얼마나 오래 보관할 수 있는지는 몇 가지 변수에 의하여 좌우된다. 먼저 물은 불순물이 없고 중성(pH 7)인 것이 제일 적합하다. 따라서 증류수를 사용하는 것이 제일 좋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매번 증류수를 사다가 쓰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수돗물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수돗물에 함유되어 있는 염기는 일정 수준 이하로 조절되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특별한 이상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상 작업에 필요한 다른 주의를 충분히 기울였는데도 결과가 일정하지 않으면 증류수를 사용해 볼 필요가 있다.

현상약은 산소와 결합하여 쉽게 산화되기 때문에 공기 중에 노출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그 성능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따라서 한꺼번에 너무 많은 약을 용해하여 보관하는 것은 좋지 않다. 물론 산화를 지연시키는 성분이 포함된 약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보관 중에 일어나는 산화를 피할 수는 없다. 산화를 지연시키는 한 가지 요령은 작은 병을 여러 개 준비하여 병의 입구까지 올라오도록 약을 가득 부은 후 뚜껑을 닫아 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현상약이 공기와 접촉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교적 오랫동안 약을 보관 할 수 있다. 반면에 피로(pyro)계열의 현상약은 매우 빠르게 산화되기 때문에 배합 후 즉시 사용해야 한다. 피로 계열의 약을 보관하는 방법은 배합하지 않는 것뿐이다.

산화 작용은 빛을 받으면 가속화되기 때문에 현상약은 스테인레스(stainless)통이나 갈색으로 된 병에 보관되어야 한다. 투명한 통에 담은 경우에는 가능한 한 어두운 곳에다 둔다. 일부 플라스틱통은 현상약을 오래 담아두면 내부가 검게 변색되는데 이것은 산소가 프라스틱 분자 사이를 투과하여 현상약과 반응을 일으킨 후 분자구조 사이에 남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상 작업에 사용하는 각종 용기는 잘 세척하여 암실 작업 중에 여러 약품 성분이 서로 섞이지 않게 해야 한다. 비어커나 개량 컵은 그 가격이 얼마 되지 않으므로 몇 개를 구입하여 현상약, 정착액, 토너등으로 구분하여 사용하는 것도 균일한 품질을 유지하는 데에 좋다.

 

정지액

정지액은 그 성분이 산성이며 알칼리 용액에서 현상된 필림의 표면을 중화 시킨다. 필림은 현상액에서 나온 후에도 표면에 묻어있는 용액 때문에 현상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데 산성 용액인 정지액에 들어가면 현상이 즉각적으로 멈추어지게 된다.

정지액은 정착의 전단계에서 사용되며 역시 산성 용액인 정착액이 중화되는 것을 막아 주어 수명을 연장시킨다. 정지액은 수명이 다하면 색이 청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암실에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정지액을 따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보통 물을 대신 사용하는데 그 보다는 정착액을 두 번 사용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즉 기존에 사용하여 교체할 시기가 된 정착액을 정지액 대신 사용하는 것이다. 정착액은 수명이 다 한 경우에도 산성이기 때문에 알칼리 성 현상액을 즉시 중화시키게 되며 또한 대게는 수명이 다하기 이전에 교체를 하기 때문에 1차적으로 정착을 거친 후 다시 신선한 2차 정착액으로 옮기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정착액의 수명도 크게 늘어나게 된다.

 

정착액(Fixer)

정착액의 기능은 환원되지 않고 남아있는 할로겐화 은을 필림 표면에서 제거하는 것이다. 정착액의 성분은 티오 황산 나트륨(Sodium thiosulfate)이나 티오 황산 암모니움(Ammonium thiosulfite)이다. 여기에 산성을 내기 위해서 이황화 나트륨(Sodium bisulfite)을 첨가하는데 처방에 따라서는 정착액 특유의 냄새를 줄이고 산도(pH)를 일정하게 하기 위한 버퍼 산(buffered acid)으로서 붕산(boric acid)을 추가하기도 한다. 그리고 경화제가 첨가된 정착액(hardening fixer)은 필림의 유제면을 딱딱하게 굳혀서 유제면이 긁히는 것을 줄여주는 기능을 한다.

정착액은 사용하다 보면 정착되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게 된다. 이것은 정착액이 녹일 수 있는 할로겐화 은의 양이 한정되어 있어 어느 정도 이상 용해되면 포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이 때에는 정착 시간을 늘리는 것 보다 정착액을 교체하고 먼저 쓰던 약을 정지액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사실은 필림인 경우에는 베이스(아세테이트 나 셀룰로이드)에 정착액이 흡수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을 늘려서 정착을 완료하는 것도 무방하지만 화이버 베이스 인화지는 종이가 정착액을 흡수하기 때문에 정착 시간을 늘리는 것이 좋지 않다.

 

정착액 제거제(Hypo clearing solution)

정착이 끝난 네가티브는 수세를 거쳐 정착액 제거 용액에 넣어야 한다. 이것은 메이커 별로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단순히 물로만 수세를 한 경우보다 정착액을 빠르게 제거할 수 있다. 메이커에서 제시하는 처방대로 사용하면 이상이 없다. 인화지를 수세하는 경우에 지나치게 길게 하면 인화지에 포함된 흰색의 발색제(brightner)를 씻겨나가게 만드므로 좋지 않다. 이 발색제는 종이의 흰색 톤을 더욱 강조하여 깨끗하고 밝은 톤을 가진 하이라이트를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필림이나 인화지의 보존성을 좋게 하기 위해서는 셀레니움 토너(Selenium toner; 세피아 토너(Sepia toner)와 혼동하지 말 것)로 처리하면 된다. 보존 처리를 할 때는 약 1:20이나 그 이상으로 희석하여 사용하면 된다. 한편 셀레니움 토너를 네가티브의 콘트라스트를 올리는 데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약 1:4로 혼합하여 쓴다.

 

 

 

[번 호] 19 / 21 [등록일] 1998년 06월 22일 14:07 Page : 1 / 24

[제 목] [닮산] 필림 현상 2

 

필림 현상 방법

 

그러면 이제 필림을 현상하는 방법을 검토해 보기로 하자. 자신의 사진이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았다면 먼저 필림 현상을 제대로 하고 있는 지부터 다시 한번 검토해 보아야 한다. 필림을 현상하는 것은 사진의 여러 과정 중에서 가장 정밀하고 균일하게 작업이 이루어져야 하는 부분이다. 한번 망친 필림은 다시 살려내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작업을 정밀하게 하는 요점은 정교하고 값비싼 장비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방법과 과정으로 이를 사용하느냐 하는 점이다. 현상 과정에서 변이를 일으키는 변수는 매우 많다. 따라서 이 변수를 일정한 범위 이내로 제한하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려워 진다. 현상의 전 과정을 통하여 일정한 온도, 배합 비율, 교반 과정을 지키면 이 변수들이 상수화 된다. 현상된 결과가 너무 진하거나 너무 엷다 하더라도 일정하게만 나온다면 이를 원하는 농도로 만드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용어 정의) 앞으로 나오는 설명 중에서 혼동을 할 수 있는 부분을 하나 정의하고 넘어 가자. 필림을 현상하고 나면 흑백의 명암이 반대로 되어 있는 '네가티브'가 나오고 이것을 인화 하면 명암이 제대로 되어 있는 '인화'가 나오게 된다.

따라서 촬영된 피사체의 어두운 부분(Shadow)은 네가티브에서 농도가 엷게(투명하게) 나오고 피사체의 밝은 부분(High light)은 농도가 진하게(검게) 나온다. 이렇게 명암이 바뀌게 되므로 피사체나 인화지를 말할 때 어두운 부분이라고 했던 것이 네가티브에서는 밝은 부분 또는 투명한 부분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설명하면 또 다른 혼란을 야기 시키기 쉽다. 사진을 설명하면서 일일이 네가티브를 말하는 것인지 피사체나 인화지를 말하는 것인지 주석을 붙여두지 않으면 안되고 읽는 사람도 어떤 때는 어둡다고 했다가 어떤 때는 밝다고 하니 자칫 헷갈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명암이 반대로 된 네가티브의 경우도 '어두운 부분'이라고 말하는 것은 농도가 '엷은 부분' 즉 인화된 사진에서 검게 나오는 부분을 말하는 것이고, '밝은 부분'이라는 것은 '농도가 진한 부분' 즉 인화된 사진에서 하얗게 되는 부분을 말하는 것이라고 통일하여 사용하도록 하자.

 

용어

피사체

네가티브

사진

어두운 부분

(Shadow)

피사체의 암부

농도가 엷은 부분

검게 인화되는 부분

밝은 부분

(High light)

피사체의 밝은 부분

농도가 진한 부분

희게 인화되는 부분

준비물

필림을 현상하기 위하여 필요한 도구는 현상 탱크, 온도계, 약품, 병, 암백, 타이

머, 필림 피커이다.

 

(준비물 사진)

 

현상 탱크는 스테인레스나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으며 필림을 감는 릴(reel)도 두 가지 종류가 있다. 35미리 필림에 사용하는 릴은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는 것이 사용하기 편하다. 이 종류의 릴에는 작은 금속 볼이 있어서 필림 양끝의 홈을 밀어 자동적으로 필림을 감아 준다.

 

(현상 탱크의 기구, 통, 뚜껑, 릴, 중간 막대)

(필림 모서리를 약간 잘라 들어가는 중간에 걸리지 않도록 한다.)

(필림을 릴에 넣은다.)

(릴을 그림과 같이 움직이면 필림이 자동적으로 말려 들어간다.)

(릴과 중간 막대를 조립한 뒤 뚜껑을 닫는다.)

(불을 켜도 된다.)

 

대부분의 35미리 릴은 중형 필림도 로딩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만 중형 필림은 35미리 필림과는 달리 홈이 없기 때문에 위와 같은 동작으로는 로딩되지 않는다. 그래서 필림을 손으로 밀어서 안으로 넣어야 한다. 그러나 필림을 넣는 과정에서 유제면을 손으로 잡아 지문 자국이 나기 쉽고 릴에 물기가 조금이라도 있는 경우는 중간에 필림이 달라 붙어 끝까지 밀어 넣기가 힘들어 진다. 그래서 중형 필림은 그림과 같은 스테인레스 릴을 사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이 릴에 필림을 로딩할 경우에는 가운데에 있는 스프링에 필림 끝을 물린 다음 필림의 양끝을 약간 누르면서 감아 나간다.

 

(중형으로 변환된 35미리 릴과 스테인레스 릴)

(스프링에 필림을 물린다.)

(양끝을 누르면서 감아 나온다)

(중간 막대와 조립한 후 탱크에 넣는다.)

 

현상약 배합 또는 희석

 

(HC-110과 로디날)

 

현상약은 약품 통에 지시되어 있는 대로 미리 배합하여 놓는다. HC-110은 점성이 매우 높은 액체로 된 현상약이며 물에 1:4로 용해하여 1차 약품을 만든 다음 사용하기 전에 물과 다시 희석하여 배합 비율을 맞춘다. 이 때 물과 희석하는 비율을 다양하게 조절하여 사용할 수 있는데 약품 통에는 6가지의 배합 비율이 예로서 제시되어 있다.

 

 

용해된 약품(1차 약품) 물의 양

A Type 1 3

B Type 1 7

C Type 1 4

D Type 1 9

E Type 1 11

F Type 1 19

 

이 때 주의 해야 할 점은 위에 제시된 배합 비율이 물에 용해된 1차 약품에 다시 물을 추가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어떤 자료에는 원액과 물의 비율이 그대로 나와 있기 때문에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즉 A Type의 배합 비율이 1:12로, B Type은 1:28 등과 같이 되어 있는 자료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원액과 물의 배합 비율이지 용해된 1차 약품과의 배합 비율이 아니다. 이것은 물론 틀린 자료는 아니지만 혼란을 야기시키는 고약한 자료이다. HC-110은 점성이 매우 강하여 원액과 물을 직접 혼합하는 경우 정확한 배합 비율을 지킬 수 없고 코닥사에서도 반드시 1차 용액을 만든 후 다시 물과 혼합하여 사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

 

아그파(Agfa)사의 로디날(Rodinal)도 농축된 액체로 된 현상약인데 이 약은 점성이 없기 때문에 주사기를 사용하면 정확한 배합 비율로 물과 혼합할 수 있다. 혼합 비율은 1:25 와 1:50 두 가지로 예시되어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예이므로 원한다면 다양하게 혼합 비율을 바꿀 수 있다. 나는 실제로 테크니칼 팬 필림을 현상 하면서 이 약을 1:200까지 희석하여 사용한 적이 있다.

 

그 외에 다양한 종류의 현상약이 많이 있지만 일일이 다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약품 통에 쓰여 있는 지시 사항대로 배합하면 된다.

 

온도 조절

현상약의 온도를 재는 온도계는 정확한 것일수록 좋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온도계의 정밀도 보다 사용하는 사람이 온도를 정확하게 맞추는 지가 현상 후의 결과에 더 큰 영향을 준다. 내가 사용하는 온도계는 시중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제품이고 그 정밀도가 어느 정도 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시 말해서 온도계의 눈금이 20도C를 가리켰을 때 그것이 과연 정확하게 20도C 인지는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이 온도계만을 사용하여 온도를 재면 설령 실제 온도 21.5도C를 20도C로 가리킨다 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이런 경우엔 예측했던 것보다 네가티브의 농도가 약간씩 더 진하게 나올 것이고 그렇다면 나중에 현상 시간을 약간 줄이면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온도계를 이것저것 섞어 쓰거나 현상약의 온도를 대충 맞춰 놓고 사용하는 경우에는 현상의 결과가 일정하지 않게 나오고 따라서 이런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현상 온도에서 중요한 것은 온도계의 정밀도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정밀도인 것이다.

 

(약품 희석 후 온도를 잰다. 비이커는 열 전도율이 작은 플라스틱을 쓰는 것이 좋다.)

(스테인레스 통은 열 전도율이 높아 주변 환경의 온도에 따라 쉽게 오르내리게 된다.)

(타이머 세팅)

(약품을 현상 탱크에 부은 후 타이머를 누른다.)

 

타이머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어떤 종류가 특별히 좋거나 나쁘지는 않다. 자신이 사용하기 편리한 것을 구하면 된다. 현상약을 넣는 것과 타이머를 누르는 것은 약간의 시차가 있을 수 있다. 타이머를 누르고 현상약을 붓기 시작할 수도 있고 현상약을 붓고 난후 타이머를 누를 수도 있다. 어떤 경우이던 자신이 한번 정한 방법을 계속 따르면 된다. 나는 현상약을 붓고 난 후에 타이머를 누르기 때문에 메이커에서 지정한 현상 시간 보다는 30초 정도 빠르게 현상을 끝낸다. 그리고 원하는 농도의 네가티브가 나오도록 현상 시간을 다시 조절해야 하기 때문에 메이커의 시간은 테스트를 시작하는 출발점일 뿐이다.

 

교반

 

(최초 1분간 아래 위로 뒤집는다.)

(그 다음부터는 20초간 뒤집고 나머지는 내려 놓는다.)

 

교반은 현상 도중에 현상약이 고루 섞이도록 해줘야 한다. 교반을 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현상 탱크를 아래 위로 뒤집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 같다. 하지만 자기 나름대로 교반하는 방법이 있고 아무 문제 없이 현상 결과가 나온다면 어떤 방법을 사용하던지 상관 없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교반 방법이나 횟수가 일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 날의 기분에 따라 교반 방법을 바꾼다거나 교반 시간을 늘렸다 줄였다 하면 그 결과를 보장할 수 없다.

내가 사용하는 방법은 최초 1분간 아래 위로 뒤집고 그 다음부터는 20초간 뒤집고 나머지는 내려놓는다. 교반을 20초간 하고 나서 나머지는 그대로 두는 것은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 이상 현상 시간 내내 일정하게 교반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동화된 조보(JOBO) 탱크는 모터를 사용하여 탱크를 계속 돌려 주게 되는데 이 때는 현상 결과가 위의 방법보다 진하게 나오므로 현상 시간을 줄여 주어야 한다.

 

온도와 교반이 농도에 미치는 영향

온도가 높을수록 그리고 교반을 많이 할수록 네가티브의 농도는 짙어진다. 온도가 지나치게 높아 25도C를 넘으면 입자는 더욱 거칠고 굵게 나오게 된다. 이것은 네가티브의 금속 은 입자가 주변의 다른 입자와 뭉쳐 커다란 덩어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온도가 30도C를 넘게 되면 유제면이 갈라지는 현상도 생긴다. 온도가 18도C 이하로 떨어지면 현상약의 성능이 급격히 떨어져 충분한 농도를 형성하지 못한다.

 

교반이 지나치게 많으면 네가티브의 농도가 증가하는데 주로 밝은 부분의 농도를 많이 끌어 올려 콘트라스트가 강한 사진을 만든다. 지나치게 높은 콘트라스트의 네가티브는 인화 과정에서 다루기가 아주 까다로운 물건이다. 그것은 네가티브의 일부가 짙게 형성된 금속 은으로 꽉 막혀버려 노광 시간을 늘리거나 인화지의 호수를 낮추어도 세부 묘사가 나오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이런 것을 네가티브가 막혔다고 한다) 그러므로 농도가 진한 부분이라고 하더라도 약간의 빛이 투과하여 세부 묘사가 살아 날 수 있는 정도로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네가티브는 원한다면 인화 과정에서 얼마든지 강한 콘트라스트의 사진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정지

현상이 끝나면 현상약을 쏟아낸 다음 정지액을 부어 중화시킨다. 정지액은 약한 산성 용액으로 현상약이 가진 알칼리성을 중화 시켜 현상을 즉시 멈추게 한다. 정지액은 물 1리터에 16ml를 혼합하게 되어 있다. 필림 현상약의 배합 비율은 현상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지만 정지액의 배합 비율은 현상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배합 비율이 너무 적으면 현상약이 즉시 중화되지 않으며 배합 비율이 너무 높으면 산성 기포가 생겨 필림 유제면에 구멍이 생기게 된다.

 

정착

 

(정착액을 붓고 다시 교반 한다)

 

정지가 끝나면 정착액을 붇는다. 정착액은 필림에 남아 있는 할로겐화 은을 제거해 주며 메이커가 추천하는 배합 비율과 시간을 지키면 된다. 일포드에서 나오는 HYPAM 정착액은 필림인 경우 1:4로 배합하여 2분간 사용하게 되어 있다. 정착액은 필림이나 인화지에서 할로겐화 은을 제거 할 수 있는 용량이 표시되어 있으므로 이 수치를 기억해 두는 것이 좋다. HYPAM인 경우 60롤의 35미리 필림이나 200장의 화이버 베이스 8X10 인화지 또는 400장의 화이버 베이스 8X10 인화지를 정착 할 수 있다고 표시 되어 있다.

다른 크기의 인화지인 경우는 면적 비로 계산하면 되는데 예를 들어 11x14인화지는 면적이 154제곱 인치(11X14=154)이고 이것은 면적이 80제곱 인치인 8X10인화지의 약 두 배이므로 정착 할 수 있는 장수는 반으로 줄어 든다.

 

수세

흐르는 물에 5~10분간 씻어 남아 있는 정착액 성분을 제거 한 뒤 정착액 제거제로 옮긴다. 정착액 제거제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에는 흐르는 물에 30분 이상 두어야 한다.

 

정착액 제거제

남아 있는 정착액 성분을 보다 효과적으로 제거하기 위한 약품이다. 일포드의 RIDFIX라는 제품은 경우 필림에 사용할 때 현상된 네가티브를 물에 30초 정도 넣어 표면에 묻어 있는 정착액을 제거한 다음 1:4로 배합한 용액에 2분간 담가 남은 정착액을 제거한 다음 5분간 더 수세를 하면 된다고 되어 있다. 수세를 하는 과정에서는 시간을 지키는 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으므로 메이커의 추천 보다 넉넉하게 해두는 것도 좋은 일이다.

 

건조

필림을 건조시킬 때 주의하여야 할 것이 먼지이다. 우선 수세가 끝난 필림을 포토플로(Photo-Flo) 용액에 30초간 담근다. 이 용액은 물방울의 표면 장력을 제거하여 필림면에서 잘 흘러내리도록 해주는 약이다. 물방울이 필림면에 붙은 채 건조되면 희미하게 물방울 자국이 남게 된다. 한편 젖은 상태의 유제면은 끈적끈적하게 점성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 먼지가 묻으면 유제면에 달라붙은 채 건조된다. 이것은 건조가 끝난 다음에 필림면에 붙은 먼지와 달리 쉽게 제거 할 수 없으며 제거한다 하더라도 유제면에 구멍을 내게 된다.

 

쉬트 필림의 현상

쉬트 필림을 현상 할 수 있는 방법은 대략 세가지 이다. 쉬트 필림을 현상하는 요령은 롤필림을 현상하는 과정과 동일한 부분이 많다. 따라서 공통되는 부분은 생략하고 쉬트 필림에만 적용 되는 부분을 설명하도록 하자.

 

트레이 현상

 

 

(트레이 현상의 준비, 물 , 현상약, 정지약, 정착액)

 

트레이 현상은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쉬트 필림을 현상해 주는 방법이다. 또한 이 방법은 암실의 불을 켜지 않는다는 것만 다를 뿐 인화지를 현상하는 것과 기본적으로 같기 때문에 약간의 주의만 기울인다면 쉽게 배울 수 있다. 실재로 한번에 한 장의 필림만 현상한다면 인화지를 현상하는 것과 동일하게 작업할 수 있다. 먼저 홀더에서 필림을 꺼내 현상약에 넣는다. 트레이의 앞쪽을 잡고 위 아래로 흔들어 교반을 한다. 현상이 끝나면 정지액을 거쳐 정착액으로 옮긴다. 그리고 불을 켜면 되는 것이다.

 

보통 트레이 현상에서는 4-6장의 네거티브를 한꺼번에 현상하게 된다. 필림을 한 장씩 현상하면 보다 깨끗한 결과를 보여 주기는 하지만 생산성이 너무 낮아 장시간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방법을 쓸 때에는 필름을 현상액에 넣기 전에 물로 적시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젖지 않은 필름이 알칼리성인 현상액에 들어가면 그 즉시 서로 달라붙게 되어 필름을 모조리 망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필름을 미리 적시어 놓으면 필림이 현상액에 들어가는 초기 단계에서 균일하게 현상이 이루어지도록 해준다. 물에 적시는 시간은 약 2-3분 이면 되는데 현상액으로 옮길 때 여러 장의 네거티브를 한꺼번에 옮기지 말고 한 장씩 꺼내서 옮기며 이때 시간은 10~15초 간격으로 하도록 한다. 이렇게 하면 예를 들어 여섯장의 필름을 현상할 경우 필림을 모두 옮기는데 1분~1분 30초가 걸리게 되어 먼저 들어간 필름과 나중에 들어간 필름이 농도가 차이 난다. 그래서 필름을 꺼낼 때에도 먼저 들어간 것부터 한 장씩 10~15초 간격으로 꺼내면 이 차이를 보상하여 네가티브간에 차이가 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쉬트 필림은 어느것이나 그 필림을 종류를 표시해 놓은 노치(notch)가 있는데 제일 먼저 현상액에 들어가는 필름은 노치를 반대 방향으로 넣어서 현상중이나 정지 액으로 옮길 때 들어간 순서를 알 수 있도록 한다.

이 방법으로 현상할 때 주의 할 점은 유제면이 밑으로 가도록 필름을 넣어야 한다는 점이다. 어떤 책에서는 필림의 유제면을 위로 가도록 넣으라고 되어 있는데 실제로 이렇게 해보면 필름에 치명적인 긁힘을 내는 경우가 많다. 쉬트 필림은 아세테이트 베이스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모서리가 매우 날카로워서 유제면이 위에 있으면 그 위로 다음 필름이 들어 가면서 날카로운 모서리로 긁게 되는 것이다. 필름이 다 들어가면 제일 밑에 있는 필름을 꺼내서 위에 놓는다. 10~15초 후에 역시 밑에 있는 필름을 꺼내어 위에 놓는다. 그러면 1분에 4~6장의 필름이 한번 순환하게 되는 것이다. 한 사이클이 끝나면 필름을 90도 회전 시켜야 한다. 필름을 돌리는 이유는 계속해서 한쪽 방향으로만 필름을 꺼내면 줄 모양의 현상 얼룩을 만들기 때문이다.

 

(홀더에서 필림을 꺼내 물에 넣는다. 이때 필림끼리 달라붙지 않도록 약 30 초 이상의 간격을 두고 넣도록 한다.)

(필림을 한 장씩 현상약으로 옮긴다. 제일 먼저 들어가는 필림은 노치를 반대로 놓는다.)

(필림이 다 옮겨지면 제일 밑의 필림을 꺼내어 윗면에다 놓는다. 이 때 유제면이 필림 모서리에 긁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약 10~15초 간격으로 이것을 반복한다.)

(필림이 한번 순환하였으면 방향을 90도 튼 후 위의 작업을 계속한다.)

(지정된 시간이 되면 제일 먼저 현상약에 들어간 필림을 정지액으로 옮긴다. 10~15초 간격으로 다음 필림을 옮긴다.)

(정착이 끝나면 불을 켠다.)

(필림면에 스크레치가 난 경우)

 

현상 시간의 조절(N-, N+ 현상)

트레이 현상이 편리한 이유는 각각의 필림이 현상되는 시간을 서로 다르게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나중에 존 시스템을 다루면서 자세한 설명이 나오겠지만 쉬트 필림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 중의 하나가 노출 상태에 따라 각 필림의 현상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고 이와 같은 현상 시간 조절(N-,N+)을 할 때에도 트레이를 사용하면 한번에 작업을 할 수 있다.

이렇게 하는 방법은 생각하기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현상시간을 적게 주어야 하는 필림을 기억해 두었다가 현상 도중에 꺼내도 되긴 되는데 실제로 작업을 해보면 현상 도중에 어떤 필름을 빨리 꺼내는 것보다 처음에 늦게 넣는 것이 더 편하다. 일단 현상이 진행되면 필름의 교반과 회전에 신경이 쓰여 시간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홀더 정리 n+1, n , n-1

 

예를 들어 N-1,N,N+1 의 필름을 한꺼번에 현상하고 각각의 시간은 8분,10분,12분이라고 하자. 이럴 때 현상액에 가장 오래 있어야 하는 필름이 먼저 들어갈 수 있도록 필름 홀더를 정리한다. 타이머를 켜고 첫번 째 n+1필름을 넣는다. 이 필름을 교반 하면서 2분 후에 n필름을, 4분 후에는 n-1 필름을 넣어서 같이 교반한다.

처음 필림이 들어간 후 12분이 되면 필름을 차례로 꺼낸다. 다시 한번 예기하지만 첫번째 들어가는 필림은 노치를 반대로 놓아서 알아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오픈 탱크 현상

나는 이 방법을 쉬트 필림을 사용하던 초기에 많이 사용하였으나 요즈음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탱크를 사용하긴 하지만 암실에서 불을 끄고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트레이 현상에 비하여 더 편리한 점도 없을 뿐 아니라 각 필림의 시간을 따로 주는 n-,n+ 현상을 하기가 불편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사용하는 양키 탱크는 원래 불을 켠 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다.(설명서는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나 막상 이 탱크를 사용하여 보니 교반을 효과적으로 할 수가 없었다. 탱크의 뚜껑이 고무로 밀폐되는 방식이 아니라서 탱크를 기울이면 약이 줄줄 새 나온다. 그러니 내가 좋아하는 교반 방식, 뒤집기는 아예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그래서 이 탱크의 구조를 요모 조모 살펴 보니 좌 우로 15도 정도 살짝 기울어 지도록 되어 있다. 이것은 필경 필림 현상을 해보지도 않은 자가 책상 위에서 아이디어만으로 만들어 낸 작품임에 틀림이 없다. 좌 우로 15도 정도 살짝 기울여서 할 수 있는 교반이란 것은 사진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실재로 이렇게 교반을 하면 필림의 주변부만 어느 정도 현상이 진행 되고 안 쪽으로 갈수록 현상이 거의 이루어 지지 않아 아까운 필림만 잔뜩 망치게 된다. 현장에서의 실무 경험 없이 나온 탁상공론이란 늘 이런 식의 결론이 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탱크는 암실에서 불을 꺼 놓고 작업한다면 훌륭한 현상 탱크로 용도 변경 될 수 있다. 문제는 교반이므로 필림을 로딩하는 현상 홀더를 들어 올려 교반을 하면 되는 것이다.

 

(탱크에 현상약을 준비 한다. 약이 넘칠 수 있으므로 트레이 위에서 작업을 하는 것이 좋다.)

(현상 홀더에 필림을 넣는다.)

(현상 홀더를 탱크에 넣고 30초가 상 하로 움직인다.)

(1분에 한번씩 현상 홀더를 꺼내어 옆으로 기울인다. 옆으로 기울이는 것은 현상약이 일정하게 흘러 내리면 그 부분의 농도가 더 진해지는 얼룩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기울이는 각도도 45도, 90도 등으로 바꿔 일정하지 않게 한다.)

(현상이 끝나면 정지액을 거쳐 정착시킨다. 불을 켠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오픈 탱크나 현상 홀더는 이 그림의 것과 모양이 다를 수 있지만 작업하는 방법은 동일하다.

 

탱크 현상

35미리 필림이나 롤 필림 현상에서와 같이 뚜껑을 닫은 뒤에는 불을 켜고 사용하는 탱크는 암흑 속에서 현상의 전 과정을 진행해야 하는 트레이나 오픈 탱크 현상에 비하여 매우 편리하다. 그렇지만 현상 탱크를 살 때 충분한 교반을 할 수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탱크를 뒤집어서 현상약이 새지 않는 형태의 것이 제일 좋다.

조보 탱크는 다른 것과는 달리 탱크를 옆으로 굴리게 되어 있다. 물론 위 아래로 뒤집는 일반적인 교반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는데 이 때에는 1.5리터의 현상약을 채워야 하지만 옆으로 굴릴 때에는 300cc의 현상약만 사용하기 때문에 대단히 경제적이다.

 

- 현상 홀더에 필림을 넣는다. 이것은 물론 암실에서 해야 하는 작업이다.

- 필림이 옆으로 벌어지지 않도록 가이드를 붙인다.

- 탱크에 넣고 뚜껑을 닫는다. 이제부터 불을 켜고 작업해도 된다.

- 300cc의 현상약을 넣고 옆으로 누인 다음 돌리기 시작한다. 이 탱크는 실재로는 모터가 달려있는 기계에 장착하여 자동적으로 돌리게 되어 있다. 하지만 최대한 수평을 유지하고 손으로 돌려도 쓸만한 결과를 만들어 준다. 돌리는 동작은 위 아래로 뒤집는 교반과 달리 쉬지 않고 계속 해야 한다.

- 정지액을 거쳐 정착액을 넣는다.

- 정착이 끝나면 뚜껑을 연다.

 

내가 조보 탱크를 사용하는 이유는 특수한 현상약 중의 하나인 PMK를 사용하기 위해서 이다. 일반 현상약은 트레이 현상에서 아무런 문제 없이 사용될 수 있지만 PMK는 독성이 강해 손으로 약품을 만져야 하는 트레이 현상이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장갑을 끼고 할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감각이 둔해져서 불편하다.

 

일반적인 사항

필림을 현상하기 전에 물에 먼저 적시는 것은 트레이 현상을 제외하고는 필요하지 않은 조치인 것 같다. 그것은 오늘날에 나오는 필림들이 모두 현상약을 고르게 적셔지게 하는 활성제를 필림면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림을 현상하고 나서 현상약의 색깔이 진한 갈색이나 녹색 또는 자색으로 변하는 것은 이 활성제가 현상약에 녹아 나왔기 때문이다. 한편 필림을 현상하는 시간은 어떤 현상약을 사용하던지 10분 정도로 조절하는 것이 좋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현상약을 진하게 배합하여 5~6분 정도의 시간을 주면 약이 먼저 묻은 부분과 나중에 묻은 부분의 농도가 눈에 띄게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약을 붓는 시간을 30초라고 가정 하면 현상 시간이 5분인 경우 처음 묻은 부분과 나중에 묻은 부분은 10%의 시간 차이를 가지게 된다. 현상 시간이 10분인 경우에는 이 차이가 5%로 줄어든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현상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지 못하였을 때 나타나는 오차가 현상 시간이 짧을 수록 더 크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현상 시간이 20분 가까이 되면 작업이 너무 지루해 진다. 특히 현상을 여러 번 해야 하는 경우에는 주의력도 떨어지기 때문에 불필요한 실수를 유발하기 쉽게 된다.

 

네가티브 검사.

현상된 네가티브에 문제가 있을 경우를 구분하여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1. 네가티브 농도가 너무 엷은 경우

2. 네가티브 농도가 너무 진한 경우

3. 현상이 균일하지 못하고 얼룩이 생기는 경우

4. 흠집이 많은 경우

5. 먼지가 많이 있는 경우

1. 네가티브 농도가 너무 엷은 경우는 다음 두 가지 원인이 있다.

1) 노출이 부족한 경우 --- 필림에 주어진 노출이 너무 적으면 네가티브의 어두운 부분(shadow)과 밝은 부분(high light)부분이 모두 엷게 나온다. 네가티브의 어두운 부분은 필림 현상 시간과 관계없이 주어진 노출의 양에 의하여 결정 되므로 이런 경우엔 노출을 전체적으로 올려야 한다. 만약 자신이 ISO400필림을 ISO400으로 사용하여 이런 결과가 나왔다면 그 필림을 ISO200으로 취급하여 사용하라.

2) 노출은 적정하나 현상 시간이 적은 경우 --- 이런 경우의 네가티브를 보면 어두운 부분의 세부 묘사는 충실히 살아 있으나 밝은 부분의 농도가 충분히 나와 있지 않다. 이런 경우엔 현상 시간을 늘린다. 시간은 한번에 10%정도 늘려서 테스트 하는 것이 적당하다. 현상 시간을 늘리면 어두운 부분의 농도가 너무 올라가게 되는 것이 아닌가하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어두운 부분의 농도는 현상 시간을 늘려도 증가하지 않는다.

(두 가지 경우 사진)

2. 네가티브 농도가 너무 진한 경우

1) 노출이 과도한 경우 --- 필림에 주어진 노출이 너무 많으면 네가티브의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이 다같이 진하게 나온다. 네가티브의 어두운 부분은 인화지에 재현 될 수 있는 범위만 넘어서면 되는 것이고 그 이상의 농도로 나올 필요가 없다. 덴시티 미터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이와 같은 농도(감마 0.3)를 재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일이나 육안으로 확인하는 경우는 다소 판정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

2) 적정 노출을 주었으나 현상 시간이 너무 긴 경우 --- 이런 네가티브는 얼핏 보아 노출이 과도한 것으로 판정하기 쉬우나 네가티브의 어두운 부분은 적정하게 현상이 되어 있어 농도가 진하지 않다. 현상 시간을 10%씩 줄여 가면서 밝은 부분이 적정하게 나오도록 조절한다.

 

(두 가지 경우 사진)

 

이와 같은 증상을 판단할 경우 대형 카메라에 사용하는 쉬트 필림인 경우에는 한 두장만 보고서도 판정할 수 있지만 35미리나 중형 필림인 경우 한 두 롤을 보고서 판정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35미리나 중형 필림인 경우 다양한 조명 상태에서 촬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노출이나 촬영이외에도 피사체 자체의 콘트라스트가 너무 높거나 낮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소한 5롤 이상의 필림을 현상하여 보고 농도가 진하거나 엷은 현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경우에 조절을 하는 것이 좋다.

 

3. 현상이 균일하지 못하고 얼룩이 생기는 경우 --- 대부분 교반이 적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교반이 너무 약하면 네가티브의 특정한 부분(주로 중앙 부이다)에서 농도가 너무 엷어지는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오염된 약을 사용하는 경우에도 이와 같은 증상이 나올 수 있다. 현상약을 배합하는 비이커는 항상 깨끗하게 유지해야 한다. 교반이 너무 강하면 네가티브의 콘트라스트가 올라갈 뿐 아니라 마치 어떤 액체가 흐른 자국처럼 보이는 얼룩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신선한 현상액이 특정 부위에 집중적으로 접촉하면서 그 부분의 현상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4. 흠집이 많은 경우 --- 이것은 카메라 내부가 지저분하거나 필림 홀더 내부에 먼지가 많은 경우에 생긴다. 카메라 내부를 잘 닦도록 한다. 우리가 흔히 먼지라고 부르는 것들도 알고 보면 다양한 근원을 가지고 있어서 섬유질의 작은 보푸라기 일수도 있고 미세하게 분쇄된 돌가루 일 수도 있다. 만약 미세한 돌가루가 카메라의 압판과 필림사이에 끼었다면 흠집이 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쉬트 필림을 트레이에서 현상하는 경우에는 필림의 모서리가 유제면에 닿아 생기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미세한 흠집이 아니라 유제면이 칼로 찢긴듯한 상처가 난다. 필림을 릴에 마는 경우에 흠집이 생기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이때는 주로 필림 유제면을 땀이 묻은 손으로 잡아 지문 자국이 나는 경우가 많다.

5. 먼지가 많은 경우 --- 네가티브에 먼지가 많은 경우는 깨끗하지 못한 물로 수세를 하거나 필림을 건조 시키는 장소에 먼지가 많기 때문에 생긴다. 특히 먼지가 많은 장소에서 헤어 드라이어로 필림을 건조 시키면 엄청난 양의 먼지가 필림면에 달라 붙게 된다. 건조가 끝난 필림에 먼지가 묻은 경우는 불어 내거나 솔을 사용하여 이를 제거 할 수 있지만 필림이 건조 되는 도중에 먼지가 묻어 있으면 유제면과 한데 엉겨 제거 할 수 없게 된다.

 

여기에 제시된 것 이외에도 네가티브를 망치는 원인은 많이 있다. 자신의 작업 방법이나 주위 환경을 점검하여 문제를 해결 하도록 하자. 한편 1항 과 2항에 제시된 농도 문제는 현상된 네가티브에 약품을 처리하여 이를 구제할 수도 있다.

 

 

 

[번 호] 20 / 21 [등록일] 1998년 06월 22일 14:09 Page : 1 / 25

[제 목] [닮산] 필림 현상 3

 

 

증가와 감소

 

네가티브 농도를 증가 시키는 방법들

 

사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많은 사람들이 노출과 현상에서 문제를 일으켜 실패작을 만들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실패작 일수록 찍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천하의 명작임이 틀림없다고 주장해 마지 않는 것이라 남이 보기에도 안타까운마음이 들 지경이다.

그것이 과연 천하의 명작이 될뻔(?)한 것이었는지 여부는 밝혀내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렇게 불완전한 네가티브가 만들어 졌을 때 이를 구제 하려는 노력은 따라서 사진의 역사와 함께 진행되어 왔다.

사실은 지금도 찍는 족족 노출과 현상이 완벽한 네가티브를 만드는 사람은 없으리라고 본다. 아마도 실패작이 성공작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많은 비율을 차지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온갖 종류의 환상적인 기능을 가진 카메라도 만들어 지는 것인데 평균 측광, 분할 측광, 다양한 프로그램 모드 등등 노출을 측정하는 방식만 10여가지가 넘는 것도 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어떤 방식을 쓰더라도 사진가의 입맛에 짝 맞는 노출을 주기가 불가능 하단 증거이다. 물론 사진가들의 취향이 다양하다는 점도 문제지만 어떤 피사체의 노출을 자동으로 결정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는 예기이고 여기에 변수가 많은 현상 과정이 더해지면 그야말로 천차만별의 결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자동 노출에 의존하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을 때의 기분과는 영 틀린 네가티브를 얻고 나서 황당한 표정을 짖거나 내심 잔뜩 벼르고 기대하던 필림이 엉뚱하게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은가? 물론 기념 사진을 찍는 데에는 전혀 실패 없이 동작하긴 하지만.

필림의 노출과 현상은 사진을 만드는데 중심선상에 있는 가장 중요한 과정인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아까운 네가티브를 구제하려는 노력은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네가티브의 농도를 올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리는 것이다

 

먼저 네가티브의 농도를 증가 시킨다는 것은 구체적으론 이미 형성되어 있는 은 입자에 추가로 금속 입자를 덧씌워 전체적인 농도를 올려주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네가티브 전체의 농도를 올리는 방법도 있고 일부분의 농도만 증가 시키는 방법도 있다. 농도 증가에 사용하는 금속 성분은 셀레니움(selenium), 은, 수은, 우라늄 중의 하나이다. 이중 셀레니움이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것이고 수은과 우라늄은 맹독성을 가지고 있어 별로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농도를 강화시키는 약품은 그 작용 기제에 따라 비례 강화제(proportional intensifier), 준 비례 강화제(sub-proportional intensifier), 초 비례 강화제(super proportional intensifier) 세가지 종류로 분류 된다.

 

비례 강화제는 네가티브에 분포되어 있는 은의 농도에 비례하여 강화 작용이 이루어진다. 즉 농도가 짙은 부분은 많은 강화가 이루어 지고 농도가 엷은 부분은 적은 양의 강화가 이루어 져서 전체적인 콘트라스트를 증가시키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강화제는 이 종류이다.

준 비례 강화제는 네가티브의 농도가 엷은 부분에 보다 활발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콘트라스트는 증가 하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강화제는 보통 네가티브의 색깔을 적색이나 오렌지색 또는 갈색으로 바꾸어 인화지가 반응하는 청색광을 차단하는 작용을 한다. 따라서 농도의 강화가 일어 나더라도 은 입자 자체는 별로 짙어지지 않고 필림면의 색깔을 변화시켜 마치 농도가 강화된 것처럼 작용하게 만드는 것이다.

초 비례 강화제는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대부분의 작용이 일어나서 네가티브의 콘트라스트를 매우 급격하게 증가 시킨다. 즉 비례 강화제와 그 작용 기제는 비슷하지만 그 효과가 헐씬 강력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편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 '직접 현상 방식'과 '표백/재현상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직접 현상 방식'은 현재 형성되어 있는 은 입자 주위에 추가로 금속 입자를 입히는 것이고 '표백/재현상 방식'은 은 입자를 표백 작용제로 완전히 제거한 다음에 다시 현상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직접 현상 방식은 강화 작용이 일어나는 정도를 눈으로 보면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만큼 강화가 되면 이를 정착액에 넣으면 된다. 그러나 표백/재현상 방식은 완전히 이미지를 제거해야 하고 재현상도 중간에 멈출 수 없기 때문에 원하는 농도로 조절하기가 다소 어렵다.

 

비례 강화제는 노출을 적절하게 준 상태에서 현상이 부족 하게 되었을 때 사용된다. 즉 N현상이 필요한 필림을 N-로 현상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이런 경우의 네가티브는 어두운 부분은 충분한 세부 묘사를 가지고 있으나 밝은 부분은 농도가충분치 않은 경우이다. 준 비례 강화제는 노출을 부족하게 주고 현상은 정상적으로 한 경우에 유용하다. 물론 필림에 아무것도 기록이 안된 부분은 어떠한 강화제로도 이를 살릴 수 없다. 그러나 노출이 약간 부족한 경우에는 어느 정도 은 입자가 형성되기는 하는데 실제 인화를 하면서 이 부분의 세부 묘사를 살릴 수 없을 정도로 엷게 형성되는 것이다.(즉 감마0.1 이하의 농도이다) 이렇게 농도가 부족한 은 입자를 강화 시켜서 인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끌어 올려 주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초 비례 강화제는 비례 강화제보다 헐 씬 더 강한 효과가 필요할 때 사용한다.

 

셀레니움 강화제

보통 셀레니움 토너(Selenium Toner)라고 부르는 이 약품은 세피아 토너(Sepia Toner)와는 다른 것이니 혼동이 없어야 한다. 필림의 농도를 올리는 강화제 중에서는 가장 널리 쓰이고 있고 또 가장 쉽게 사용 할 수 있는 약품인데 이것은 원래 인화지의 콘트라스트를 강화시키거나 짙은 갈색으로 착색(toning)하는 데 쓰이던 것이다. 필림의 강화제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1:4 이하로 배합하여 사용 한다.

 

이 토너를 농도가 부족한 네가티브의 강화제로 처음 사용한 사람은 안젤 아담스(Ansel Adams)이다. 그가 자신의 저서 'Negative'의 개정판을 준비하면서 그의 조수 였던 앨런 로스(Alan Ross), 존 섹스톤(John Sexton)과 함께 이런 저런 사진에 관한 토론을 하다가 인화지의 톤을 강화 시키는 이 토너를 필림에 쓸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아이디어에 대한 구체적인 테스트는 앨런 로스(Alan Ross)의 주도하에 이루어 졌고 그 결과가 개정판 'Negative'에 실리게 되었다. 그 이후 셀레니움 토너는 필림의 농도 강화제로 가장 널리 쓰이게 된 것이다. (앨런 로스와 존 섹스톤은 지금 현역 작가로 활동하고 있고 대형 카메라로 흑백 사진을 찍는 f64계열의 작가들이다.)

 

보통의 강화제는 거의 모두 네가티브의 농도를 올리면서 입자도 굵게 만드는 부 작용이 있는데 비하여 이 약은 네가티브의 입자를 크게 하지 않으면서 농도를 증가시키는 결정적인 장점을 가지고 있고 또 필림의 보관 수명도 증가 시키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단점이라면 농도를 강화 시키는 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아 네가티브의 상태에 따라 약 1/2단계에서 1단계 정도의 농도 증가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셀레니움 토너는 비례 강화제이고 따라서 적정 노출을 주었으나 현상시간이 부족하게 된 네가티브에 사용하면 적합하다. 사용하는 방법은 필림 전체의 농도를 증가 시키는 경우와 필림의 일부만 증가 시키는 방법을 나누어 설명하도록 하자.

 

먼저 네 개의 트레이를 준비하여 첫번째 트레이에 물을 넣고, 두번째 트레이에 정착액 제거제(hypo clearing solution), 세번째 트레이에 셀레니움 토너, 네번째 트레이에 정착액 제거제순으로 놓는다.

네가티브를 첫번째 트레이의 물속에 넣고 최소한 3분 정도 담가 둔다. 그리고 두번째 정착액 제거제 트레이로 옮겨 역시 3분 정도 둔다. 정착액 제거제를 사용하는 이유는 필림에 수세 되지 않고 남아있는 정착액 성분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 이다. 정착액 성분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셀레니움 토너에 들어가면 필림에 반점과 같은 얼룩이 생기게 된다.

필림을 세번쩨 트레이에 있는 셀레니움 토너 용액으로 옮겨 교반을 한다. 교반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으나 인화지를 현상할 때처럼 트레이를 흔들어 주면 필림의 밑면이 트레이에 닿아서 흠집을 내기 쉽다.

그보다는 약 30초 간격으로 필림을 꺼내어 한쪽 면을 잡아 필림면의 토너가 흘러 내리도록 한 후 다시 토너에 넣는 방법이 좋다. 이때 필림을 90도씩 회전 시켜 같은 쪽을 잡지 않도록 한다. 한쪽만 계속 잡을 경우 토너가 흐른 자국이 필림에 남게 된다.

이 과정은 불을 켜고 하는 것이므로 네가티브의 농도가 적당하게 진해졌다고 생각되면 네번째 정착액 제거제 트레이로 옮겨 강화 작용을 중단 시킨다. 필림의 수세는 현상 후에 하는 방법과 동일하게 하면 된다.

 

부분 강화

 

필림의 일부분만 토너로 처리하는 것은 필림 크기가 작은 35미리나 중형에서는 곤란 하지만 4X5 이상의 대형 필림은 별 어려움 없이 할 수 있다. 먼저 물과 정착액 제거제에 3분씩 담갔던 네가티브를 평평한 유리판에 유제면이 위로 가도록 붙이고 물기를 제거한다. 작은 붓을 사용하여 필요한 부분에 토너를 적시고 30초간 둔다. 30초 후에 물로 토너를 제거하고 다시 붓으로 토너를 적신다.

원하는 농도가 이루어 지도록 위의 과정을 반복한다. 셀레니움 토너는 5-10분 정도면 증가 시킬 수 있는 최대치에 도달 하므로 더 이상 계속하는 것은 의미가없다.

한편 필림의 물기를 깨끗하게 제거하지 않고 토너를 적시면 필요한 부분의 주변에도 토닝의 효과가 일어나게 된다. 토닝이 필요한 부분이 정확한 윤곽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는 이 방법이 더 자연스럽게 보이게 된다. 특정한 부분이 갑자기 톤이 변하면 아무래도 모종의 야로를 부린 느낌이 들게 되는 것이다. 필림에 수평선이나 기타 뚜렷하게 구분되는 선이 있는 경우에는 필림의 끝을 잡고서 일부를 토너를 담은 트레이에 넣고 수평선을 기준으로 위 아래로 약간씩 흔드는 방법도 있다. 이때 위 아래로 약간씩 흔드는 것은 토너가 닿은 부분이 뚜렷한 선을 그으며 표시를 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다.

필림의 일부만 토닝을 한 경우에는 토닝을 한 흔적이 필림에서 뚜렷하게 보이는 것을 감추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이 끝난 다음 필림 전체를 토너에 넣고 약간 더 토닝을 해두는 것이 좋다.

 

수은 강화 작용제

이것은 네가티브의 은 입자를 완전히 제거한 후 인화지 현상약 덱톨(Dektol 또는 D-72라고 한다. 필림 현상약이 아닌 인화지 현상약을 사용한다)로 재현상을 하는 약품이다. 재현상 과정에서 네가티브의 농도와 콘트라스트가 크게 증가하게 되는데 필요에 따라서는 이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여 농도를 계속 올릴 수 있다. 또 필림에 아주 희미하게 기록이 되어서 인화 작업이 거의 안되는 부분도 농도를 올려서 인화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므로 결과적으로 노출 부족을 약간 보상해 주는 결과를 나타낸다.

몬코벤(Monchkoven) 강화제는 수은 강화제의 일종인데 재현상 용액으로 일반 현상약 대신 질화 은(silver nitride)과 시안화 칼륨(potassium cyanide)의 혼합 용액을 사용하여 초 비례 강화제(super proportional intensifier)로 작용한다. 이것은 밝은 부분의 농도를 증가시키면서 한편으론 어두운 부분의 은 입자를 녹여내어 전체적인 콘트라스트를 급격하게 증가 시킨다.

수은 강화제는 인체에 흡수되면 치명적인 중독 현상을 일으키므로 반드시 고무 장갑을 사용하고 필요한 주의 사항을 잘 지켜야 한다. (일본의 미나마따 병이라고 들어보았을 것이다. 유진 스미스의 사진으로도 유명한데 수은 중독으로 생기는 무서운 병이다)

 

안스코 330

물 750ml

potassium bromide 10g

mercuricchloride 10g

물을 추가하여 1000ml로 만든다.

이것은 표백 후 인화지 현상액으로 재 현상을 하는 안스코의 수은 강화제 처방이다. 이 강화제는 셀레니움 토너와 달리 네가티브의 농도를 강화 시키는 과정에서 입자의 크기도 증가시킨다. 그러므로 셀레니움 토너로는 처리 할 수 없을 정도로 현상이 많이 부족한 네가티브에 사용되어야 하며 네가티브가 충분히 수세 되지 않으면 노란색 반점이 생기게 되므로 주의 해야 한다.

또 필림 표면에 생긴 작은 흠집들도 강화 작용 도중에 그 형태를 키우게 되어서 같이 커지므로 흠집이 많은 네가티브에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사용하는 방법은 안스코 330 용액에 네가티브를 넣어 은 입자가 완전히 없어지고 투명한 베이스면만 남을 때 까지 표백을 시킨 다음 인화지 현상액에 넣고 재현상을 하면 된다. 네가티브에서 은 입자가 사라지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하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표백제의 주 성분인 브롬화 칼륨(potassium bromide)은 금속 은을 빛에 반응하지 않는 할로겐화 은으로 바꿔주는 역할을 하므로 현상액에 넣으면 현상이 다시 진행되는 것이다. 빛에 반응 하지 않는 할로겐화 은으로 변한다는 것은 네가티브를 불빛에 노출 시켜도 반응하지 않는다는 예긴데 따라서 불을 켠 실내에서 필림의 상태를 눈으로 확인 하면서 재현상을 진행 할 수 있다. 재현상에 필요한 시간은 약 3분이며 현상 후에 정착액을 거치지 않고 바로 수세를 하

면 된다.

이와 같이 표백/재현상 방법 자체는 세피아 토너로 인화지에 착색을 하는 과정과 동일하다. 세피아 토너도 A용액(표백제)에 인화지를 넣어 이미지를 표백 시킨 다음 B용액(현상약)에 넣어 표백된 이미지를 다시 살리는 것이다. 물론 이미지가 다시 살아 나면서 특유의 노란색으로 착색되어 나타난다. 그러므로 세피아 토닝을 해본 사람은 어떤 내용을 말하고 있는지 금방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수은 강화제의 특징은 수세를 하기 전에 정착액에 넣으면 농도가 다시 감소 하기 시작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아주 편리한 특성으로서 강화가 지나치게 일어났을 때 필요한 만큼 다시 줄여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정착에서 주의 할 점은 급속 정착액(Rapid fixer)이 아닌 일반 정착약(Hypo 또는 Plain fixer)을 써야 한다는 점이다. (하이포라고 불리는 일반 정착액은 Sodium Thiosulfite 성분을 가지고 있고 급속 정착액은 Ammonium Thiosulfite 성분을 가지고 있다)

 

안스코 331

A 용액

물 750ml

potassium bromide 23g

mercuric chloride 23g

물을 추가하여 1000ml로 만든다.

B 용액

물 500ml

potassium cyanide 23g

물 500ml

silver nitride 23g

B 용액을 만들 때 시안화 칼륨(potassium cyanide)과 질화 은(silver nitride)는 따로 따로 물 500ml씩에 용해 시켜야 하고 용해가 된 후에 시안화 칼륨 용액을 질화 은 용액에 천천히 붓는다.

이것은 몬코벤(Monchkoven) 강화제의 일종인데 초 비례 강화제로 작용하며 콘트라스트도 아주 강하게 증가시켜 인화지 상으로는 3~5호 정도 차이를 보이게한다. 사용할 때는 먼저 A용액에 필림을 넣어서 이미지를 완전히 제거한 다음 B용액으로 옮겨 현상을 진행한다. 재현상 결과 농도가 지나치게 증가하였으면 하이포 정착액에서 농도를 줄일 수 있다.

 

우라늄 강화제

 

A 용액

uranium nitrate 22g

물을 추가하여 1000ml로 만든다.

B 용액

potassium ferricyanide 22g

물을 추가하여 1000ml로 만든다

A 용액과 B 용액을 1:1로 혼합한다.

 

이것은 필림의 색깔을 적색에 가까운 색으로 변화시켜 인화지가 반응하는 청색광을 차단 하는 것이다. 따라서 앞서의 수은 강화제와는 달리 필림의 은 입자가 눈에 띄게 짙어 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화를 하면 어두운 부분의 세부 묘사가 강화되는 전형적인 준 비례 강화제이다. 그러나 보존성은 좋지 못하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색이 변하기도 한다.

사용하는 방법은 혼합된 강화제에 네가티브를 넣고 색깔이 적당하게 변하면 꺼내어 수세 시키면 된다. 색이 진하게 변할수록 강화 효과도 커진다.

 

은 강화제

네가티브에 은을 추가시키는 이 약품은 수은 강화제에 비하면 독성이 헐씬 적은 비례 강화제이다. 네가티브에 이미 형성된 은 입자 주위에 추가로 은 입자를 입히는 작용을 한다. 흔히 쓰이는 종류로는 듀퐁의 3-1, 코닥의 In-5 가 있으나 이름만 틀릴 뿐 그 성분은 같다.

4가지 종류의 용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용하기 직전에 혼합하여 써야 한다. 혼합하기 전에는 약품의 보존성이 좋아서 오랫동안 보관 할 수 있으나 일단 혼합이 이루어지면 화학적 특성이 빠르게 변해버리므로 한번 사용하고 나면 버리도록 해야 한다.

 

듀퐁 3-1 과 코닥 In-5

A 용액 (빛이 투과하지 않는 갈색병에 보관)

silver nitride 60g

증류수를 추가하여 1000ml로 만든다

B 용액

sodium sulfite 60g

물을 추가하여 1000ml로 만든다

C 용액

sodium thiosulfate 105g

물을 추가하여 1000ml로 만든다

D 용액

sodium sulfite 15g

metol 24g

물을 추가하여 3000ml로 만든다

 

네가티브에 형성되어 있는 은 입자의 농도에 비례하여 추가로 은 입자를 입힌다는 것은 현상 시간을 길게 하여 처음부터 충분한 양의 은 입자를 형성시킨 것과 마찬가지 이므로 원래의 현상 시간을 연장한 것과 제일 비슷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또 비례 작용제 이므로 네가티브의 농도를 증가시키면서 콘트라스트도 올린다. 사용할 때는 먼저 B용액을 A용액에 넣고 젓는다. 그러면 하얀 입자들이 용액에 형성 되는데 여기에 다시 C용액을 넣으면 이 입자들은 용해된다. 계속 저으면서 D용액을 추가한다. 배합 비율은 1:1:1:3이다.

용액은 만들어 진 후 30분 이내에 사용되어야 하므로 혼합 즉시 네가티브를 넣고 농도가 변하는 것을 보면서 교반 한다. 처리하는 시간은 25분을 넘으면 안된다. 처리가 끝나면 정착을 거쳐서 수세한다.

 

크롬 강화제

셀레니움 토너가 필림의 강화제로 쓰이기 전까지는 가장 많이 쓰였던 약품이다. 이것은 코닥에서 Chromium Intensifier라는 상품명으로 발매 되었었지만 애석하게도 지금은 생산이 중단되었다. 네가티브를 물에 적신 다음 표백을 완전하게 시키고 인화지 현상액으로 재현상을 하는 타입이며 셀레니움 토너 보다 한층 강하게 농도를 증가 시킬 수 있다.

 

potassium bichromate 90g

hydrochloric acid 64ml

물을 추가하여 1000ml로 만든다

 

사용 할 때는 위 용액을 물과 1:9로 혼합하여 네가티브를 완전히 표백 시킨다. 수세는 약 5분 정도 흐르는 물에서 하고 현상액에 옮기면 되는데 현상액은 덱톨(Dektol)을 1:3으로 타고 실내등 하에서 현상을 진행시키면 된다. 덱톨 이외의 인화지 현상액도 사용하는데 문제는 없지만 단 아황산 염(sulfite성분)이 함유되어 있는 미립자 현상약을 쓰면 안된다. 아황산 염은 은 입자를 용해시키므로 재현상이 이루어 지기 전에 은 입자를 필림면에서 제거 해 버린다. 농도가 강화되는 정도는 재현상 시간에 따라 좌우 되므로 적절한 변화가 이루어 졌을 때 정착액으로 옮긴다.

 

불량한 네가티브를 구제하여 좋은 사진을 만들어 내는 것은 즐겁기도 하고 흥분되기도 하는 일이다. 그러나 잘못 처리되면 네가티브를 완전히 못쓰게 되므로 처음엔 별로 중요하지 않은 필림부터 시도해 보길 바란다. 또한 독성이 강한 약품이 많으므로 환기가 잘 되는 곳에서 사용하고 장갑을 반드시 끼는 등의 주의를 기울여 건강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건강과 바꿀 수 있는 필림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네가티브 농도를 감소 시키는 방법들

 

네가티브의 농도를 감소시켜야 하는 것은 네가티브가 노출 과다가 되었거나 현상 과다가 된 경우 또는 이 둘이 한꺼번에 일어난 경우이다. 간단하게는 표백제를 사용하여 네가티브의 은 입자를 어느 정도 제거한 다음 꺼내어서 말릴 수도 있는 일이고 표백/재현상 방법을 써서 네가티브의 이미지를 완전히 제거한 다음 다시 현상을 할 수도 있는 일이다.

노출 과다와 현상 과다는 은 입자가 분포되어 있는 양상이 틀리므로 각기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여야 한다. 노출 과다인 경우에는 네가티브의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다같이 과도한 은 입자로 덮여있다. 반면에 현상 과다의 경우에는 어두운 부분은 정상적으로 현상이 되어 있으나 밝은 부분만 입자가 과도하게 분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노출 과다인 경우에는 은 입자를 제거하면서 전체적인 콘트라스트는 올려줘야 하고 현상 과다인 경우에는 은 입자를 제거 하면서 전체적인 콘트라스트는 내려줘야 한다.

 

감력제의 종류

 

1. 비례 감력제(Proportional reducer)는 네가티브의 은 입자 농도에 비례하여 은 입자를 제거 하는데 농도가 짙은 부분일수록 더 많은 양의 입자가 제거되는 방식이다. 이 경우엔 밝은 부분의 농도가 줄어드는 것이 어두운 부분의 농도 감소에 비하여 빠르게 나타나므로 전체적으로는 콘트라스트가 줄어들게 된다. 이 방식의 감력제는 노출은 맞게 주었으나 현상을 과도하게 진행시킨 네가티브에 적합하다. 물론 완벽한 비례로 은 입자를 감소 시키는 것은 없다. 하지만 몇몇 약품은 이와 비슷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비례 감력제라 보아도 될 것이다.

2. 초 비례 감력제(Super proportional reducer)는 농도가 진한 부분의 은 입자만 집중적으로 제거하고 엷은 부분에는 작용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현상 과다의 정도가 심한 네가티브에 잘 쓰인다.

3. 균등 감력제(Cutting reducer)는 네가티브 전체에 고르게 반응하여 은 입자를 제거 한다. 네가티브의 어두운 부분은 밝은 부분 보다 헐씬 적은 양의 은 입자가 분포 하는데 어디서나 고르게 은을 제거 하므로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의 농도 차이가 커지게 되며 전반적인 콘트라스트는 증가 하게 된다. 노출 과다인 네가티브에 사용하는 것이 적당하다.

 

이와같이 세가지 분류로 감력제를 분류 하였지만 사실은 엄밀하게 분류하기는 다소 곤란한 점도 있다. 예를 들어 가장 널리 쓰이는 '화머 감력제(Farmer's Reducer)는 일반적으로 균등 감력제(Cutting reduser)로 쓰이지만 희석 비를 높이면 비례 감력제(proportional reducer)의 성격을 더 강하게 띄게된다.

 

네가티브의 농도를 화학적으로 내리는 이 방식은 정상적으로 노출/현상된 필림에 비하여 눈에 띄는 질의 저하를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것 이외에는 어쩔 도리가 없는 네가티브를 구제하는데 사용 되어야 하며 노출과 현상을 대충 대충 해도 된다고 믿어서는 안된다. 기사회생이라는 말도 있긴 하지만원래 문제가 없었던 것에 비교하면 그저 살아난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것아닌가?

 

안스코 311

이것은 표백/재현상 방식의 초 비례 감력제이다. 현상 과다의 네가티브에 적합한 약이다.

Potassium ferrocyanide 35g

Potassium Bromide 10g

물을 추가하여 1리터로 만듬

먼저 안스코 311 용액에 네가티브를 넣어 은 입자를 제거 시킨다. 약 2~3분이면 완전히 제거되어 투명한 베이스면 만 남게 된다. 이것을 일반 현상액에 다시 넣어서 현상을 진행하면 되는데 현상약의 종류는 미립자 현상액을 제외하고 어느것이나 상관없다. 현상은 실내에서 현상의 진행 정도를 육안으로 확인하면서 할 수 있고 현상이 끝나면 보통과 같이 정착, 수세 과정을 거친다.

 

화머 감력제(Farmer's reducer)는 특히 인화지의 표백에 주로 사용되는 감력제인데 같은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좀더 강한 성능을 가진 R-4a도 있다. 둘 다 2개의 용액으로 되어있고 사용 직전에 이 두 용액을 섞어서 쓸 수 있고 또 두 용액을 따로 사용할 수도 있다.

 

화머 감력제, 코닥 R-4a

A 용액

Potassium Ferricyanide 37.5g

물을 추가하여 500 ml로 만든다

B 용액

Sodium Thiosulfate 480g

물을 추가하여 2000ml로 만든다

 

R-4a나 Farmer's Reducer는 둘 다 균등 감력제(cutting reducer)이다. 이 약품은 두 가지 용액을 섞지 않은 상태에서는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다. 사용할 때는 A용액 30ml와 B용액 120ml를 혼합하고 물을 추가하여 1000ml를 만들어 쓰면 된다. 혼합된 용액에 네가티브를 넣고 적절히 표백 된 다음 수세를 하면 되는데 이때 흰색의 트레이를 사용하면 네가티브가 어느 정도 표백 되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좀더 약한 능력을 가진 용액을 만들고 싶으면 A용액을 반으로 줄이고 B용액은 그대로 혼합하여 쓰면 된다. 이때는 표백의 속도도 느려지고 표백되는 정도도 줄어들게 된다.

이 종류는 두 가지 용액을 혼합하지 않고 따로 사용하면 비례 감력제(proportional reducer)로 작용한다. 이때는 A와 B용액을 두개의 트레이에 따로 놓고 먼저 네가티브를 A용액(표백 작용)에 넣은 후 표백 되는 정도를 보아 B용액(정착)에 넣는다. 이 과정은 원하는 만큼의 효과가 나올 때까지 계속 반복할 수 있다.

 

코닥 R-4b

A용액

potassium Ferricyanide 7.5g

물을 추가하여 1000ml로 만든다.

B용액

Thiosulfate 200g

물을 추가하여 1000ml를 만든다

이것은 두 가지 용액을 섞지않고 사용하는 비례 감력제(proportional reducer)이다. 네가티브를 A용액에 넣고 원하는 만큼의 감력이 일어나도록 약 1~4분정도 둔다. 이때 트레이를 흔들어 교반이 이루어 지도록 한다. B용액으로 옮겨 5분 정도 정착을 한 후 수세한다. 이것도 필요에 따라 여러 번 반복 할 수 있다. A용액은 강한 햇빛에 노출되지 않는 한 수명이 오래 가지만 정착액이 섞이면 수명이 줄어든다.

 

코닥 R-5

A 용액

물 1000ml

Potassium Permanganate 0.3g

Sulfuric acid (10% 용액) 16ml

B 용액

물 3000ml

Ammonium Persulfate 90g

이것은 적정 노출을 주었으나 현상이 과도하게 된 네가티브에 주로 쓰이는 비레 감력제(proportional reducer)이다. 황산(Sulfuric acid)을 10% 용액으로 만들 때 반드시 비이커에 물을 넣은 후 산 용액을 조금씩 붓는다. 절대로 황산 용액에 물을 부어서는 안된다. 이럴 경우 급격한 혼합 반응과 열이 발생하고 산이 튀어 피부에 손상을 주게 된다. 사용할 때는 A와 B를 1:3으로 혼합하면 된다.

 

코닥 R-8a

이것은 노출도 과다하고 현상도 과다하게 된 경우에 쓰이는 균등 감력제(cutting reducer)이다.

물 750ml

Ferric Ammonium sulfate 45g

Potassium Citrate 75g

Sodium sulfite 30g

Citric acid 22.5g

Sodium Thiosulfate 200g

물을 추가하여 1000ml로 만든다.

약품은 위에 열거된 순서대로 물에 용해시킨다. 강한 감력 효과를 위해서는 위의 용액을 그대로 사용하고 보다 천천히 반응을 진행시키려면 1:1로 물과 혼합한다.

 

일포드 IR-2

Ammonium Persulfate 25g

물을 추가하여 1000ml로 만든다.

이것은 현상 과다로 콘트라스트가 지나치게 높아진 네가티브에 사용된다. 이때 사용하는 물은 수산화 염기가 없어야 하므로 반드시 증류수를 써야 한다. 네가티브 농도가 적절히 줄어들면 정착액으로 옮긴 후 수세한다.

 

일포드 IR-5

A 용액

물 750ml

Potassium Iodide 25g

Iodide crystals 4g

물을 추가하여 1000ml로 만든다.

B 용액

Potassium cyanide 8g

물을 추가하여 1000ml를 만든다

사용할 때는 각각 25ml의 용액을 혼합하고 물을 추가하여 500ml로 만든다.

 

이상과 같이 여러 약품을 소개하였다. 여기에 나오는 것들을 나 자신도 모두 다 사용해 본 것은 아니며 또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여러 가지 자료를 가지고 그 중 필요하다 싶은 것을 모은 것이며 각자의 상황에 따라서 어떤 것은 쉽게 구할 수 있고 또 어떤 것은 구할 수 없을 터이니 참고 자료로 활용하면 좋겠다.

내가 사용하는 약품은 강화제로는 '셀레니움 토너', 그리고 감력제로는 '화머 감력제'이다. 셀레니움 토너는 네가티브의 농도를 올리는 것 이외에도 인화지의 보존과 착색을 위하여 필요한 암실 용품이고 화머 감력제도 인화 작업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약품이다. 최소한 이 두 가지 정도의 약품은 암실에 구비하여 두는 것이 좋겠다.

 

참고로 위에 설명된 내용 중 약품을 배합할 때 '물을 추가하여 1000ml'로 만든다는 것은 먼저 일정한 양의 물로 약품을 녹인 후 여기에 물을 더 넣어서 1000ml로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배합이 완료된 약품이 1000ml의 용량을 가진다.

한편 물 1000ml에 다른 약품을 추가하도록 처방 되어 있는 경우는 먼저 1000ml의 물을 준비한 후 여기에 약품을 섞는 것이다. 이 경우엔 배합이 완료된 약품이 1000ml보다 많게 된다. 예를 들어 물 1000ml에 a라는 약품을 30ml를 섞는 경우 최종적으로 1030ml의 용량이 나온다.

 

(셀레니움 토너와 화머 감력제의 사용 예)

 

 

<<문서 끝.>>